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0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사 51:11 라온코이노니아의 이모지
세계적 권위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해마다 올해 유행한 글자를 선정하는데 지난 12월16일(현지시간) 올해의 글자로 글자가 아닌 ‘이모지’(emoji 또는 이모티콘)로 불리는 그림 문자로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동시에 표현한 얼굴 그림을 선정하였습니다. 이모지란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지 합성어로 ‘그림(e) 문자(moji)’를 뜻입니다. 일본 통신사 NTT 도코모의 개발자 구리타 시게타 가 1999년 선보인 250개의 그림문자가 기원입니다. 구리타는 “당시 단말기와 통신망이 대용량 그래픽을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단한 그림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던 중 나온 게 이모지”라며 “한자와 망가(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요즈음 컴퓨터로 소식을 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글자 대신 이모지라는 그림문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60억 건의 이모지가 컴퓨터와 핸드폰에서 전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해도 매일 평균 1000만명 이상이 이모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자로 정보를 전달할 때 자신의 감정까지 전달하기가 어려운데 이런 이모지 그림문자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손짓 몸짓 얼굴표정 억양까지 쉽게 상대방에게 전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5년은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다사다나한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가슴 아픈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IS 이스람테러사건으로 15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 프랑스인들은 물론이요 전 세계인들은 엄청난 놀람과 슬픔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IS이스람 테러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언제 우리나라에서도 테러 사건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또 시리아 나라의 내전으로 전쟁을 피하여 사백만 명의 시리아 피난민들이 피난 중에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하고, 세계 여러 나라로 피신하여, 우리나라에도 200명이 입국하여 현재 135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아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참으로 살아가기가 무섭고 슬픈 세계 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라고 하는 미국은 어떠한가요. 지난 2013년 1만 1208명이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4명 이상 무차별 총격으로 294건이나 터졌습니다. 그중 45건은 학교 켐퍼스에서 일어났습니다. 1968년부터 2011년 까지 43년간 미국인 140만 명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는 1775년 미국 독립전쟁으로부터 최근의 전쟁에 까지 전쟁에서 죽은 미국 병사가 120 여 만 명 보다 능가한 수치입니다. 지난 12월 2일 오전 11시 11분에 로스엔젤레스 동부 샌 베르나디노시에 있는 한 발달장애 시설에 무장 괴한들이 나타나 무차별 총을 난사하여 14명 이상이 죽고 21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통한 심정으로 “지구상 어떤 나라도 이렇게 잦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비국이 되풀이 될 것인가”고 통탄하였습니다. 2015년 만해도 미국에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 355번이나 있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총기 난사사건으로 성명을 발표한건만 15차례나 되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것이 무섭습니다. 미국은 참으로 슬픈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2015년도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뉴스의 홍수가 쏟아진 한해 였습니다. 2월 26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3월 리퍼트 미국대사 의 피습사건,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까지 빚은 4월의 성완종 리스트와 성완종 회장의 자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심판'발언과 7월 새누리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8월 북한의 지뢰공격과 준전시상태 선포 및 남북고위급 접촉,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관, 10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및 첫 국가장, 12월 안철수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등 국민들이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쉬임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2015년도의 가장 큰 사건은 메르스 사건입니다. 68세의 한 남자가 5월 4일 바레인을 거쳐 카타르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을 하였는데 감기기운이 있어 서울 삼성병원 입원하였는데 5월 20일에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라는 확진 판결이 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온 나라가 메르스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염병의 문제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가 출렁 거렸고 수많은 학교가 장기간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갈리고 보건 전담 차관제도가 신설되었습니다. 그러나 메르스 방역이 초기부터 이루어지지 않아 그 결과 16752명이 격리를 당하였고 186명이 확진환자로 판명되고 그중 38명이 사망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병원에 2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37분마다 한 명씩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을 합니다. 2013년 1만 4427명이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총기사고로 죽은 숫자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10만 명 당 자살률이 28.5명 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평균 자살률 12.1명) 중 1위가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입니다. 지난 2월 22일 군산 출신 여배우 이은주 양(26세)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은주양은 과다한 노출 연기로 비관하다 자살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몇일 전 그저께 12월 18일 오전 4시에 서울대학교 재학생 A군(19세)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낼 자살을 하였습니다. A군이 인터넷에 유서를 썼는데, “나와 너무나 다른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정신적 귀족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수저 색깔이었다.”고 하였습니다. A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이 공부잘한다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금 수저 집안에 태어났냐 아니냐가 청년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잘사는 집안이냐 못 사는 집안이냐가 처음부터 출세의 길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수저색갈이 무슨 말이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다섯가지 색깔의 수저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수저가 있는 집안은 30억 이상의 재산에 연 3억이상 수입 올리는 집입니다. 금수저는 20억 이상의 재산과 연봉이 2억 이상의 집이고 은수저는 10억 이상의 재산에 연봉 8000만 원 이상의 집이고 동수저가 있습니다. 5억 이상의 재산에 연봉 5500만 원 이상의 집입니다. 그리고 그 이하의 재산에 연봉 2000만 원 이쪽 저쪽의 집을 흙 수저가 있는 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흙수저도 아닌 집안입니다. 여러분 중에 연봉 2억 이상의 금 수저를 가지고 있는 집이 있습니까? 아무리 발 벗고 뛴다 해도 평생 금수저 인생은 못될 것이라 생각하고 자포자기로 자신의 인생을 끝낸 A군의 논리로 말하면 우리 모두 자살대상자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병원마다 온갖 환자들로 가득하고 경제적으로 벌어먹기가 이처럼 힘든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5년을 가난한 서민들은 힘들고 두렵고 슬프게 살아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슬픈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서 2015년을 이모지 그림문자로 슬프고 기쁜 사람의 모습을 선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록 우리가 이렇게 무섭고 슬픈 세계, 이렇게 두렵고 슬픈 나라에 살지만 슬퍼 눈물만 흘리지 말자 웃자 즐거워 하자 산다는 것이 슬퍼만 한 것이 아니라 기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슬퍼 눈물만 흘리지 말고 희망의 미래를 바라보며 기뻐하자’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독교는 슬픔의 종교요 동시에 기쁨의 종교입니다. 성탄절에 부르는 찬송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녜”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이는 인간 편에서 보면 구주가 나셨기에 메리(merry)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세드(sad) 크리스마스 슬픈 성탄입니다. 왜 슬픈 성탄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세상에서 온갖 핍박과 조롱과 수모와 배신을 당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태어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간에게 죄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린 죄입니다. 아들이 부모님께 불효함으로 죄를 지었다고 말하기 전에 부모님을 슬프게 한 죄가 더 근본적이 불효입니다. 창세기 6장 6절에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나함) 마음에 근심(아차르)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탄이란 말과 근심이란 말 모두 원어적으로 ‘슬퍼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음을 슬퍼하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셨다란 말씀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슬퍼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흘린 눈물의 씨앗이란 점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독생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심으로 극대화되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 하나님은 엉엉 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엉엉 우셨습니다.
눅 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클라이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엉엉 우시면서 말씀 하시였습니다. 41절에 ‘우시며’라는 말의 헬라어는 ‘클라이오’라는 말인데 22:62절에 베드로가 통곡하였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영어의 ‘울다’란 cry는 이 말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성지 순례 중 순례자들은 그 예수님 우시던 그 자리에 가보면 예루살렘성이 환히 내려다보입니다. 지금 그 자리에 예수님의 눈물의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요11:33-35 베다니 촌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선 예수께서는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이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죄인에 대해 긍휼이 여기심과 동시에 인간에게 죽음을 초래하는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주십니다.
마26:37이하에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라는 말씀에 보듯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실 때 “고민하고 슬퍼히사”라고 하였습니다. 고민하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뤼페오’란 말이고 슬퍼하사라는 말은 ‘아데모네오’란 말인데 두 단어 모두 슬퍼하다란 뜻입니다. 같은 의미를 다른 단어로 표시한 것은 더욱 슬픔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냥 슬퍼하심이 아니라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가슴을 쥐어짜듯 슬퍼하시었다는 것입니다.(막14:33)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슬픔과 눈물의 의미는 이 땅에서의 고단한 삶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분노하시고 고민하시며 슬퍼하시는 영적 슬픔이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비극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모든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슬퍼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이 슬픔의 굴레를 벗겨 주시기 위하여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셨으며, 그는 우리의 죄악과 질고와 슬픔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슬픔은 죄인 된 나의 슬픔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역사는 반전의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승리로 인하여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 51: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눅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여인이 10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1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어도 9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을 사방으로 뒤지면서 찾고 나중에는 빗자루로 쓸면서 찾다가 결국 고생 끝에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기 혼자 가만히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우리 함께 즐거워하자." 하면서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1드라크마란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눅 15:10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즉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이 기뻐하듯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구 밖에 나가서 잃은 자식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먼 산을 쳐다보시는 아버지 모습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이처럼 한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5장 32절을 보면 탕자가 돌아온 것을 보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유프라이노) 기뻐하는(카이로) 것이 마땅하다.' 이 말씀에서 즐거워하고는 원어로 ‘유프라이노’(유+프렌=넘치는 심장)로 가슴이 터질듯한 기쁨을 말합니다. 여기에 또 기뻐한다고 하니 기쁨이 하늘만큼 땅 만큼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한사람이 하나님 앞을 나올 때에 하나님의 기쁨이 우주에 가득 찼다란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온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처럼 기뻐하신다니 이로서 우리 또한 어찌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까? 우리의 슬픔이 기쁨이 되고 우리의 눈물이 춤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감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모습은 슬픔과 기쁨이, 눈물과 웃음이 교차되는 이모지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작은세상” 노래를 불러 보겠습니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작은 이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우리 라온 공동체는 2015년 1월 초 슬퍼하는 마음을 달래가면서 여기에 작은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해를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대단한 기쁨으로 새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작은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 안에는 우리를 향하신 높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넓디넓으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와 깊고 깊은 성령님의 도우시는 축복이 이 작은 공간 안에 가득 차 있음을 믿습니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공간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저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나의 더러운 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능력으로 죄 씻음 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었음을 기뻐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즐겁고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2015년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의 한해의 역사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그림문자 이모지로 표현할 것입니다.
성탄절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행복이 여러분과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