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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11월 20일 추수감사주일 예배 골 3:15 라온코이노니아의 밥 감사

 

테니스에서 골든 슬램을 달성한 앤드리 애거시의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1992년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후 애거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윔블던에서) 우승한 저는,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의 시간은 패배의 고통의 시간 보다는 너무나 짧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기분은 슬픈 기분만큼 길게는 계속되지 않습니다. 비슷하다고도 생각 할 수 없죠.”(앤드리 애거시의 자서전에서)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로 유명한 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의 에피소드도 이것과 비슷합니다. 그는 16살에 스쿼시로 이스라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챔피언을 목표로 하여, 매일 6시간에 달하는 5년간의 하드 트레이닝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승 축하 파티 후, 귀가한 그는 자기 방에서, 오랜 세월의 꿈이 이루어진 행복이 벌써 사라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극히 적은 사람만이 얻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가치의 기쁨조차 아차 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립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면, 고수입의 동경하던 직업을 가진다면, 이상적인 연인과 결혼할 수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 세계 넘버원의 스포츠 선수가 된다면, 할리우드의 스타가 된다면, 누구나가 뒤돌아보는 미녀가 된다면, 총리대신이 된다면, 대통령이 된다면.

복권에 당첨된다면, 행복하게 ‘된다’라고 생각하여, 희미한 기대를 계속해서 안고 살아갑니다. 복권 당첨금으로 태양 빛이 내리쬐는 곳의, 훌륭한 저택에 살 수 있다면. 시시한 일을 그만두고, 아무 불안도 없이 살 수 있다면, 수영장 옆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영원히 느긋하게 지낼 수 있다면. 본인이 계속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들러, 온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러나, 목적을 달성한 것만으로는, 행복하게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도착할 수 있는 정상에서 만나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되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기쁨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얼마나 오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의 시간과 비례합니다. 행복은 감사할 때 시작됩니다. 감사가 모아져서 행복을 이루게 됩니다. 아무리 으리번쩍한 집에서 푹신한 고급침대에서 잠을 자고 맛있는 식사를 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며 감자한 알로 끼니를 때워도 감사 합니다 말을 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중 12사람을 뽑아 앞으로 들어가 살 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여 오라고 하였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샅샅이 살피고 돌아온 정탐꾼 중 10사람은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그곳은 매우 풍요로운 땅이지만 그곳에는 거인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우리는 그들에게 메뚜기 같이 밟혀 죽을 것입니다’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여호수아 와 갈렙은 정 반대의 말을 보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니 그들은 우리의 밥(레k헴)입니다.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무서운 거인들이 산다할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들은 ‘우리의 밥(레k헴)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어렵고 힘들고 아프고 슬픈 일들로 전혀 감사할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 감사할 수 없는 조건들이 우리의 밥(레k헴)이 될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 우리의 밥(레k헴)이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감사를 오늘의 설교제목으로 밥 감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無에서 아무것도 없는 제로상태에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creatio ex nihilo).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었습니다. 사람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무것도 스스로 살아 갈수 없는 무에서부터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무엇도 할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제로 상태 무로 부터의 인생(vita ex nihilo). 입니다. 우리 집 개 이름이 랑입니다. 랑은 우리가 억을 것을 주어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때로 먹을 걸 달라고 짓어대고 맛 있는거 더 달라고 짖어댑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이 제로 O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세상에서 번성하라 축복 하시며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자연 숨 쉬는 공기, 따스한 햇빛, 햇쌀로 지은 쌀밥, 밤고구마, 가지, 고추, 감, 사과.... 사람이 누리고 먹고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음을 아는 일이 믿음이며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믿음이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조건적 감사란 없습니다. 조건이 있어야 감사한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문장구조가 안 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우리는 무 제로 O이었으니 조건이란 없습니다. 산다는 게 모두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없어도 감사, 어려워도 감사, 힘들어도 감사,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감사할 수 없는 일도 감사할 일이니 우리 기독교인은 그래서 저는 밥(레k헴) 감사라고 말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장애로 고통 받는 아이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혹시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결국 평생 장애아로 살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과연 부모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이력서를 수십 통씩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 보려고 하지만 면접도 제대로 못해 보고 서류심사에서 계속 떨어질 때, 과연 젊은이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사업을 시작해 보지만 생활비는 고사하고 가게 월세도 해결 못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가게 주인의 입에서 과여 감사의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밥(레k헴) 감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게 된 부부가 아픔을 딛고 교회에 출석해서 장례식때에 들어 온 모든 조의금을 하나님께 거액의 감사헌금으로 드렸습니다. 헌금봉투에는 이런 감사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동안 좋은 아들을 20년간 우리 곁에 두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혼을 받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비록 아들을 잃고 하나님은 원망할 수도 있었지만 부부는‘밥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들은 20년씩이나 아들과 함께 쌓은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밥 감사를 깨닫는 순간 슬픈 인생이 행복인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무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로에서 출발하면 밥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때 생명을 주님께 맡기면, 아침에 생명을 다시 되돌려 받는 기쁨과 감사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점점 메말라 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할 줄 아는 지 감사를 실험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방법은 매일 한 집에 10,000원씩 넣어 주면서 두 달 간 반응을 실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날 마을을 돌면서 한 집에 10,000원씩을 넣어 주었습니다. 첫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명도 10,000원을 도로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둘 째 날도, 셋 째 날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고마운 사람이다.> 이런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10,000원을 돌리는 사람이야기였습니다.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났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10,000원을 받으면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항의하러 그를 찾아왔습니다. <당신, 왜 우리 마을에는 10,000원을 안 주냐?> 한 달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고마워하지 않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연히 받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줄테면 한꺼번에 몰아서 주지 찔끔찔끔 우리가 어린아이냐 하면서 불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달이 지났습니다. 마지막 날은 10,000원을 주지 않고 그냥 마을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은 왜 안 주는 거요?>, 어떤 사람은 돈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습니다. <오늘 10,000원을 받아 쓸 데가 있는 데 왜 그냥 지나가는 거요?> 그런데 <그 동안 불경기에 계속 돈을 주시더니 돈이 떨어졌군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불평합니까? 감사하는 일에 감사하지 않으니 불평이 나옵니다. 10명의 탐정꾼처럼 메뚜기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밥감사는 조건을 보지 않습니다. 오직 보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 볼뿐입니다.

 

미즈노 겐조라는 일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감사는 밥이다란 책을 출판 하였습니다.

(** <감사는 밥이다> 저자 미즈노 겐조 역자 박소금 옮김 출판사 선한청지기 | 2014.10.15 페이지 수 448 | 정가 15,000원)

미즈노 겐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뇌성마비라는 병에 결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도 못하고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니 밥도 스스로 먹지 못하는 마치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몸과 마음이 되어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그런 그에게 이웃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이 찾아와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겐조의 어머니는 척추가 마비되어 앉을 수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 엎드린 채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나무받침대를 하나 만들어 그 위에 성경을 펼쳐놓아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나무 받침대 위에 성경책을 펴놓아 주긴 했으나, 겐조는 손가락을 쓰지 못하니까 책장을 넘길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겐조가 성경 한 장을 다 읽고 나서 눈으로 껌벅껌벅 신호를 보내면 옆에 앉아 있던 그의 어머니가 책장을 한 장씩 손으로 넘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학교도 교회도 다닐 수가 없었던 겐조는 남아 있던 눈으로만 성경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그는 성경을 읽다가 그 속에서 구원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벌레보다 못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그 외아들을 보내신 것, 성부 하나님과 동등권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늘 보좌를 버리신 것, 육신을 입고 고난을 받으시다가 종내 십자가를 지신 그 귀한 사실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된 그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글로서 표현하고 싶었으나 손가락이 말을 안 들으니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고,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녹음을 할 수도 없었고… 그저 두 눈만 끔뻑거렸다고 하는데, 이것을 본 그의 어머니가 철자가 적혀 있는 종이를 한 장 그 앞에 놓아두고 막대기로 한자씩 짚어 나가면서 아들의 눈동자를 살폈습니다. 어머니가 들고 있는 막대기 끝이 자기의 원하는 글자에 가서 닿으면 그것이 맞는다고 겐조는 눈으로 신호를 보내었고… 그러면 그의 어머니가 그 글자를 뽑아서 다른 종이에다 옮겨 적었고, 이렇게 고통 중에서 겐조가 깜박거리는 눈으로 한 자 한 자 모아서 적은 글이 “감사는 밥이다”라는 시집으로 출간되었는데 그곳에는 아름답고 영감 있는 시가 170여 편이나 수록되었습니다.

그 시가운데 “힘들지 않았다면”이란 시가 있습니다.

< 만약 내가 힘들지 않았다면 /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테지 /

만약 많은 형제자매가 힘들지 않았다면 /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지 못했겠지 /

만약 주 되신 예수님이 고난 받지 않으셨다면 /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으셨겠지 >

 

겐조의 시를 읽은 김수경(직장인)씨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가을이 되어 청량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 지하철에서 내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 친구와 카페에 앉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것,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미즈노 겐조의 시를 읽고 마음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삶의 모든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

 

뇌성마비 환자인 겐조씨는 그가 출판한 “감사는 밥”이란 책의 제목처럼 조건 없는 무로부터 감사 곧 여호수아 가렙의 밥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감사 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과연 밥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오늘은 추수감사 계절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마도 여러분들이 듣게 되는 설교가 ‘감사하자’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매년 수없이 들어 온 감사하자는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그냥 당연한 말처럼 들었습니까? 감사하자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우리 마음이 무디어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형식적인 감사, 표면적인 감사 생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감사에도 세 가지 감사가 있습니다. 영어로 1. If (~ 만일의 감사), 2. because of (~때문에 감사), 3. in spite of (~ 그럼에도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 If 만일의 감사. 이것은 조건부 감사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의 소원대로 이루어 준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병고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취직시켜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로또복권 당첨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조건 단서를 붙인 감사다. 이것은 가장 차원이 낮은 감사로 분류해 볼 수 있겠습니다.

 

가수 쿨씨스터즈의 “왜 그랬을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3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행복에 찬 미래가 약속되는데

매일매일 놀면서 어찌하려나 이래서는 안되네 정말 안되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요 >를 바꿔서

 

<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행복에 찬 미래가 약속되는데

조건따라 감사를 어찌하려나 이래서는 안되네 정말 안되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요>

 

기독교인의 감사는 if 만일이란 조건 따라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둘째로 because of 뭐뭐 때문에 감사가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내게 물질 축복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나와 내 가정의 건강을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내 자녀가, 내 사업이 잘되어서 감사하다.” 이런 ‘때문에(Because of)감사’는 상대적 감사입니다. 이런 상대적 감사를 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애시당초 상대적 감사도 없는 사람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 환자 열 명은 예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선생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외칩니다. 예수께서는 나병 환자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십시오” 하고 지시하십니다. (누가복음 17:13, 14)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십니다. 율법에 따르면, 병이 나은 나병 환자를 깨끗하다고 선언할 권위가 제사장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 환자 열 명은 예수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병이 낫지도 않았는데 제사장을 만나러 갑니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자신들이 건강해진 것을 보고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깨끗해진 나병 환자 아홉 명은 가던 길을 계속 가지만, 한 명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인인 이 사람은 예수를 만나려고 돌아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해 주신 일을 무척 고맙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나병에서 회복되어 건강해진 것이 실제로 하느님 덕분임을 깨닫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누가복음 17:15) 그는 예수를 만나게 되자 그분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른 아홉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되돌아온 사람이 이 이방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까?” 그런 다음,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낫게 했습니다.”—누가복음 17:17-19.

 

영국의 유명한 성경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 1662.10.18~1714)가 도둑을 맞고 낙심 중,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훈련을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옮겨 보면,

1. 이전에 도둑을 맞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2. 자신의 생명이 도둑 맞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3. 아직도 자신에게 무엇(가족, 건강, 이웃 등)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고

4. 자기 자신이 도적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기독교인의 감사는 그 결과가 어떠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가 있습니다. 이 감사는 절대적 감사로서 조건을 넘어선 밥 감사, 환경을 초월하는 밥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욥이나 하박국 선지자가 드린 감사로 극한 환난이나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 한 분으로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인간의 지. 정, 의로 느껴서 하는 감사가 아니라, 전적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는 곧 은혜입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카리스토우’(Ευχαριστώ)인데, 이 말은 ‘’은혜’ (Χάρης, 카리스)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밥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는 은혜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여호수아나 갈렙처럼, 겐즈 시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밥 감사를 못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식사 전에 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밥 감사는 지금 밥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과거에도 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밥을 주실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밥을 주지 않으셔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가 여호수아 갈렙의 밥 감사입니다. 겐조 시인의 감사는 밥이다 라는 책의 제목처럼 라온코이노니아 여러분, 우리는 감사를 먹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말한다면 3초 안에 대답해 보세요.

 

인생은 고생이다.

인생은 바람이다.

인생은 들에 핀 백합화다.

인생은 허무다.

인생은 개뿔이다.

인생은 그냥 사는 것이다.

 

왜 우리는 기쁨이 계속 되지 못하고 행복한 마음이 금방 사라집니까? 감사가 없는 기쁨은 안개 같이 사라지고, 감사가 없는 행복은 들의 꽃 같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감사가 있다면 그 기쁨은 안개가 아니며 그 행복은 들의 꽃이 아닙니다. 진정 감사가 있는 인생이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인생이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다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닙니다.

밥 감사의 믿음이 인생의 고난 가운데서 나를 지켜주고 인생의 바람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줍니다. 나를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됨을 믿을 때 진정한 밥 감사가 내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밥 감사하는 자에게는 점점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 주일에, 우리가 매번 듣게 되는 감사하자라는 말씀으로가 아니라, 무로부터의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밥 감사를 밥 먹듯이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감사하는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성도들의 인생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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