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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2월 2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성경 시 146:1 - 10  라온코이노니아의 무궁화

오늘은 한국의 모든 교회가 지키는 97주년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1918년 1월 8일 미국 23대 대통령 윌슨이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것을 내다보고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였습니다. 민족자결주의란 각 민족은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이나 제약을 받는 일이 없이 민족 스스로의 뜻에 따라 자신의 정치 조직이나 귀속 문제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 이였습니다. 이같은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나라에 전해지자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에 온갖 핍박을 받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독립심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리고 있던 신채호 이동희 같은 이들이 주동하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또 1919년 2월 8일 일본에 유학중인 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러한 때에 1월 21일 고종황제가 독살을 당하자 백성들의 마음에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타오르면서 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불타올랐습니다. 마침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삼일독립선언문을 발표하자 전국 각처에서 독립만세 항쟁이 전개 되었고 여기에 일본의 경찰과 헌병대가 총칼로 만세 시위를 진압을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3개월 동안 전국각처에서 독립만세 항쟁에 참가한 인원이 공식적으로 202만 3089명으로 발표되었지만 300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항쟁 시위가 1542회로 759명이 사망하였고, 15961명이 부상당했으며, 46948명이 체포 되었습니다. 1919년 10월 4일에 열린 장로교 제8회 총회에서 발표하기를, 장로교 교회만 조사한  기록으로, 사살·타살 52명(각 노회 보고), 체포된 신자 3,804명(이 가운데 목사·장로 134명 : 장로교 전체 목사·장로 1024명 가운데 13%에 해당)이였습니다.

우리 군산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2월 26일 서울 세브란스 의전 학생 김병수(군산영명학교출신)가 이갑성 선생으로부터 95매의 독립선언서를 받아 군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영명학교 교사인 박연세 선생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박연세 선생은 동료 교사인 이두열 김수영 송정헌 선생과 협의하고, 학생 김영후와 송기옥과 함께 선언문을 500매를 등사하고 또 태극기 3500매를 만들었습니다. 3월 6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 중에 군산경찰서가 눈치를 채고 3월 4일 박연세 선생과 이두열 선생을 체포 연행하였습니다. 김윤실 선생과 영명학교학생들이 군산경찰서 앞으로 달려가 선생님과 학우들을 석방하라고 시위를 하였습니다. 경찰은 3월 5일 새벽에 또다시 학교를 수색하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고 생각한 영명학교 학생들과 멜본딘 여학생 그리고 학교 교사들, 구암교회 교인들 구암병원 직원들이 3월 5일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군산에서 21회나 만세 시위가 있었고  연인원 25800명이 시위에 참가 하였습니다. 일경들은 총을 쏘고 칼로 찔러 시위하던 학생과 시민들 21명이  살해되었으며 37명이 부상당하고 145명이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구암교회가 중심으로 군산 삼일운동 기념행사가 구암삼일운동기념동산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일만세 항쟁에 앞장 선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인들로 전국 대부분의 교회는 독립시위 백성들의 집합소역할을 하였고 교인들은 항쟁을 주도 하였습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 하였지만 당시 전국의 기독교인이라 20만 명 정도 였는데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의 참가자였고 그 지역의 시위 주동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일본 경찰들은 기독교인은 모두 불온한 독립운동가들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민족사랑을 일치시키고 있었습니다. 각 교회에서는 이미 틈나는 대로 모세·삼손·다윗·다니엘의 이야기 등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대비하여 가르쳤기 때문에 교인들은 은연중 독립정신 애국애족의 신앙이 깊이 젖어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3.1운동의 만세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독립단 통고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보게 됩니다.
① 매일 3시에 기도하고,
② 주일은 금식하고,
③ 매일 성경을 읽는데, 월요일 - 사 10(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 - 렘 12(유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기 때문'), 수요일 - 신 28(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받아 고통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 - 약 5(고난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할 것을 권면), 금요일 - 사 59(죄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 - 롬 8(성령이 주시는 생명,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을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삼일독립만세 항쟁은 일본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실패가 아니였습니다. 그 삼일운동의 정신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정신이요 국가의 근본임을 헌법 전문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을 계승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삼일 독립만세 항쟁은 비록 그 뜻이 잠시 꺽였지만 민족의 장긍심을 드높혀 주었습니다. 일제는 한국민을 두고 나라를 빼앗기고도 분통해 하지 않는 나약한 열등민족이라고 세계에 떠들었는가 하면,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기뻐한다고까지 세계에 선전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3.1 만세 항쟁운동은 우선 일본의 이러한 선전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오천년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고 그것을 집약하여 한국 민족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삼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3.1만세 항쟁운동에 자극을 받은 외세의 압박을 받고 있던 국가들이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하여 그들의 해방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해 북경대학생들을 중심으로 5.4운동을 일으켰는데, 이 운동을 주도한 청년들은 한국을 본받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비폭력·무저항의 '샤타 그라하'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는 영국에 대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필리핀·베트남·이집트 등지의 독립운동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3.1독립선언서〉에는 '민족의 자주·자존'을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이는 민족주의가 자칫 일본의 맹목적 국수주의에 빠지 않도록 우리 민족의 독립을 동양의 평화, 나아가서는 평화로운 세계를 강조하였습니다. 또 우리의 적대국이었던 일본에 대해서도 원수로 복수하려는 마음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 돕고 위하여 평화롭게 살아가자고 하였으니 당시 피압박 상태에 있던 우리 민족의 성숙도가 일본 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삼일정신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삼일정신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말하지는 못합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삼일운동이란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학생에게 삼일운동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삼일간 시합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여학생에게 물으니 삼일간 음식을 먹고 하루 굶는 다이어트 운동이라고 말하더랍니다.
삼일운동은 한마디로  애국애족운동입니다. 그러나 덮어놓고 애국애족은 매우 위험합니다. 독재자도 자기는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고 말합니다. 북한의 김정은도 자기 인민을 위한다고 말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 신앙 바탕위에서 만이 진실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삼일정신은 바로 기독교 정신입니다

어떻게 1919년, 단지 전국에 기독교인이 20만명 정도로 이런 엄청난 삼일만세항쟁에 앞장 설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7절에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도다”라는 말씀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는 불의에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불의한 일본을 정의로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 조선에 자유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8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는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라는 말씀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용기를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셔서 불의와 맞서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박해를 무릎 쓰고 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우리 믿음의 선배들 역시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게 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용기를 내어 일제와 맞섰던 것입니다. 어떤 두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독립의 길이 곧 의의 길이라 믿고 피 흘리며 죽기를 각오하고 거리에서 장터에서 산 위에서 바닷가에서 만세를 불렀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3400년전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나라의 노예생할을 수백 년 동안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생활에서 구원하라 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출애급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민족은 지금까지 그날을 회상하며 그날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다면 또한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수많은 민족들이 있다가 없어지곤 하였지만, 이스라엘민족과 우리민족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우리민족은 동과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땅 끝 까지 내 복음을 전하라 하셨는데 그 땅 끝이 어디인가? 바로 우리나라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이 2000년 동안 세계를 한 바퀴 돌아 140년 전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 민족이 역사 이래 가장 고난과 역경을 당하고 있던 그 때에 이 민족을 살리려 복음이 이 땅에 때 마침 들어 왔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역사입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민족과 우리민족을 관계 짓는 꽃이 하나있습니다.  구약성경 아가서 2장 1절에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샤론의 수선화’는 어떤 꽃인가? 우선 샤론은 지역 이름입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북쪽 욥바(Joppa)와 가이사랴(Caesarea) 사이에 있는 길이 80km, 폭 16km의 비옥한 땅입니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말할 때, 이 지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수선화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수선화가 아닙니다. 영어로는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미 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카바쩰레트’(khavatselet חבצלת השרון ḥăḇaṣṣeleṯ hasharon)라고 하는데 분명히 어떤 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할 때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미라고 번역하였고(KJV, NKJV, ASV, NASB, RSV, NRSV, NIV, NJPS, NLT, CEV)  그냥 꽃‘flower’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crocus는 NIV margin와 NJPS margin에서, narcissus는 DBY에서, flower는 DRA와 NAB)  우리나라에서 번역할 때는 수선화(narcissus)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궁화를 영어로 번역하면 미국사람들은 샤론의 장미라고‘Rose of Sharon’합니다. ‘무궁화’의 식물학명이 ‘히비스커스 시리아커스(Hibiscus syriacus )라고 합니다. 여기서 히비스커스(Hibiscus)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인 히비스(Hibis)와 유사하다(isco)”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무궁화라는 말은 아름다운 여신을 닮은 신성한 꽃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시리커스란 말은 무궁화의 원산지가 샤론지역인 시리아인근(syriacus)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궁화라는 학명이 주는 메시지는 무궁화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꽃이요, 가나안지역인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그 원산지라는 말입니다. 옛날 시리아 왕궁의 정문에 무궁화를 조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기록한 책에 무궁화로 도안을 넣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땅에서 무궁화를 잘 볼 수 없지만 2000년 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꽃이라는 것입니다. 터키의 지중해 및 에게해 연안 지역, 바울 선생님이 전도하러 다니시던 밤필리아와 이오니아 지방에 가면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보다 훨씬 자주 무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길가의 작은 공원에서, 또는 길을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무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중동지방에 무궁화 꽃이 많이 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번역된 “샤론의 수선화”는 “샤론의 무궁화”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끈기, 섬세한 아름다움, 은근함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그리고 기독교의 신앙이 일편단심 아름다음 은근과 끈기로 곧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무궁화 꽃으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89장에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를 “무궁화 꽃 예수 아름답게 피소서”라고 노래 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보니까, 무궁화는 7월에서 10월까지 약 100일 동안 계속하여 가장 오래 피는 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무궁화라고 합니다. 무궁화 꽃은 반드시 이른 새벽에 피고, 또 저녁에는 시들어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로운 꽃봉오리에서 새로 피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꽃이 피는 특징이 있습니다. 공해나 추위에도 강하고, 번식과 관리도 쉽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무궁화는 고조선 시대 때부터 한국의 꽃으로 주변국에 알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전 2100년경 중국에서 쓰여졌다고 알려진 산해경(山海經)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그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짐승을 잡아먹고 두 마리의 큰 호랑이를 부린다. 그 나라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그 땅에는 훈화초(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君子國在其北 衣冠衣冠帶劒 食獸 使二大虎在旁其人好 讓不爭 有薰(或作菫)華草 朝生夕死)”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란 한국을 뜻하고, ‘훈화초’란 바로 무궁화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라 최치원도 당시 효공왕의 명을 받아 당나라의 광종에게 쓴 국서(897년)에서 신라를 “무궁화 나라”(槿花鄕)로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약 1600여 년 전의 고대 신라초기의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왕족의 유물가운데 왕을 상징하는 순금 무궁화를 만들어 요대에 장식을 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전통과 관습이 그 시대를 따라 이어지는 왕권 계승자들에게 무궁화는 확실하게 왕의 신분을 상징하는 꽃이 되어왔습니다.
이처럼 무궁화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수천년 동안 우리민족의 꽃으로 사랑받아왔던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켰던 1910년 9월 애국지사 황현(1855~1910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다음과 같은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다고 합니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슬픔에 젖었네 鳥獸哀鳴海嶽嚬
무궁화꽃 피는 이 강산 깊은 물에 잠겼구나 槿花世界已沈淪

또한 독립군 대장이였던 김좌진 장군은 "삼천리 무궁화 땅에 왜놈이 웬말이냐"라고 부르짖으며 조국광복을 애타게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애국 지사이셨던 남궁억 목사님이 게십니다. 1893년에 남궁억목사님이 윤치호장로와 협의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했으며 그로부터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어지면서 무궁화가 국화가 된 것입니다. 남궁억목사님은 무궁화를 통해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확산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민족교육자로 남궁억 목사님은 무궁화심기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자신이 설립한 강원도 홍천의 모곡학교 학생 실습지에 무궁화 묘목을 재배하여 전국 각지로 보내어 무궁화심기운동을 벌였습니다. 1933년 그런 이러한 그의 행동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반일적 사상의 발로라 하여 이른바 '무궁화사건'이란 이름으로 체포하고 무궁화 묘목 8만 주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일본 경찰은 단지 남궁억 목사님이 무궁화나무를 심었다는 죄목으로 2년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남궁억 목사님이 지은 찬송이 바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입니다. 또  <무궁화 동산>이란 노래를 지으셨는데 그 1절의 가사 이렇습니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춘풍을 만난 무궁화동산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 다시 소생하는 이천만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동산
  잘 살아라 이천만 고려 족

일제는 무궁화가 태극기와 함께, 민족지도자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민족과 조국을 상징하는 강력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멀리 떼어 놓기 위한 술책을 꾸몄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고 경멸하여 비하시켰으며,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느니 심지어 "눈이 먼다"고까지 하여 멀리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국화말살정책을 강행하여 무궁화를 심지 못하게 함은 물론 이미 자라고 있는 무궁화를 모두 캐내도록 하고 무궁화를 캐어 오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궁화를 캐어낸 자리에는 사꾸라를 심도록 하여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고 일본인화하려는 식민지정책을 강화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군산에 일제 강점기부터 벗꽃이 많이 심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샤론의 무궁화는 곧 우리나라 대한의 무궁화입니다. 삼일정신은 곧 기독교 정신이며 꽃으로 비유한다면 무궁화 정신입니다.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사랑하던 꽃 무궁화는 오늘 우리에게 샤론의 꽃으로 노래 부릅니다.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피고  지고, 지고 또 피는 꽃, 쉬지 않고 계속 피는 무궁화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수많은 억압 속에서도 백성들의 마음속에 늘 희망을 피어주었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역사가 우리민족의 그 고난의 세월 속에서 언제나 꺽이지 않고 죽지 않는 생명의 씨앗들을 퍼트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극동방송국에 가서 삼일절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대담형식으로 녹음하였습니다. 3월 1일 11시에 방송됩니다. 그 대담의 결론으로 우리는 제 이의 삼일운동이 있는데 바로 통일운동이라고 말 하였습니다. 저 북한 동포들이 김정은의 독재아래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우리는 듣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북한동포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북한 땅에 무궁화 꽃이 동리마다 피고, 복음의 향기가 거리마다 풍겨나도록 우리는 제2의 삼일운동으로 통일 무궁화운동을 벌려야 합니다.

6.25전쟁 끝난 1957년 작곡가 황문평 선생은 “꽃 중의 꽃이”이란 노래를 작곡(서일수 작사)하였습니다.

   꽃 중의 꽃 무궁화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남궁억목사님이 일제의 억압 통치시절 무궁화 꽃을 심자고 하였듯이, 황문평 작곡가는 6.26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땅에 무궁화 꽃을 심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놀던 놀이가 무엇이었습니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습니다. 이 노래의 3절을 부를 때 저는 눈물이 납니다.

   노래하라 너도 나도 삼천만의 노래를
   통일의 기쁨이 파도치는 아침
   손잡고 달려가는 희망의 언덕위에
   네 얼굴 내 얼굴에 태양처럼 빛나네

통일의 언덕위에 피어나는 무궁화 꽃을 우리는 꼭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시편 146편 5절에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통일의 꽃 무궁화를, 통일을 이루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축복을 꼭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꽃을 말한다면 나라의 꽃이요, 예수 곧 샤론의 무궁화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 여러분, 97주년 삼일절 기념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저 북한 땅에 비추어지고 샤론의 꽃 예수의 복음이 무궁화 꽃처럼 피어나는 그 통일의 날이 올 때 까지 기도할 것을 다짐하여야 하겠습니다.

라온 코이노니아의 무궁화, 우리의 무궁한 축복의 주님, 곧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6년 3월 6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성경 눅19:1-10   라온코이노니아의 봄이 오는 길목

3월입니다. 어제(3월5일)는 경칩일(驚蟄日)이였습니다. 24절기의 셋째 절기인 경칩은 일어난다는 '경(驚)' 자와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 자가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입니다. 일 년 중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정도로 날씨가 풀린다는 날로 이제 겨울이 서서히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은 기쁨의 계절입니다. 언 땅이 녹으며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듯 온 세상에 아름다운 봄의 노래가 가득히 퍼집니다.

 

저는 봄이 오면 메델스존의  “무언가” (‘Lied Ohne Worte가사가 없는 노래’중 5권 작품번호 62번) 중에서 6번 째 곡인 ‘봄의 노래’(Spring Song)’를 즐겨 듣습니다. 이 음악은 마치 동면에서 깨어나 봄의 환희를 느끼는 듯한 정취를 표현하여 생명의 약진이 느껴지는 봄의 기운이 가득찬 곡입니다.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의 독주곡으로 인기가 높은데 결혼식장에서 축하곡으로도 연주합니다.

그런데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sms 가사가 없어 좀 섭섭하여 모차르트의 ‘봄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모차르트 : 봄노래

산에 진달래 꽃 빨갛게 피어나고
산그늘 흰 눈마저 녹아 사라지면
나 살던 옛 마을 에 봄철이 찾아오네
아 즐겁고 기쁘다 봄노래 부르세

종다리 하늘 높이 한종일 지저귀고
소치는 아이들도 버들피리 불면
잊었던 내 맘 속에 옛 노래 떠 오르네
아 즐겁고 기쁘다 봄날을 노래하세

 

이렇게 모차르트의 노래도 불러보지만, 조용히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슈베르트의 “봄의 신앙”이란 노래를 조용히 감상합니다. 가사만 소개합니다.

슈베르트  봄의 신앙(Fruhlingsglaube,D.686)


부드러운 미풍이 눈을 떠
밤낮으로 불어오네
신선한 향기, 새로운 울림
가난한 마음이여,
불안한 마음을 잊으라
모든것이 새로워 질테니까


세상은 나날이 점점 아름다워지네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네
끊임없이 꽃은 피어나고 
멀고 깊은 골짜기에도 꽃은 피고 있네
가난한 마음이여 고통을 잊으라
모든 것이 새로워 질테니까

Die linden Lüfte sind erwacht,
 Sie säuseln und wehen Tag und Nacht,
 Sie schaffen an allen Enden.
 O frischer Duft, o neuer Klang!
 Nun, armes Herze, sei nicht bang!
 Nun muss sich alles wenden.

Die Welt wird schöner mit jedem Tag,
 Man weiss nicht, was noch werden mag
 Das Blühen will nicht enden;
 Es blüht das fernste, tiefste Tal,
 Nun, armes Herz, vergiss der Qual!
 Nun muss sich alles wenden
 

1970년대에 인기를 끈 박인희(1945-)라는 가수를 기억하는지요.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재학 중인 1970년에 혼성 듀엣 뜨와에므와로 데뷔하고서 「약속」 「세월이 가면」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1974년 당시 학생들이 여름밤 모닥불을 피어놓고 둘러 앉아 기타를 치면서 부를 노래입니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그런데 저는 멘델스존 슈베르트 모차르트 와 함께 봄이 오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고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입니다.

산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고향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하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 신 갈아 신고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고향 논밭에도 온다네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 신 갈아 신고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고향 논밭에도 온다네

 


박인희씨는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전혀 음악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가, 지금 71세로, 봄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35년 만에 5월 중에 콘서트 음악회를 연다고 합니다.

‘여리고의 봄“이란 뮤지칼 연극이 있습니다. 17곡의 창작음악들과 신나는 안무, 그리고 시사성과 상징이 풍부한 시청각 이미지들! 뮤지컬 <여리고의 봄>은 관객들에게 풍부한 여흥과 작품성 높은 기독교공연예술을 보여주었습니다. 
AD 30년 3월 어느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생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리고에 몇 일간 머무십니다. 이때에 눈이 멀어 구걸하며 살아가는 맹인의 눈을 보게 하셨습니다. 또 가시는 길에 돌무화과 나무위에 있는 삭개오를 만나시게 됩니다. 아마도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삭개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이야기는 삭개오는 키가 작고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악덕 세리장이라 늘 외톨이로 고독하게 살아온 사람이

삭개오의 돌무화과나무

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런데 ’여리고의 봄‘에서 소개된 삭게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보여 줍니다.
삭게오는 세관에서 그를 찾아 온 사람들로부터 예수라는 젊은이에 대한 놀라운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는 간데 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데 눈먼 이는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일어서고, 문둥병자는 피부병이 낫는다는 이야기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게 하였다는 믿을 수 없는 예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그렇다면 지폐 두 장과 동전 다섯 개가 순식간에 오천배로 늘어날 수 있게도 할 것이 아닌가?”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삭개오는 이 달콤한 꿍꿍이를 품게 됩니다. 예수를 따라다닌다면 엄청난 돈을 벌수도 있겠구나. 오늘 밤 우리 집에 예수님을 머물게 하고 예수님을 잘 대접해서 내 뜻을 이루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러 광장으로 갑니다. 그때 평소에 자주 세관에 들리는 부자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예수를 만났다면서  하는 말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자기를 따르려면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삭개오는 갈팡질팡 고민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우리 집에 모실까 말까 모셔봤자 내 재산 다 팔고 자기를 따르라 하면 안 되지 그럴 수 없지, 그러나 한번 예수를 보기나 하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도저히 키가 작은 삭게오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길가에 큰 돌무화과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올라가 나뭇잎 사이에 숨어 예수님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사람들도 눈치 채지 못하게 나뭇잎으로 위장하여 숨어서 내다보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무 밑으로 오시더니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나뭇잎에 숨어서 내다보고 이었는데 어찌 나를 알아보았고 내가 우리 집에 모실까 말까 하고 있는 내 마음을 어찌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삭개오는 정신이 하나 없이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였습니다. 그리고 밤새 예수님과 많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삭개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눅19장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스타데이스 데 자카이오스 에이펜 프로스 투 큐리온, 이두...)  “보시옵소서!”라고 번역한 헬라어 이두(Behold!)는 감탄사로“보라! 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용서와 사랑과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표현입니다. 동시에 감사와 감격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는 변화된 새로운 삶에 대한 “이제 부터는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담대한 결단을 말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만나 돈 벌 궁리를 하던 삭개오가 아니 였습니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아준다고 하였습니다. 밤새 놀라운 변화가 삭개오에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로마식민지 정부의 관리 중에 하나인 세리장 삭개오는 자신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데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폐쇄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생활을 하였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회의 소외자들과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이타적인 사랑의 삶을 결단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사랑을 베푸는 삶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제시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세메론 소테리아 토 오이코 투토 에게네토)는 예수님으로부터 구원 선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온전히 순종했다고 자랑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묻었던 부자청년은 예수님께서“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듣자 근심하여 귀가함으로 구원의 자리에서 벗어났습니다.  

미국 타임즈 창간자 헨리 루스의 부인 클레어 부츠 루스는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기억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컨대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의 아버지’로, 링컨은 ‘노예 해방의 기수’로, 마틴 루터 킹은 ‘흑인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됩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시자로, 이순신은 구국의 명장으로, 김대중은 북한을 방문해서 노벨평화상을 최초로 탄 대통령으로, 노무현은 불행한 죽음을 한 서민 대통령으로 그러면 박근혜대통령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직은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사람은 진실해’ ‘그 사람은 속이 넓어’ 아니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야’ ‘그 사람은 ...이다’ 그런 인상 비평이 우리의 인생에 대한 평가가 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까지 그는 눅 19:2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이 소개는 결코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세리는 민족반역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방인인 로마에 충성하고 또 같은 동족의 물질을 수탈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은 동급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는 사람들이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부자라는 말도 긍정적인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받은 세금의 일부를 빼돌려 쌓은 불의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돈만 아는 악덕 졸부’ 정도의 평가입니다. 삭개오의 이름이 뜻하는 의미는 “순결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순결한 사람이 아니라 속이 시커먼 “악질 세리 악덕 졸부” 라고 사람들의 비난하는 소리를 평생 들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삭개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9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라” 물질적 욕망에 매여 살던 인생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받는 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하늘의 사람들로 바뀝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땅의 가치관을 좇아서 땅의 것만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바라보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삭개오는 예수님의 사도중의 한사람이라고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부 오리겐의 스승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년)는 스트로마타라는 책에서 마가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중 배신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한 명이 결원이 된 12제자에 유스도라는 별명을 가진 바사바와 함께 추천되어 제비를 뽑아 선발된 맛디아(하나님의 선물)가 바로 삭개오라고 증언합니다(사도행전1:21-26). 그리고 4세기 사도들의 법이란 책에는 12명 사도들의 삶과 선교 행적 순교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삭개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버지"라는 고백의 배경이 되는 로마 식민지 중심 지역인 가이사랴의 첫 주교로 섬겼으며 중세부터의 전승에 의하면 로마 속주였던 갈리아지방(Gallia, 지금 프랑스지역)에서 선교를 하다가 순교하였다고 했습니다.

봄을 영어로는 spring(봄, 샘, 태엽, 일어나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봄은 땅속의 씨앗들이 춤을 추며 올라오는 계절입니다. 봄비라도 내리고 나면, 그야말로 스프링처럼 여기저기 숨어있던 씨앗들이 땅 위로 올라옵니다. 어떤 것은 꽃부터 내어놓고, 어떤 것은 이파리부터 내어놓고, 어떤 것은 어느 날 문득 솟아오릅니다. 생긴 대로 저를 드러내는 봄. 지난겨울의 고단함을 견뎌낸 씨앗들이 펼치는 봄의 잔치 앞에서 생명의 경건함을 배우게 됩니다.

가로세로 높이 50cm의 땅속에는 약 2만 개의 씨앗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면 어찌 될까요? 그러나 그들은 한꺼번에 피어나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지천으로 냉이가 있지만, 피어난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1㎡(0.3025평),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면적에는 약 100포기의 냉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장소에서는 무려 열매는 4만 개, 씨앗의 수는 120만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120만 개의 씨앗 중에서 약 100포기만 싹을 틔운 것이지요. 그러면 나머지 씨앗들은 죽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때가 되면 피어날 것들입니다. 완전한 씨앗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때론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봄마다 냉이를 캐 먹어도 냉이가 지천인 이유입니다. 기다림, 명상, 침묵, 고요함, 인내는 그들의 삶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뭐가 잘 안됐어도 괜찮습니다. 봄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새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희망만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괜찮습니다. 봄이 오긴 왔는데 무엇인가 시작하기 위해 움직이고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동굴 같은 어둠속에 얼굴을 파묻고, ‘아! 인생은 너무 어두워 언제 나에게 찬란한 새 봄이 올 것인가’ 탄식하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열심히 살려고 하였지만 인생살이가 너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봄은 여전히 겨울의 긴 터널의 연속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지 않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갈릴리 지방에서 주로 활동을 하셨을까요?  풀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피고, 양지 바른 곳에서 그늘진 곳으로 피어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복음을 전파하시였습니다.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쁨으로 밝아지게 되자 어두운 사람들에게로 복음이 퍼져간다는 하나님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양 볕의 따사로움을 느끼고 아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시는 겁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부터 어둡고 긴 겨울 인생에서 신나고 밝은 봄인생으로 바뀌었듯이, 성도 여러분, 지금 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복된 인생을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힘이 빠져있다면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했고, 높아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갈등으로 아직 마음이 겨울 어름장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업이 어렵다고 낙심하고 직장생활이 편하지 못하다고 불평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고 다툰다면 아직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삭개오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내 인생 속에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지 않기 때문이요, 아직 우리 집에 예수님이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요, 나의 직장과 생업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삭개오가 돌무화과 나무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듯 우리는 지금 나의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예수님을 분명히 만난다면 나에게 올 봄은 참으로 찬란한 봄이 될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가수 박인희씨와 풍문여자중학교 동기동창인 시인 이해인 수녀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라는 시를 썼습니다.
시를 소개하면,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라온 코이노니아 여러분,
 "봄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말과 같이 봄에 찬바람이 불면 봄 추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봄이 오는 것은 누가 보내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보내시는 선물중의 선물입니다. 땅속에 틀어 박혀 겨울 잠자던 동물이나 벌레가 놀라 땅 위로 뛰쳐나오는 계절입니다. 경칩도 지나 이제 개구리, 벌레들도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고 잠자던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오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사람이 여전히 믿음의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다면 이미 그는 영이 죽은 자입니다.

시계에는 3종류의 시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만든 시계, 보이는 모든 시계입니다. (오메가 롤렉스 타이맥스 세이코 카시오 시티즌...) 사람들은 이 시계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도 하고 약속시간도 지키고 일터에도 나갑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모든 생물체 속에 넣어 주신 보이지 않는 생체시계(biological clock)입니다. 식물은 이 시계 때문에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를 알고, 동물은 이 시계 때문에 깨어나고 움직일 때를 알고 새끼 낳을 때를 알고 잠잘 때를 압니다. 재미난 예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 꿀을 찾아 이곳저곳 다니다 돌아온 정찰벌은 춤을 춥니다. 꿀벌들은 이 춤을 읽고 꿀 있는 곳을 압니다. 정찰벌은 꿀이 있는 곳의 방향을 태양과의 각도로 나타냅니다. 꿀이 있는 곳과 벌통을 몇 번씩 왕복하며 각도를 잰 다음 일단 캄캄한 벌통 안에 들어가면 수직으로 서 있는 벌집에서 태양의 방향을 중력의 방향으로 전환하여 동료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엄청나게 좋은 꿀의 출처를 발견한 정찰벌은 몇 시간 또는 심하면 하루 종일 계속해서 춤을 춥니다. 이렇게 마라톤 춤을 추는 정찰벌에게 한 가지 까다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캄캄한 벌통 속은 그대로이지만 태양은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에 15도씩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창문이 있어서 태양의 위치를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벌은 어두운 벌통 안에서 한 시간에 15도씩 스스로 방향을 조절하며 춤을 춥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동물의 몸속에는 생물시계라 불리는 행동조절 매커니즘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부산사랑의 교회목양칼럼)
사람에게도 보이지는 않지만 뇌 속에 생체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 생체시계 때문에 수면패턴, 체온조절, 홀몬조절, 생명조절 등을 하며 살아가며 이 시계가 망가지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병이 생깁니다.

세 번째 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시계로 영적시계(spiritual clock)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영적시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 가고 어떤 사람의 시계는 늘 늦고 어떤 사람의 시계는 망가졌으며 어떤 사람의 시계는 멈춘지 오래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시계는 온전합니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의 영적시계를 다시 정확하게 예수님께 맞추어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을 기다리는 여러분 안에, 여러분이 하는 일에 하나님이 만물을 깨우 시듯, 봄의 생명과 창조의 생기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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