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중국 고전 논어 爲政篇(위정편)에 나오는 말로 온고이지신이란 말이 있습니다. 흔히 번역하기를 옛 것을 익히어 새것을 알게된다는 말입니다. 중용(中庸, 第27章)에도 온고이지신이란 말이 나오는데 군자는 옛것을 익히어 새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온고이지신이란 무엇을 의미 하는 말이냐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중국 한(漢)나라 시대 대 학자인 정현(鄭玄)은 온(溫)을 심온(燖溫)이라하여 심은 고기를 뜨거운 물속에 넣어 따뜻하게 한다는 말로 옛것을 배워 가슴속에 따뜻하게 하므로 비로소 새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도올 김용옥선생은 온은 싸늘하게 식은 것을 다시 덮힌다란 뜻이요, 고는 예전에 들은 것을 말하고 신은 새로 터득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故者, 舊所聞; 新者, 今所得) 배움에 있어서 예전에 들은 것을 때때로 익히고 항상 새로 터득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The Master said, "If a man keeps cherishing his old knowledge, so as continually to be acquiring new, he may be a teacher of others." )

 

그런데 온고이지신이란 의미를 정조대왕의 해석을 따르고자 합니다. 정조 1년 2월 정조대왕이 경연(經筵)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라고 물으니 선전관 이유경(李儒敬 1747-?)이 “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즉위(1776년 3월)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정조(1752년생)의 나이 겨우 26살 임금이 말하기를,“그렇지 않다. 초학자(初學者)는 이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 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하였습니다.

20대의 새파랗게 젊은 신참 임금이 강의를 맡은 비교적 고령이었을 경연관을 가벼이 초보 학자 수준으로 다루면서, 고전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거침없이 설파하였습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는 당나라 군대의 연패에 대해 경연관과 논하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도 경연관들의 부족한 식견을 꾸짖고 자신이 파악한 당나라의 연패 원인을 첫째, 둘째로 꼽아가며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조의 영민한 조리에 시독관 이재학이 “참으로 성교(聖敎)와 같습니다”라고 조아렸습니다. 이때 정조대왕은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초학자들이나 하는 말이고, ‘옛 것’을 익히다 보면 그 ‘옛 것’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옛것은 지난 구닥다리 무시해버릴 쓰레기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깍두기 담고 내어버릴 무청쓰레기를 시래기로 말려 맛있는 시래기 국을 끓이는 사람들입니다. 이 쓰레기를 저는 시래기로 때時 올래來 적을기記로 써서 옛 것은 앞으로 올 미래를 기록한 것이라고 봅니다. 즉 과거의 기록은 미래를 지향합니다. 과거의 올바른 시대정신을 알아야 올바를 미래의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것에 대한 정확한 깨달음이 있어야 오늘의 우리의 자세를 바로 잡고 미래의 방향을 바로 세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흔히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이 정체되었다고 말하기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여기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것은 초대교회의 신앙 정신을 잘 익히고 깨달아 알아서 오늘에 그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자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신앙 정통을 오늘 한국교회는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그 하나님을 섬김과 교회를 받듬과 이웃을 돌봄의 신앙을 배워 오늘의 시대에 올바르게 실현시켜 나아갈 때에 한국교회에 다시금 부흥의 새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온고이지신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대한복음교회 80년 곧 군산복음교회 창립 80년을 맞이하여 다시금 우리는 온고이지신의 자세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잠시 우리 복음교회 창립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20년 초부터 한국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줄기차게 외쳐온 최태용 목사에 대해 기성교회들이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복음선포에 당시 제사장 율법사 사두개 바리새 등 기성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던 것처럼 한국에 기성교회들은 최태용의 교회개혁운동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급기야 배척하였습니다.

지금부터 80년 전인 1935년 10월 3일 최태용목사는 저산에 있는 백남용목사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기성교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차제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자라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최태용목사의 영과 진리 애독자인 군산의 박지철씨와 허현씨와 의견을 나누고자 군산의 박지철씨 댁에서 여러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논의한 끝에 “기독교조선복음교회”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바로 담 아래 고 허현장로님 댁입니다. 최태용목사는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최태용목사는 11월 27일 일본 총독부에 교회설립신청서(포교관리자설치계)를 제출하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국가 기록원에서 최태용목사의 친필로 쓴 이 복음교회 설립신청서를 발견하여 그 문서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설립신청서에는 교회대표자의 이력서 , 설립취지문, 조직교회들의 최태용 대표자 추대 결의서, 교회정관 등을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1935년 12월 22일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최태용목사가 1935년 10월 3일 처음으로 복음교회 창립을 의논한 후 숨 가쁘게 준비하여 80일 만에 창립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은 그만큼 전국에 최태용 목사를 따르며 한국교회의 개혁을 바라던 성도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처음에는 서울 군산을 비롯한 전국에 8개 교회로 출발하였지만 곧 12개 교회로 창립 첫해를 맞이하였습니다.

 

복음교회는 창립자 최태용목사님의 주도로 설립되었다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아닙니다. 당시 최태용목사님이 발간한 영과 진리라는 잡지 독자들이 전국에 수백명이 있었습니다. 먼저 가까이에 있는 백남용 박지철 허현 이덕봉등 초창기 교인들과 밤을 새가면서 기도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조선복음교회는 최태용목사 독단적으로가 아닌 먼저 성령님의 감화 감동 역사하심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영과진리 신앙동지들이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창립한 주님의 몸 된 교회였던 것입니다. 교회설립 신청서에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전국의 신앙동지들이 결의 서명을 하므로 아직 공식적인 창립선언이 있기전에 지역교회들이 먼저 설립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명을 한 전국의 교인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불러가며 참으로 감격함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결의 서명을 한 후 그 분들은 복음교회의 창립과 지금은 작게 시작하지만 미래에는 크게 흥하기를 얼마나 기도하셨을까? 찬 마루바닥에 엎드려 또는 골방에서 기도하던 당시 복음교회 초대 교인들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당시 군산교회에서 서명한 분들의 이름을 말씀드리면, 서명 날인한 순서대로, 소화통에 살던 허현 백정순, 둔율정의 박지철, 영정의 박월봉, 대야면 복교리에 살던 서준석, 대야면 산월리의 김한준 신영춘. 둔율정의 변무순, 성산면 대명리의 김주찬, 소화통의 허영빈 이였습니다. 그 외 미처 날인에 참여 못한 이들이 5명이 더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신 분도 있고 처음 듣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남자 8명, 여자 6명, 합이 14명, 이분들이 군산복음교회 첫 교인들입니다. 이 첫 교인들의 기도와 땀과 눈물의 헌신 그리고 사랑의 용기로 오늘의 군산복음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1936년 1월 12일 조선복음교회의 역사적인 첫번째 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에 백남용장로가 목사로, 박지철 허현 김성실 홍순용 문태호 안상영 백남순 장용수 김원준 정준용이 장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태용목사는 無勇無用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용기가 없으면 아무쩍에도 쓸모가 없다“는 이 설교에서 우리는 외국선교사들에게 얻어먹는 영적 걸인들이라고 하면서 서양선교사의 자선적 교회로 만족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전 인격이 뒤집히는 참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말씀하시기를“그래서 조선 복음교회는 조선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행위로 조선인으로 죽음을 넘은 생명에 참여한 자의 행위로 시작하는 교회입니다. 죽음의 윤리로 죽음의 용기로 우리는 조선복음교회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조선인 신자로 조선인 자신의 교회를 이뤄보지 못한다니 말이 됩니까? 조선인으로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자이면 참으로 죽어서 얻는 생명신앙을 가진자이면 죽을 용기를 아는 자이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죽기까지 사랑함은 예수님이 우리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하였습니다.(아8:6) 최태용목사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증거가 곧 조선을 사랑하고 죽을 각오로 조선을 구원하는 것으로 조선복음교회의 창립이 그 증거인 것입니다. 최태용 목사는 이즈음에 이런 기도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이여 조선을 구원하옵소서

오직 당신의 역사로 이 백성의 영의 구원을 일해 주옵소서

오직 당신의 권능으로 이 백성을 구원하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옵소서

당신의 역사 당신의 권능으로만 그리스도의 복음이

조선을 정복해 주옵소서

.................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인류를 사랑하는 표징인 것처럼, 최태용목사도 마침내 6.25전쟁 당시 공산군에게 끌려나가 어느 이름 모를 산야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장로교 감리교 천지에서 조선인 자신의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이처럼 죽음의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였습니다. 주변의 교회 틈바구니에서 복음교회를 다닌다는 것 역시 신앙의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최태용목사는 이를 현명적 신앙(懸命的信仰)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복음교회 초대 성도들은 이런 현명적 신앙으로 복음교회 창설에 동참하였고 복음교회를 사랑의 용기로 지켜왔던 것입니다. 이 앞에 개복교회가 있고 성광교회가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 군산복음교회가 있는데 저 중앙로에서 골목을 들어 설 때 왼쪽으로 갈까요, 오른쪽으로 갈까요, 아니지 똑바로 이 길을 가서 군산복음교회로 가야지해서 이곳에 예배드리는 일 역시 사랑의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무슨 용기 입니까? 사랑의 용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처음 복음교회 성도들은 사랑의 용기로 우리 복음교회를 창립하였고 복음교회를 지켜 왔으니, 복음교회의 창립정신은 ‘사랑의 용기’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용기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죽음도 불사합니다. 이 무용무용의 신앙은 사랑의 용기로 우리는 온고이지신 하여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설립된 교회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과 오네시모에 의해서 교회는 발전하여 마침내 큰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성지순례 차 옛 에베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에베소 교회 터가 남아 있습니다. 상당한 큰 규모의 마치 헬라 신전같이 웅장하게 교회가 세워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기둥 몇 개 일부 대리석 바닥 무너진 석조 벽을 보여 줄 뿐입니다. 어째서 에베소 교회는 황성옛터가 되었습니까? 물론 오랜 파란만장한 굴곡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에서 칭찬하고 축복하였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는 이스람교가 판치는 터키 나라에 지금도 의연하게 세워져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2:5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는 책망의 말씀에도 돌이키지 않았던 에베소 교회의 촛불이 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에베소교회에 무엇을 돌이키라고 책망하셨습니까? 4절에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믿음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사라지니 믿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했으며,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또한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메말라버렵습니다. 단순히 타성에 젖은 믿음만 남았을 뿐입니다. 이런 신앙을 최태용 목사님은 고목화된 신앙이라고 부패하고 말랐다고 표현 하였습니다.

 

고목화된 타성에 젖은 신앙이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부터 교회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그냥 전에부터 해오던 일이라 감격도 없고 새로운 결단도 없고 회개하는 눈물도 없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손길도 없이 그렇게 교회 문지방만 밟고 다니는 데만 익숙해진 한국 교회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태용목사님의 첫 번 복음교회 총회 때 하신 설교 중에 이런 예화를 말씀하였습니다. 눈이 먼 시각장애인이 밤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눈이 멀어 밤길을 가는데 지팡이만 있으면 갈수 있는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캄캄한 밤이라 앞에 누가 오는지 잘 볼 수 없으니 어쩌면 자기하고 부딪칠 위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등불을 켜 들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행인들이 등불을 보고 나를 비켜 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갔을까 그만 어떤 사람과 부딪쳐 길바닥에 나 뒹굴어졌습니다. 이 시각장애인은 화가 났습니다. “여보시오 어찌 이 등불을 보지 못하고 나와 부딪치는 거요” 큰 소리를 쳤습니다. 함께 넘어졌던 행인이 하는 말이 “뭐요? 당신은 불꺼진 등을 들고 있을 뿐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은 등불을 들고 가는 줄 알아지만 실상 그 등의 불은 꺼진지 오래였던 것입니다. 최태용목사님은 한국교회가 복음의 등불을 켜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이미 그 등불은 꺼진지 오래 되었다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복음교회는 사랑의 등불을 켜들고 용기 있게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80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아직도 복음교회가 들고 있는 등에 사랑의 용기가 타오르는 불이 켜있는 것입니까? 어쩌면 가물가물 사랑의 기름이 말라가 믿음의 심지에 불이 꺼져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 다시 복음의 등잔은 높이 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온고이지신의 신앙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초기 복음교인들의 사랑의 용기를 회복하고 미래를 향하여 개혁과 변화로의 방향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합니다.

 

왕년에 컴퓨터 업계의 최고 선두주자는 IBM 컴퓨터사의 공급업체였던 인텔(Intel)사였습니다. 그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Andy Grove) 회장은 IBM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IBM은 지속적으로 컴퓨터 업계에서 선두 고지를 점령해 온 회사이다. IBM 간부들은 이 오랜 세월의 승리에 도취된 채 살아왔다. 시대가 바뀌고 시장이 바뀌었는데도, 그들은 제품 개발과 경쟁력 향상에 있어서 과거에 자신들이 쓰던 것과 똑같은 방식을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IBM 사의 간부들은 자만에 빠져서, 세월이 흘렀는데도 옛날 성공했던 기술과 비즈니스 전략을 수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의 혁신적인 변화에도 둔감했고 PC 판매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도매상과 소매상들에게 아주 교만한 자세를 취함으로 사람들은 IBM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1986년 "포춘"지 선정 미국 제1위의 그룹이었던 IBM은, 7년만인 1993년에 가서는 206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름도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부흥 발전하고 우리 군산 복음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 사랑의 용기가 필요 합니다. 우리 복음교회의 부흥 성장의 본질은 초대 교회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믿음의 용기로 복음교회를 사랑하고 현명적으로 교회를 향한 헌신과 섬김이 있을 때에 교회는 성장동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80년 전 첫 복음교회 성도들인 허현 백정순 박지철 박월봉 서준석 김한준 신영춘 변무순 김주찬 허영빈 외 14분을 Remember기억하고, 오늘 우리에게 그런 첫 사랑의 용기가 메말라 있음을 Repent회개 하고, 다시금 그 첫 믿음을 Restore회복의 역사가 있을 때 온고이지신 우리 복음교회는 다시 일어나 민족 구원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3:16에 바울선생님이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어째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갑시다.(Only let us live up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라는 말씀입니다. 80년 전 1935년 12월 군산 복음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졌던 그날의 감격을 기억하면서(remembering the past), 80년 생일을 맞이한 군산 복음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celebrating the present), 이제 온고이지신 첫 사랑의 용기를 회복하고 미래의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될 군산복음교회의 미래의 비젼의 모습을 기대합니다.(envisioning the future)

 

이처럼 자랑스런 복음교회 첫 출발지요 빛나는 신앙전통을 온고이지신하는 군산 복음교회의 성도들이 사랑의 용기로 교회를 섬기며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될 때 복음교회 목사로서 큰 기쁨과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바라건데 더욱 뜨겁게 주님께 대한 첫 사랑이, 교회를 향한 첫 사랑의 불을 피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타성에 젖은 삶이 아닌, 매일 매일의 삶에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축복이 넘치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 그리고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