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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8)

전병호 by  조회 수:32 2024.06.24 00:02

여인숙 호객꾼이 된 두호

 

정순섭목사는 외국 기독교 기관에 교섭하여 옥수수와 우유를 배급받았다. 부엌에 커다란 솟을 두 개 걸어 옥수수 죽과 우유죽을 매일 번갈아 쑤었다. 교인들이 당번을 정하여 하루는 옥수수 죽을, 다음 날은 우유죽을 쑤게 되는데, 점심때가 되면 대부분 교회주변 판자촌 사람들이 집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매일 100명이 넘게 죽을 받아먹었다. 날씨가 추워 손발이 얼어 입김으로 녹이다가 따끈한 죽 한 그릇을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 하였다. 옥수수죽 한 그릇이 전쟁 통 사람들이 겨울을 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두호야, 우리도 죽을 먹자”

“그래 너희들도 와서 실컷 먹어”

 

두호와 친구들은 우유죽과 옥수수 죽을 맛있다고 매일 같이 번갈아 먹었다. 얼마 후에는 죽 먹으라고 하면 냄새도 맡기 싫다고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찌푸렸다.

 

전에 폭탄 맞은 교회 앞 구덩이가 복개되어 넓은 마당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지웅, 수만, 성수, 동일, 달래, 영희, 삼식, 삼열이 여러 아이들이 밤 깊은 줄 모르고 놀았다. 부모님들이 이제 그만 놀고 들어오라 할 때까지 놀았다. 그러나 부모들 대부분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늦게 까지 노는 것에 별 간섭을 안 하였다. 밤늦도록 아이들은 교회 마당에 모여서 제기차기, 자치기, 말 타기, ‘무궁화 꽃이 피였습니다,’ 숨바꼭질, 간첩잡기 놀이를 하곤 하였다.

 

수만이네 집은 여인숙이다. 여인숙 안에 젊은 아가씨들이 있어 나그네들을 맞이하였다. 저녁 8시경이면 대구에서 올라오는 기차,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가 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면 수만이는 역에 나가 손님들을 불렀다.

 

“여인숙 가세요. 놀다 가세요. 쉬었다 가세요. 예쁜 아가씨들도 있어요.”

 

두호도 수만이 따라 큰 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일이 재미가 있었다.

 

“여인숙 가세요. 놀다 가세요. 쉬었다 가세요. 예쁜 아가씨들도 있어요.”

 

수만이와 두호는 손님들 양 쪽 손을 잡아끌며 여인숙 가자고 졸랐다.

 

“정말 예쁜 아가씨도 있냐?”

“그럼요. 가서 아니면 다시 나와도 좋아요”

 

어떤 어른은 조그만 놈들이 무슨 짓이냐 호통을 치는 분도 있었다.

이렇게 손님 한 분을 모시고 오면 수만이 어머니께서 수고했다고 누깔사탕을 주셨다.

 

 

간밤에 눈이 많이 와 문이 안 열릴 지경이다. 집집마다 처마 끝엔 고드름이 1미터도 넘게 주렁주렁 달렸다. 동네 아이들이 교회마당으로 나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누가 더 크게 만드는가 시합을 하였다. 그러다 보면 교회마당의 눈이 눈사람으로 모아져 눈이 치워져 버렸다. 눈사람을 만든 후에는 기다란 고드름을 눈사람 양 옆에 꽂아 팔이 되었다.

 

경옥이는 칭 밖 고드름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세요

낮에는 해님이 문안오시고

밤에는 달님이 놀러오시네

 

고드름 고드름 녹지 말아요.

각시님 방안에 바람 들면

손 시려 발 시려 감기드실라 “

 

"두호야 썰매 타자, 두호야 썰매타자"

 

지웅이가 창 밖에서 두호를 불렀다. 지금 두호는 두 손 들고 벌을 서고 있었다.

구구단을 다 외우라고 했는데 여태 못 외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문 안 과 밖에 커다랗게 구구단 표를 만들어 붙이고 들어오며 나가며 구구단을 한 번씩 읽으라고 하였다. 그러면 두호는 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구구 팔십일 하고 나갔다. 그러다가 어머니한테 걸린 것이다. 두 손 들고 구구단 앞에서 삼십 번을 읽으라고 하신다. 이제 열 한번을 읽고 있었다. 지웅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엉, 조금 있다가 나갈 께"

 

이때부터 두호는 제비가 날아가듯 읽는다. 이는이이삼은육이사팔이오십이육십이.. 마침내 삼십 번이다 싶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지웅이와 아이들이 교회 마당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다.

정목사가 아이들을 위하여 교회마당 한 곁에 물을 부어 썰매 장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썰매는 성수가 잘 만들었다. 겨울이면 평양 대동강 변에서 썰매를 만들어 탔다고 하였다. 우선 긴 철사토막과 긴 못이 필요하다. 철사 토막과 못을 철로 위에다 놓아두면 기차가 지나가면서 납작하게 되었다. 철사 토막을 나무판 양 쪽 밑에 박아 썰매를 만들고, 못은 나무토막 두개에 박아 꼬챙이를 만들었다. 썰매 달리기 시합도 하고 썰매끼리 부딪쳐 넘어뜨리기도 하였다. 얼음이 패이면 정 목사가 물을 부어 놓아 다음날 아침 다시 근사한 썰매 장이 되었다.

 

 

 

약장사가 된 정순섭목사

 

당시 날씨도 추웠지만 눈도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정목사가 옥천에 있는 교회에 부흥회 인도하러 간지가 열흘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었다. 본래 사흘을 예정하였기에 최 사모와 교인들의 걱정이 여간 큰 것이 아니다. 밤마다 교인들이 모여서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 최사모는 파출소에 청목사의 행방불명 신고를 하였다.

보름이 지난 후 정 목사는 군인 짚 차를 타고 집에 왔다. 옷은 본래 입고 간 양복이 아니고 허리 아래를 담요로 덮었다. 웃옷은 미군들이 입는 독고리 셔츠에 군용 잠바를 입고 있었다. 몸을 가누질 못하여 당가에 누워 군인 두 사람이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최 사모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잠시 후 소식을 들은 교인들이 달려왔다.

 

“몸이 매우 쇠약해 졌으니 이야기하는 것은 나중에 들 하시죠"

 

장교가 말하였다.

최사모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폈다. 정목사는 힘없이 눕지만 사람들을 보고 환히 웃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다시 살려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무사히 돌라오게 되었습니다.”

 

교회 앞에 있는 삼성의원 문원장님이 달려와 진찰을 하였다.

 

“몸이 쇠약한 것과 허리 아래로 기브스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흰죽을 쑤어 잡수도록 하십시오. 아마 며칠 동안은 단단한 음식은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삼성의원 문의사가 말하였다. 두호는 문 의사를 할아버지라 불렀다. 두호는 겨울만 되면 편도선을 심히 앓았다. 할아버지 문 의사가 주치의처럼 두호를 잘 돌봐 주셨을 뿐 아니라 때때로 용돈도 주셨다.

 

다음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정목사는 그간의 일들을 교인들에게 말하였다.

옥천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밤중에 심천으로 가는 중이였다. 옥천교회 교인들이 밤이 위험하니 날이 밝으면 가시라고 붙들었지만 다음 날 9시에 장례식 주례를 하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에 떠나면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웠기에 밤길을 서둘러 갔다. 당시 인근 산 속에 인민군 패잔병들이 숨어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빨치산들에 의해 여러 교회가 불타고 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최근에 국군 토벌대로 인해 남쪽 지리산 쪽으로 멀리 도망갔다는 파출소 소장의 말을 듣고 안심하고 밤 집회를 마치고 길을 떠났다.

밤이 깊었지만 별빛이 밝아 길 따라 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잠시 쉬었다 가려하여 고개 마루 위 넓적한 바윗돌 위에 앉았다.

 

“잠시 쉬었다가 갑시다.”

“조금 더 가다 보면 인가가 있을 터인데. 전에 여기가 공비들이 자주 나타난 곳이라 하는데요, 잠간만 쉬지요.”

 

심천에 있을 고인의 조카인 옥천교회 김한식집사가 말하였다.

 

“그래요? 요즈음은 공비들이 없다고 하던데....”

“그러믄요 지난번 토벌에서 많이 죽고 더러는 남쪽 대둔산이나 지리산 쪽으로 도망들 갔다고 합니다. 목사님, 안심해도 됩니다.”

 

그러나 안심하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두 사람이 길을 떠나려고 일어서니 어둠 속에 서너 사람들이 다가왔다.

 

“서라! 움직이면 쏜다”

 

혹 인근 국군부대에서 정찰 나온 군인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별 빛에 보니 눈앞에 나타난 자들이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었거나 낡은 양복을 입은 것이 공비들 이였다.

 

“손들어!”

 

정목사와 김집사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였다.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뭐야 너희들, 손 번쩍 들어! 어디서 어디로 가는 거냐”

“예- 옥천에서 심천으로 가는 중입니다."

“거긴 뭣 하러 가냐”

“거기 처가댁인데 장모님이 아프다고 해서”

 

정 목사 얼굴 앞에 코를 드려 박고 보던 자가 총으로 정목사를 쿡 찌르면서

 

“넌 뭐 하는 놈이냐”

 

엉겁결에 역시 정목사도 거짓 대답을 한다.

 

“약 팔러 다닙니다.”

“뭐 약장사야? ”

“예 그래서 이 사람 장모님이 아프다고 해서 바삐 심천에 가는 길입니다”

“그래, 그럼 잘 됐다 우리와 함께 가자”

 

공비들은 정목사와 김집사를 앞세우고 빨리 가자고 서둔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산길을 걸어 새벽이 밝아오면서 얼기설기 잔가지로 엄폐한 바위 틈 앞에 도착하였다.

 

“동무들 수고했소, 양곡 좀 구해왔소?”

“예, 여기 쌀하고 감자 그리고 이놈들입니다”

“이놈들이라니, 이자들 누구요? 그 자리에서 쏴 버리지 않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대장같이 생긴 자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밤새 몇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눈 덮인 산길을 걸어오느라고 정목사와 김집사는 녹초가 되어 쓰러질 지경이다. 그러나 대장이 ‘쏴 버리지 않고’ 하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버쩍 났다.

 

“약 장수 랍니다. 그래서 필요할 것 같아서 데려 왔습니다.”

“약 장수-그래 무슨 약을 파나.”

“예, 신약과 구약을 팝니다.”

“신약과 구약?”

 

정목사는 약 팔러 다닌다는 거짓말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제는 자기의 신분을 밝히려고 하였다.

대장은 신약은 서양 약이고 구약은 한방약인가 보다라고 생각하였는지 별말 없이,

 

“가방 이리 가져 와 봐”

 

본래 정목사는 일제시대 때에 서울에 있는 기독병원에 사무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의사는 아니지만 돌 파리 의사 급은 되었다. 정목사는 아직 지방에 병원이 제대로 운영이 안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화약, 감기약, 설사약, 회충약, 페니실린, 옥도징끼, 아까징끼. 다이야징가루. 멘소리다마 등 몇 가지 연고와 가루약들을 가방 가득히 가지고 다녔다. 특히 김정기대위에 부탁하여 외제 약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대장이 가죽 가방을 열고 와르르 가방을 뒤집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각 종 의약품들이 쏟아지니 공비들은 정목사를 그대로 약 장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름이 뭔가?”

“정순섭 입니다”

“전 김한식 입니다"”

 

이미 이들은 두 사람의 주머니에서 통행을 조사한 바 있다.

 

“좋아, 정 약사. 지금 내가 상한 걸 먹었는지 배가 뒤틀리고 아픈데 무슨 약 먹으면 되는가?“

“설사를 하십니까?”

“그냥 배가 뒤틀리고 아프네”

“그러면 이 약을 잡수십시요”

 

정 목사는 약 병에서 영신환을 꺼내어 준다.

대장은 약을 받아 꿀떡 삼킨다.

 

“자 떠나자-”

"이 놈들은 어떡할까요?"

“정 약사만 데리고 저놈은 쏴 버려!”

“아 안 됩니다.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이 사람을 죽이려면 저도 같이 죽여주세요.”

 

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함께 가자고 한다.

 

공비 일행은 천태산 쪽으로 조심스럽게 갔다.

눈이 많이 내렸을 뿐 아니라 산길이 미끄러워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갈 수밖에 없었다. 천태산이 둘러 처 있는 분지로 올라 왔다.

이곳은 산 위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 있는 널찍한 분지이다.

이곳에 영국사란 작은 절이 있다. 절 앞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채 웅장하게 서 있다.

일행은 나무 밑으로 몸을 숨겼다.

 

“김동무 저 절에 가서 먹을 것 있는가 보고 동정을 살펴보고 오시오”

“군관동무 여기에 이런 것이 떨어져 있습니다.”

 

한 사람이 유엔군 비행기에서 살포한 삐라를 주어 왔다.

 

< 우리는 유엔군 병사들이다. 그대들을 맞으려 간다.

우리는 온 세계 모든 크고 적은 나라에서 왔다.

우리는 침략을 깨트리기 위하야 단결한 것이다.

우리는 북선군 장병들에게는 아무런 사감도 없다.

우리는 우리편으로 넘어 온 수십만 북선군 장병들을 친구로 환영하였다.

우리는 이 동포 살상 전쟁을 구지 고집한 수십만 북선군을 눈물을 먹음고 죽였다

우리는 다음 격언을 수행코저 한다.

친구는 친구로 원수는 원수로. >

 

“아니 동무, 정신이 있소 없소, 이 따 것 뭐 하러 주어 온 것이오. 당장 찢어버리시오. 그런 선전 다 속임수요. 저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총살할 것이란 말이오.”

 

정목사도 이미 몰래 이 삐라를 주어 보았다.

 

“여보시오, 이렇게 도망한다고 살 보장이 없는 것 아닙니까”

 

정목사가 대장에게 가까이 가서 말하였다.

 

“이 새끼가 뭐라고 지꺼리는 것이야. 살려 주닌까? 뭐라고 주둥아리를 함부루 놀리고 있어 엉?”

 

권총을 빼 정목사 턱에다 갔다 되었다. 대장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마치 늑대 눈 같았다.

 

“너 뵈는 것 없냐? 어차피 우리는 죽은 목숨이야. 이승만 괴뢰도당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는 거야. 너도 살 목숨인 줄 알았냐? 어차피 너 죽어 알 간?”

“여기 감자 찐 것 가져 왔습니다”

 

김동무가 바가지에 감자를 담아 왔다.

 

“절간에 중놈들이 얼마나 있소”

“잘 모르갔소만, 노인 중 두 놈 있는 것 같습니다.”

“국방군 놈들이 왔다고 합디까”

“오지는 않았고, 그동안 정찰 비행기가 몇 번 왔다 갔다고 합니다.”

“저 산으로 넘어가면 어느 쪽으로 가는지, 여-김씨, 알고 있나?”

“저도 가 본적은 없습니다만, 아마도 저 산 넘어 한참 가면 금산이고 덕유산이 나옵니다.”김집사도 전혀 방향도 모르는 채 되는 대로 말하였다.

“개나발, 어떻든 출발합시다.”

“저 중이 말하길, 산이 험하고 눈이 많이 내려 천태산을 바로 넘어가기보다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합시다. 동무들, 사방 경계 잘하시오.”

 

대장이 앞장서 일어서 가니 다른 일행도 따랐다. 정목사와 김집사는 대장 뒤를 따라 갔다.

하얗게 눈이 덮여 있어 어디가 길인지 조심조심 계곡을 타며 산 아래로 내려간다. 계곡에 여기 저기 넓적한 바위들이 있고 패여 만든 웅덩이에 물이 얼어 있고 눈이 덮여 있어 매끄럽고 위험한 길이였다.

그 끝에는 폭포가 있는데 엄청난 얼음기둥으로 아래로 뻗어 있었다. 물론 이 일행은 지형을 잘 모르는 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갑자기 정목사가 소리쳤다.

“어--”

눈 덮인 돌을 밟는 순간 미끄덕 웅덩이 얼음위로 엉덩방아를 찌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이어서 얼음폭포 쪽으로 속수무책 미끄러져 가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정목사는 이렇게 죽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떨어지는 시간이 상당히 오랜 것 같이 느껴졌다. 아내 얼굴, 자식들 얼굴이 떠올랐다. 교회 교인들의 얼굴도 떠오르면서 기도하였다.

“하나님, 제 영혼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교회와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전쟁이 끝나고 이 나라에 평화를 주옵소서...”

 

정목사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공비 일행이 얼음폭포 밑으로 내려와 김집사가 정목사를 붙들어 흔들었다.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목사님 정신 차리세요”

“뭐라구 목사라고? 이자가 약장사가 아니구 예수쟁이야”

“예, 이분은 목사님이세요.”

김집사가 엉엉 울었다

대장이 발로 정목사를 툭툭 쳤다. 정목사는 꼼짝없이 늘어져 있다.

“죽었나 봅니다.”

“그렇군, 예수쟁이닌까 천당엘 갔겠지. 너도 예수쟁이냐?”

“저는 그냥 교인입니다.”

“어쨌든 좋아, 너 저 약 가방 들고 따라와”

영하의 날씨로 매우 추운 때라 정목사가 지금 당장은 죽지 않았다 해도 몇 시간 지나면 얼어 죽게 될 것이다.

 

 

정목사가 정신이 깨어나 주변을 보니 불상이 보이고 한 노인 스님이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주님, 이제 깨어나셨군요. 정신이 드십니까?”

“스님 여기가 어디입니까? 제가 어떻게 여기 있습니까?”

“영국사입니다. 제가 뒤 따라 갔었습니다. 제가 가르쳐 준 그 길 앞에 공비 토벌대가 있는 곳이지요. 시주님께서 용추폭포에 떨어져 정신을 잃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간 후에 제가 시주님을 데려 왔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글쎄요. 얼마 안 있어서 총 소리가 요란하게 났었습니다.”

“그... 저와 함께 잡혀간 사람 생사를 모릅니까?”

“저는 모르지요. 얼마동안 총소리가 났었습니다만. 곧 끝나 버렸으니 아마 다 죽었을 겁니다. 나무아무관세음보살.”

 

노스님은 합장을 하였다.

 

“제가 얼마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까?”

“그러닌까? 하루 낮 밤 꼬박 정신을 잃고 게셨습니다. 시주님은 평소에 공덕을 많이 쌓으셨나 봅니다. 부처님이 보호해 주셨나 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정목사는 부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또 나를 살려 주셨구나.‘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수없이 기도하지만 김한식집사의 생사가 마음에 걸려 살아있다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마 곧 경찰서에서 시주님을 데리러 올 것입니다”

“어떻게 알고요”

“예, 어저께 공비들을 소탕하던 토벌대원 몇 사람이 여기에 왔었습니다.”

 

다음날 경찰들 여럿이 영국사에 와서 정목사를 당가에 눕혀 내려갔다. 정목사는 발목이 부러지고 엉치 뼈에 금이 갔으며 머리도 심히 부어올랐다.

공비토벌대에 의해서 공비들이 다 소탕되었고, 김한식 집사도 죽었다고 들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정목사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시 방첩대의 조사를 받고 육군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대전으로 이송되어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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