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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6)

jbhimr by  조회 수:35 2024.06.16 21:30

4 일사후퇴 피난 생활

 

제2의 피난 처 대구

 

1950년 10월 중순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와 인민군과 합세하는 바람에 전세는 점점 불리해지기 시작하여 사람들은 다시 피난 갈 준비들 한다. 한 겨울 중공군과 인민군의 대 공세로 다시 서울이 위태로워지니 피난 오는 사람들이 대전 교회에 가득 찼다. 소위 1.4후퇴 피난민 이였다.

 

어느 날, 김정기대위가 내일 대구로 옮겨 가는데 함께 가자고 말하였다. 지난번 송정 골 피난살이에서 너무 마음이 졸았던 최사모는 철야기도 후 정목사에게 대구에서 해야 할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 후 대구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후에 정목사는 대구에서 피난민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 김대위를 통해 알게 된 미국구호단체의 한국 지부로 피난민 무료 병원과 식당을 세웠고, 또한 피난 중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을 운영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원동교회는 다시 돌아 올 때까지 영희 아버지에게 지키라 하고, 결국 두호네 가족은 김정기대위의 미군 트럭을 타고 두 번째 피난지인 대구로 향하였다.

그리고 대구에서 목회하고 있는 신학교 동기인 윤기덕 목사의 사택에 머물게 되었다. 윤목사의 사택은 적산가옥으로 부엌이 따로 있고 침방과 장지문으로 나누어진 다다미방이 널찍해 두호네 가족이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구는 수많은 피난민으로 부쩍 거렸고 매일 같이 여기 저기 피난민들 간에 싸우는 소리, 취객들의 술주정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왔다.

두호는 낮 설은 새로운 피난지에서 며칠 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아 다다미방에서 뒹굴기만 하였다. 그러나 결국 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대 여섯 명의 아이들이 깡통 차기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술래를 정하면, 술래가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넷’ 수를 열까지 세는 동안 한 아이가 깡통을 멀리차고 숨는다. 술래는 깡통을 주어다가 본래 자리에 가져다 놓고 숨은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한 아이를 찾으면,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깡통 있는 자리로 돌아와 발로 깡통을 찍고 또 힘껏 내 찬다. 그러면 그 아이는 다시 술래가 되어 깡통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또 숨은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술래가 찾아다니는 동안 숨어 있던 아이가 잽싸게 튀어 나와 또 깡통을 냅다 차고 숨는다. 그러면 술래는 다시 깡통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고 숨은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두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대길이가 와서,

 

“야, 너도 같이 놀자”

 

대길이는 윤목사의 셋째아들이다.

 

“난 할 줄 모르는데”

“그럼 나랑 같이 숨으면 돼”

 

두호는 곧 이 아이들 놀이에 빠져 들어갔다.

 

 

거지가 된 두호

 

어느 날 두호가 아이들과 깡통 차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최사모가 두호를 불렀다.

 

“두호야, 두호 어디 있니”

“예-”

“나랑 시장 가자”

 

두호의 고무신이 대전부터 신어 뒷 금치가 달아 구멍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새 고무신을 사러 시장에 가려고 두호를 부른 것이다.

최사모를 따라 길을 건너가던 두호는 악극단원들이 나팔 불고 북을 치고 무희들이 춤을 추는 광고 트럭을 보았다. 대 여섯 명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트럭을 따라 달려간다. 두호가 잠시 트럭을 바라보다가 최 사모를 찾으니 어머니가 안 보인다.

 

“어머니, 어머니”

 

소리치며 최사모를 불러보지만 길거리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버렸다. 두호는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어머니를 찾았다. 어디에서도 어머니를 볼 수 없다. 두호의 가슴이 덜컥 주저앉았다.

 

“큰일 났다. 어머니를 잊어버렸네. 집도 모르는데. 어떻게 집엘 가지?”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두호는 두리번거리며 점점 어디론가 집하고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점심도 굶고 이제 저녁때가 되어 가고 있었다. 두호는 작은 내가 흐르는 나무다리 난간에 걸터앉았다. 집에 갈 길이 막막해 큰일 났구나 싶어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얼굴은 먼지와 눈물로 얼룩덜룩 더럽혀져 영락없이 거지꼴이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천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

 

길 건너 골목길 앞 프라다나스나무 아래에서 여자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팔딱팔딱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리 이쪽 편에서 깡통을 뚜드리며 거지 아이들이 벌떡 벌떡 여자아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달려온다.

 

“무찌르자 오랑케 몇 천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여자아이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을 쳤다.

거지 아이들은 깔깔 웃다가 울고 있는 두호를 보았다.

 

“야, 너 왜 울고 있냐”

“너 집 잃어 버렸구나”

“야, 우리들도 다 집 잃어 버렸다”

 

두호는 눈물을 닦고 아이들을 처다 보았다.

한 아이가 두호 옆에 다가와 앉는다.

 

“난 말야 피난 나오다가 엄마도 죽고 아빠도 죽고, 그런데 이렇게 팔팔하게 살고 있다. 야, 너 집 없으면 우리랑 같이 가자. 또 집도 찾아주마. 자 일어서”

 

두호가 가만히 있으니,

 

“일어서, 우리가 집 찾아 줄게, 우리는 이 대구 시내 모르는 곳이 없어, 다 알아, 자, 일어서 우리와 함께 가자”

 

두호의 손을 붙잡고 일으켰다. 두호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너 배고프지. 임마 나도 그랬어. 나도 엄청 배고팠지. 다 알아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자”

 

두호는 슬그머니 아이들을 따라 갔다.

 

‘이러다가 나도 거지가 되는 것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거지 아이들은 어느 다리 밑에 가마니로 얼기설기 둘러친 집으로 두호를 안내하였다.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불렀다. 가마니를 걷고 들어가니 40대 초반의 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바닥에도 가마니가 깔려 있었다.

 

“오늘 수입이 어땠냐, 엉”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자마자 냅다 소리치며 사나운 얼굴로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자라 모가지처럼 움츠리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시계, 라이터, 담배, 여자양말, 그리고 돈이랑 가마니 위에 늘어놓으니,

 

“이 놈들, 어찌 이것뿐이냐. 너희들 뭣 하러 쏘다니다가 온 거야 엉 이러구 언제 너희들 살만한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겄냐 엉”

 

목청을 높이다가 기침을 컹컹하고 가래를 입안에 가득 모으더니 옆에 있는 깡통을 가져다가 탁 뱉는다.

 

“어, 얘는 누구냐?”

 

선생님이 두호를 보고 실눈을 해 째려보았다.

 

“저기 길에서 울고 있었어요. 집을 잃어 버렸다고 그래요. 그래서 데려 왔어요”

“야 이놈들 정신 나간 놈들 아냐 엉, 칵”

 

또 가래를 깡통에다 탁 뱉는다.

 

“야 이놈들아. 여기가 무슨 고아원인 줄 알아? 그리고 너희들 우리가 비밀 결사대인 거 몰라?”

“지난번 선생님이 길 잃어버린 아가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인철이도 데려왔지요”

 

두호에게 가자고 하던 개동이가 말하였다.

 

“아 그때는 경기가 좋았던 때라 그렇지, 지금은 너희들, 그래 이렇게 쌔비해 가지고 와 꿀꿀이 죽이나 제대로 먹을 것 같으냐? .... 좋아 너 이름 뭐냐?"

“두호 입니다.”

 

두호는 기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한다.

 

“몇 살이냐”

“여덟 살입니다.”

“음. 똑똑해 보이는 것이 쓸모가 있겠군.”

“꿀꿀이 죽 끓일까요?”

“그래, 내가 저 미군부대에 가서 가지고 온 것 푹푹 끓여라”

 

선생님이 미군부대 쓰레기통을 뒤져 이것저것 가져 온 것들을 인철이가 모아다가 큰 사각깡통에다 놓고 푹푹 삶는다. 마지막 들어 온 아이가 식모란다. 그래서 두호를 오라고 해서 불을 때라고 시킨다. 두호는 이제 영락없이 거지 일행, 소매치기단의 일원이 되었다.

선생님은 전쟁 전에 강원도 어디에서 소학교(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너 꿀꿀이 죽 먹어봤냐?”

 

두호는 전에 수길이네 판자 집에서 여러 번 꿀꿀이죽을 먹어보았다. 갑자기 수길이 생각이 나니 눈물을 찔끔 찔끔 흘렸다.

 

“꿀꿀이 죽 먹는다고 슬퍼 마라. 나도 처음엔 못 먹겠드라. 그런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어. 얼마나 맛있다고.”

 

인철이는 두호가 우는 것을 꿀꿀이 죽 때문이라 생각하고 위로를 하였다.

 

“괜찮아 전에도 먹어 봤어. 전에 동무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 거야.”

 

선생님과 아이들 그러닌까 두호까지 다섯 아이가 둘러앉아 꿀꿀이죽을 허비허비 퍼먹었다. 하루 종일 굶었던 터라 두호도 잘 먹었다. 선생님은 그런 두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녁 먹은 설거지는 역시 두호 차례다. 다리 밑에 흐르는 냇물에 깡통을 씻었다. 이제 보니 다리 밑에도 여러 거적대기 집들이 있고 또 냇가 옆으로 깡통 집, 가마니 집, 하꼬방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한 많은 피난살이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제각기 나와 냇물에 설거지를 하느라고 물이 뿌옇게 흘렀다. 어떤 할머니는 요강을 휘 비우고 물에 씻고 있었다.

밥 먹은 후에 공부시간 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앉혀 놓고 연설을 하였다. 연신 컹컹거리는 것이 아마도 병이 깊이 든 것 같다고 두호는 생각하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담배꽁초들을 풀어 모은 담배통에서 담배를 얇은 종이로 말아 피우니 메케한 연기가 가마니 방안에 가득히 퍼진다. 두호도 담배 연기로 연신 콜록거린다.

가마니 집 안에 불이 켜졌다. 작은 깡통 안에 기름을 넣고 심지를 박아 불을 켰다. 끄름이 시커멓게 타올랐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듣는 다기보다는 반은 졸고 있다.

 

“자 봐라. 너희는 부모도 없다. 집도 없다. 부모 없고 집 없는 아이들을 뭐라 하느냐. 승만이 대답해봐”

“예, 거지라요.”

“그래 너희들은 거지야. 그러면 언제까지 거지 짓을 할래. 이제 전쟁도 곧 끝날 거다 이말이다. 유엔군이 중공 오랑캐를 무찌르고 있으닌까 오래 안 갈 거다 이 말이야. 그러면 나는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서 선생질 할 거다. 거기서 너희 같은 아이들을 가르칠거다 이 말이다. 그러면 나 혼자 가냐? 너희들 놔두고 나 혼자 가면 좋겠냐?”

“아니요. 우리도 데리고 가세요”

“그럼, 나 혼자 안 갈란다. 너희들하고 갈 거야 이말이다. 그러면 강원도 가서 거기 가면 집도 다 부서지고 학교도 다 부서졌을 거니 어떡허냐 집도 사야하고 또 학교도 고치고 해야 하지 않컷냐?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얼 준비하면 좋겠냐 이 말이다. 복만이 대답해봐”

 

선생님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컹컹 기침을 하였다.

 

“돈이요 돈이 있어야 해요”

“그래 바로 돈이야. 돈을 준비해야 해. 전쟁에서 싸우는 국군용사들은 총알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돈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이다. 으흠. 으흠. 자 그러면 돈을 어디서 구하냐. 아다시피 나는 이렇게 기침이 심하니 어디서 일을 할 수 없고, 너희들도 어려서 무슨 일을 할 수 없으니, 그래 나쁜 일인 줄 알아, 내가 선생님인데 그걸 모르겄냐 이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다 갚아주면 돼. 그러니 할 수없이 너희들이 쓰리 해 오는 거야. 알것지? 며칠 전 말이다. 부산에서 김태진이란 유명한 쓰리꾼이 있는데, 글쎄 겁도 없이 미군 장교 숙소를 덮친거야. 에 칵, 권총, 수류탄, 달라, 시계, 어마어마하게 훔쳐 나온 거야”

“와 굉장하다. 우리도 그렇게 훔쳐오죠”

“이놈들 큰일 날 놈들이네, 이 날 도둑놈들아, 우리가 도둑놈이냐? 나는 선생님이야. 내가 너희들에게 쓰리 해 오란 것은 도둑질 해 오란 것 아니야. 빌리는 거라 이말이야. 이제 너희들이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되면 다 갚아주어야 하는 거라 이 말이다. 알것냐? 이 썩을, 에 칵, 대답해봐 엉”

 

선생님은 방안의 아이들을 한 아이 한 아이 둘러보며

 

“안 그러냐 엉 이 놈들아.”

 

컹컹 거리며 또 가래를 끌어 모아 깡통에 탁 뱉는다.

 

“예--”

 

아이들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래 그럼 이제 산수 공부하자 전쟁 끝나면 너희들도 학교에 다녀야 하고 그러자면 다른 아이들하고 경쟁을 해야 돼. 또 돈을 벌려면 셈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구구단 공부를 하자”

“구구단이 뭐예유?”

 

공주가 묻는다. 공주는 집이 충청도 공주란다. 부모님하고 피난 오다가 모두 폭격에 돌아가시고 피난민 틈에 끼어 대구까지 흘러왔다. 그는 국민학교 문턱에도 못 가 봤지만 나이는 가장 많은 열 네 살이다.

 

“산수에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있는데 곱하기를 잘하려면 구구

단을 외워야 돼”

 

두호도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그냥 나 따라하면 돼. 자, 이일은 이, 이는 사, 이 삼은 육, 따라 해봐”

“이일은 이, 이는 사, 이 삼은 육”

“이 사 팔, 이 오 십”

“이 사 팔, 이 오 십”

 

아이들이 하품을 한다. 두호도 눈가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륙 십이, 이 칠은 십 사”

“이륙 십이, 이 칠은...”

 

아이들 하나 둘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렇게 두호도 가마니 바닥에 꼬부라지며 잠이 들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담요를 덮어 준다.

 

다음날 두호는 개동이와 많은 사람들이 부쩍 거리는 서문시장으로 갔다.

“두호야 너 쓰리 해봤냐?”

“안 해봤다. 넌 쓰리 잘하니?”

“난 대구 위에 김천에 살았어. 그런데 인민군들이 할아버지 아버지 가족들 모두 잡아가 죽였어. 우리 집이 지주였거든 그런데 나만 도망 나와 대구 길거리에서 선생님을 만났지. 배고파 쓰러져 있는 나를 선생님이 다리 밑으로 데리고 온 거야. 선생님이 내 생명의 은인인거라.”

“응 그래서 그때부터 선생님하고 쭉 살았구나.”

“그러나 난 선생님 안 믿어. 어떻게 선생님이 쓰리를 잘하니?”

“선생님이 그렇게 쓰리 잘해?”

“야 말도 마라. 우리 선생님은 줄띠풀기 전문가야”

“줄띠풀기가 먼데”

“줄띠풀기란 목걸이 있잖아, 이렇게 여자들이 목걸이 하고 다니잖아, 그런대 감쪽같이 빼내는 거야. 손목에 시계도 주인도 모르게 그냥 눈 깜짝 할세 없이 싹 하니 쌔비 해 온 단다”

“와, 굉장하구나. 그래서 선생님한테 너 쓰리 하는 거 배웠냐?”

“그럼, 쓰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안창따기가 있는데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것을 면도칼로 째고 빼오는 건데 나는 키가 작아서 그런 것 못하고, 그냥 바닥치기 정도만 할 줄 알아”

 

개동이는 마치 자기가 그렇게 하는 듯 흉내를 낸다.

 

“나는 바닥치기 전문가란다.”

“바닥치기라고?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건데? 나도 배울 수 있니?”

“그럼, 너도 이제 배울거야, 잘 보라구, 내가 저-기 여자 있지, 저 여자 핸드백을 슬쩍 열어 가지고 돈 쌔비 해 올 테닌까 넌 보고만 있어”

“너 그거 나쁜 짓이야. 들키면 어쩔려구 그래.”

“너도 배우고 싶다며, 보고만 있으라닌까”

 

개동이는 슬금슬금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 여자는 좌판대 위에 늘어 논 양키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좁게 지나가며 서로 툭툭 밀쳤다. 여자도 여러 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딪쳐 움직거렸지만 별 내색하지 않았다. 개동이가 양키물건을 구경하는 척하며 슬쩍 여인에게 다가가 부닥쳤다. 그리고 시장 통 사람들 틈 사이로 사라졌다. 한참 후 개동이가 다른 길로 나왔다. 시장 지리를 잘 아는 것 같다.

 

“두호야 이거 먹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한 봉지를 내 놓았다.

 

“야, 너 멋지게 성공했구나! ”

“이런 것은 식은 죽 먹기야.”

 

개동이는 주머니에서 한 주먹 돈을 꺼내었다.

 

“야-너 그 돈 아까 그 여자...”

“그래, 그 여자 가방에서 슬쩍 쌔빈 거지. 걱정 말고 빵 먹어라”

 

두호와 개동이는 사진관 앞 계단에 앉아 찐빵을 먹었다. 찐 빵 앙꼬인 단 팥을 혀로 핥아먹으며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가끔 두호가 좋아하는 찐빵을 해 주셨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소다를 약간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를 덮어 묻어 서너 시간 지나면 반죽한 밀가루가 봉실 하게 솥아 올랐다 그러면 어머니는 단 팥 고물을 가득 넣어 찐빵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맛이었는지 생각하니 어머니가 보고 싶다. 두호의 눈에서 금방 주루루 눈물이 흘러내렸다.

 

“야, 임마, 엄마 생각해서 너 울고 있는 거지”

“응, 난 이제 아버지 찾으러 가려고해. 지난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고아원 원장이야. 너도 나와 같이 울 아버지 찾으러 가자”

“그래?”

 

개동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친다.

 

“두호야, 도망가자”

 

어느새 일어나 멀찍이 도망가는 개동이를 바라보며,

두호는 어정쩡하게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개동이가 돈을 훔쳤던 여자와 순사가 달려왔다. 그리고 두호의 뒷목을 콱 잡았다.

 

“이 쓰리꾼 녀석...”

“난 안 그랬어요. 난 안 안 그랬어요”

 

순사가 잡아 올리니 두호는 버둥거리며 안 그랬다고 소리쳤다.

 

“이 이놈자식, 내가 너 그 쓰리 꾼 녀석과 한패인 것 모를 줄 알아?”

“난 아니예요. 난 몰라요”

“모른다구? 안 되겠어 파출소로 가자”

 

순사는 두호의 손을 꼭 잡아끌며 서문시장 파출소로 데려 갔다.

 

“너 아까 그 놈하고 한패 아냐?”

“아녜요 아녜요”

 

두호는 순간이나마 쓰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후회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 조막다시만한 놈이 도둑질을 해? 너 혼나볼래?"

 

순사는 주먹으로 두호 머리를 줘 박는다.

그동안 서문 파출소에서는 쓰리꾼 소탕령을 내리고 특히 개동이를 주목하여 보고 있었다.

파출소 순사는 두호가 집을 잃어버려 돌아다니다가 쓰리꾼 패거리에 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러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 수소문 끝에 마침 두호를 잃어버렸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두호야 너 큰일 날 뻔했구나. 네 아버지가 널 찾는다고 신고했구나. 나랑 같이 가자”

 

순사는 친절하게 두호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두호네 집을 찾아갔다.

 

“두호야, 여기면 네 집을 찾을 수 있지?”

 

두호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보았다. 동무들하고 깡통차기 놀이 하던 골목 입구였다.

 

“예 알아요.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 집에요.”

“그럼 됐다. 자, 집으로 가라. 다시는 집 잃어 버려서는 안 된다. 또 집을 잃어버리면 바로 파출소로 오너라. 알았니?”

 

두호를 내려놓고 순사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오빠, 어디 갔다 왔어.”

두호가 집으로 뛰어 들어 오니 마루에서 인옥이와 놀고 있던 경옥이가 반가워하였다. 부모님과 형은 두호를 찾아 아침부터 대구시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두호는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와 다다미방 다락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제 집에 왔다. 난 거지도 아니고 쓰리꾼도 아니다'. 혼자 말로 중얼거리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 오빠 왔어”

“뭐 두호가 왔어? 두호야--”

 

최사모는 혹시나 해서 인근 파출소에 가서 두호 소식을 물으니 서문시장 파출소에서 두호를 찾았다는 전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왔다.

 

“얘가 어디 있지, 두호야--”

 

경옥이가 다락을 가리켰다. 문을 열고 두호가 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본 최사모는 담요를 덮어주었다.

두호가 길바닥에서 고생했을 것을 생각 하니 밤새도록 잠 한숨 못 자고 걱정하였던 최사모는 조리던 마음이 풀어지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물을 흘렸다.

 

“여보 두호를 찾았어요”

“그래? 두호를 찾았어요? 그 녀석 어디 있었데”

“지금 자고 있어요. 깬 다음에 물어보죠. 그런데 당신은 어딜 갔다 오시는 거예요”

“참, 나 형님 만났어요. 셋째 형님 말야”

“셋째 형님이라면. 흥남 철도국에 계시던 순국 아주버니 말예요?”

 

정 목사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말에 힘이 실려 있다.

 

“맞았소. 순국 형님을 저 역 앞에서 만났어요. 그리로 두호를 찾으러 갔는데 마침 역에서 나오는 형님을 만났어. 흥남 철수 때에 빅토리호 그 미 군함 타고 왔다는 구려”

“그럼 지금 어디 계셔요”

“흥남에서 함께 넘어온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하였데요. 저녁때에 이리로 오신다고 그랬어. 내가 약도를 그려주었지”

 

그 날 저녁 순국 형님과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은 자리에서 정 목사는 두호가 쓰리 꾼 소굴에 있었다가 무사히 돌아 온 것과 또 두호를 찾으려다 형님을 찾았으니 이게 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진 기적 같은 일이라고 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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