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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2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겔 9:1-11 라온 코이노니아의 라벨 - 타우 τ

 

 

오늘아침 라온 코이노니아 라벨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하니 프랑스 작곡가 라벨(Maurice Ravel1875.3.7.-1937.12.28.)이 생각이 납니다.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현대 작곡가 이거든요. 라벨이 작곡한 유명한 곡 중에 볼레로라는 무용곡이 있습니다. 조금은 지루하나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음악에 빠져 들고 입으로 흥얼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좋아하는 라벨의 곡이 있는데 어린이와 마술이라는 곡입니다. 라벨은 고양이와 새를 좋아하고 장난감을 모으고 일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어린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작곡가로 어린이와 마술이란 음악을 듣노라면 마치 디즈니랜드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라벨이란 작곡가를 소개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라벨이 무엇인지 아시죠. 상표나 상품명 따위를 인쇄하여 상품에 붙여 놓은 종이나 헝겊 조각을 말합니다. 그 라벨에 어떤 상품명이 찍혀 있는지가 그 상품의 가치와 가격을 결정한다고 하겠습니다. 짝퉁상품들이 가짜 라벨을 붙여 비싼 가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모가 만든 초에 예히 오르라는 라벨이 붙어 있습니다. “예히 오르라는 말은 창세기 1:3빛이 있으라는 히브리어 말입니다.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식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것에는 십자가 라벨이 붙어 있거나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 제목을 라온 코이노니아 라벨 타우 τ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인지를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 수학자들이 오늘 628일을 타우 τ의 날이라고 정하였습니다. 혹시 수학을 잘하는 김용섭집사는 수학에서 타우가 무슨 표식인지 아시겠습니까? 원의 둘레를 알려면 지름X파이π(3,14)입니다. 원 넓이를 알려면 반지름2승에 π를 곱합니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π를 두 배한 것을 타우 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파이보다 타우를 사용하자고 말합니다. 그 기념을 타우의 값이 파이 3.14의 두 배인 6.28임으로 628일을 타우의 날로 전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이 타우의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타우의 날은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애급나라에 마지막 죽음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재앙의 그림자가 건너 애급사람들의 집만을 찾아가 그들의 모든 장자들을 죽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의 재앙을 자신의 집을 넘어갔다 하여 그날을 유월절逾越節이라 부르고 대대로 이날을 기념하였습니다. 어떻게 죽음의 재앙이 이스라엘 집을 알아서 넘어갔을까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 양의 피를 바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죽음의 재앙이 그 양의 피를 바른 사람들의 집을 자나 바르지 않은 집을 찾아 갔다는 것입니다.

 

12: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12:13 내가 애급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 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 리라

12: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양을 잡아 그 집의 문기둥 양 쪽과 창문 가로대에 발랐습니다. (‘인방引枋이란 함마쉐코프로 창문 위아래에 댄 가로대를 말한다). 이것이 표(sign, 히브리어로 오드)가 되어 재앙의 그림자가 넘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술초를 묶어 문기둥과 가로대에 발랐습니다, 성경에 뿌리고라 하였는데 뿌린 것이 아니고 발랐습니다. 그러나 페인트 칠 하듯이 칠한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표식을 한 것입니다. 그 표식이 바로 십자가 표식입니다. 이 십자가의 표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명과 구원의 표식입니다.

 

7:3, 4,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들만이 144,000명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신천지에서도 자기들만이 144,000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문자적인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계속 다음을 읽으면 이스라엘 족속의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모은 숫자입니다. 이 중에 이방인은 끼어 있지 않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들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교회에 말씀하셨는데 그 일곱이란 숫자는 세상 전체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144,000이란 숫자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 전체를 상징합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선지자 7,000명 을 남겨 두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숫자적 의미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이 수없이 많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3장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16절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13:16-18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역하고 우상을 따르는 자들은 짐승 마귀의 표 666이 그 이마에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이마에 십자가 표가 새겨집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안으로 보면 666이 새겨져 있느냐 아니면 십자가 표가 있느냐가 보입니다. 천사도 보고 사탄도 봅니다. 사탄은 저 사람은 내 새끼다 하고 천사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사탄은 자기 새끼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기 새끼 삼으려고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믿음에 틈이 생기고 죄의 금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사정없이 달려듭니다. 그 믿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기 표식을 해 놓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5:8.9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 이마에 새겨진 십자가 표를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한다면 점점 그 이마의 십자가 표식은 희미하게 변해질 것이고 급기야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에 코가 꾀어 죄악 세상에서 마귀의 종으로 살다가 심판받아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이마에 인 쳐진 십자가 표가 어떻습니까? 확연하게 싱싱합니까 아니면 점점 희미해 져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스스로 잘 믿는다고 하지만 그의 영의 십자가 표는 벌써 지워져 있고 그래서 교회에서 마귀 짓하고 있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빌 4:8,9에서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 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 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오늘 아침 봉독한 에스겔 본문말씀을 보겠습니다. 6절에,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 할지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본문 말씀을 설명하면, 하나님이 여섯 천사를 불렀습니다. 2절에 여섯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여섯 천사를 말합니다. 여섯 천사에게 살육하는 기계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기계라기보다는 그냥 기구(케리)라 하겠습니다.기구 이름이 케리입니다. ‘살육한다맢파초란 말로 산산히 부수는이란 말입니다. 예레미야 5120절에서는 철퇴라고 번역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냥 케리라고 하겠습니다. 다섯 천사가 케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눈처럼 하얀 가는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의 허리에 서기관들이 가지고 다니는 먹 그릇을 찼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을 사용하지 않으니 글씨 쓰는 검정 색 물감단지라고 할 것입니다.

(시대마다 다르지만, 그들이 썼던 잉크의 주성분은 카본(탄소)이었습니다. 동물의 뼈나 뿔 등을 태워 그슬리거나 송진이 많은 소나무 등을 태운 것을 슬래브라는 벼루에 모아 아교나 기름을 섞고 멀러(Muller)로 문질러 잉크를 만들어 썼습니다.)

 

하나님이 검정색 물감단지를 가진 천사에게 말씀하시기를, 4절에,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섯 천사들에게 명령하시기를, 5절에서,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부녀자를 다 죽이되 .....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입니까? 하나님의 심판 앞에는 긍휼이 없습니다.

 

에스겔이 이 모습을 환상가운데 보았습니다. 그는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8절에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910절 말씀에,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죄악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용서가 없었습니다.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쓸어버리십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바빌론 나라에게 완전히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마에 천사가 표를 해 둔 사람들만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다시 일으킬 그루터기 남은 자들로 하나님은 남겨 두셨습니다.

 

이 에스겔의 말씀에서 우리가 기억할 말씀은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 할지니라여기 이마에 표 있는 사람은 무슨 표를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십자가 표라고요?” 이때는 예수님 오시기전 600년 전인데 십자가란 없었습니다. 그럼 무슨 표겠습니까? 바로 표라는 말에 단서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라는 히브리어가 타우ת라는 말입니다. 타우는 히브리어 알파벧의 맨 마지막 글자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Z에 해당하고 한글로 말하면 에 해당합니다. 그러닌까 천사가 하나님의 잘 믿었던 사람들의 이마에 에 ת글자를 표시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 타우 글자가 본래 옛날 모세 시대에는 +였다가 다윗 시대에 x 였고, 에스겔 시대에는 T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지금의 ת로 쓰게 되었습니다. 헬라어에도 타우τ 글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앞서 출 애급 당시 대문 기둥과 가림대에 쓴 표는 바로 +표로 타우 였으며 에스겔의 환상 중에 이마에 쓴 표는 T형 타우로 역시 십자가 표입니다. 그러닌까 예수님 오시기 전 600년 전에 하나님은 천사로 하여금 믿음이 신실한자의 이마에 타우 십자가 표를 그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피로 자신의 대문에 타우 십자가 표식을 그린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타우 십자가 표를 인친다 하였으니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죄 씻음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마에는 영적으로 타우 십자가 표가 해같이 빛나도록 반짝거린다고 하겠습니다. 타우 십자가 표를 한사람은 성경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것 이란 표지요 구원의 표로 인정되어 왔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에스겔의 말씀을 따라, 히브리어 대신 헬라어 타우τ를 십자가 표로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이제 여기 타우 십자가를 보여 드립니다. (이태리 설치조각가인 발레스트라 작품) 이 십자가는 성 프란치스코의 십자가라고 합니다. 몇 년 전 로마 여행 중 아씨시라는 도시에 갔었습니다. 이곳은 900년 전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도시로 수 십 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와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성 프란치스코 덕분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십자가는 이곳에서 샀습니다. 이 십자가를 타우십자가라 부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타우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고 옷에 그려 넣고 교회에 그려 붙였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보듯이 이 타우 십자가는 하나님이 심판을 면하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마에 인친 표입니다. 여기 타우 십자가 카드를 여러분에게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이 타우 십자가는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레벨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여기 타우십자가 안에 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성화 타우십자가 그림에 대해 잠간 소개 하겠습니다.

 

그리스정교회에서 예수님의 모습이나 행적에 대하여 성화로 많은 그림을 남겼는데 그런 유의 그림을 이콘(En-icon)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이콘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생각들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눠드린 타우 십자가 이콘은 우수리스코 라는 분의 작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타우 십자가에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본래 이 이콘은 세로 110cm 규격으로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그리스도 탄생 예고 - 그리스도의 성탄그리스도의 세례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고 가로는 100cm 규격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 - 그리스도의 승천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리스도 탄생 예고에 있어 사부님과 성녀 글라라가 참여하고 있다는사실입니다.) 이콘의 화풍은  러시아 화풍으로서 성화의 이콘이 완성되기 까지 화가는 지속적으로 기도와 묵상의 깊은 신심으로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특히 작품에 작가는 서명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었던 것입니다.

이 타우 십자가를 여러분의 성경책 갈피에 넣어 늘 보시고 만지시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심판을 행 할 때에 순서를 정하였습니다. 먼저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심판의 순서가 늙은자 젊은자 처녀 어린이 여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마에 타우십자가 표가 있는 사람은 심판에서 제하게 됩니다. 그러면 심판을 면하는 순서도 늙은 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심판을 면제 받을 시림으로 천사는 누구의 이마에 타우십자가 표를 합니까? 4절에,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돌아가는 가증한 일들을 봅니다. 요즈음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온갖 가증한 죄악의 모습들을 봅니다. 학교에서 학생이 담배피우지 말라고 하였다고 담임여선생을 폭행하였습니다. 아들이 남편이 아내가 보험료 타먹으려고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죄악들을 봅니다. Is라는 이스람 테러 집단이 세계를 향하여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며 엄청난 살생을 하고 있는데도 세계는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동성연애가 미국대법원에서 합법화되었다는 파렴치한 판결을 봅니다. 지금 세계에 일년동안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30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가증하고 포악한 죄악의 역사가 마치 화산이 터지듯 쓰나미가 몰려오듯 하고 있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세상을 보면서도 교회들은 아무런 부르짖음도 탄식도 눈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남의 이야기요 먼 나라 사정이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의 죄의 역사는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이마의 십자가 표는 다 지워 버리고 예수님이 탄식하신 것처럼 도적의 굴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길거리에 나가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마에 666이 새겨져 있음을 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웃고 즐길 때가 아니라 탄식하고 울 때입니다. 흰옷 입은 천사가가 이런 가증한 일을 보고 탄식하고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망 타우 십자가 표식을 하고 심판을 면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6.25 한국전쟁 65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이 땅에 6.25같은 전쟁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저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탄식하고 울어야 합니다. 북한의 무자비한 독재 통치행위를 봅니다. 여기에 어찌 하나님의 케리심판 철퇴 심판이 없을 것입니까? 과연 그 정권의 말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 심판은 항상 정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그 하나님의 심판당할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탄식하고 울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시며 탄식하시기를 마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 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이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결국 30여년 후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지금 성지 순례로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시던 그 자리에 눈물의 교회 세워져 있습니다.

지금 저 북한에 억류된 우리나라 목사들이 있습니다. 김국기 목사 임현수목사 전용수목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북한 정권을 전복하려 하였다는 죄목으로 노동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저 북한 정권이 어서 속히 회개하기를 그리고 심판의 철퇴가 가하기 전에 북한 동포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해야 합니다. 우리가 6.25 전쟁 65주년 아직도 전쟁의 아픔이 민족의 가슴에 피맺혀 있는 오늘 우리는 북한 도포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타우 십자가는 세계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우리 가정과 이웃을 위해 탄식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의 영적 이마에 성령께서 새겨 주시는 십자가입니다. 여러분들의 영적 이마에 이 십자가 표가 확연하게 새겨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타우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의 보증이요 은혜와 축복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타우 십자가 표가 지워지거나 희미하게 변색되지 않도록 믿음을 항상 갈고 닦아야 합니다.

 

이웃집에 맘씨가 고약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고약한 사람은 이웃집이 교회 다니는 것을 매우 못 마땅히 여겨 어떻게 하면 그 집을 망하게 할까 무당에게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무당이 하는 말이 그 집의 문패를 오며 가며 문질러 이름을 지워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약한 사람이 이웃집의 문패를 오며 가며 지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망하기는커녕 점점 더 잘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매일 오며 가며 문패의 이름을 지우는데 참 이상하지 왜 문패의 이름이 점점 빛을 내는 걸까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궁금해서 주인을 불러 따졌습니다. ‘내가 당신의 문패를 오고가며 닦는데 오히려 빛을 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요.’ 이웃집 사람이 아 당신 이군요 어째서 우리 집 문패가 녹슬지 않고 항상 깨끗하게 빛나고 있으니, 이는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 집을 축복해 주시는 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지요. 이제 보니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주셔서 문패를 닦아주도록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이 문패는 청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더욱 빛이 난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의 이마에 새겨진 타우 십자가를 지우려한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건하고 우리의 영성은 더욱 빛을 발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욱 넘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온 코이노니아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 하시며 우리의 영적 이마에 새겨 주신 타우 십자가는 나와 여러분의 영적 레벨입니다. 이 레벨 타우 십자가가 마귀에게 지워지거나 희미해지지 않도록 항상 믿음으로 경성하고 깨어 기도하며 이웃을 향한 탄식과 눈물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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