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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9월 27일 추석주일아침 예배 설교  성경 전 9:7-10 라온코이노니아의 회소곡會蘇曲


옛날 우리나라의 명절은 거의 달마다 있었습니다. 음력으로 정월의 설날과 대보름, 이월의 한식(寒食), 삼월 삼진, 오월의 단오(端午), 유월의 유두(流頭), 칠월의 백중(百中), 팔월의 추석, 9월9일 중양절, 시월 상달, 십일월의 동지(冬至)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음력설과 추석만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농업 국가이고 씨족중심 마을을 형성하였음으로 명절에 이웃에 살고 있는 일가 친인척들이 다 같이 모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명절의 즐거움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화가 발달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와서는, 명절은 친 자식들이 부모가 살고 계시는 고향을 찾아와 제사를 지내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간에 안부를 묻고 친교를 나누는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날엔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고속도로가 거의 주차장이 되어 버리고 고향의 부모들은 자식들과 일가친척들을 맞아하기 위해서 바쁘고 집안 며누리들은 제사상 준비로 심신이 고달 퍼지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증후군이란 병명도 생기고 명절 다음날 이혼 소송하는 부부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이러한 경향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명절에 고향과 부모를 찾아오는 자식들의 발걸음이 점점 줄어들고 외국으로 여행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도시화와 핵가족이 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즐거움 보다는 스트레스로 괴롭다 하여 고향과 부모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석명절 다가와도 찾아오는 자식 없어 밝은 달만 처다 보고 한숨만 쉬는’ 늙으신 부모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추석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이 무엇입니까? 송편 보름달 제사 고향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고향입니다. 추석을 맞이 하여 북한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들은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더욱 옛 고향산천이 그리울 것입니다.  고향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고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주리주리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1893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드보르작이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신세계 교향곡은 베토벤의 운명, 슈베르트의 미완성,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과 함께 교향곡의 4대 천왕이라고 불려지는 유명한 교향곡입니다. 이 신세계교향곡의 제9번 e단조 작품 95에 우리가 잘 아는 곡이 있습니다. ‘잉글리쉬 혼(오보에의 일종)의 독주에 의해 흘러나오는 주제 선율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아름답고 애잔하여, 요염하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이 주제 때문에 이 교향곡이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주제 선율은 드보르작의 미국인 제자인 피셔에 의해서 독창 또는 합창곡으로 편곡되어 'Going Home (귀향)'이란 제목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영국의 소년 합창단인 리베라 합창단 이 이 노래를 공연 하였는데, 소년들의 순수한 목소리로 부른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린천사들의 목소리 같고 고향 생각이 절로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꿈속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박용구씨가 번역한 가사는 원곡하고는 좀 다르지만 몇 번이고 불러보면 옛 고향생각이 진하게 떠오릅니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다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좇아서 즐기었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이제 현대인들은 점점 고향을 잃어버린 21세기 유목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독한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고향을 잃어버린 다는 것은 뿌리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고, 뿌리 없는 인생은 덧없는 인생, 허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제멋대로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정신이 황페화 되어 가고 거의 짐승수준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원전 550여 년 전 유다가 멸망당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70여 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 예루살렘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지키라는 장막절 명절이면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향에 돌아가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장막절은 우리나라 추석날과 같습니다. 추석은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옛 친구들과 즐겁게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요. 명절은 하나님께서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늘 고향에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고향도 천국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향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삼천포로 빠져 지옥으로 기고 있으니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 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고향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요 7:3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 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요 14:2b,3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처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고향 가는 길을 알려 주시기위해서 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 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요14:6)”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미로와 같습니다. 이 길로도 가 보았다, 저 길로도 가 보았다, 그러나 다 허된 길이였고, 꽉 막힌 길이였고, 낭떨어지로 불구덩이가 입 벌리고 있는 길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천국으로 가는 길은 한 길 뿐으로 예수님을 믿는 그 발자취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고향 땅 천국 아버지 집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 현대인들은 수많은 죄를 짓고 타락하고 범죄하며 삽니까? 그 인생길이 잘못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에 마귀가 설치해 논 수많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 길로 가지 말라 거기에는 마귀가 뿌려논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고 말하지만, 태초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의 나무를 따 먹지 말라고 그렇게 하나님이 알려 주었음에도 마귀의 유혹받아 불순종한 것처럼, 아담의 원죄를 이어 받은 오늘의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두 길이 있습니다. 악의 길과 선의 길, 불의 길과 정의의 길, 미움의 길과 사랑의 길, 패배의 길과 승리의 길,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 가는 길과 천국 가는 길 이 두 길 사이에 사람들은 선택합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까요? 
신명기 30: 19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결국 두 길입니다. 제멋대로 살아 사망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예수 따라 고향 천국으로 가는냐?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라면 죽을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449장 찬송입니다.
   1절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 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는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어떤 목사님이 죽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심문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는가?>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웠는가?>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아닙니다.>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이제 나에게 지옥으로 가라는 판결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밝은 빛이 환하게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목사님을 껴안고 보좌를 향해 올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했고 항상 깨끗하지 못했으나 세상에서 그는 항상 저의 편에서 있었으니 지금 여기에서는 제가 이 사람의 편에 서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 편에서 살아 갈 때 우리는 넉넉히 영원한 고향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게 될 것입니다.

추석은 우리가 더 이상 나그네 인생이 아님을 확인 하는 날입니다. 부모님을 만나고 형제들을 만나고 함께 기쁨으로 음식을 나누며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홀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전도서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에 나를 품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고, 나와  함께 즐거움을 나눌 형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 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더 이상 힘들다 괴롭다 하며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즐거운 인생을 함께 나눌 가족과 이웃이 있다는 것 보다 더 좋은 축복이 없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이 라온코이노니아의 회소곡입니다. 회소곡이 무엇인가를 이제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나라 가장 오랜 추석에 대한 기록은 신라 3대왕 유리왕 시절에 추석날이 되면 동리 여인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놀이를 해서 진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춤과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여인들은 회소회소會蘇會蘇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대체 회소가 무엇인가 아직 역사학자도 국문학자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찬송가 연구가인 오소운 선생님이 밝혀냈습니다.


옛날 인도에 아유타국(阿踰陀國:Yayodya, 인도 동남부의 한 나라) 이란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전도하여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허황옥(許黃玉, 주후 32-189)이란 공주가 있었는데, 이 공주는 주후 48년 7월 27일  16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복음을 들고 배를 타고 긴 여행 끝에 우리나라 김해 바닷가에 도착해서 김수로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야기가 《삼국유사》「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기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남해 바다에는 붉은 돛을 단 배 한척이 붉은 빛 깃발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그 배에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그를 수행해온 두 신하의 내외 그리고 선원 20여명이 타고 있었다. 

수로를 만난 허황옥 공주는 초면 인사를 한다.

“금년 5월 제가 본국에 있을 때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제 밤 꿈에 함께 상제(上帝)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 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새로 나라를 세웠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짝을 삼게 하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 가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 잠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한지라 저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곧 이곳을 떠나 그리로 가라 하시었습니다”

그러자 수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거룩한 공주가 먼 곳에서부터 올 것을 미리 알았으므로, 왕비를 맞이하자는 신하들의 간청을 여태 따르지 않았소. 그런데 이렇게 현숙한 당신이 몸소 내게 오셨으니 못난 나에게는 다행이오.”

그리고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삼았다. 수로왕은 157년을 다스리다가 죽고 아들 거등왕(居登王)이 뒤를 이었다. (三國遺事, 을유문화사, 2002. 가락국기 참고).>


허황옥 공주는 많은 선물과 함께 페르시아 돌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조각(彫刻)을 가지고 와서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가야국을 세웠는데, <가야>라는 나라 이름은 아유타국의 드라비아 말로 “물고기”라는 뜻으로 물고기는 초대교회부터 “예수-그리스도-하나님-아들-구주”라는 헬리어 다섯 단어의 첫 글자로 조합한 “익두스(ΙΧΘΥΣ, 물고기의 뜻)” 초대교회 교인들은 문에 이 물고기를 그려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허황옥 공주는 나라이름을 가야라고 지은 것은 가야가 기독교국가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허황옥 공주가 가야국에 첫발을 디딘 곳은 주포촌(主浦村)인데 주님의 포구마을이란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가야 사람들은 회소곡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 노래가 신라까지 유행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소會蘇란 무슨 뜻인가? 한문옥편을 보면 회는 만날 회會이고, 소는 蘇=穌(물고기와 떡)깨어날 소, 또는 쉴 소라고 하고 또 예수 소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회소는 “예수님 만나리”라는 의미입니다. 중국어로 회소를 “혜수”라고 하는데  “예수”를 말합니다. 

오래전에 불렀던 합동찬송가 391장에 “한 복지 있으니”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지금 찬송가에는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은 인도 사람들이 부르는 인도 찬송입니다. 오소운 선생이 이 인도 찬송곡에 허황옥 공주가 부른 회소곡이라면 인도 찬송일 것이라 생각하고 “한 복지 있으니”곡에 새로 가사를 작성하여 회소곡이란 찬송을 발표하였습니다.


1절 다같이 회소곡 불러보세 예수를 만난이 찬송일세 / 구주를 만나서 새사람 된 기쁨을 회소곡 노래로 찬양했네 / 아유타 나라의 공주님이 그 옛날 가야를 찾아 왔네 / 상제의 명으로 짝을 찾아 왔으니 / 주 강생 48년 그 옛날에.

4절 공주는 열 명의 아들 낳아 그 중의 두 사람 허씨 됬네 /  김해의 김씨와 김해 허씨 형제간 옛 삼국유사에 나와 있네 회소곡 다같이 불러보세 우리도 예수님 만났다네 / 하나님 자녀 된 우리들도 힘차게 회소곡 부르며 예배하세. 


신라시대 추석명절 여인들이 불렀다는 회소곡이 어떤 노래인지 안수 없으나 그 곡명으로 생각하면 “예수 만나리”라는 찬송곡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즐겁게 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이 “회소곡”을 부를 때는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좀 이상한 장면 아닙니까? 한참 추석의 즐거움이 무르익어가고 있는데 슬픈 노래로 회소회소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분위기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슬퍼하였을 것이고 부활을 생각할 때 기뻐하였을 것이니 십자가지신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는 의미를 가진 가사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즉 우리나라 옛 신라 여인들이 추석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지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추석날 명절을 지키려 누구 집으로 가실 까요?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사나 죽으나 주님만 따르리라고 고백하는 성도의 집에 들어가 그 가정을 축복하고 그 후손들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의 추석은, 주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시어,  예수님 모시고 함께 ‘예수님 만나리 회소회소’ 찬송 부르며 온 가족이 즐거워하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추석명절 이 시간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명절의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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