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각 동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 간에 전쟁놀이를 하였다. 막대기를 들고 총 쏘는 흉내를 하다가 달려들어 육박전도 하였다 그렇게 놀다 보면 여기 저기 다치는 아이들이 많았다. 두호도 대길이도 여러 번 팔 다리 할 것 없이 여기 저기 멍이 생기고 상처가 나곤 하였다. 그때마다 약을 발라 주며 최 사모는 걱정스럽게 그런 장난 하지 말라하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다. 제법 작전도 짜고 전략을 세워 싸우러 나갔다.
어느 날 대구는 많은 눈은 내리지 않지만 진눈개비가 내리 곤 한다, 으래 날씨가 추워 길에 살얼음이 잡혀 매우 미끄럽다. 사람들이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그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어른들과 함께 넘어지기도 하였다.
“이 놈들아, 길바닥에서 왠 장난질이냐? 집에들 가라”
“아이구 허리야. 그러잖아도 길이 미끄러운데, 아, 저리들 가서 놀아라”
여기 저기 어른들이 아이들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이이들은 어른들의 꾸지람은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서로 ‘빵빵’ 거리며 전쟁놀이에 정신들 없다. 두호와 대길이도 ‘빵 빵’ ‘다다다다’ 총 쏘는 흉내들을 하면서 뛰어 다녔다. 두호는 자기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이웃 집 형이 두호를 잡으려고 달려왔다. 두호는 순간 대길이가 길 건너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사거리 길 건너로 뛰어 갔다. 그 순간 자동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찍-하고 났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아이가 자동차에 쳤다고 소리치니 트럭 운전수가 내려 왔다. 자동차는 장작을 가득 실은 지엠시 트럭이었다. 운전수는 앞 타이어에 다리가 껴있는 아이를 빼내어 안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다. 인근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한 다음 대구 적십자병원으로 옮겨갔다.
두호는 적십자 병원에서 정신이 돌아왔다. 두호가 길을 건너가려 했을 때에는 신호 대기 상태로 트럭이 서있었다. 키가 작아 운전석에서 미처 두호를 보지 못하고 교통 순사의 수신호에 따라 발동을 걸었는데 그 순간 두호가 부딪쳐 차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두호는 정신을 잃었고 두 작은 다리가 앞바퀴에 끼었다. 운전기사의 재빠른 조처로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양 쪽 다리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중상이었다. 그리고 머리와 어깨 다리 등에 찰과상을 입었다. 양 쪽 다리에 받침목을 대고 붕대로 칭칭 감았다. 앞으로 두세 달 이상 꼼짝 말고 집안에 있어야 했다. 두호는 엉덩이로 기다시피 하며 움직여 보지만 갑갑해 괜히 투정만 부리고 동생만 못살게 심부름만 시켰다. 경옥이는 오빠의 잔심부름을 곧 잘 들어 주었다. 어른들은 그런 경옥이를 보고 이담에 크면 간호사가 될 거라고 말하였다.
봄이다. 앞마당 담 밑으로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마당에 장 닭이 암 닭 두 마리와 병아리 열두 마리를 거느리고 간다. 장 닭은 고개를 치켜세우고 마치 거드름을 피우듯 으스대며 마당을 가로 질러 걷고 있었다. 두호는 진호 형이 들려준 임꺽정에 나오는 배 돌석을 생각하였다. 배 돌석은 돌팔매질의 달인이었다. 두호는 자기도 돌팔매질의 달인이 되겠다고 호두알 만 한 돌맹이를 경옥이에게 주어오라고 하고 댓돌에 앉아 며칠 째 돌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두호는 장 닭이 거드름 피며 걷는 것을 보고,
‘이 건방진 녀석 봐라, 잘났다고 고개를 치켜들고, 어디 맛 좀 보라.’
장 닭에게 획 하니 돌맹이를 던졌다. 돌맹이는 곧장 날아가 장 닭의 목에 정통으로 맞았다. 장 닭은 모가지를 땅에 박고 뱅글뱅글 돌다가 푹 쓰러졌다. 두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실력에 놀라고 장 닭이 죽지나 않을까 그래서 놀랐다.
“오빠 닭이 죽었나봐.”
경옥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장 닭을 보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두호는 엉덩이를 끌며 닭 있는 대로 갔다. 닭을 들어 보았다. 닭 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다. 따뜻하다. 닭 가슴이 파닥파닥하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닭 안 죽었다. 가슴이 벌렁 벌렁한다.”
두호는 안심하였다. 닭이 죽었다간 어머니에게 크게 혼날 것이다. 그동안 대길이가 심한 장난을 치는 것은 두호 때문이라고 대길이 엄마가 최사모한테 말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최사모는 미안스러워 하고 두호를 야단치곤 하였다. 실은 두호는 대길이 말을 듣고 장난을 치는데 어쩐 일인지 사고는 두호가 먼저 저지르곤 하였다, 그래서 두호만 야단을 맞곤 하였다. 두호는 장 닭을 품에 품고 닭 가슴을 계속 쓸어 주었다. 잠시 후 장 닭은 날개를 퍼덕였다. 장 닭을 놓아주니 두호를 한 번 바라보고 암 닭과 병아리가 있는 쪽으로 다시 으스대며 걸어갔다.
“오빠 이제 괜찮겠지 그지?”
“괜찮을 거야 근데 너 엄마한테 이르지 마, 그러면 너 혼날 줄 알아 알지?”
“안 이를 거야”
그러나 잠시 후 최사모는 두호가 못 된 짓을 하였다고 야단을 쳤다. 벌써 경옥이가 엄마한테 다 고자질 해 버렸던 것이다.
5. 다시 대전에 돌아오다.
황야의 무법자 두호
한 주간 동안 정목사는 대전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이제 다시 대전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두호는 야호 하며 벌떡 일어서서 빙글빙글 춤을 춘다. 그리고 며칠 후 트럭을 빌려 대구를 떠나 대전으로 향하였다. 트럭은 낙동강을 건너 왜관으로 향해 갈 때 진호 형은 어디서 들었는지 두호에게 45일간 있었던 무시무시한 낙동강 전투상황을 말해주었다. 특히 용감하게 싸운 학도병들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 국군이 인민군을 무찌르고 이겼기 때문에, 지난 번 송정에서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거야. 엥 나도 학도병에 나갔어야 하는 건데...”
진호 형도 몇 번이고 학도병에 나가려하였지만 어머니는 아직 이 전쟁은 너의 전쟁이 아니라 하면서 만류하여 포기하곤 하였던 것이다.
대전에서 두호는 다시 국민(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일 학년 초에 전쟁으로 피난 다니느냐 1학년을 공치고 2학년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 피난 중에도 틈틈이 진호 형으로부터 책 읽는 것과 셈하는 것을 배웠다. 많은 아이들이 전쟁 통에 공부할 그런 기회도 없어 2학년이라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원동 국민학교의 교사가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실이 없어 운동장에 모여, 땅이 공책이고 나뭇가지가 연필이 되어 글을 쓰고 발로 지우고 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아이들은 무찌르자 오랑케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고, 남자아이들은 깡통 차기 놀이를 하거나 말놀이를 하였다.
남녀아이들이 함께 놀이하는 것으로는 홀짝놀이거나, 땅뺏기 사방치기를 하였다. 홀짝놀이는 주먹 안에 쥔 공기 돌 개수가 홀수 인지 짝수인지를 알아맞히는 놀이이다. 아직은 유리로 만든 공기알이 없기 때문에 작은 자갈돌, 베아링, 총알로 홀짝놀이를 하였다.
사방치기는 땅에 큰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가로 4등분 세로 3등분하여 납작한 돌을 깨금발로 한 칸 한 칸 차고 나가 반대편까지 가면 이긴다. 이때에 돌이 금에 닿거나 밖으로 나가면 지게 된다.
두호는 딱지치기 대장이었다. 상대의 딱지 옆에 왼 발을 갖다 대고 힘껏 내려 쳐 상대의 딱지가 뒤집어지면 내가 따게 되는데, 언제나 두호 양쪽 바지 주머니에는 딱지가 쉰 개도 넘게 들어 있었다.
스깡 놀이도 있다. 담 밑에 각자가 자그마한 구멍을 판다. 2 미터쯤 앞에서 다른 아이의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다. 공이 들어 간 구멍의 임자가 술래가 되어 달려가 공을 밟으며 스깡 이라고 소리친다. 공이 구멍에 들어간 그 순간 다른 아이들은 도망을 친다. 그러나 술래가 스깡 하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선다. 술래는 가까이에 서있는 동무에게 공을 던져 마친다. 그러면 기본점수 10점에서 1점을 더하고 못 마치면 1점을 뺀다. 나중에 합계를 해서 가장 점수가 낮은 아이가 지거나 벌칙을 받는다. 벌칙은 1등한 애에게 큰 절을 하거나, 업고 운동장 한 바퀴 돌기이다. 이 게임은 매우 재미가 있어 거의 매일 두호는 동무들과 이 놀이를 하였다. 두호는 줄넘기 선수다. 줄넘기 하면서 운동장을 돌거나 두단 뛰기, 삼단뛰기, 각게 뛰기, 뒤로 각개 뛰기, 한발 뛰기, 달리며 뛰기 등 다채로운 줄넘기를 한다. 학교 대표로 줄넘기 대회에도 나가 상을 타기도 하였다.
이처럼 두호는 타고난 장난꾸러기이다. 아이들하고 가장 재미난 장난은 전쟁놀이 이다. 그야말로 대전바닥이 아이들의 전쟁터로 여기 저기 숨어 빵빵 거리며 뛰어 다녔다. 황량한 대전바닥이 좁다고 뛰어 다니는 두호를 보고 진호 형은 “넌 황야의 무법자로구나”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두호는 친구들에게 “난 황야의 무법자다”라고 의시되며 나무로 만든 권총을 흔들었다.
폭격으로 무너진 학교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그 동안 시 외각에 있는 전쟁 전에 제사 공장 하던 건물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 수리가 끝나 돌아오니 이제 유리창도 있고 칠판도 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 환호성을 질렀다.
“새 나라의 어린이 여러분, 이제 우리는 새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우리 국군 아저씨들께서 괴뢰군들과 피 흘려 싸우고 있죠?”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국군아저씨들이 열심히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데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해야 되죠?”
“예-”
“선생님 따라서 책을 읽어요.
탱크가 갑니다. 오랑캐 쳐 부스러 탱크가 갑니다.”
아이들도 선생님을 따라 큰 소리로 따라 읽었다.
“기관총을 쏘는 국군도 조금씩 앞으로 쳐 나아갑니다.”
“기관총을 쏘는 국군도 조금씩 앞으로 쳐 나아갑니다.”
두호는 해를 바라보기를 좋아하였다. 학교에 갈 때도 해를 바라보면서 갔다. 집에 돌아 올 때도 해를 바라보며 왔다. 길을 가다가 우두커니 서서 한참 해를 바라보았다. 교실 창가에 서서 해를 바라보았다.
은행나무 위로 높이 떠있는 해를 바라 볼 때 처음에는 눈이 시려 아주 가늘게 눈을 떠 바라보다가 점점 익숙해지면 눈을 크게 뜨게 되고 마침내 제대로 하얀 해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미술시간에 해를 그리면 다른 아이들은 빨갛게 그리는데 두호는 연필로 둥굴게 그어 하얀 해를 그렸다.
파란 하늘에 하얗게 빛나는 해가 그처럼 신비로울 수 없었다.
마치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어 저 높은 하늘 세상에서 하얀 빛이 그 구멍을 통해 비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저 하늘 너머에 분명히 천당이 있는 거야.’ 교회선생님이 천당은 햇빛 보다 더 밝은 세상이라고 말씀한 기억이 났다. ‘언젠가 난 천당에 가 볼 거야.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볼 거야’라고 두호는 생각하였다.
그때 아이들이 불러 뒤돌아보면 앞이 깜깜한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세상은 캄캄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세상이라고 말씀하신 아버지 정목사님의 설교를 생각하였다. 잠간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 그러나 점점 눈앞이 밝아지는 것이 신비로웠다. 장난삼아 자주 햇빛에 눈을 달구어 세상을 캄캄하게 바라보고 또 눈을 밝혔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런 두호의 별명을 해바라기라고 불렀다.
두호는 해바라기란 별명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두호가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이다. 두호네 집 울타리는 해바라기로 둘러쳤다.
두호는 가끔 먼 나라로 여행가는 공상을 할 때가 있었다.
사회생활 공부에서 스위스에 대해 선생님이 말씀하면 두호는 공상의 날개를 펴 이미 스위스에 가 있었다. 스위스 골목골목을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었다. 몽부랑에도 올라가고 알프스 산에서 스키도 탔다. 공상의 날개는 끝이 없다. 피라미드 꼭대기도 올라가 보고 인도 타지마할에 들어가 구경도 하였다.
어떤 때는 언젠가 선생님이 이야기 해주신 아문젠 처럼 북극에 개썰매를 타고 신나게 달려 보리라고 공상의 날개를 펼친다.
아직 세상에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그런 곳이 어디 없을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태평양 한 가운데 섬을 그려 넣고 그곳 이름을 두호섬이라고 붙였다.
“두호야 넌 장차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사회 공부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보고 싶은 나라를 말해보라고 했을 때,
“전 요, 두호 섬 올라가고 싶어요”
“두호 섬이라니 세상에 두호 섬이 어디 있어”
“태평양 한 복판에 있어요. 그 섬은 전쟁이 없는 평화스럽고 아주 살기 좋은 나라예요. 그곳에서 사람들은 병자도 없고 거지도 없고 오래 오래 사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에요. 나 이 담에 두호 섬에 가서 살래요”
“얘는 별 공상을 다하는 구나”
겨울에 접어드니 학교 교실은 너무나 추었다. 작은 석탄 난로가 있었지만 제대로 겨울옷을 입은 아이들이 없었다. 버린 군용담요를 주어다 적당히 바느질하여 오바(코트)를 만들어 입은 아이들도 있다. 여름철 웃옷만 걸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피난민 자녀들이라 못 먹고 못 입고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떠들고 서로 밀치며 힘자랑하듯 씨름하며 노는 일이 바로 추위를 이기는 일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고무줄이 머리끝에까지 이르도록 고무줄놀이 하다가 들어왔다. 그러면 머리에서 김이 솟고 땀이 얼굴에 줄줄 흘렀다.
피난민 자녀들은 집에 가도 여전히 추웠다. 겨울이 되면 피난민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 바로 땔감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래서 산에 나무들을 마구 비여 다가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장작파는 사람들이 트럭에 가득 실고 작자사라고 외치며 지나간다. 그러나 판자촌 사람들은 나무 값이 비싸서 살 형편들이 아니었다. 두호와 친구들은 땔감문제 해결사로 나섰다. 성수와 동일이는 일 사 후퇴 때 북에서 피난 내려 왔다. 게네들은 동무라고 부르는 말을 제일 싫어하였다. 막 화를 내었다. 동무라 부르면 공산당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동무란 말 대신 친구란 말을 쓰자고 하였다. 그래서 전에는 동무야 놀자 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친구야 놀자 라고 불렀다.
교회당 뒤편에서 100미터쯤 가면 기차선로가 있고 큰 쇠기둥이 있는데 물 받는 긴 호수가 달려 있다. 철조망이 둘러 처 있지만 아이들은 철조망 담 한 쪽 아래를 넓히어 드나들었다. 가끔 기관차가 그곳에 와서 물을 받아 채우고 갔다. 바로 이때가 기회였다. 두호와 이이들이 잽싸게 기관차 뒤에 있는 석탄 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져간 부대자루에 석탄을 마구 담았다. 코크스도 담았다. 기관사 아저씨는 짐짓 모른 척 돌아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담겠느냐 만은 이렇게 모은 석탄으로 성수와 동일이네 한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