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천사를 만난 두호
"와, 눈이 많이 왔네!"
아침에 자리에 일어나 창밖을 보던 두호는 수북이 마당에 쌓인 눈을 보고 이불 위에서 벌떡 벌떡 뛰면서 좋아하였다. 얼른 옷을 입고 교회 마당으로 나아갔다. 아직도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교회 마당에 쌓인 눈이 종아리에까지 닿았다. 두호는 누구보다 큰 눈사람을 만들리라 생각하고 눈덩이를 굴렸다. 잠시 후 동네 친구들이 하나 둘 깨어 일어나 나왔다.
“누가 가장 큰 눈사람 만드는 가 시합 할래”
두호가 말하니 다른 친구들도 신이 나서 눈덩이를 굴렸다. 제대로 장갑 안 낀 아이들이 두 손을 호호 불면서 눈덩이를 굴렸다. 얼굴이 추위로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아이들의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마침내 넓은 교회 마당의 쌓였던 눈들은 아이들의 눈덩이 속으로 다 말려 들어가 눈사람의 풍성한 눈살이 되었다. 교회마당 여기 저기에 아이들 키보다 큰 눈사람이 우뚝 우뚝 서서 웃고들 있었다.
“두호 눈사람이 가장 크다.”
심사위원인 영희가 두호의 손을 들어 주었다.
“공평하지 못해.”
지웅이가 이의를 단다.
“왜 공평하지 못하는데.”
“두호는 우리 보다 일찍 나와서 눈사람을 만들었으니 우리보다 큰 게 아냐? 그리고 봐 두호는 장갑을 꼈고 우리는 안 꼈잖아? 그러니 공평치 못해.”
“지웅이 말이 맞아, 공평치 못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공평치 않다고 떠들어댄다.
“좋아, 그러면 이따 다른 것으로 내기하자.”
“무슨 내기, 이제 눈도 없는데.”
“아니, 밥 먹고 나와서 미끄름 내기를 하자.”
두호가 제안하니 모두들 좋다고 하고 흩어졌다.
교회마당 한구석에 정목사가 아이들을 위해서 만든 작은 썰매 장에 간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아이들은 눈을 치우고 미끄름 시합을 하였다,
“저기서부터 달려 와서 여기 금 건데서 미끄러져 제일 멀리 간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삼열이가 시합규칙을 말하였다. 삼열이는 두호보다 3살이나 더 많고 키도 머리만큼 더 크다. 그래서 삼열이는 항상 아이들의 대장 역할을 하였다,
동일이가 먼저 달려와 양발을 모으고 미끄러진다.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으니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조금이라도 더 미끄러져 가려고 하였다.
“너 반칙이야”
삼열이는 동일이가 처음 멈춘 곳에 표시를 하였다.
다음 지웅이가 달려왔다. 양손을 벌리고 무릎을 약간 굽히고 양발을 일자 모양으로 하니 잘 미끄러져 나갔다.
“와 멀리 갔다. 다음 두호 차례다.”
두호는 허리를 굽히고 마치 스키 타듯이 양발을 벌리고 미끄러져 갔다.
그러나 지웅이 만큼도 가지 못했다. 결국 다른 아이들도 계속 이어졌지만 오늘의 승자는 지웅이였다.
삼열이가 일등을 발표하였다.
“오늘의 미끄름 시합은 일등 지웅이 이등 수만이 삼등 인철이”
지웅이는 양손을 번쩍 들고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두호는 삼등 안에도 못 들은 것이 매우 못마땅해 애꿎은 얼음을 발끝으로 찔러댔다.
“너희들 나랑 차 미끄름 안탈래?”
차 미끄름이란 길이 미끄러워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다 시피 가면 그 자동차 뒤를 붙잡고 미끄러져 따라 가는 것이다.
“좋아 가자”
삼열이는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동일이와 지웅이가 따라나섰다.
우체국 앞 큰 행 길 가에 나온 아이들이 지나가는 차를 골랐다. 지웅이가 얼른 트럭 뒤꽁무니를 붙잡고 미끄러져 갔다. 동일이도 털털거리고 가는 장작을 가득 실은 쓰리쿼터 차를 붙잡고 미끄러져 갔다, 두호는 이차 저 차 고르다가 설설 기어가는 택시 뒤꽁무니를 붙잡고 무릎을 구부려 미끄러져 갔다. 그런데 잠시 가던 택시가 서더니 운전수가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뒤로 와서 험악한 얼굴로 두호의 목덜미를 붙자고 일으켜 세웠다.
“너 이놈 이게 무슨 장난이냐, 이놈이 누굴 죽이려고 그래, 죽으려면 너나 죽어.”
두호를 번쩍 들더니 길옆에 쌓인 눈 더미 속으로 냅다 던져버리고 갔다.
두호는 눈 더미 속으로 푹 파무쳤다. 그리고 눈 더미 속에 있는 돌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었다.
“두호가 보이지 않는데”
“두호가 그냥 집에 간 거 아냐?”
동일이와 지웅이가 한동안 차 미끄름 타고 가다가 두호가 보이지 않자, 자기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지나가던 지게꾼 아저씨가 눈구덩이에서 의식을 잃은 두호를 껴안아 일으켰다.
“어쩌자고 이 아이가 눈구덩이에 빠졌는가? 날씨도 추운데, 이러다 얘가 죽겠는데."
아저씨는 축 늘어진 두호를 눈 길 위에 눕혀 놓고 몸을 마구 주무르고 문질러 주었다. 잠시 후 두호는 정신을 차렸다. 두호는 지게꾼 아저씨가 자기를 살려 준 것을 알고,
“아저씨 고맙습니다. 죽는 줄 알았는데.” 아저씨에게 깊은 인사를 하였다.
“그래 이제 정신이 드냐? 인사할 것 없다. 빨리 집으로 가라. 빨리 집에 가?”
두호는 아직 정신이 희미한 채 벌벌 떨면서 집으로 갔다.
“어머니, 오빠가 다쳤는가바 이상해?”
경옥이가 소리쳤다. 최사모가 달려와 두호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얼어있었다.
“엄마, 엄마, 오빠 좀 봐 머리에 피 묻었어"
“어떻게 된 거야? 머리는 왜 다쳤어?”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안되겠다. 머리가 많이 찢어졌어, 문원장님께 가야겠어.”
최사모는 두호를 부추겨 삼성의원으로 갔다.
“우리 개구장이가 어디가 다쳐서 왔나, 어디 보자, 아이구, 많이 찢어졌는 걸? 하마터면 큰일 날 번 하였구나. 꿔 매야 할 터이니 아파도 참아야 한다.”
문의원은 두호의 머리를 꿔 매며 두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보게 되었다.
이마에 손을 대니 이마가 뜨거웠다. 마취 주사를 놓았다 해도 머리를 꿔 매면 얼굴을 찡그릴 텐데 두호가 정신을 못 차리고 늘어져 있는 것이 머리만 다친 것 같지가 않았다.
머리를 다 꿔 맨 문의원은 청진기로 여기저기 진찰을 하고 열을 재보고 맥박도 짚어보고 목구멍도 들여다보았다.
“사모님, 조금 더 두고 보아야 겠습니다만 열이 38도 5부 되는 것이 폐렴 징조 같습니다. 목구멍도 상당히 부어 있고요. 주사도 놓고 약을 드릴테니 오늘밤 잘 지켜봐 주십시오.”
밤이 깊어도 최 사모는 잠잘 생각 않고 두호 이마에 냉수 찜질을 하였지만, 두호는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열이 더 올랐다. 정목사가 열을 재니 40도가 넘었다. 두호는 끙끙대다가 “경수 형, 경수 형” 헛소리까지 하였다.
“얘가 경수를 부르는 군요. 전사한 경수를 왜 부를 까요. 아무래도 이상해요. 느낌이 안 좋아요. 여보, 얼른 문의원님을 모셔오세요”
정목사는 한 밤중에 문의원을 깨워 모셔왔다. 열이 41도로 올라가 있었다.
“이런 큰 일 났습니다. 급성폐렴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이 폐렴을 고칠 약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찌 좋습니까? 어찌 고칠 방도가 없단 말입니까?”
최사모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문의원을 붙들고 물었다.
“저, 미군 병원엔 약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날이 밝는 대로 제가 미군병원엘 다녀오겠습니다.”
정목사가 말한다.
“예, 그런데 지금 한시가 급합니다. 아침까지 기다릴 시간이 있을는지...”
문의원의 말끝이 흐렸다.
“여보, 지금 바로 가 봐요. 이럴 때 김대위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정길대위는 한 달 전 미군부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오. 하나님이 두호를 지켜 주실 것이요. 하여튼 그럼 내가 지금 미군
병원엘 다녀오리다. 전에 알던 미 군의관도 있으닌까? ”
그러나 정목사는 허탕을 쳤다. 그날따라 전선에서 이송해 온 부상병들이 수없이 많아 군의관을 만날 수가 없었다.
두호는 완전히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꿈인지 생시인지 아니 분명히 꿈 이였다. 생시에는 결코 일어날 일이 아니닌까.
두호가 정신없이 누워 있는데 누가 두호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두호야 일어나 일어나.”
두호는 눈뜨기가 싫었지만 하도 흔드니 슬며시 눈을 떠보니 하얀 가운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두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천사님이세요?”
“아니, 아직 천사는 아니고 그냥 수호별이란다. 바로 너를 지켜주는 수호별이야 ”
“나의 수호별이라면, 항상 내 곁에 있었나요?”
“그래, 나는 네가 태어 날 때부터 너와 함께 있었어. 네가 항상 나를 부르곤 하지 않았니?”
“내가 언제 수호별님을 불렀었나요?”
“넌 항상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불렀잖아. 네가 노래 부를 때마다 네 노래를 듣고 있었어. 네가 그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얼마나 기분 좋았다고.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너를 찾아 왔단다.”
“그래요? 그런데 수호별님은 어디에 사세요?”
“별 나라에 살고 있단다.”
“그래요? 그 별나라 구경 좀 시켜 주세요. 오래전부터 별나라 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별나라에 너도 와서 살게 될 거야. 그때는 별나라가 너의 세상 일거야.”
“그래도 지금 보고 싶어요. 조금만 보게 해 주세요.”
“그럼... 조금만 보여 줄게, 함께 가자.”
수호별님이 두호의 손을 붙잡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하늘의 길은 유리로 덮여 있고 그 아래 온갖 보석들이 깔려 있어 반짝이고 있었다.
길 양편으로 나무들이 서 있는데 모두가 금이고. 줄기는 은이요, 잎은 푸른색 사파이어 보석이고, 꽃은 붉은 색 루비보석이요, 열매는 무지개 색깔들 알록달록 보석으로 모두 반짝이고 있었다.
“아하, 그래서 밤하늘이 그렇게 보석처럼 빛이 났구나.”
두호는 밤하늘이 마치 보석이 뿌려져 있다고 생각을 하였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머리에 반짝이는 별 띠를 한 별님들이, 어른 별님도 있고 어린 별님도 있는데 바쁘게 오고 가고 있었다. 어떤 별님은 뛰어 가고 있었다.
“수호 별님, 저 별님은 왜 저렇게 뛰어가고 있나요?”
“저 별님들은 다 세상에 살고 있는 누구의 수호 별님들이란다. 저 뛰어가고 있는 별님은 아마도 자기가 수호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는가 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죽으면 수호별님들은 어떻게 되나요?”
“네가 밤마다 별똥별을 보고 있지? 바로 자기가 수호하는 사람이 죽으면 수호별님은 별똥별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진단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수호별님도 제가 죽으면 별똥별이 되나요?”
“그럼, 언젠가 나도 별똥별이 될 날이 있을 거야.”
“그때가 제가 죽는 날이군요.”
“그러나 나는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지만, 너는 세상에서 죽으면 여기 별 나라에 와서 살게 된단다.”
“나도 여기 별나라에서 살게 된다고요?”
두호는 자기가 죽으면 별나라에 살게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의 수호 별님이 별똥별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매우 슬픈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라. 별똥별이 되어 별 나라에서 떨어지지만 수호 별들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단다.”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그래, 수호 별들이 수호하는 사람들이 훌륭한 인생을 산다면 수호를 잘하였다고 인정하여 수호 별들은 별똥별로 떨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날개 달린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단다.”
“그러면 어떡하죠. 저는 못된 짓만 하고 있었으니, 수호 별님은 천사가 못 되시겠네요.”
두호는 자기 때문에 수호 별님이 천사가 못 될 거라 생각하니 또 슬퍼서 엉엉 울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내가 꼭 천사가 될 터 이닌까.”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며 어디선가 바람소리가 웅웅 하며 들려온다.
“수호 별님, 무서워요. 왜 갑자기 캄캄해지는 거죠?”
“저기를 보아라.”
바라보니 수호 별 여럿이 하늘에서 떨어져 간다.
“수호 별님들이 떨어지네요.”
“또 저 아래를 봐라. 저 키가 크고 시커먼 나무 열매를 맞는 사람들은 바로 죽게 된단다.”
하늘 아래 아주 큰 시커먼 나무가 보이고 사나운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니 웅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수많은 시커먼 열매들이 나무에서 떨어지고 그 나무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 저리 뛰고 있는데 그 시커먼 열매를 맞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어 넘어진다. 사람들은 그 열매를 맞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피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두호도 보였다.
“수호 별님, 저기 저도 있는데요?”
“그래, 너도 저 죽음의 열매를 맞지 않으려고 지금 열심히 피하고 있지 않니?”
"그럼, 저도 이제 저 열매를 맞게 되겠군요."
“아니, 네가 저 열매를 맞지 않도록 하나님이 나를 너에게 보내 수호하도록 하신 거란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가 더 이상 너를 수호할 수 없는 때가 올 거야.”
두호는 더 이상 수호 별님이 자기를 수호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는 말을 들으니 또 슬퍼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여보, 여보, 두호가 울고 있어요”
밤새 두호 이마에 냉수 찜질을 하고 있던 최사모가 막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들어오는 정목사를 불렀다.
“뭐라고, 두호가 운다고?”
“두호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어요.”
정목사는 두호의 어깨를 흔들며 두호의 이름을 부른다.
“두호야, 두호야, 정신 차려라. 정신 좀 차려”
두호가 눈을 슬며시 떴다.
“아버지....”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호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사모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며 하나님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말하였다.
정목사도 두호를 끌어 앉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 밤 그렇게 열이 높았는데 이처럼 열이 정상으로 떨어지다니요.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군요. 두호는 이제 다 나았습니다.”
아침에 문의원이 왕진 와서 연신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