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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5)

jbhimr by  조회 수:36 2024.06.14 10:57

3. 대전으로 돌아와서

 

다시 만난 친구들

 

며칠 후 밤에 정목사가 가족예배를 드린 다음 말을 꺼낸다.

 

"이제 우리도 대전으로 돌아가자. 아직 치안상태가 좋지 않겠지만 빨리 교회로 돌아가고 싶구나."

"그래요 나도 지웅이와 영희가 보고 싶어요"

"게네들이 지금 대전에 기다리고 있기나 하겠니? 게네들도 피난 갔을 텐데"

 

진호가 말한다.

 

"어머니, 게네들 무사하겠지요? 죽지는 않았겠지요?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그래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우리가족을 이 우렁 산 밑에서 보호해 주셨듯이 지웅이와 영희네 가족도 하나님이 지켜 주셨을거야."

 

다음날 정목사는 정노인 방으로 들어가서 이제 대전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영감님, 이제 인민군들도 물러갔고 대전도 우리 국군이 다시 빼앗았으니 대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아직 위험할 터인데 조금 더 있으시지요."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 신세를 많이 져서 무엇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영감님과 동네 여러분 덕분에 저와 제 가족이 무사히 살 수 있었으니 이 은혜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것 갔습니다. 제 절을 받으십시오."

 

정목사는 정노인과 여러분에게 큰절을 하였다.

 

"진호야, 너도 큰절을 올려라"

 

두호도 덩달아 형과 함께 정노인과 다른 어른들에게 일일이 돌아가며 큰절을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정목사의 가정은 70일간의 우렁산 밑 송정마을 피난살이를 마치고 대전으로 향하였다. 정노인, 정씨 그리고 조장 김씨는 지게에 정목사의 피난살이 짐들을 짊어지고 함께 동행하여 주었다.

동우, 서달, 영식, 영웅, 북성이가 큰 길 까지 따라 나오며 두호와의 이별을 슬퍼하였다. 두호는 동갑내기 북성이를 서로 껴안고 우리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다.

 

 

B29의 융단 폭격으로 대전시는 그야말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은 황량한 폐허 그대로였다. 여기 저기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몇 몇 건물들만 덩그러니 그 날의 두려움을 말해주듯 서 있었다. 대전 시청 건물이 몰 골 사납게 반쯤 부서져 있었다. 역 앞 광장이 폭탄을 맞아 마치 큰 연 못처럼 깊게 파였다. 대전 역에서 얼마 안 떨어진 원동교회 앞마당도 폭탄을 맞아 깊게 파여 있고 교회 지붕도 사라졌으며 여기 저기 총알 자국이 빼곡이 박혀 있었다. 또 교회 옆 목사 사택도 부서진 모습으로 벽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피난 가기 전 마루 밑에 묻었던 고려자기와 책들도 사라졌다.

 

교회가 인민군 부대 본부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저기 인민군 시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부패한 냄새들이 코를 쥐게 하였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국방군과 미군이 대전을 점령 하였던 인민군간에 맹렬한 전투가 벌어졌었다. 게다가 미군 폭격기로부터 여름날 소낙비 쏫아지듯 폭탄이 떨어져다는 것이다. 이 전쟁 통에 군인들과 남아 있던 시민들이 5,000 여명, 많게는 2만 명 이상이 죽었거나 학살 당 하였다고 하였다. 6.25직전 대전 시 인구가 12만 명으로 당시에는 큰 도시였다.

 

아직은 많지는 않지만 여기 저기 피난 갔던 사람들이 들어와 천막을 치거나 부서진 집들을 고치고 있었다. 정목사는 군인들에게 말해서 우선 시체들을 치우고, 군용 천막을 얻어와 교회 지붕을 덮고 사택도 거처할 만하게 고치었다. 마당 한구석 흙구덩이에 묻혀 있든 종을 찾아 은행나무에 매달았다.

피난 후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정목사가 종을 치니 어디서 듣고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 아마도 아직 교회 문을 연 다른 교회가 없는 것 같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주일 예배였던가? 사람들은 한편으론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또 한편으론 기쁨의 찬송소리가 교회당 너머로 퍼져나갔다. 울고 웃는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정목사의 설교는 더욱 힘이 넘쳤다.

 

 

"멸공, 김정기대위 인사드립니다."

 

해방 전, 몇 해 전부터 정목사는 서울에서 고아원 원장으로 있었다. 그때 김정기 대위는 원아로 정목사를 아버지라 불렀고, 당시 정목사는 공부를 잘해 연희대학교 영문과를 다니고 있는 정기를 큰 아들처럼 사랑하였다. 정기는 고아원을 찾아오는 미군들 통역을 하였다. 또 미군정에 속하여 미군 통역을 하였다. 정기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정 목사를 찾아 왔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니, 정기 아닌가. 이거 반갑구나. 그래 전쟁에 고생 많았지?"

"저 보다 아버님께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저는 혹시나 어려움 당 하시지나 않으셨을까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살아 계신 것을 보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자, 교회로 들어가자."

 

정목사는 김대위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이렇게 살아 서로 만나게 해 주심에 대해서 감사하며 앞으로 김대위를 꼭 지켜주실 것을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정기형님, 정기형님?"

두호가 뛰어 들어와 김대위 품에 안긴다.

"오, 두호야, 그새 많이 자랐구나, 몰라보겠어."

김대위는 두호를 번쩍 안아 한 바퀴를 돈다. 고아원에 있을 때에 김대위는 친동생같이 두호를 업어주기도 하고 함께 공차기도 하면서 놀아주었다.

 

"지금 어디에 근무하나? 미군부대에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정목사는 김정기대위의 군복을 보고 그가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것을 짐작하였다.

 

"예, 대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에서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혹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정목사는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은데 하나님이 정기를 이때에 보내주셨다고 생각하였다.

김정기대위는 작은 가방을 열어 두호에게 초콜릿, 캔디, 껌, 과자를 한 아름 꺼내주었다. 두호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뜨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정기형님, 아니 김대위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호는 주머니 가득히 집어넣고 몇 번이고 꾸벅 꾸벅 절을 하였다.

 

두호는 당시 쉽게 볼 수 없는 미제 과자를 바지 주머니에 가득 집어넣고 사탕과 껌 초콜릿을 양 손에 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직 옛 동무들을 만나지 못해 자랑할 동무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곧 그 안타까움은 기쁨으로 변했다. 밖으로 뛰어 나온 두호는 행 길 저편에서 뛰어 오는 지웅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야! 지웅아"

"두호 야" 지웅이는 달려와 두호의 손을 붙잡으려 하다가,

"너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뭐냐?'

"응 이거 우리 형님이 가져다주었어. 우리 형님이 대위님이야. 미군부대에 있데"

"야, 너 좋겠구나. 어디 먹어보자"

"그래"

 

두호와 지웅이는 흙바닥에 앉아 초콜릿을 냠냠거리며 웃고 떠들며 먹었다.

한 아이가 옆에 다가와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지웅이가 그 아이를 보며,

 

"너 피난민이냐?

"응 "

"어디서 왔는데"

"원주에서"

 

두호와 지웅이는 원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막연히 저 북쪽 어디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 너도 여기 앉아 같이 먹자"

 

두호는 그 아이에게도 과자를 건네주었다. 아이는 허겁지겁 먹었다.

 

"너 배고팠던 모양이구나. 이거 더 먹어"

"근데 네 이름은 뭐냐 난 지웅이고, 얜 두호야"

"난 수길, 박수길이야"

"수길 이구나, 그런데 어디 사니"

"저 - 기"

 

수길이가 가르쳐 준 곳을 보니 교회마당 끝에 작은 하꼬방(판자집)이 있다. 한쪽 벽만 남은 집터에 나무판자를 덕지덕지 마치 종이 붙이듯 부쳐서 집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대전 시내 피난민들의 집이 대부분 그러하였다. 어떤 집은 깡통을 펴서 만든 깡통 집이고, 가마니를 두른 가마니집이 있다. 좀 나은 집이라야 나무 판대기를 붙여 만든 판자집이다. 교회 마당에는 폭탄이 떨어져 웅덩이가 생겼는데, 그 곳에 천막을 덮어 지붕을 삼은 웅덩이 집에는 정욱이란 아이가 살고 있었다.

 

"여기 정욱 이란 아이가 있어. 지웅아, 그런데 너흰 어디로 피난 갔다 왔냐? 먼데 갔었냐?"

"먼데 아냐, 식장산 아래에 있었어. 거기 우리 고모네 집이 있어. 아버지만 대구로 가셨다가 며칠 전 오셨어."

 

 

 

폐허위의 아이들

 

매일 같이 군인들을 실은 트럭들이 북으로 북으로 꼬리를 물고 올라갔다. 국군들이 줄을 맞춰 보무도 당당하게 군가를 부르면서 지나갔다.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 자거라”

 

두호, 지웅, 수길, 정욱, 아이들이 국군들을 따라가며 같이 노래를 부른다.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더 이상 좇아가기를 멈추고 군인들을 전송하며 환호하는 시민들과 함께 아이들은 펄쩍 펄쩍 뛰며 소리 높이 만세를 외쳤다.

 

아이들은 매일 같이 대전 시내가 좁다하듯 뛰어다니며 놀았다. 교회 앞 큰 길 가에 부서진 북한 T34 탱크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이 탱크는 아이들의 아지트이다. 아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는 전쟁놀이다. 어디서 부서진 총 자루를 주어들고 "탕 탕 " "따따따따" 쏘는 흉내를 내고 한 아이는 죽는시늉을 하였다. 폐허가 된 대전 시가지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때론 통행금지 싸이랜이 울리 때까지 놀았다.

아이들은 때때로 위험한 장난들을 하였다. 기관총알이나 대포알들을 주어다 앞머리를 뽑아 안에 있는 화약을 빼낸다, 이런 장난질을 치지만 누구도 말리는 사람들이 없다. 다 제각기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느라 아이들의 놀이에 신경 쓸 어른들이 없었다. 화약들을 땅에 길게 금을 그 듯 늘어놓고 불을 붙인다. 그러면 대포 화약들은 슛 슛하며 날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야단을 치지만 그때 뿐 이였다. 가위바위보 놀이로 탄피 빼앗기 놀이도 하였다. 두호는 소총탄피들을 모아 구멍을 뚫어 주렁주렁 목에 둘렀다.

 

어느 날,

그동안 수길이는 신문을 팔러 다녔다. 가끔 두호도 수길이를 따라 함께 신문을 팔았다.

 

"내일 아침 신문이요"

"내일 아침 신문이요"

"국군이 청천강을 넘었다는 호외입니다."

"호외입니다."

 

수길이와 두호는 길을 따라 외치며 뛰어 다녔다.

 

대전 역 광장에 커다란 폭탄 구덩이가 있었다. 빗물이 아래에 고여 있어 마치 작은 호수 같았다. 빗물에 쓸려 구덩이 가장자리가 무너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너진 흙 틈 사이에 작은 병 같이 생긴 물건이 보였다.

 

"수길아, 저게 무어냐? 무슨 잉크 병 같아 보이는데"

"가 보자"

 

두호가 뛰어가 잡았다.

 

"이것 봐 뚜껑이 있다"

 

두호는 뚜껑을 열려 한다. 그때,

 

"안 돼 수류탄이야"

 

수길이는 두호의 손에서 수류탄을 빼앗으며 미끄러져 구덩이 아래로 굴러 물속에 처박혔다. 그 순간에 쾅하는 소리가 나며 수류탄이 터지고 수길이의 작은 몸통이 수류탄의 불꽃 속에 묻혀 버렸다. 두호는 엉겁결 엎드렸다. 두호의 머리 뒤편에 파편을 맞았는지 피가 흘렀다. 여기 저기 옷이 찢어졌고 팔과 다리 그리고 턱에서도 피가 흘렀다. 두호는 정신을 잃었다.

 

두호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수길이가 괴뢰군이 버리고 간 수류탄이 터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길이가 자기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니 하루 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수길 아버지가 수길의 시체를 수습하여 가마니에 담아 보문산 어디에 묻었고 어디론가 떠났다고 하였다. 정 목사가 수길이 가족들이 떠날 때 붙잡고 만류했지만 “전쟁 통에 죽는 자식들이 어디 한두 아이입니까? 다 그 아이 팔자가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목사님, 마음 쓰지 마십시오.” 하면서 그렇게 떠나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정욱이도 집을 떠났다. 가출을 하였다. 역전에서 지게품팔이를 하는 아버지에게 지게 작대기로 두들겨 맞더니 가출 한 것이었다.

두호와 지웅이는 예전 만치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 트럭이 지나가면 다른 동리 아이들과 같이 소리치며 트럭을 따라 달리며 외쳤다.

 

"기브미 껌, 헬로, 기브미 초콜릿. "

"두호야, 넌 대위형님이 초코라이랑 과자랑 가져다주는데 위험하게 왜 따라 다니냐?"

 

진호는 동생이 그렇게 뛰어 다니는 게 영 못 마땅하여 야단을 치지만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어떤 때는 미군 차에 올라타고 가다가 회덕에서 내려 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 온 적이 있는데, 그 날 정목사는 두호가 미군트럭을 타고 갔다는 동네 사람의 말을 듣고 김정기대위에게 연락을 하며 두호를 찾았다. 정목사는 다 저녁 때 집에 돌아 온 두호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며 다시금 군인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어느 날 대전에 괴이한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한 여인이 목척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던 중에 뱀이 그 여인의 뱃속에 들어가 아이를 뱄다. 열 달 후 배가아파 적십자병원에 가서 아이를 났는데 몸은 사람인데 머리는 뱀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소문을 듣고 진상을 확인하려 병원 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병원의사가 나와 그런 일 없다고 헛소문이라고 말하였지만 소문은 더 확산 되었다. 두호도 지웅이를 불러 구경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어른들 틈에 병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였다. 큰길에 나오니 미군쓰레기 트럭이 달려가고 있었다.

 

“지웅아, 우리 미군쓰레기장 구경 가 볼까?”

“그래, 미국쓰레기장 가면 주을 게 많이 있어.”

 

가끔 두호는 지웅이와 학교 반 동무들과 함께 부사동 미군 쓰레기장으로 갔다. B29 비행기 폭격으로 깊게 파진 웅덩이에 미군 트럭이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 그러면 그 때를 기다리던 가난한 피난민이 우루루 몰려들어 쓰레기를 뒤집으며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이나 초콜릿, 사탕, 비스켙, 옷가지나 잡지책들을 주웠다. 재수가 좋으면 씨 레이션 박스를 통째로 주울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부사동 미군 쓰레기장엔 피난민으로 부쩍 거렸고 피난민 아이들도 모여들었다.

 

이 날도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와 쓰레기 더미를 뒤집고 다녔다.

 

“야, 이것 봐 새 깡통이야 기분 오케이다”

 

지웅이가 비프 통조림통을 주워들고 소리쳤다.

 

“지웅아, 미군 잡지야, 여자들이 옷 벗은 사진 좀 봐”

 

두호가 미군 잡지를 들어 보이니 한 큰 아이가 잡지를 빼앗았다.

두호는 김정기대위가 때때로 미군 부대에서 각가지 미제 먹거리와 학용품 등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미군 쓰레기장을 뒤질 이유가 없지만 피난민 아이들과 쓰레기장 뒤지는 재미도 있고, 이것저것 주어서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즐거움도 컸다.

 

“어? 영희 아냐? 지웅아, 저기 쟤가 영희 아니냐?”

 

조금 떨어진 곳에 부지깽이로 쓰레기를 들치고 있는 한 소녀를 보며 말하였다. 더럽고 여기저기 너덜거리는 옷을 입었으나 머리를 엉성하게 양 갈래로 따 내리고 얼굴도 더러웠다. 그러나 분명히 영희였다.

 

“영희야--”

 

지웅이가 영희 부르는 것을 두호가 말린다.

 

“부르지 마”

“왜?-”

“글세, 부르지 마”

“왜 부르지 말라고 그래, 분명히 영희잖아”

“그래, 영희야, 그런데 우리가 부르면 도망갈 것 같아. 봐라 지금 영희는 꼭 거지같잖아. 조금 있다가 영희 가는 것을 몰래 뒤 좇아 가자”

 

영희는 쓰레기 속에서 빵 조각, 햄 조각, 과자, 헌 미군 바지를 주어 부대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쓰레기장을 벗어나 보문산 쪽으로 간다. 곧 쓸어 질 것 같이 흔들거리는 영희의 작은 몸이 어깨에 맨 부대 자루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영희는 보문산 자락에 판자 집, 깡통 집이 빼곡한 골목길을 올라 거의 꼭대기에 아무렇게나 지은 것 같은 가마니 집 거적문을 재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집안에서 깨진 사발 그릇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년아, 금방 같다 오랬더니 왜 이제 오는 거냐.”

 

두호는 거적 대기 문을 살며시 들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영희 아버지가 술에 취했는지 뻘건 얼굴이 험상 굳게 일그러지더니 손에 든 막대기로 영희를 내려쳤다.

 

“아이구 엄마, 잘못 했어요 아버지----”

 

영희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다시 안 그럴께요 아버지---”

“엄마라구? 야 이년아 네 엄마가 누구 땜에 저렇게, 누구 땜에 저렇게 바보가 됐는데 엄마를 불러 엉 이년아---”

 

어둠 컴컴한 판자 집 구석지에 이불을 뒤집어 쓴 영희 엄마가 얼굴만 내 놓고 희죽 희죽 웃고 있었다.

영희 아버지는 또 막대기를 높이 들고 그 조그만 영희를 때리려 한다. 두호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돼요. 영희 아버지”

 

두호가 영희를 가로막고 섰다. 지웅이도 뒤따라 들어 왔다.

 

“어 이놈들은 뭐야. 너 놈들 누구냐?”

“저 두호에요. 얘는 지웅이구요”

“두호라구?--”

 

영희 아버지 김상술은 게슴츠레 눈을 떠 두호를 내려다보더니

 

“그러닌까 네가 정목사 아들 두호란 말이냐? 넌 자전거 집 아들 지웅이구?”

“예, 영희 때리지 말아요?”

“너희들 그동안 만나고 지냈냐?”

“아니요? 아까 미군 쓰레기장에서 영희 보고 뒤좇아 왔어요.”

“영희야 잘 있었니? 다른 사람들은 피난 갔다가 다 돌아 왔는데. 궁금했었어.”

“궁금했다고? 흥 너희들이 왜 궁금했냐?”

 

김상술은 횡 하니 가마니 문을 들치고 밖으로 나갔다.

 

영희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 갔었다. 어느 날 영희가 동생 기준이를 데리고 길에 나갔다가 동생을 잃어버렸다. 영희 엄마는 기준이를 찾아다니다가 그만 정신을 잃게 된 것이다. 김상술은 국제시장에서 지게 품을 팔다가 대전에 돌아 와 보니 중앙시장 쌀가게 셋집이 완전히 파괴되어있었다. 그렇게 보문산 언덕백이로 올라가 가마니로 집을 만들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영희가 어머니와 함께 원동교회를 찾아 왔다. 아버지가 사흘 째 집에 돌아오지를 않아, 영희는 걱정이 되어 두호를 찾아온 것이다. 두호는 아버지에게 영희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다음 날 정 순섭 목사는 경찰서에 갇혀있는 김상술을 찾았다. 술집에서 술에 취하여 옆 손님들과 싸움을 벌렸 던 것이다. 상대방이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정목사는 다친 사람을 교회 앞에 있는 삼성의원 문박사에게 치료받게 하고, 김상술의 신원을 보증하여 석방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교회에 데리고 와서 피난민을 구제하고 교회를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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