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사 41:8-14 라온코이노니아의 터널
며칠 전 원주에 살고 있는 막내아들이 왔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롯데 시네마에 가서 터널이란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참으로 몇 년 만에 본 영화인데 매우 감동적인 영화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 <터널>은 평범한 자동차 세일즈맨 이정수(하정우)가 집으로 가던 중 '터널'이 무너져 그 속에 갇히게 되고, 그를 구하는 과정을 그린 재난 영화입니다
자동차 딜러로 일하고 있는 정수(하정우)는 자동차 8대를 계약하자는 말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하도 터널이 무너졌습니다. 하도 터널은 개통한지 한 달 밖에 안되었는데 부실 시공으로 무너져 정수는 무너진 터널 돌무더기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가 가진 것은 78% 배터리의 휴대폰과 방금전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였습니다. 대형 터널 붕괴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정부는 긴급하게 사고 대책반을 꾸리게 됩니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인 대경(오달수)은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너무나 커다란 암석으로 꽉 막힌 터널이라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합니다. 그런데, 사고 3일째 되던 날 갑자기 정수의 눈앞에 강아지 한마리가 나타납니다. 정수는 강아지를 보고 놀라는 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무너진 돌 틈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지나가 보니, 정수 말고 다른 사고자가 있었습니다. 민아(남지현)라는 젊은 여자와 탱이(강아지)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고, 철근과 콘크리트 때문에 운전석에서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옆구리가 불편하다는 것 빼고는 다행히 건강해 보입니다. 결국 정수는 민아에게 전화기도 빌려주고, 랜턴도 주고, 물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생존합니다. 물을 나누어 줄때 순간 정수는 고민하지만, 결국 충분한 물을 제공해 줍니다.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정수에게 민아는 큰 의지가 되고, 다음날 케이크까지 나누어먹을 생각을 하며 잠이 듭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탱이(강아지)가 케잌을 다 먹어버렸네요. 강아지에게 시원하게 욕을 퍼부어주는 정수. 생존자 정수, 민아의 시간은 흘러가고, 서로 생존을 위해 버텨갑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민아에게 가보니 정수는 죽어있는 민아는 죽어 있었습니다. 민아를 살려보려고 덮고 있던 콘크리트 잔해를 힘으로 밀어보니, 민아의 몸에 박혀있는 철근... 사고가 나면서 민아의 옆구리에 철근이 관통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터널 속에는 정수와 강아지 탱이만 남게 됩니다. 한편,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뉴스를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옵니다. 정수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통해 세현은 남편에게 희망을 전하며 그의 무사생환에 대한 희망을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겨우 구조 구멍을 파 정수가 있는 터널바닥까지 구조 장비가 내려갔지만 잘못된 설계도면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팠던 것입니다. 다시 파야 하지만 시간적으로 너무 오래 지체가 되었습니다. 더욱 한파가 몰아닥쳐 구조작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은 결국 인근 제2터널 완공에 큰 차질을 주게 되어 몇 백억 원의 손해가 발생하게 되었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결국 한 달이 넘어가자 터널속의 정수는 이미 죽었다고 판단하며 구조작업을 끝내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납니다. 정수의 아내 세현이는 여론의 압력으로 방송을 통해 남편에게 구조작업의 중단을 눈물을 흘리며 전하게 됩니다.
모든 구조 팀들이 철수 되고 제2 하도터널의 공사로 폭파 작업이 시작되어 하정우가 갖혀 있는 하도터널이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그 때 정수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힘을 다 하여 자동차 크락션을 계속 울립니다. 그때 대경 대장이 떨어뜨린 마이크 같은 장비에서 크락션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습니다. 순간적으로 대경 대장은 정수가 살아있다는 걸 확신하고, 제2 하도터널의 공사를 중지 시킵니다. 마침내 정수가 쓰러져 있는 현장에 까지 들어가 정수와 탱이를 구출해 냅니다. 구해 나오는 도중에도, 기자들 때문에 길이 막힙니다. 이때 구출 소식을 듣고 장관이 도착하며 구조대원들의 길을 막습니다. 대경 대장은 목소리가 안 나오는 정수를 대신해서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 줍니다.
마침내 정수는 건강을 회복하여 아내 세현과 더불어 고향집으로 차를 타고 갑니다. 그리고 다시 터널을 지나치지만 그 터널은 무너지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장관(김해숙)이 국민들에게 터널사고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는데, 애견 샵에서 치료를 받는 탱이(강아지)가 계속 멍멍거리며 '개소리'로 빗대어 표현합니다.
영화 <터널>을 보는 동안 대한민국에 벌어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생각났습니다. 그중에도 2014년 4월 세월호, 그리고 2015년의 메르스 사태까지 아직도 무너진 터널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당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터널 영화에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 정수만이 아니라 한사람의 생명이 수만금의 돈 보다 귀하다고 주장하며 정수를 살려내려고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구조대장 대경의 헌신적인 노력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터널 영화를 보고 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오늘 전할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무너진 인생의 터널에 갇혀 살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밝은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있는 김민기 씨입니다. 혹 김민기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젊은 사람들은 잘 기억을 못할 것이지만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많을 것 같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이란 노래입니다.
오늘이 이 노래가 발표된 지 36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런닌까 1970년 8월 28일 발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특히 김민기씨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71년 처음 아침 이슬 이 노래를 정부는 건전가요로 선정하기도 하였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억압된 정치 상황을 풍자한 노래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학생들이 민주화 투쟁 데모를 하며 이 노래를 부르게 되자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 되었습니다. 비록 금지곡이 되었지만 70 년대 이 노래만큼 많이 불려 진 노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후 1987년 9월 5일 정부는 16년 만에 아침이슬과 함께 그동안 금지곡으로 정했던 500여곡을 解禁하였습니다. 김민기씨는 1995년 백상예술대상 음악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제 6회 한국 뮤지칼 대상 특별상을 받는 등 여기저기에서 그의 음악과 예술에 대하여 많은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7년에는 독일문화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비독일 국민에게 매년 주는 괴테 메달(Goethe-Medaille 1955년 제정 괴테가 죽은 날짜인 3월 22일수여) 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사람으로 이 메달을 받은 음악가는 1995년 작곡가 윤이상씨와 1998년 백남준씨가 받은바 있습니다.
김민기씨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작사작곡자요,공연기획자요,현실변혁 운동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평범한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지나온 인생은 일반 사람들이 살아온 것같은 평범한 삶이 아니라 온갖 굴곡이 이어지는, 어쩌면 긴 역사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다가 무너진 굴속 돌무더기 속에서 버둥거리면서 살아왔었다고 하겠습니다.
김민기씨의 부친은 의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였습니다. 1951년 3월 31일 익산(당시 이리)에서 퇴각하는 인민군들에 의해 피살되고 김민기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조산원으로 10남매를 키웠는데 막내인 김민기는 홀로 빈 집을 지키며 마당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외롭게 성장하였습니다. 1969년 경기 중 고를 나와 서울 미대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학비를 벌기위해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물감 값을 조달하기도 하고, 고등학생 때부터 수준 높은 기타리스트인 그에게 임문일이란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다방에서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때 경기여고를 나와 서강대 사학과에 다니면서 집안 사정으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던 양희은의 노래 반주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양희은의 데비곡인 “아침이슬”을 작사 작곡한 것입니다. 김민기는 그가 작곡하고 부른 노래들이 반정부적인 노래라고 지목한 동대문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후 여러번 경찰서를 들락날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빈민들 공장노동자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사회운동에 적극 가담을 하며 소위 많은 運動歌를 작곡하여 당시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주제가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1975년 그는 군대로 강제 징집이 되어 최전방에서 혹독한 군대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부평에 있는 어느 공장에 취업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작곡활동으로 관계기관에 연행 당하기를 되풀이 하다가 모든 음악활동을 접고 전북 어느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됩니다. 주인집에서 그의 동태를 정기적으로 경찰에 보고하곤 하였습니다. 80년대 초반에는 해태 양식장과 보령탄광에서 석탄 캐는 노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김제와 전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1983년 겨울 집에 화재가 나 모든 집이고 가재도구가 다 타버려 재가 되었습니다. 김민기라는 그의 불온한 이름 때문에 박정희 유신 때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그 어느 곳에도 발붙이기 어려운 깊고 긴 어두운 터널에 갇힌 인생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군사독재 시대가 끝나고 1990년대부터 김민기는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 듯 가수라기보다는 한국적인 뮤지컬의 창시자로 혹은 연극 연출자로 기획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94년 5월 지하철 1호선이란 뮤지칼을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초연이후 2000회 이상 공연을 하였고 수십만 명이 관람을 하였는데 우리나라만 아니라 독일과 중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공연을 하였습니다. 김민기는 지금도 집 앞의 작은 밭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봄이 오면 땅을 갈고 돌을 고르고, 싹이 나면 솎아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저녁에는 그 밭에서 자란 푸성귀를 뜯어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지어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30여 년 전 그 암울하던 긴 어두운 터널 같은 20여 년 간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이 터지라고 불렀던 김민기씨의 대표곡으로 아침이슬과 상록수, 타는목마름, 강변에서, 등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김민기씨의 노래 중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노래는 아침이슬 보다는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입니다. 바로 이 노래를 소개하기 위해 이 시간 이처럼 김민기씨를 여러분에게 소개하였던 것입니다. 김민기씨가 어둔 긴 터널 인생을 지날때에 그는 홀로 걸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와 함께한 동지같은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믿은 예수님이 그와 함께 있어 그가 좌절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김민기씨는 그때마다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높이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금관의 예수’입니다. 가시관이 바로 금관이란 것입니다.
한창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퍼런 유신시대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움켜잡고 피를 토하듯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금관의 예수’ 가사는 이렇습니다.
김민기 금관의 예수 - 주여 이제는 여기에|
얼어붙은 저 하늘 / 얼어붙은 저 벌판 / 태양도 빛을 잃어 /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 얼굴 여윈 사람들 / 무얼찾아 헤매이나 /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 거절당한 손길들의 /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 죽음 저편 푸른 숲에 /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사람들은 흔히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터널’ 로 비유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캄캄하고 어떠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 때에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터널을 지날 때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두렵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어떠한 길보다 가장 빠른 지름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터널이란 영화에 대경이란 구조대장이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구조하듯이 김민기씨가 좌절할 때마다 그의 옆에서 격려해 주던 친구 동지들과 그가 믿은 예수님이 계셔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터널에서도 여러분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 하는 사랑하는 이웃들과 우리 주 에수님이 계시어 우리를 저 터널의 끝이 보일 때 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터널은 막힌 굴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둡고 길어도 끝이 있고 출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터널을 앞에 두고 긴장하거나 터널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생을 겉으로는 잘 포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묶은 줄을 풀고 포장을 벗겨보면 온갖 인생의 애환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우아한 백조 같지만 헤집고 들여다보면 기억하기도 싫은 수없는 터널을 지나오며 살아오면서 찢겨진 상처들이 자국자국 남아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여기까지 살아 왔다는 것은 그 수많은 터널을 지나왔다는 것이고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에벤에셀 우리를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터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터널을 피하자면 산위로 올라가거나 절벽 밑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길고 짧은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든지 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은 선택사항이아니라 인생에서 만나는 필수 과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터널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너진 터널 잔재에 묻혀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며칠 전 자신이 헤쳐 갈 터널 속에서 갇혀 죽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롯데의 부회장 고 이인원 씨입니다. 이인원 씨는 서울에서 대표적인 교회중 하나인 충신교회 장로였습니다. 어떻게 장로였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응까? 매우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럼으로 기독교인이라고 장로라고 또는 목사라고 하여도 터널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터널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의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생의 터널 앞에 겁을 내거나 두려워합니다. 무너진 터널 안에 갇혀 있다면 얼마다 두렵겠습니까? 심장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뼈마디가 녹아내리듯 그 공포심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그 터널 속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요셉과 다니엘과 욥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는 믿음입니다. 그 터널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바울이 확신하였던 것은 바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손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역경도 우리는 이길 수 있고 그 어떤 고난도 견딜수 있다는 확신이 기독교인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166장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모두가 다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포기 대상이 아닙니다. 막혀있는 굴이 아닙니다. 우리가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터널입니다.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려고 가끔 오산에서 분당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가게 됩니다. 십여 개의 굴을 연달아 지나가게 됩니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에서 ‘50미터 전방에 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을 지나가면 다시 ‘100미터 전방에 터널이 있습니다.’ 조금 더 지나가면 ‘200미터 전방에 터널이 있습니다.’ 계속 터널이 있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모든 터널을 지나 목적지 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누가 도중에 차를 세우고 내릴 것입니까? 우리가 포기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주님이 주시는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세우신 내 인생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가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가 놀러 다니는 동안에도 우리가 믿음생활의 한눈을 팔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해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가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들의 모든 것을 치밀하게 설계하시고 그 설계 된 대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끊임 없이 일하시고 계십니다. 인간이 만든 터널은 때때로 부실 공사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일하시는 그 중심에 우리가 있을 수 있도록 항상 믿음으로 준비하고 용기로 도전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터널 영화에서 정수는 조용히 구조 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나갈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자기를 에워 싼 돌들을 걷어내고 발로 밀어내고 때로 돌에 찍히고 쇠창살에 찔리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위한 도전은 계속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하나님의 손을 붙들기 위해 앞으로 손을 뻗히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그럼으로 도전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시는 예수님처럼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이 나의 인생길을 적실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는 고난은 있지만 실패는 없습니다. 역경은 있지만 절망은 없습니다. 실패도하고 절망도 하지만 주님의 손을 붙들고 있는 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왜 터널이 길다고 낙망하며 왜 길이 무너져 내려 살아갈 수 없다고 탄식합니까?
아직 연약한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실패만하고 터널 인생이 무섭다고 두려워한 나의 버러지 같은 자아를 깨트려야 합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서에서 무엇이라 말씀 하였습니까? 41:14에서 “버러지 같은 야곱아 ... 두려워 하지 말라(알티르이)....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아자르타크).”고 말씀하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분명히 사 41:10에서 이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알티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알티세타)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키 엘로헤이카)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임마체디카)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아프 아자르티카)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삐민 치데키) 너를 붙들리라(아프 테마케티카).”
라온코이노니아 성도여러분, 우리의 생각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한 걸음 앞을 짐작하지 멋합니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처럼 더듬으며 살아 온 터널 인생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그럼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행복자입니다. 언제든지 손 내밀면 ‘나 여기 있다’고 하시면서 손잡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니 이 얼마나 안심입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옥 속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도 기도하였습니다. 요셉의 터널 길이는 13년이었고, 야곱의 터널의 길이는 21년이었으며, 다윗의 터널의 길이는 40년 이었으면 모세의 터널 길이는 80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터널의 길이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결국 터널의 길이와 영성의 깊이는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북 유럽에 리투아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약 1/4정도 되고 인구는 300만정도입니다. 지금은 독립 국가이지만 30년 전만 해도 쏘련의 식민지로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그들이 쏘련의 억압을 받을 때마다 샤울레아라는 넓은 평원에 십자가를 꽂았습니다. 한 개 두 개 꼽아 수천수만 개가 되면 쏘련 군대는 탱크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러면 또다시 사람들은 십자가를 꽂았습니다. 그러기를 수없이 계속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와 쏘련의 탱크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쏘련이 망하고 리투아니아는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식민지 역사의 어둡고 긴 터널을 십자가로 밝히며 마침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5만개 이상의 십자가가 꽂아 있으며 지금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어렵고 고난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십자가를 들고 그곳에 십자가를 세운다고 합니다.
(270장 4절)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앞에 찬양할 때 까지“
라온코이노니아 성도 여러분, 인생이 터널을 만날 때 리투아니아 사람들처럼 우리의 터널 인생 한복판에 십자가를 세워야 합니다. 그 십자가 든든히 붙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터널이 어둡고 길고 때로는 무너져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다 하더라도 소망중에 하나님이 여러분에 내미는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터널 인생 그 한 복판에서 김민기씨의 ‘금관의 예수’를 다시 기억합니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우리와 함께 하소서
다시 반복해 말씀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터널이 길수록 우리의 믿음의 길이도 길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의 터널이 무너져 앞이 캄캄하게 된다 해도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라고 주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성은 더욱 환해져 우리의 터널 인생이 환하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인생 터널이라면 터널 밖 저 천국에 이를 때 까지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그리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인생의 터널을 지나가는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은 그럼으로 두려워하거나 실망하거나 놀라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넉넉히 이기는 삶으로 참 평안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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