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백선생의 정체
수만이네 여인숙에 장기투숙 하는 이 선생은 오전 중에는 학교를 알아본다고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 먹기 전 한 시간 아이들에게 산수를 가르쳤다.
그는 집을 나갈 때면 꼭 방문을 잠갔다. 잠시 변소에 갈 때도 문을 잠그고 다녀왔다. 마당에서 세수 할 때도 방문을 잠갔다. 하도 도둑들이 많을 때라 그러려니 하고 수만이 어머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교에서 오전만 공부하고 돌아 온 아이들은 목척교 밑으로 물놀이 가거나, 대전 인근에 있는 냇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으며 신나게 놀았다. 그러나 어김없이 오후 5시가 되면 산수 과외공부 하러 여인숙으로 돌아 왔다. 그날따라 수만이 지웅이 영희 두호는 정해진 시간 보다 조금은 일찍 왔다.
"선생님이 다섯 시에 오라고 하셨는데 아직 멀었잖아"
"뭐 금방인데 뭐,"
두호가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문은 여전히 굳게 잠겨 있었다.
"선생님이 아직 안 오셨나봐."
아이들이 여인숙 마루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며 홀짝 놀이를 하였다. 다섯 시가 벌써 지났는데도 이 선생은 오지 않았다.
잠시 후에 여러 명의 군인과 경찰들이 여인숙에 들이닥쳐 방문마다 열어보았다. 가끔 경찰들이 여인숙에 와서 점검을 하였지만 이렇게 여러 명군인들이 오지는 않았다. 투숙객들이 놀라 뛰쳐나왔다.
선생님의 방문을 열어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아주머니 이 방문을 열어 보세요”
“얘들아, 이 방에 있던 사람 어디 갔는지 모르냐?”
“이성백 선생님이요? 모르겠는데”
“이성백 이라고? 여기 뒤져봅시다.”
방안 이곳저곳을 들쳐보다가 이블 아래에 있는 작은 나무 박스를 발견하였다.
“여기 있습니다.”
나무박스를 열어보니 그 속에 무전기가 나왔다.
수만이 엄마가 묻는다.
“어떻게 된 거 예요. 이선생님이 무슨 잘 못을 저지른 거예요”
“이선생이란 자는 간첩입니다.”
“예?”
아이들과 수만이 어머니는 놀랐다,
“아주머니도 함께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아니, 전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닌까 가서 어떻게 이 여인숙에 그자가 있었는가를 말해 줘야 하잖아요?”
이성백선생이 고정 간첩이란다. 우리나라 후방의 군대 동향을 탐지하여 인민군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밤마다 무선신호가 보내지는 것을 유엔군 방첩대 첩보망에 잡혀서 그동안 무선신호 발신지 범위를 좁혀가며 비밀히 조사하는 가운데 수만이 여인숙에서 전파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어찌 알았는지 사전에 미리 알아 챈 이성백선생은 급하게 도주한 것이다.
두호는 너무 좋아하던 선생님이 간첩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선생님이 인민군 간첩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학교에서 방첩에 대해 배웠다. 간첩은 늑대 같이 생겼다.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얼굴로 밤마다 슬며시 돌아다니는 흉악한 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생긴 간첩도 있단 말인가. 무엇인가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마도 진짜 간첩에게 협박을 받았는지도 모른다고 두호는 생각하였다.
지난번 진호 형 친구가 간첩의 협박을 받아 간첩의 심부름하다가 경찰에 잡혔던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맞아, 그랬을 거야 진짜 간첩에게 협박을 당 한 거야. 아마도 딸을 볼모로 잡고 자기 말 안 들으면 죽인다고 했을 거야.
두호는 그렇게 확신하였다.
두호가 친구들하고 밤늦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가 부른다.
“두호야-”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호가 두리번거려 보지만 캄캄하여 아무
도 보이지 않았다.
“두호야, 나 여기 있어”
두호가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전봇대 뒤에 어떤 사람이 부른다. 곧 이성백선생인 줄 알아보았다.
“선생님, 여기 위험한데 어찌 오셨어요?”
“응 너에게 부탁이 있어서”
“선생님, 선생님은 간첩이 아니죠? 진짜 간첩이 협박을 하였죠? 그렇죠?”
“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난 협박을 받았던 거야. 그래 난 도망을 가야하는데 네가 도와주지 않겠니?”
“어떻게요”
“응 그게 말이지. 네 아버지 통행증을 가져다주지 않을래? 그리고 성경책하고 말야. 부탁이다”
두호는 망설이게 되었다. 아버지 통행을 훔쳐오라는 것이다.
“너 지난번에 나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하지 않았니? 지금이 그때라 생각하는데....”
망설이고 있는 두호의 손을 붙들고 이성백은 은혜를 들먹이며 말하였다.
“예 알겠어요. 잠시 기다려 보세요. 아버지께서 주무시면 가져오겠어요.”
두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 날 정목사는 교인 집을 방문해 먹은 점심음식에 배탈이 났다. 변소를 계속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두호는 안방의 기색을 살폈다. 아직 주무시지는 않는 것 같다. 제니스 라디오에서 아홉시 뉴스가 들려오고 있었다.
두호는 아버지의 서재로 살며시 들어갔다. 아버지는 언제나 양복 웃옷을 서재에 벗어 놓았다.
두호는 아버지 웃옷을 뒤져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었다. 그리고 아버지 통행증을 꺼내고, 또 다른 호주머니에서 얼마간의 돈도 꺼내었다. 성경책하고 아버지 마카오 모자도 가지고 살그머니 집밖으로 빠져 나왔다.
“선생님, 여기 가져 왔어요. 여기 돈도 조금 있어요.”
“고맙다, 고맙다, 이제 만일 내가 살아 있으면 언젠가 네 은혜를 꼭 갚겠다.”
이성백은 정목사의 모자를 쓰고 성경책을 들고 슬그머니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정목사는 3일이 지나서야 배탈이 나았다. 그리고 모자와 성경책, 통행증과 얼마간의 돈도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여보, 도둑이 들어왔나 봅니다.”
“도둑이라니요, 뭐 가져간 것 없나요?”
“그런데, 그 도둑이 내 모자와 통행증과 성경책 그리고 얼마간의 돈을 가져갔어요. 아무래도 보통 도둑은 아닌 것 같은데”
정목사는 진호와 두호를 불러 혹 여기에 아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두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수상하였다.
“두호야, 너 서재로 오라”
서재로 두호를 부른 아버지가 물었다.
“너 바른대로 대답해라. 너 아는 것 없냐? 내가 야단치려고 하는 것 아니야. 내가 알아야 사태를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호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실을 말하였다.
“저는 요....이선생님, 진짜 간첩 아니에요. 협박당한 것 분명해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그러나 선생님이 잡혀 총살당하는 것 싫어요, 어엉엉”
엉엉 우는 두호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그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선생님이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네가 이 선생님에게 아버지 것을 가져다주었니?”
“예, 전에 제가 제 생명의 은인이라 은혜 갚는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래서..흑흑흑. 이선생님 잡히면 죽이나요?”
“그래서 은혜 갚으려고 아버지 통행증하고... 그래 다른 것은 별로 중하지 않아 아버지 통행증을 가지고 갔다는 것이 중요하지...음 알았다. 너는 네 할 일을 하였구나. 이제 울지 마. 이선생님 죽고 사는 것일랑 하나님 손에 맡기자. 나가봐라.”
정목사는 곧 경찰서에 가서 간첩이 당신의 서재에 들어와 통행증을 훔쳐 갔다고 신고를 하였다.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날 아침
며칠 전 철원전투에서 일진일퇴 공방 끝에 마침내 아군이 승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휴전회담이 곧 성사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반공포로까지 석방하면서 휴전회담을 반대하던 이승만대통령이 미국의 강력한 원조를 보장받아 반대를 철회하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제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소문으로 사람들은 전쟁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7월 26일 어린이여름성경학교 마지막 날, 주일아침 어린이 예배가 끝나자 두호와 어린 친구들은 식장산 아래에서 참외농사를 짓고 있는 지웅이의 고모 댁으로 놀러들 갔다. 두호, 지웅, 수만, 영희, 상수, 세영, 길동이 일곱 명 어린 친구들이다.
원두막 아래 참외밭에는 노란 참외들이 달려 있었다. 지웅이 고모는 아이들에게 잘 익은 참외를 잘라 먹게 하였다. 참으로 꿀맛 같은 참외 맛이다.
“야, 세상에서 제일 맛난 과일이다.”
“그래, 아마도 참외보다 마있는 과일은 없을 거야”
두호의 말에 지웅이가 거둔다.
“그런데 너희들 틀렸어. 울 엄마가 말하는데 참외는 과일이 아니고 채소래?”
“뭐, 참외가 채소라고? 참외는 열매야. 봐라, 저기 참외밭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잖아?”
세영이 말에 두호가 열매라고 우긴다. 아이들은 제각기 열매다 채소다 하고 언쟁을 하였다.
그러나 곧 세영이의 손이 올라갔다. 지웅이 고모가 참외는 채소에 속한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두호는 괜히 볼 맨 소리로,
“치, 그러면 고모님, 땅콩도 채손가?”
“그럼 땅콩도 채소에 속한단다.”
고모는 감자밥에 호박잎, 오이지 그리고 마을 앞 방죽에서 잡은 메기로 탕을 끓여 아이들에게 한상 차려주었다. 아이들은 저녁밥을 마음껏 배불리 먹었다.
그날 밤 아이들은 원두막에서 별을 헤며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눈다. 두호는 역시 작은 별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도 따라 부른다.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하늘 가득히 마치 보석을 뿌려 놓은 것처럼 별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갑자기 별똥별이 하늘 꼭대기에서 서쪽 끝으로 길게 떨어져 갔다.
“야, 누구 수호별이 천사가 되는가 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응 그런게 있어”
두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또 노래를 부른다.
“날저믄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 반짝 빛나게 속삭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나 그 노래 들으면 슬퍼서 싫어”
영희가 말한다.
“응 그래, 그러나 난 이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친구 생각이 난다.”
“누구말야? 누구 생각이 나는데.”
“수길이, 박수길”
“갑자기 왜 그 아이 얘기는 하군그래.”
“응, 이 노래를 수길이가 잘 불렀어. 내가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면 수길이가 이 노래를 불렀지. 나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수길이가 하늘에서 천사가 되어있다고 생각해. 분명히 천사가 되었을 거야”
또 별똥별 하나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떨어져 갔다.
“자, 우리, 별을 세어 보자”
지웅이가 이야기를 바꾼다.
“별 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별 셋 나 셋”
“얘들아 내일 아침엔 산토끼 잡으러 가자!”
두호의 말에 모두들 좋다고 박수를 쳤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은 후 아이들은 각기 새 그물, 덫, 새총을 들고 식장산으로 올라갔다. 본래 식장산에 산토끼들이 많았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산토끼들은 용케 살아남았다. 아이들은 산토끼를 잡으려 올라가며 산토끼 노래를 부른다.
“산 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충 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 고개고개를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 테야“
아이들은 산등성이를 오르고 계곡 아래로도 내려가고 산내도 건너다가 가재도 잡는다.
“야 저기 산토끼 있다!” “어디 어디 엉 저기 있다!”
“야 조용히 해, 살금살금 가야 해”
두호는 호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내 냅다 토끼를 향해 던졌다. 두호는 리틀 다윗이라고 부를 정도로, 돌팔매질을 잘한다고 학교에서 소문이 났다. 그러나 아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산토끼는 재빨리 숲속으로 숨어버렸다.
“흩어져서 토끼 찾자.”
“두호 형, 나는 형과 같이 갈래”
길동이가 말한다, 길동이는 교회 장로님 외동 손자인데 두 살 아래다.
“그래, 길동이 같이 가자”
아이들은 각기 흩어져서 나무 뒤에 숨기도 하고, 풀숲에 엎드리기도 하며 토끼를 찾는다.
그때였다.
“형 이것 봐”
두호가 돌아보니 길동이가 검고 둥그런 공 같은 물체를 들고 있었다.
‘수류탄이다!’
두호는 순간적으로 그 생각을 하자마자,
“얘들아, 엎드려!”
소리치고 길동이 몸 위로 엎으러 지며 산비탈로 굴렀다.
그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산모퉁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날 바로 그 시각, 아침 10시 17분,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제독과 북한 측 대표 남일 중장이 정전협정문에 조인을 하였다. 물론 발효는 밤 10시를 기해서 전투가 휴전에 돌입하였다.
*** 지금까지 별의 전설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휴전협정 70주년을 맞이 해서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이야기를 쓰면서 이제까지 써 본 적 없는 글을
쓰려하니 너무나 부끄러운 글이 되었습니다. 물론 가명으로 썼지만 가물거리는 추억을 뒤돌아 보며 픽션 넌픽션으로 쓰다보니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와 살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