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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지금부터 200여 년 전 영국 웨일즈 서해안 지방은 지형이 험난하고 기후 조건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서민들은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성장한 여덟 살 소녀 메리 존스(Mary Jones)은 매주 저녁 교회에 나가 성경을 배우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메리는 언젠가 글을 배워 스스로 성경을 읽겠다는 소망을 키워갔습니다. 메리가 열 살 되던 해 비로소 글을 읽게 되어 교회 주일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써준 마태복음 1장을 읽고 더욱 성경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당시는 성경이 매우 귀한 때라 동리에 성경을 가지고 있는 분은 이반스 부인뿐이었습니다. 메리는 이반스 부인에게 사정을 하여 매주 토요일 마다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성경을 홀로 읽게 된 메리는 감격에 겨웠으나 시간적 제약으로 성경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아쉬워한 메리는 “몇 십 년이 걸려도 꼭 성경 한 권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리는 성경을 사야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으나 시작 첫 해에는 모은 돈이 너무 적어 실망하였고, 아버지 병세의 악화와 집안 일로 돈을 모으지 못한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굴하지 않고 6년간 각종 허드렛일을 마다 않고 돈을 모은 끝에 결국 겨우 한 권의 성경책 값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30km 떨어진 빨라라는 도시에 사는 찰스 목사님을 찾아가 성경책을 구입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성경책이 절판되어 판매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절망감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에 감동한 찰스 목사는 자신의 성경을 그녀에게 내어주며 위로하였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성경을 갖게 된 메리는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피곤함과 배고픔도 다 잊은 채 30km를 단숨에 걸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부모님과 함께 ‘메리의 성경’을 상 위에 놓고 공경하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성경을 들여다보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 한 권을 갖기 위한 메리의 눈물겨운 이야기, 그리고 웨일즈 성경이 더 이상 인쇄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절망적인 눈물을 흘린 메리의 이야기, 즉 성경에 대한 메리의 열망에 깊이 감동한 찰스 목사는 사람들의 갈급한 필요를 인식하게 되었고 1802년 12월 런던에서 열린 기독교서회 회의에서 메리존스의 이야기를 전하며 성경 보급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드디어 1804년 3월 7일 영국성서공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사업에 대한 열의는 전국 각지에서 호응을 얻어 성경책을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메리 존스의 성경에 대한 집념은 성서공회 창립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고 이어서 1814년에는 네덜란드, 1826년에는 스코틀랜드에 성서공회가 조직되는 등 세계적으로 성서사업이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는 13개국 대표들이 영국의 헤이워드 히드(Haywards Heath)에서 모임을 가지고 전세계 모든 인류의 방언으로 성경을 펴서 말씀을 전할 목적으로「세계성서공회연합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회원국은 137개국이며 200여 개국 이상이 함께 성서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성서 공회 역시 창립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세계의 모든 교회가 1915년 두 번째 대강절 12월 5일을 세계 성서 주일로 지킬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1916년 미국 성서 공회의 창립 100주년 행사로 세계의 여러 종류의 성경을 전시하고, 오랫동안 계속해서 성서가 출판되고 각국어로 번역되어 배포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에 호응하여 세계 각 교회에서는 성서 주일을 지키며 성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르게 하기 위한 홍보 활동을 하였으며, 성경을 접하기 어려운 벽지나 기독교 선교가 활발하지 않은 나라에 진리의 말씀인 성서 배포를 돕기 위해 헌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서주일 예배를 드린 것은 1899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성서공회주일(Bible Society Sunday)'로 지켰으나 1900년부터는 '성서주일(Bible Sunday)'로 호칭되었고 점차 전국 교회의 광범위한 관심과 호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알려진바 세계 모든 언어 6901개의 언어 중에 성경전서는 542개언어로 번역되었고, 신약성경만은 1324개언어로 그리고 단편적으로 번역된 성경은 1020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금년 말까지 아직 번역하지 못한 100개 언어에 대해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작년(2014년도)에 세계 성경 반포 현황을 보면, 성경전서가 3390만6212부가 세계인들에게 전해 졌습니다. 우리나라 성서공회에서 작년도에 55만9800부의 성경이 반포되었으면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세계 120여개 나라 240여개 언어로 번역한 성경 689만301부를 발행하여 각국으로 전달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성서공회에서는 1979년부터 해외에 성경을 보급한 후 현재까지 1억6000만부를 찍어 보냈습니다.

 

한글 성서 번역은 중국 만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선교를 위해 1872년 만주를 찾은 스코틀랜드연합장로회 소속 존 로스 선교사는 1874년 중국 우장의 ‘고려문’이라는 곳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2년 뒤인 1876년부터 만주 봉천에서 의주 청년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그리고 서상륜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 성경번역을 시작하였습니다. 1879년에 먼저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번역하였고 1880년에는 4복음과 사도행전을 완역하고 점차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책 이였습니다.

서상륜과 동생 서경조는 삼촌이 살고 있는 황해도 솔내로 가서 이 성경책을 전하면서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얼마 안가서 솔내 마을 58세대 가운데 50세대를 믿게 할 정도로 전도는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전도에 나섰으며, 1885년에는 순전히 자기들의 힘으로 여덟 칸 되는 한국의 최초의 교회당을 건축하였습니다. 이곳이야 말로, 한국 개신교의 요람지'(Cradle of Protestant Christianity in Korea)로서, 한국교회의 발상지로서 영원히 기념할만한 일이었으며, 또한 한국의 첫 교회는 아직 공식적으로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순전히 한국인에 의해 성경이 번역되고 전도되어 교회를 세웠다는 것이 세계교회의 이목을 크게 집중시켰던 것입니다.

189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레이놀즈 등 선교사들은 앞서 만주에서 번역된 한글성경이 의주 청년들에 의해서 번역되므로 평안도 방언이 많아 다른 지역사람들이 읽기에 불편하여 다시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해 새롭게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00년 신약, 1911년 성경전서를 출간했고 1938년과 61년 개역성경으로 출간하였다가 98년 개정 작업을 거쳐 현재의 개역개정판 성경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개역 개정판 성경 외에 현재 공동번역성경, 표준어 번역성경, 새번역성경, 흠정역 번역 등 여러 가지 번역 성경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목회할 때에 제주도 방언으로 마가복음을 번역하였습니다. 이 제주방언 성경은 우리나라 유일한 방언성경으로 세계성경사전에 등재되어 있고 지금 절판이 되어 성경수집가들에게 매우 귀중한 성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 ‘다움; 제주방언성경’에 들어가면 여러 소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400여년전 영국 제임스 왕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제임스 왕이 민정을 살피려고 어느 시골의 방앗간 옆을 지나가다가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영국 황제 날 부러워 아니 하여도 나도 역시 제임스 왕 부럽지 않네." 제임스 왕이 부럽지 않다고 하자 왕은 누군가 궁금해서 방앗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왕도 부럽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제임스왕은 물었습니다. 노부부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외롭지 않고, 부럽지 않고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임스 왕이 행복의 근원을 묻자, 노부부는 날마다 교회에 가서 듣는 '성경말씀'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노 부부의 말에 자극을 받은 제임스 왕은 그 후 수많은 돈과 언어학자들을 동원하여 그때까지 오직 신부들만 읽고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왕이 번역한 성경이 바로 'King James Version', (1604-1611번역)우리말로 하면 흠정역 성경입니다.

 

제임스 왕은 성경을 너무나 좋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 때 반역자 한 명이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형수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나는 사형수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왕이 호기심에서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소원이냐. 내가 들어 주겠다” “왕이 번역한 성경을 한번 읽고 죽고 싶습니다.” 왕은 너무나 좋아서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다 읽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다 못 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성경은 모두 3만절이 넘는 데 하루에 한 구절씩 연구하며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다 보니 하루에 한절씩밖에 못 읽었습니다. 앞으로 70년 이상 읽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왕은 감동을 받아서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을 다 읽고 죽어라.” 그리고 살려 주었습니다.

 

성경이 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요? 기독교인이든지 비 기독교인이든지 간에 왜 성경이 이들에게 이렇게 많이 읽혀졌을까요?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4대 성인 중의 하나인 예수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 종교를 대변하는 경전의 하나였다면 시대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여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을까요? 예를 들어 불교의 팔만 대장경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팔만대장경을 읽었을까요. 유교의 사서삼경이 있습니다. 옛날 유학자 외에 누가 그 경전들을 읽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모든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언어학이나 외국문학을 배우는 사람들, 천문학 생물학 고고학심리학 등 모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 음악이나 그림 조각 하는 예술가들은 성경을 읽어야 할 정도로 성경은 그들에게 학문적으로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먼지 뽀얗게 쌓여있고 색깔이 누렇게 바래진체 도서관 깊숙이 보관되어 있는 역사를 기록한 죽은 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살아서 우리의 영혼과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도 분명히 성경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대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는 그러한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심령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옥에 갈 영혼들이 천국에 가는, 영생을 얻는 영혼으로 바뀌어 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누가 성경을 썼을까요? 지금부터 3500여년 전부터 예수님 탄생후 100년에 걸쳐 1600 여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환경도 달리 살았던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기록한 책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들의 직업과 신분은 왕, 의사, 농부, 세리, 어부, 율법사, 제사장, 선지자, 등등으로 각양각색이었고 저자들의 지식적, 도덕적, 종교적, 영적 수준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그 66권의 책들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 번도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글이 다른 사람들과 주제가 같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체 기록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회의를 소집해서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지 의논한 적이 아예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한 가지 주제로 글이 써졌다는 것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제삼의 능력이 개입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제삼의 능력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시대와 장소와 환경을 초월하여 각 저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같은 주제로 성경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데오프뉴스토스)으로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통일된 주제는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신약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봉독한 본문 14절에 무엇이라 말씀하였습니까?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려면 우선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데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던지 그 배움에 즐거움이 있다면 배움의 보람이 있고, 보람이 있으면 성취함이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배움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피아노 배우는 아이가 피아노 치는 일에 즐거워하면 장차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즐거워하면 그 아이는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되거나 디자이너가 될 것입니다. 수학을 공부하는데 즐거워하는 학생이라면 그 학생은 후에 훌륭한 과학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데 즐거워하는 성도라면 그는 진실한 성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논어 첫머리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란 말이 있습니다.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란 뜻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여기서 따온 말입니다. 성경말씀을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성경원어에서 ‘배우라’는 말은 “만다노”라는 헬라어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들어, 가르침을 받아 배운다’란 의미입니다. 혼자 독학해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독학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배우다가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문선명이 그렇고 이만희가 그렇고 수많은 이단의 교주들이 다 그렇게 독학 하다가 악령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가르침을, 정통신앙에 따라 이어온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가 되려면 6년간 정규 의과대학을 다니고 인턴생활을 거쳐 전문의가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병원 사무장으로 있다가 만일 의사 활동을 한다면 환자를 죽일 것입니다. 목사가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4년간 신학대학을 다니고 2년 내지 3년간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전도사생활 2년 이상을 하고 목사고시에 합격을 해야 합니다. 목사고시도 단번에 되는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요즈음 정규 신학을 공부하지 아니하고 성경학교 1,2년 다니다가 목사가 된 사이비 목사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 중에 탈선하여 모든 목사님들을 욕먹게 하고 있습니다.

 

배우라고 하니까 무슨 신학 공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여기서 말씀한 배움은 ‘만다노’- 들어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목사님들이 들려주는 말씀을 잘 듣고 배워 그 말씀이 이런가 저런가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목사의 가르침은 성도로서 즐겁게 살아가도록 올바른 삶의 길을 안내하는 일인데 그 말씀을 듣고 딴 길로 간다면 탈선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고 마귀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저는 제 설교가 여러분에게 어렵게 들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나 라온코이노니아 여러분은 어린아이가 아닌 아주 수준 높은 장성한 성도라 생각합니다. 히 5: 13.14에 “이는 젖을 먹는 자 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느 교회에 있는 어린아이 같은 교인들이 아닌 선악을 분별하고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의와 불의를 분별할 줄 아는 장성한 성도라고 믿습니다.

 

본문 15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영원한 지옥에 가야할 죄인임을 알게 되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일서 5장 13절에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을 항상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관한 말씀 즉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성경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말씀 속에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살아진다 해도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경이 없어진다면 바로 그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고 지구는 파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많이 듣는 말씀중의 하나가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1년에 1독 2독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1년에 10독을 한 사람도 있고 20독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읽었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을 뿐 아니라 열심히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 읽었다면 마치 어린 아이가 대학교 철학책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많이 읽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이해 못하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100번 읽는 것 보다 단 한 절 말씀을 읽고 깨달아 순종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1독 10독하는 것은 좋으나 열심히 읽었으면 그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적용하여 순종할 때 그 말씀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영의 양식이 되고 내 삶의 지침이 되고 내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을 인도하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선한 일을 하게 하는 능력이 성경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은 성도들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본문 16절에 성경은 교훈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특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성경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주변에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온전한 해답과 교훈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교양 서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온전한 교훈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온전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죄를 죄라고 말하고, 불의한 것을 나쁘다고 말하고 악한 것을 악이다라고 말하는 온전한 책망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나쁘다고 말씀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죄라고 말씀하는 것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불의라고 말씀하는 것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죄를 밥 먹듯이 짓고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성경을 알고 배우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다음부터 그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성경이 책망하고 있고 성경이 그 사람을 바르게 교정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17절에 성도가 마귀와 싸워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중에 마귀와 싸워 이길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마귀를 물리칠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입니까? 바로 칼집입니다. 칼집에서 칼을 빼듯이 성경에서 말씀을 빼어 시시각각 우리 주변을 맴돌며 삼킬 자를 찾아 들어오는 마귀를 쳐서 물리쳐야 합니다. 약 4:7에 ‘마귀를 대적하라(안티스테테 데 토 디아볼로)’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지만 말고, 다니다가 마귀의 유혹이 오면, 귀신이 작란하면, 어둠의 권세가 겁박하면, 세상의 흉흉한 물결이 몰려오면, 성경 칼집에서 성령의 검을 빼어 높이 들고 “사탄아 물러가라, 바다야 잔잔하라, 어둠아 사라지라”고 외쳐야 합니다. 성도는 여호수아 같은 갈렙과 같은 하나님의 정병입니다. 성령의 검을 들을 때 미가엘 천사가 우리를 지켜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두렵다고 생각하지 아십시오. 사는 것이 무섭다고 겁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손에 성경책이 있다면 그리고 그 성경책에서 말씀의 칼을 빼어 들면 우리는 승리합니다.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승리하시니, 예수님 말씀하기를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도 이기리라고 하였습니다.(요16:33 요일4:4) 성도는 말씀으로 세상을 이긴 자 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는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리라’고 확신에 거해야 합니다(요일 5:4.5).

 

그러므로 오늘 성경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성도 여러분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아라, 항상 성경읽기를 즐거워하시고 성경 말씀듣기를 즐거워하시고, 말씀 배우고 묵상하고 순종하기를 즐거워 하시여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 마귀를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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