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레이번 전킨
24.12.17 (화) 15:16
상해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의 독립자금 루트
1919년 4월23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초대대통령(1919.04.10.-1925.03.23.)으로 선출하고 9월 11일 대한민국임시헌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전하였다. 당시 임시정부의 현안 문제로 서부계열과 기호 계열건의 화합문제와 무장투쟁과 외교우선원칙간의 논쟁 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정확보가 시급하였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재정확보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데 국내의 지원에 크게 의지하였다. 이승만에게 조달하하게된 자금 통로는 대체로 네가지 경로를 통하여 있었다.
첫째는 이상재, 윤치영, 여운형등 국내 인사들로부터 독립자금을 모금하였는데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감리교 선교사와 겐소(John F. Genso 1884-1950)북 장로교 선교사를 연락창구로 자금이 전달되었다.
두 번째는 남장로교 선교사 전킨(William McCleary, Junkin 1965-1908)의 부인으로 메리 전킨(Mary Leyburn, Junkin 1865-1952)에게 정식으로 신임장을 주어 국내로 파견하였다. 겉으로는 심방이나 친선방문이란 명분이었지만 국내 인사들에게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일이었다. 이는 전킨선교사 생전에 이미 이승만과 긴밀한 교제가 있어왔고, 전킨선교사 사후 미국에 가있는 메리 전킨과 계속 관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42년 8월 전킨선교사의 아들 애드워드(Edward Junkin)목사의 소개로 대학교수인 올리버(Robert T. Oliver)박사를 이승만 공보. 선전고문이 되어 이후 이승만의 영문 영설원고를 작성하였으며 그 관계는 하와이 망명 때까지 이었다.
세 번째 도립자금 조달은 길씨(미상)를 통해 1921년 7월 5일 이상재가 은화 4천원을 임시정부에 보내었고,
네 번째로 1923년 하와이 기독학원 모국방문단이 모금해간 해외동포위문금이었다.
참고도서>
정병주 우남이승만 연구 역사비평사2024.01.20. p. 295-297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편, 기독교대백과사전 13권 기도교문사, 1994
이승만-이상재 1921년 7월29일 우남이승만문서 16권 P. 180-185
Robert T. Oliver,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Greenwood Press, Publisher, 1954, P.183. ed. 이승만(신황에가린 인물) 황정일역 건국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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