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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8월 7일 주일아침 예배  성경 요 14:1-3, 16  라온콩노니아에 부는 바람


여러분에게 부채를 하나씩 나눠 드리겠습니다. 부채가 무엇에 사용하는 물건인가?
부채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미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를 잘라 가지런히 살을 부친다는 의미의 ‘채’를 써 부채라고 하였습니다. 한자로는 부채 선扇이라하였습니다 이 말은 집을 의미하는 호戶에 날개 우羽를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옛날에는 종이나 비단을 사용하지 않고 새의 깃털로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채가 깃털 부채로 지금부터 2500년전에 살았던 이짚트의 투탄카멘 왕의 피라미드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깃털 부채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백우선(白羽扇)이 유명합니다.

 

왜 제갈량이 늘 백우선을 들고 다녔는가에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 제갈량은 늘 깃털 부채를 들고 다녔는데, 이는 아내의 부탁이었습니다. 제갈량(诸葛亮)의 아내 황씨는 재능이 뛰어나고 됨됨이가 훌륭해 남편이 승상(丞相)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부채를 선물한데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황씨가 제갈량에게 말했습니다. “친정아버지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은 포부가 크고 기개가 드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표정이 환했지요. 하지만 조조에 대해 말할 때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군요. 손권을 언급할 땐 고뇌에 잠긴 듯 보였고요....큰일을 도모하려면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침착해야 해요. 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세요.”
그래서 제갈량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늘 부채를 손에 쥐고 다녔습니다. 아내 황씨가 말한 "얼굴을 가리라"라 함은 그때그때 감정을 표출하지 말고 침착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고요해야 태연함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부채는 다만 시원한 바람을 불게 해주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하게 쓰여 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선풍기나 에어컨디션 때문에 부채가 인기가 완전히 없어 졌지만 그래도 밖으로 외출할 때에는 여러 가지로 부채가 요긴하게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부채에는 8덕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부채의 9가지 德을 말합니다. 부채의 1덕은 바람을 일으켜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고, 따가운 햇살을 가려 응달을 들이니 2덕, 손에 들고 이리저리 가리킬 수 있으니 3덕, 먼 데 있는 사람 부르는 데 쓰이니 4덕, 빚쟁이 만났을 때 얼굴 가려주니 5덕, 어른 앞에서 하품을 가려주니 6덕, 불을 피울 때 바람을 불어주니 7덕이고, 멋진 그림이나 글을 감상하게 해주니 8덕이요, 헤져서 버려도 아깝지 않으니 9덕이라고 합니다.

 

부채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접부채와 방구 부채가 있습니다. 방구 부채는 부채 살에 비단 또는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형의 부채로 단선 또는 원선이라 합니다. 부채 살의 모양과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오엽선, 연엽선, 파초선, 태극선, 아선, 오색선, 진주선, 공작선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접부채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서 접부채라 합니다.  접어서 쥐고 다니기 간편한 부채라는 뜻의 쥘부채, 거듭 접는다는 의미의 접첩선 등으로 불립니다. 부채 살의 수와 부채꼭지의 모양과 부속품 및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수십 가지 명칭이 있습니다.
그밖에 우산같이 햇볕을 가려주는 윤선 상례 때에 상주의 얼궇을 가려주는 포선이 있습니다. 방아를 찧고 껍질을 날려 보낼 때 쓰는 방아실 부채(드림 부채)가 있고 풀잎으로 농부들이 만들어 사용한 팔덕선, 부들부채가 있습니다.

 

요즘음 더위가 최고도로 부채바람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런 더위에는 마치 사우나 땀처럼 온 몸에 땀이 솟아 흐르는데 땀과 아울러 불쾌지수가 높아 온갖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듯 합니다. 그래서 매사가 귀찮아지고 신경질이 나고 다름 사람에게 화도 잘 내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괜한 근심 걱정 염려 설음이 우리 마음에 땀 흐르듯 흐릅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 일수록 몸의 건강도 주의해야 하지만 무엇 보다 마음의 건강도 살펴야 하고 무엇 보다 마귀로부터 영혼의 건강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부채질로 바람을 일으키듯 우리 마음의 부채 영혼의 부채질로 우리의 모든 마음의 질고疾苦와 영혼의 질곡桎梏을 날려 보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이 가지는 괜한 걱정에 대해 따져 봅시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혹 지구가 언제 망할것인가 이런 것 걱정하십니까? 혹 김정은이가 핵무기를 쏠것인가 안 쏠 것인가 이런 것 걱정하십니까? 길을 가다가 갑자기 짱이 꺼지면 어쩌나 이걸 무서워 밖에 나가지 못하십니까? 기을 가다 갑자기 하늘에서 내 머리 위로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십니까?
어떤 심리학자가 조사를 해보니 걱정의 40%는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30%는 어저께 재미없는 극장 영화를 보고 돈만 낭비 하였구나 같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입니다. 걱정의 22%는 점심에 국수를 먹을 까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까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걱정의 4%는 북한군이 처들어 오면 내가 앞장서서 막아야 할 텐데 같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걱정의 4%만이 내일 무엇을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걱정 할 거면 두 가지만 걱정하십시오.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김용섭 집사, 지금 아픈데 있습니까?  안 아픕니까? 안 아프면 걱정 하지 마십시오.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하십시오.  나을 병입니까? 안 나을 병입니까?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하십시오. 죽을병입니까? 안 죽을병입니까? 안 죽을병이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을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하십시오.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 아니면 지옥에 갈 것입니까?  천국에 갈 것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옥에 갈 거라면 유황 불지옥에 빠질 것인가 독사 굴에 빠질 것인가를 걱정할 것입니까?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오늘 제자들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를 다락방 설교라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했던 말씀을 말합니다. 앞장(13장)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도무지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과 행동을 하십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다 되면 평소에 안하던 일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지금까지 한번도 하시지 않던 행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시다가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 한사람 한사람 돌아가며 그들의 발을 씻으십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리에 앉으시고 예수님이 제자들 중 한 사람에게 팔릴 것을 말씀하고는 예수님이 곧 붙잡혀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내가 죽게 되면 다 배반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성질 급한 베드로가 "주여 그런 소리를 마십시오. 저는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주를 위하여 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드리겠습니다."(37)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 네가 나를 따라오겠다고? 너는 새벽닭이 울게 전에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는 제자들은 이해도 안갈 뿐 아니라 생각에 혼란이 왔습니다.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걱정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러실까?" "정말로 우리 곁을 떠나시려 하나?" "만일 예수님이 죽으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지?" "이제까지 우리는 희망을 안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말짱 깡이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제 고아처럼 버려 질 것인가?" 이런 저런 근심과 걱정이 제자들의 마음을 감싸게 되자 예수님은 비로소 오늘 14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메 타랏세스도).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서 근심이라고 하는 헬라어 ‘타랏소’는 물이 요동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당황하며 마음이 근심 걱정으로 요동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근심걱정 때문에 당황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의 걱정은 다 아는데,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걱정이 있습니까? 무엇을 근심하고 또 염려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매일 매일 들려오는 온갖 세상 소리로 당황하며 두려워하며 근심 걱정 염려가 끊일 새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서유기 소설을 보면 손오공이 여행 중에 불이 붙어 꺼질 줄 모르는 화염산의 불을 칠선녀의 파초선을 뺏아다가 껏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치 화염산처럼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 슬픔이란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인생을 휘감아 버립니다. 이 뜨거운 열기를, 이 무덥고 답답한 인생의 열기를 무엇으로 날려 보낼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이 일으켜 주시는 믿음의 바람만이 이 열기를 시켜 버릴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7:20) 믿음은 그 어떤 불도 끌 수 있는 화초선입니다. 중국 신강성 투루판 근처에는 손오공의 전설이 있는 화염산이 있습니다. 이곳 지표 온도가 70도C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걱정이 사라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걱정을 바람에 겨가 날아가듯 날려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걱정을 날려 보내는 것은 바로 나의 믿음의 부채입니다. 믿음의 부채로 계속 믿음의 바람을 일으켜 우리에게 일어나는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을 날려 버려야 합니다.  만일 작은 먼지가 눈앞에 날아오면 입을 오물었다가 훅하고 입 바람을 불어 날려 보냅니다. 그런데 또 날아오면 또 훅하고 불어 보냅니다. 또 날아오면 또 훅하고 날려 보냅니다. 걱정을 날려 보내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나를 믿으라(에메 피스튜에테)고 말씀하신 믿으라는 말씀은 그냥 한 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계속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된 ‘나를 믿으라’고 하신 믿으라는 명령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나를 믿으라 또 믿으라 그리고 계속 믿으라 쉬지 말고 지속적으로 믿으라 이런 뜻입니다. 이것만이 걱정거리를 훅하고 날려 보낼 때 또 날아오면 또 훅하고 또 날아오면 또 훅하고 계속 훅훅 믿음의 바람으로 날려 보내면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어떤 근심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오늘 아침 우리는 예수님 믿는 믿음으로 그 어떤 걱정과 근심이 있더라도 다 날려 보내시길 바랍니다.


한번 부채를 부쳐 볼까요? 부치면서, “ 내 모든 걱정들은 예수님 믿음으로 명하노니, 다 나에게서 날아가 버려라!”  계속 부치십시오. 걱정이 다 날아가 버리니 아! 시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시원합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걱정 근심 믿음의 바람으로 다 날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의 부채를 계속 부처야 한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도와주실 분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히브리어 원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바람이란 의미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계속 불어오면 모든 인생의 걱정은 끝! 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가 아닌가 이것이 걱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들에게서 떠나신다하니 걱정이 태산같이 그들의 마음을 억눌렀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과 맞서 왔는데 이제 어떻게 세상과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이 때 예수님은 뭐라 말씀하십니까?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 슬픔을 다 제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의 바람이 그들 위에 불어왔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그들 위에 불어오자 그들을 휘감고 있었던 모든 걱정의 누더기들이 하나하나 벗겨졌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을 두렵게 하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숨어있던 다라방에서 나와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습니다. 광장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로마군인도 제사장들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성령의 바람을 안고 살아갑니다. 성령의 바람이 나의 안에서 불어나오니 지금까지 나의 영혼에 늘어 붙어 나를 걱정케 하고 근심하였던 모든 악한 질고와 질곡이 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지고  사랑과 기쁨이 희망과 용기가 우리의 영혼을 감싸 안게 됩니다. 이제는 부채가 아니요 내 안에 성령의 에어컨이 있어 항상 나의 영혼이 시원하고 나의 영에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활기가 가득합니다. 무엇을 하던지 자신만만합니다. 성령의 바람을 안고 사는 사람은 구질구질하지 않습니다. 데데하지 않습니다. 찌질하게 살지 않습니다. 성령의 바람 불어와 나의 영혼 새롭게 되니 내 안에 세상 향한 헛된 욕심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교만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 의심과 다툼 이런 내 마음에 붙어 있던 모든 더럽고 추한 성정들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성령의 바람으로 웃음꽃 피우면서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웃으며 삽니까? 하루에 몇 분이나 웃으십니까? 어떤 사람이 조사를 해보았는데, 80살 노인의 인생을 돌아보니 잠자는 데 26년 잠자고, 일하는 데 21년간 일하였고,  밥 먹는 시간이  6년이었고,  사람을 기다리는 데 6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웃는 데 보낸 시간은 고작 22시간3분! 이라고 합니다. 80년 동안 웃는 시간이 22시간 3분이었다는 것은, 80년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60만 8000시간으로, 60만8978시간은 웃음 없는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80년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었을까? 60만 8000시간동안 얼마나 걱정과 근심속에 살았을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은 60만 8000시간 모두 웃고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내안에 있던 모든 더럽고 추한 성정들이 성령의 바람으로 다 날아가 버리고, 그래서 성령의 바람이 내안에 가득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서나 사랑의 바람을 불어주고 기쁨의 바람을 불어주고 희망의 바람을 일으켜 줍니다. 항상 인생을 즐겁게 삽니다. 인생이 평화롭고 감격이 넘치는 인생이 됩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보고 웃고, 이제는 어항 속에서 금붕어 헤엄치는 것 보고 즐겁고, 이제는 비록 날씨가 무덥고 불쾌지수가 높다 하더라도 저 하늘 보고 웃고, 사람들 걸어가는 모습보고도 즐거워합니다. 나의 발을 밟은 사람에게 웃어주고, 나에게 눈 흘긴 사람에게 윙크해 주며, 넘어진 사람은 일으켜 주며 웃음주고, 슬퍼하는 사람을 보듬어주고 그에게 웃음을 줍니다. 삶이 평화롭고 감격이 넘칩니다. 흔히 웃으면 건강해진다란 말이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시원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잘 웃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걱정과 근심이 날아가 버리고 모든 것이 즐겁고 기쁨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에게 불어오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 안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의 답답한 심령을 시원하게 해주시니 웃으시기를 바랍니다.

웃으면 건강해진다고 말하면서 크게 15초 이상을 웃으면 우리 몸 안에 엔돌핀이 왕성해 져서 면연력이 커지고 건강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생활 속에서 어찌 그렇게 큰 웃음으로 웃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끼? 어쩌면 하루 단 10초도 큰 웃음으로 웃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겉으로 웃지 않고 속으로 웃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이른바 영혼의 웃음입니다. 영혼의 웃음은 하루 종일 웃을 수 있습니다. 제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영혼의 웃음입니다. 저는 이 영혼의 웃음법으로 이 무더운 여름철을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 7 단계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 1 단계, 입문단계를 소개하면 매우 쉽습니다. 조금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먼저 마음을 평정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말씀 중에 즐거운 내용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광야에서 목말라 애태울 때에 모세가 바윗돌을 지팡이로 치니 물이 솟아올랐습니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소리를 치고 춤을 쳤습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나도 당시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춤을 추는 상상을 합니다. 여기서 포인트 하나, 이때 나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치켜 올려야 합니다. 이런 자세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뇌에서 몸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한 영혼이 즐거워하므로 성령의 바람이 내안에 가득하게 되는 몸이 건강해 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고  영혼이 잘되어지는 영혼의 웃음법입니다. 

그러면 이런 영혼의 웃음법으로 여러분이 잘 아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걱정을 모두 벗어버리고서 스마일 스마일…” 본래 이 노래는 1915년 George Asaf 작사,  Felix Powell 작곡 에드워드 해밀튼 Edward Hamilton이 부른 ♬Pack Up Your Troubles In Your Old Kit Bag And Smile, Smile, Smile♬ 이란 노래입니다. 언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동요처럼 불려왔는지는 잘 알여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입추입니다. 가을이 왔다는 것이 아니라 가을이 여름 언덕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름이 8월 16일 말복까지 더 기세 좋게 더위를 쏟아낼 것입니다. 더욱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그리고 마음이 평안하고 우리의 영이 기쁨으로 충만할 때입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입니다. 믿음의 부채 바람을 불어봅시다. 모든 걱정 근심은 다 날아가 버려라! 금년 여름은 유독 더욱 덥게 느껴지는 것은, 어디 한구석도 시원한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오지 않고 다만 백성들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찜통에, 백성들을 근심케 하는 경제찜통에, 특히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쩔쩔매며 북한 핵이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염려를 안겨다 주는 정부관계자들의 무뇌한 말들로 백성들의 마음들이 온갖 걱정으로 푹푹 삶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온코이노니아 우리들은 걱정하면 무엇 합니까? 이제 성령의 시원한 바람이 숭숭 우리의 심령가운데 불어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시원한 바람이 가득하여, 세상의 무더위로 어찌할지 모르는 우리 이웃들에게 성령의 시원한 성령의 바람, 사랑의 바람, 기쁨의 바람을 불어주어서 걱정 근심을 날려 보내게 합시다.
이번 여름을 육신적으로도 시원하게 마음과 영혼도 시원하게 그래서 건강하게 한 여름철 기쁨으로 영혼의 웃음을 웃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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