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4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성경 시 139:1-18 라온코이노니아의 神妙莫測
1982년 민해경이란 여가수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KBS 가요 톱10이란 프로에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데뷔 2년차 가수로 작은 체구에 흘러 나오는 중저음 허스키 보이스는 매력적 이였습니다, 그러나 곧 방송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당시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사 중에 자녀가 부모에게 말하기를 “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나의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두세요...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랫말이 청소년들에게 부모에 대한 반항심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말이 어쩌면 좋은 의미로 청소년들의 독립심을 높이고 자유의지를 가지게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 마음대로 할 터이니 부모님은 참견하지 마세요라는 이 노랫말대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자녀들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사람은 내 인생이 나의 것이라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은 서로 서로 관계되어 있고 얽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사회의 기본 관계입니다. 이 기본 관계가 잘못 되면 사회전체가 어려워집니다. 바로 이 기본관계가 잘못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 경제 교육 가정 심지어 종교까지도 마치 어둠속에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있게 되는 것입니까? 그 원인중의 하나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누구냐? 즉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짐승으로 알고 짐승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합니까?
알든 모르든 오늘날 사람들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우주의 생성과 모든 동식물들이 생겨난 것은 우연한 일이고 진화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포유동물은 바다에서 올라와 육지 동물이 되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배란기의 그 작은 태아의 모습은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 이였는데 갑자기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숭이와 사람은 DNA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30억 개의 유전자DNA중에 1% 3억 3천만 개가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침팬지 95%, 오랑우탄98%, 보노보노 원숭이 99%) 그래서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조사해보면 사람과 바나나의 DNA는 50%가 비슷합니다, 그러면 바나나가 인간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쥐와 사람의 DNA가 80%가 같습니다. 그러면 쥐도 사람의 조상이 됩니다. 정말 이런 진화론의 주장이 진실일까요? 그러면 왜 사람과 동물들의 유전자 DNA의 수가 일치하는 비율이 많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동물들과 재료가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신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이 지구 땅위에서 같은 음식물을 먹고 마시고 아이 낳고 집을 짓고 일을 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땅위에 사는 조건이 같음으로 얼마간의 유전자는 같게 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사람과 똑 같은 모습으로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 로봇을 사람이 진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로봇은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면 과학자가 로봇에게 영혼을 넣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원숭이가 사람과 똑 같이 말하고 행동한다고 하여도 원숭이를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숭이에게는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의 오류는 사람이 다만 생물학적 존재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존재라는 것을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적 존재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다스리고 돌보는 책임을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시편 139:14에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심이 기묘하심이라’고 하였는데 전에 개역성경에는 사자성어로 신묘막측이라고 하였습니다. 백 년 전 한문(1912년 발간) 성경에 번역하기를 “심기다외(甚奇可畏)”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매우 기묘하고 놀랍다”는 말입니다. 성경 원어‘노라오드 니프리디’를 그대로 번역한다면 “나를 놀랍도록 구별하였다” 즉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KJV NIV. I am fearfully ...made)
얼마나 놀랍게 창조되었는지 알아볼까요?
인간의 몸은 60조개이상의 세포로 이루어졌고, 뼈의 개수가 206개입니다. 인간의 뼈는 화강암보다 강해서 성냥갑만한 크기로 10톤을 지탱할 수 있게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뇌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은 전체 사용량의 20%입니다. 뇌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20%를 소모하고 전체 피의 15%를 사용합니다. 뇌는 10,000,000,000개의 신경 세포와 100,000,000,000,000개의 신경세포 연결부를 가지고 있어서 뇌 속의 상호 연결은 사실상 한계가 없습니다. 인체의 혈관길이는 모두 합하면 12만 킬로미터입니다. 이는 지구를 3바퀴 돌 수 있는 길입니다. 눈꺼풀은 한번 깜빡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0분의 1초입니다. 1분에 보통 15번, 1시간에 900번 깜빡거립니다. 눈의 근육은 24시간 동안 약 100,000번 움직입니다. 다리가 이 정도의 운동을 하려면 적어도 80Km는 걸어야 합니다. 재채기는 시속 160Km의 속도로 퍼지는데 이는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보다 빠릅니다. 두개의 콧구멍은 3,4시간마다 그 활동을 교대합니다. 즉 한쪽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 동안 다른 하나는 쉬는 것입니다. 혀에는 맛을 알아내는 미세포가 약9,000개 이상 있습니다. 귀에는 소리의 진동을 받아들이는 기관인 고막이 있습니다. 이 고막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작은 곤충이나 벌레가 귓속으로 들어가도 이 냄새 때문에 귓속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폐는 약3억~5억개의 폐표가 있는데 모두 넓게 편다면 21평~30평 정도가 됩니다. 이렇게 넓은 것이 정교하게 접혀져서 몸속에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은 아연을 녹일 정도의 강한 산성입니다. 만일 위에 이 위산만 분비된다면 위벽은 금방 구멍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는 점액층에 의한 점막방어 장치도 있고 알칼리성 분비물도 분비되어 위산을 중화시킴으로 위벽이 녹는 것을 막아 줍니다. 심장에서 1분동안 심장을 통과하는 피의양은 약4.7리터 정도라고 합니다.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피를 펌프질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몸을 한 바퀴 돌아 심장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약46초 걸립니다. 체중 1킬로 당 피의 양은 약 80밀리리터로 몸 무계가 60킬로라면 4.8리터의 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의 주요성분인 적혈구는 골수에서 매초마다 2만개씩 생성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몸은 참으로 신묘막측 합니다. 조금 더 말씀드릴까요?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대략 계산해보니 소변을 38,300리터(약 삼다수 병으로 2만개)를 봤습니다. 꿈을 127,500번 꾸었습니다. 제 심장이 지금 까지 2,700,000,000번(27억번)을 뛰었는데 아직도 한참 뛰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3000번 울었습니다. 540,000번 웃었습니다. 정자 400,000,000,000마리(4천억) 생산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먹은 음식은 50톤이 넘습니다. 눈을 333,000,000회 깜박였습니다. 물을 49,200리터(삼다수 물병 24600개)를 마셨습니다. 검지손가락 손톱이 3.7m 자랐습니다. 심장에서 피를 331,000,000리터(1억6천600만개) 퍼 보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신비하지 않습니까? 저는 한일이 없습니다. 제 몸 안에 피가 돌게 하고, 숨을 쉬게 하고, 움직이도록 에너지를 정장하게 하고 이 맛 저 맛보면서 내입에 맞는 음식을 먹게 한 것은, 나는 다만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창조하시고 살아가게 하셨으니, 세상에 이렇게 신비한 것이 사람 말고 또 어디 있습니까? 사람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기 뒷다리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와이토모 동굴이 있습니다. 그 동굴 깊숙이 글로우웜이란 반딧불이 살고 있습니다. 캄캄한 동굴 천장에 이 반딧불벌레가 촘촘히 붙어 있는데 그 반딧불에서 비추이는 빛이 마치 하늘의 별 빛 같아 매우 신비하여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반딧불은 반딧불을 보고 찾아오는 벌레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갑니다. 참으로 신비한 곤충입니다.
밤바디에 따정벌레는 다른 위협을 느끼면 지독한 독가스를 쏘며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그 독가스를 맞으면 폭발을 하게 되어 다른 짐승들이 감히 다가오지를 못합니다. 물딱정벌레가 있는데 다른 벌레가 공격하면 세제가 섞인 물을 방출하는데 그래서 쫒던 다른 곤충은 그만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그야말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온통 신비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모든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이 다 우연으로 만들어 졌고 진화의 결과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을 보면서 ‘과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거나 ‘신기에 가깝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이나 한계를 넘어선 경우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주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우주 삼라만상 앞에서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할 것입니끼? 아! 너무 놀랍고 어마어마하고 굉장하고 신비하고 가히 측량할 수 없고 너무 오묘 무쌍하여 세상의 모든 말로 말한다 해도 모자랄 정도 이니 시편 기자도 다만 신묘막측 하다라고만 말을 할 뿐입니다.
마태복음 10:30-31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머리카락 하나에도 자세히 보면 엄청나게 세심하고 정교한 하나님의 설계를 볼 수 있습니다. 현대 기술로 가발이나 조화 등 겉모양은 아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생명이 있어 자라고 향기를 내게 하는 것까지 흉내를 내지는 못합니다. 머리카락은 가볍고 질기며 또 물에 약해지거나 녹지 않는 α-케라틴이란 단백질 사슬 3가닥이 나선구조를 갖으며, 밧줄 모양처럼 서로 감겨서 원섬유를 만들고, 그 원섬유 11개가 모여 미세 원섬유를 형성하고, 이것들이 또 모여서 매크로 원섬유를 이루는데, 머리카락은 결국 이 매크로 원섬유들을 각피(cuticle)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α-케라틴과 같은 나선구조를 형성하면서 물에 녹지 않기 위해서는 α-케라틴만의 독특한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아미노산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섬세하게 구성된 구조를 보면서 하나님의 철저하게 계획된 설계에 의해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까지 신묘막측하게 설계하신 창조주의 정교한 솜씨가 놀라울 뿐입니다. 첨단과학으로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머리털 하나도 그대로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 흉내를 내어 검은 머리에 물감 들여 희게도 하고 흰머리를 검게 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흰머리 되고 검은 머리됩니다.
마 5:36에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You cannot make even one hair white or black.)'고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동물의 털은 어느 정도 길이가 되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거나, 빠져서 다시 나오거나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동물들의 털이 계속 자란다면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동물들이 그것을 깎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자연계의 큰 문젯거리가 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직 사람의 머리칼과 수염만이 계속 자란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제 머리카락이 약 563Km나 자랐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서 특별히 그렇게 설계하신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깍지 않고 상투를 틀었습니다. “身體髮膚 受之父母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란 옛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골격, 터럭, 피부, 장기는 모두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이를 감히 훼손하거나 다치게 하지 말 것이요, 건강하게 관리되지 못함은 불효이고, 이를 잘 보존하는 것은 효도다’란 의미입니다. 물론 우리의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이 효도라는 옛 사람들의 교훈은 참으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의 지혜와 섭리가 가득한 신기하고 놀라운 육신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에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비밀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지혜와 지식이 점점 늘어나 과학과 기술 문명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인간 안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정보를 조금씩 빼내어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0.00001%도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과학이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지식을 아주조금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유전자 속에 아주 세밀하게 차곡차곡 집어넣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우주 안에 가득 차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이 다만 종교적인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신(omnipotent) 분이며 전지하신(Omniscient) 분이고 무소부재하신(omnipresent) 분으로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주관하시고 우리 머리털도 다 세시는 하나님이심을 지식적으로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화적 종교도 아니고 추상적 종교도 아니고 역사적이고 과학적이며 인격적 종교입니다. 기독인들 가운데 수많은 왕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세계적인 경제학자 사업가 그리고 과학자 천문학자 의학자 물리학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중 말단에 저도 알고 믿습니다. 제가 바보이고 멍청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묘막측하신 분인가를 분명히 알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 중에 서울대 물리학과와 대학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그곳에서 교수하는 동창생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고등학생 때 하는 말이 하나님을 믿을 바에 내 주먹을 믿는다란 말을 자주하였습니다. 대학생 때 ‘우주가 진화론자들처럼 그렇게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닌 것 같에’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때 ‘나는 실험실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우리는 이것저것 다 몰라도 이것 하나, 하나님은 우리를, ‘나를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시었다’ 이것만 알고 믿으면 됩니다. 이런 믿음이 확실한 믿음이요 이 믿음을 가진 신앙인은 세상의 그 어떤 두려움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두렵다라는 말은 우리들의 믿음에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마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아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묘막측 하심을 믿는 사람은 죄를 멀리합니다. 우리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모르시겠지, 하고 죄를 짓지는 못하게 됩니다.
시편 139편 2-4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그리고 이어 시편 139편 7-10절에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결코 죄를 지을 수 없게 하시는 경고의 말씀도 되십니다. 깊은 땅굴 속에 숨어 있어도, 하늘에 올라가 화성, 명왕성 그 넘어 우주 끝 별에 있어도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 보시는 것이 없으시니 거기서도 나를 아시고 돌보시고 옳은 인생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다시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아주 세밀하시고 분명하시다는 것입니다. 되는대로 이렇다 저렇다 왔다 갔다 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분명하고 철저하고 세밀하게 역사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믿음을 가질 때만 이를 감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고 말씀하시면서, 33절에서 “그런즉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이 세밀하게 우리를 알고 계시니 우리도 세밀하게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시종여일하게 우리를 돌보시니 우리도 대가대강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철저한 믿음이고 자기감정대로 기분대로 왔다 갔다 하는 제멋대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으며 순종하면 하나님도 세밀한 사랑으로 돌보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인생에 고통이 있고 사는데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묘막측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주심에 능치 못함이 없음을 확신하고 그 어떤 어려음도 믿음으로 이겨 나갑니다. 그 어떤 시험도 우리가 못 이길 시험 없고 그 어떤 마귀의 역사에도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세밀한 신묘막측의 섭리가 이미 이기도록 계획 세워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믿기만 하고 나가면 성공적인 인생 행복한 삶을 보장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1절에 “그가 너를 위하여 그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농부들이 타작할 때 콩 타작은 도리깨로 두드리고 참깨는 가는 막대기로 톡톡 떨어서 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때로는 징계하시고 어떤 때는 연단도 하시지만,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섬세하게 분명한 계획과 섭리 하에 신묘막측한 방범으로 우리의 인생을 다루십니다.
이사야 28장 27-29절에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내 인생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맘대로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것으로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셨습니다.(사 43:1, 고전6:19-20) 그리고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와 운행하심으로 세워진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이곳 라온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그 방법대로 우리인생을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섬세한 손길로 돌보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누가 그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솜씨를 의심할 것이며 누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사랑의 손길에서 벗어날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라온 코이노니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축복을 사모하며 더욱 세밀하고 확실하게 믿음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와 계획하심에 따라 세워진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의 성도들의 인생과 가정과 모든 행사가 다 신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사랑 그 한 중앙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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