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군대 열병식에 참석한 일에 대체로 사람들은 환영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참 요지경인 것은 우리 어렸을 적에 “무찌르자 오랑케”하며 중국은 우리나라의 통일을 훼방한 적으로 여겼습니다. 6.25때 유엔군과 우리 군대가 압록강 백두산 까지 치고 올라가 곧 통일이 될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공의 모택동이 중공군 60만 명을 보내 김일성을 도와 인해전술로 치고 내려오는 바람에 통일은 좌절되고 오늘의 휴전선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신임 이사장이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가리켜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던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습니다. 문재인 대표 측은 고 이사장을 형사 고소하기로 했습니다. 새누리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문재인 심지어 안철수 까지 종북 좌익 공산주의자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어려운 우리 동포들을 도와주자거나 평화롭게 지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빨갱이니 종북이니 공산주의자니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군대에 있으며 해방 후 남로당에 가담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여순반란사건때 가담하였었지만 누구도 박정희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김종필씨의 장인이 남로당 대구폭동사건 때 주모자중의 한 사람 이였지만 누구도 김종필씨를 빨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씨가 일제 강점기 때 친일에 앞장 섰던 사람이었고 장인은 독립군을 소탕하던 만주군관학교 출신이지만 누가 김무성씨를 친일파라 말할 것입니까? 지난날 이 나라에 덮쳐왔던 어두운 역사 속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가슴 아픈 비극 이였습니다. 종북이니 빨갱이니 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대부분 정략적인 주장이라 할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공식적으로 자기들은 공산당이 아니라 김일성주의 노동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를 말하고 있고 도처에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중국 이야말로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빨갱이나라입니다.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고 목사들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선교하는 목사님들을 목사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중국 군대 열병식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 대표들은 어느 나라도 가지를 않았는데 중국 시 주석과 함께 열병식에 참여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새누리당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하면 중국이야말로 우리나라의 통일을 방해하고 수십만 명의 우리나라 국군과 양민들을 죽인 적대 공산국가인데 그 나라에 가서 군대 열병식을 참석하였다면 박근혜대통령은 친공 역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하는 사람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경제 때문입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생각을 해야 생존하는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돈에 얽히어 공생공존관계에 있습니다. 중국에 수십만 명의 우리나라 사람이 가서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합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서울 명동을 휘젓고 다니고 제주도 수십만 평의 땅을 중국 사람들이 사들이고 있습니다. 누구도 중국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좌익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이제 중국은 비록 공산국가이지만 적이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협력국가라고 합니다. 이번 박대통령은 156명의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에 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데올로기보다 경제가 우선이요 정치보다 돈 벌어 자국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었고,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되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가 그만큼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세계 다른 나라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더 많습니다.
현재 개성공단에 123개 기업체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협력업체만도 3000개가 넘습니다. 북한노동자가 5만 4000명이나 됩니다. 개성공단에서 사업하고 북한 노동자들에게 월급 주는 회사를 빨갱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는 자기 사상과 다르다고 전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평화롭게 공존 공생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분단되어, 분단 70년이 지난 아직도 부모형제를 서로 그리워하는 천만이산가족들이 있으면서도 서로 싸우고 있는 오늘의 남북한의 모습이 세계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과의 관계도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할 때입니다.
TV에서 실황 중계하고 있는 중국군대의 열병식閱兵式을 보고 또 그 열병식에 참석하여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박근혜대통령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세계 정치 경제 외교관계를 생각하니 오늘 날 우리나라의 아픈 현실에 열병熱病이 날 것 같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 자랑하는 중국의 신무기가 고철이 되도록 이 지구상에 평화를 주시고 우리 남 북한이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지 하나님의 지혜와 깨달음을 주시어 이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가운데 하나 되게 하소서”라고 마음으로 간절히 몇 번이나 기도하였습니다.
중국 역대 왕조를 살펴보면 하 은 주 춘추전국 진秦 한 삼국 진晋 오호16국 남북조 수 당 송 원 명 청 현재 중국입니다, 그런 중국의 최초의 나라가 바로 4000년 전 아브라함시대에 있던 하(夏)나라입니다. 그리고 요셉시대에 있던 夏나라 다음 상(商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경 후에 반경盤庚이 박亳에 도읍하여 국호를 은殷으로 고침)나라입니다.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운 왕이 탕湯이라는 왕입니다. 그 탕왕이 목욕하는 그릇盤에 글귀를 새기었는데 筍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란 글귀입니다. “순일신,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면, 일일신, 나날이 새로워지고, 우일신, 또 날로 새롭게 하자”라는 말입니다. 중국고전 대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大學明德)
“사람이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악(惡)을 제거하는 것은 마치 그 몸을 목욕(沐浴)하여 때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글귀를 그릇에 새기고 목욕할 때 마다 그 글귀를 읽으며, 진실로 지난날에 물든 더러움을 씻어서 스스로 새로워짐이 있으면, 마땅히 이미 새로워진 것을 인하여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여, 조금이라도 새로워지는 일이 끊어짐(間斷)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盤沐浴之盤也 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 苟誠也 湯以人之洗濯其心以去惡 如沐浴其身以去垢 故 銘其盤 言誠能一日 有以滌其舊染之汚而自新 則當因其已新者 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不可略有間斷也)”
고린도 후서 4:16에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알라 호 에소 헤몬 아나카이눈타이 헤메라 카이 헤메라)
중국의 대학에서 말하는 순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란 말과 성경의 말씀이 비슷합니다. 매일 매일 세수하듯이 마음을 항상 깨끗하게 하므로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선생님은 마치 새 옷을 입듯이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엡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던 모습을 말합니다. 골 3:5절에서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을 우상 숭배니라”고 밀씀 하였습니다. 이런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9.10)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은 항상 그 마음에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기서 ‘새로워지도다’란 원어로 “아나카이노스”란 말로 이는 그냥 새롭다는 말 보다는 혁신innovation을 의미합니다. 우리 기독교를 영어로 프로테스탄트라고 말하는 데 역시 혁신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일일신 그냥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지식에까지 날마다 혁신하는 종교입니다. 여기서 지식(에피그노시스)이란 깊은 깨달음을 말합니다.(cf.골2:2) 깊이 있는 생각을 말합니다. 생각이란 “날 생生, 깨달을 각覺”입니다. 생각은 항상 살아있는 깨달음을 말합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교해서 자신을 지킬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사자의 어금니도 없고 독수리의 눈도 없고 냄새 맡는 능력은 강아지만도 못하고 듣는 귀는 고양이만도 못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관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다른 동물에게 없는 능력을 사람에게 주셨는데 바로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사람은 이 생각으로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닌까 사람은 이 생각하는 능력을 매일 같이 갈고 닦아야 합니다. 생각을 갈고 닦지 않으면 고루固陋해 집니다. 생각에 곰팡이가 피는 것을 보고 곰팡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간단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썩지 않기 위해 생각을 자꾸 움직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가지는 그들의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움직이면 새로운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샘솟듯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을 잘못된 생각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마음속에 불순하고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생각들은 자신의 인생을 쓰레기더미로 만듭니다. 부정한 생각은 부정한 상황을 만듭니다. 천박한 생각은 음주벽과 방탕과 타락으로 그리고 빈곤과 무서운 병마에 신음하게 합니다. 천박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행복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경우를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새누리당 경북 구미시의 심학봉 국회의원이 지난 7월 24일 보험설계사인 A씨(48)를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로 불러 강제로 옷을 벗기고 성폭행한 후 30만원을 가방에 넣어 주었다는 혐의을 받고 있습니다. 국회윤리위원회의 조사를 거처 국회의원제명 투표를 하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학봉의원은 새누리당 경북도당 윤리위원장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의 퇴폐적인 생각이 문제 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도와 방법을 바꾸면 나라가 혁신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들의 생각이 혁신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이 혁신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죗 된 사람이 스스로 혁신될 수 없는 것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물에 빠진 사람을 살려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 스스로 그 생각이 혁신 될 수 없습니다. 혁신은 하나님이 옷 입혀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령께서 옷 입혀 주시는 역사입니다. 은혜는 위로부터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혁신적 생각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유수한 경제인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혁신적 생각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혁신적 생각을 주심으로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복음교회라는 아주 작은 교단 목사로서 한국기독교 교회 협의회 회장을 두 번이나 하였습니다. 나운복음교회라는 군산의 작은 교회목사로 기독교 방송국 이사를 8년이나 하였습니다. 군산 기독교 연합회회장을 하였습니다. 이는 제가 잘나서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혁신적 생각을 제가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혁신적 생각은 한번 받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에 주시는 축복입니다. 지금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받아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일마다 주시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인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 1940-) 이 쓴, 미국의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최고의 베스트 셀러 책으로 ‘선물’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떤 노인과 소년의 대화로 시작됩니다. 노인은 어린 소년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갖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무엇인지 소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년은 그 선물을 발견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소년도 성장해 가면서 그 선물에 대한 관심도 잊었습니다. 그는 어느 사이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고 직장인이 되어 살면서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진급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쌓여 가는 어느 날 이 청년은 과거 소년 시절 노인이 들려 준 선물 이야기를 생각해 냅니다. 다시 그가 노인을 찾자 대뜸 노인은 아직도 선물을 찾지 못했느냐고 하면서 청년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하게 느낀 인생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라고, 그리고 그런 장면들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이 청년이 살아온 인생의 장면들을 떠 올리다가 갑자기 그는 이 선물의 정체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라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영어 단어로는 "선물"을 "present"인데 또 다른 의미가 무엇입니까? “현재”입니다.
흔히 기독교는 영원한 세상을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원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우리가 들어갈 천국이지만, 이 순간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영원한 나라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순간 현재는 언제나 현재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영원한 지금’(The Eternal Now)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나의 생각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어야 합니다. 그 생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하나님을 찬양 하고 그 생각으로 나의 인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혁신적 생각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혁신적 생각을 받는 순간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바로 혁신적 생각을 받는 시간입니다 찬송하는 순강이 지금 주시는 혁신적 생각을 받는 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 말씀 듣는 시간이 혁신적 생각을 은혜로 받게 되는 때입니다. 말씀 듣는 순간에, 그렇구나, 번쩍, 하나님의 혁신 생각을 받게 되기도 하고, 성경을 보는 순간 혁신적 순간이 내 심령가운데 꽂히는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를 놓쳐 버린 체 예배드리고 찬송 부르고 말씀시간에는 저 멀리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고후6:1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메...덱사스사이)”에서 받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손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면 받게 되는 혁신적 생각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생각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는 ‘결합’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결합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물건을 붙여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몇몇 창의성 교재에서도 이를 활용한 간단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결합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잘 알려져 있고,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결합’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물건을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한 아이는 샤프와 풀을 연합하였습니다.‘돌려서 쓰는 샤프를 이용하여 누르면 샤프심이 나오고 돌리면 풀이 나오는 물건’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한 아이는 자와 칼을 결합했다. 보통 커트 칼의 칼등에 눈금이 표시되어 있어, 자로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한 아이는 고무풍선에 새집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보통 나무 위에 새집을 달아놓기 마련인데, 띄운 풍선에 새집이 달려있게 하였습니다. 물론, 풍선이 날아가지 않도록 특수재질의 실을 사용하였습니다. 결합은 이처럼 두 개 이상의 물건을 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인데, 이때 새로운 물건은 단순히 두 개를 그냥 합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무언가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연필과 지우개를 결합한 지우개 달린 연필은 연필과 지우개의 기능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TV홈쇼핑은 TV와 백화점이 결합된 것이지만, TV도 아니고 백화점도 아닌 TV홈쇼핑이라는 매우 새로운 것이 탄생했습니다. 핵융합(核融合, nuclear fusion)이 있습니다. 두 개의 원자핵이 같이 모여서 하나의 무거운 원자핵을 형성하는 현상입니다. 이때, 관여하는 원자핵의 질량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기도 흡수되기도 합니다. 원자폭탄 수소폭탄의 원리입니다. 별과 별이 융합하여 새로운 별이 만들어 집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은하가 초속 100km속도로 안드로 메다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두 은하가 융합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수백억년 후일 것입니다. 이렇게 결합이 융합이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역사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생각과 나와 결합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굉장한 일입니다. 우주적 사건입니다. 혁신적 사고가 일어납니다. 기독교이 된다는 것은 이 엄청난 혁신적 생각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골 3:1-2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땅에 것을 생각하면 땅에 것과 결합되어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 삶이 결코 평안치 못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한 아이가 9살이 넘었는데 잠을 잘 못 자고,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잠시도 화장실에 혼자서 못 간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못 탄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공포 영화를 좋아해서 사다 놓은 비디오를 자주 본 것입니다. 그 아들도 자주 그 영화를 본 것입니다. 어린 마음에 공포스러운 것을 즐기면서도 상상 속에서 두려워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못합니다. 나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 의심하는 생각들은 차단해야 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면 자연히 그것이 사람을 다스립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혁신적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창조적이고 날마다 혁신적인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롬 8: 6절에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번 박근혜대통령 중국방문에서 저를 놀라게 한 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 시징핑주석이 환영 만찬을 열어 극진하게 박대통령을 대접하였는데 이때 장내에 울려 퍼진 노래가 2005년도 우리나라 혼성그룹 거북이(이지희 손연옥 고 임성훈. 현재 쉬고 있음)의 ‘빙고’라는 노래입니다. 가사 앞부분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Ladies and gentleman) (아싸 또 왔다 나)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터질 것만 같은 / 행복한 기분으로 / 틀에 박힌 관념 / 다 버리고 이제 또
맨주먹 정신 / 다시 또 시작하면 / 나 이루리라 / 다 나 바라는대로
지금 내가 있는 / 이 땅이 너무 좋아 / 이민 따위 생각 / 한적도 없었고요
금같은 시간 / 아끼고 또 아끼며 / 나 비상하리라 / 나 바라는대로
산속에도 저 바다속에도 / 이렇게 행복할순 / 없을거야 랄랄랄라
구름타고 세상을 날아도 / 지금처럼 좋을수는 / 없을거야 울랄랄라
모든게 마음먹기 달렸어 / 어떤게 행복한 삶인가요 / 사는게 힘이든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 재미없어 빙고
거룩한 인생 / 고귀한 삶을 살며 / 부끄럼 없는 /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 그 마지막 순간에 / 나 웃어보리라 / 나 바라는대로........
또 놀라운 것은 지금 북한 중고등학생들이 남한 노래들을 즐겨 부르는데 가장 인기곡이 바로 이 “빙고”라고 합니다.(9월 3일 데일리 NK보도)
이 빙고의 중요한 핵심이 “틀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라는 가사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새로운 생각을 하면서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부끄럼 없이 웃으면서 살자고 노래 합니다. 제가 놀란 것은 이노래 보다 북한 시진핑 주석이 박대통령 환영 만찬석상에서 빙고라는 어쩌면 좀 경박스럽게 들리기도한 이 노래를 들려 주었다는 그 새로운 생각. 지금 중국은 이 새로운 생각들을 열심히 함으로 나라를 세계 최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그런 시진핑의 생각을 보는 것 같아 놀라워 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학교에서 계속 틀어준 군가가 “군함행진곡(軍艦마치(march)입니다. 혹 기억하십니까?
守るも攻むるもくろがね(鐵)の, (수비도 공격도 무쇠로 만든)
浮べるそのふね(艦)たのみなる, (떠 있는 그 배는 든든하구나.)
浮べるそのふね(艦) 日の本の (떠 있는 그 배는 일본 나라 것)
御國の四方を守るべし. (우리나라 동서 사방 지킬지어다.)
まがね(鋼鐵)のそのふね 日の本の (강철로 된 그 배는 일본나라 것)
仇なす國を攻めよかし. (원수들의 나라를 쳐부수어라.)
그런데 우리나라 어느 교회에서 가사를 다음과 같이 바꿔 불렀습니다. (1930년 중반 경기도 아리실교회)
1. 피도 조선, 뼈도 조선, 이 뼈 이 피는
살아 조선, 죽어 조선, 조선 것이라.
한 사람이 불러도 조선 노래요,
만 곳에서 나와도 조선 노랠세.
에헤야 데헤야! 조선 민족아!
만세, 만만세! 조선 만만세.
2. 피도 조선, 뼈도 조선, 이 뼈 이 피는
살아 주님, 죽어 주님, 주님 것이라.
한 사람이 불러도 찬양 노래요,
만 곳에서 나와도 찬양 노랠세.
에헤야 데헤야! 구주 나셨다.
할렐루야! 주님께 찬양 드리자.
비록 일본이 우리나라 땅은 식민지로 삼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빼앗지 못하였습니다. 일본은 신나게 군가로 불렀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애국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로 바꿔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 군가에 새로운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혁신의 생각으로 독립정신을 지켜 왔던 것입니다.
지금은 혁신의 생각이 필요한 새로운 시대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 땅의 것만 생각하고 아! 옛날이여하며 지난 세월의 생각에 묻혀 살 것입니까?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중에 515장 찬송입니다. 저는 3절에 특히 은혜를 받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살아계신 주 하나님 / 약한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셨다 / 생명수는 홀로 예수 / 처음이요 나중이라 / 주님 너를 부르신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라온 코이노니아 믿음의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눈을 들어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3: 1에서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 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12절 13절에 말씀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컿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주체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혁신적인 생각을 하시며 창조적인 행동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 때 하나님으로부터 혁신적인 생각을 present 현재 present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따뜻해 오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람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용기 있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결단력 있고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활력이 넘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쾌적하고 평화로운 온화하고 너그럽게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프랑스 소설가 폴 브루제(Poul Bourget)가 “생각 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란 말을 하였습니다.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순일순 일일신 우일신, 진실로 날마다 하나님의 혁신적인 생각대로 살며, 매일매일 혁신의 생각을 은혜로 받아 살며, 또 그렇게 오늘도 혁신적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므로 오늘은 참으로 나에게 좋은날 베리 나이스 굳데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날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혁신적인 생각을 선물로 주시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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