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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4)

jbhimr by  조회 수:36 2024.06.14 10:54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민군 부대 식량보급이 잘 안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는 어느 날 인민군 군관이 마을에 찾아와 정 노인을 불렀다.

 

"노인동무, 요사이 조달이 잘 안되어 우리 인민군 동무들이 잘 먹지 못하고 있소. 이 집 소를 잡아 인민군동무들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소."

 

인민군동무들에게 소 잡아 바치라는 것이었다. 누구 명령이라고 어길 수 있는가?

 

"예 그러믄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 당장 소를 잡겠습니다."

 

누렁이는 정노인 집에 큰 재산 이였다. 얼마 안 되는 논 밭 이지만 그동안 누렁이는 열심히 논 갈고 밭 갈고 정 노인 집에 없어서는 아니 되는 가족 같은 소인데 이제 인민군들에게 고깃국이 되기 위해 죽게 되었다.

동우, 서달, 북성, 그리고 두호와 경옥이는 누렁이가 내일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외양간 앞에 매달려 엉엉 울고 있었다.

 

"누렁이가 불쌍해, 누렁이가 불쌍해, 할아버지, 누렁이 죽이지마"

 

아이들이 울며 소리쳤다. 정노인은 싸리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말아 뻑뻑 피워 물었다.

 

다음날 아침 정노인은 누렁이를 소나무 아래로 끌고 갔다. 누렁이는 평소대로 밭에 가는 줄 알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따라 나왔지만 소나무에 칭칭 새끼줄에 묶였다.

조장 김씨가 커다란 곡갱이 자루를 들고 나왔다. 어제 왔던 군관동무와 내 건너 탄약고를 지키던 몇 몇 인민군들 그리고 읍내 마을에서 완장 찬 몇 사람은 지개를 지고 왔다. 형동무도 같이 왔다.

 

"형동무... 우리 소 죽이지 마 응"

 

아이들은 형동무를 보자 매달렸다.

 

형동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래그래 알았어"

 

그러나 자신 없는 목소리다.

 

"이 동무, 아이들하고 저쪽에 가 있으시오"

 

권총을 옆에 찬 군관동무가 형동무에게 명령하였다.

 

"얘들아, 나하고 저 쪽으로 가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 옆엔 콩밭이 펼쳐져 있었다.

 

"너희들 우리 땅 뺏기 놀이할래?"

 

그동안 형 동무는 아이들하고 여러 번 땅 뺏기 놀이를 하였다. 땅 뺏기 놀이란 바닥에 사각 모양으로 금을 거 양쪽 모서리에서 바둑 알만한 납작한 돌을 검지손가락으로 튕긴다. 튕겨간 돌이 한 뼘 정도 간만큼 땅을 차지하고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만일 한 뼘이 넘으면 상대방으로 치기가 넘어간다. 어떤 날에는 한반도 지도를 땅에 그리고 김일성 장군이 다 점령하는 놀이라고 소개하였다.

아이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둘러앉아 땅뺏기 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렁이가 소리 지를 때마다 아이들은 귀를 막았다.

 

소나무 밑에서 불쌍한 누렁이가 조장 김씨가 내려치는 몽둥이에 소리 지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조장 김씨는 엉엉 울면서 몽둥이를 내려 쳤다.

 

"에이 더 기다릴 수 없다"하면서 군관동무가 권총을 꺼내들고 소머리에 총을 쐈다.

 

읍내에서 온 청년들이 칼을 들이대고 소를 잡기 시작하였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쌕-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쌕쌔기 두 대가 날아 왔다. 송정 마을 하늘 높이 두 바퀴 돌더니 갑자기 내려 꼿듯이 소나무 골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팟팟팟팟 ...... 초가지붕 위 소낙비 내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며 총 알들이 땅에 박혔다.

사람들은 나 살려 라고 도망을 쳤다. 군관동무는 꼼짝 않고 서서 권총으로 쌕쌕이를 향하여 쏘아 댔다. 한번 총을 쏘아댄 쌕쌕이는 다시 떠오르더니 다시 내려 꼿듯이 총을 쏘아댔다.

아이들도 갑작스런 사태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팍 팍 팍 팍”

 

총알이 소나무 잎사귀 사이를 뚫고 들어 와 땅에 박히며 흙을 튕겼다.

갑자기 형동무가 벌떡 일어나더니 두호를 콩밭으로 냅다 밀어 쳤다. 그리고 두호 몸 위로 엎으러 졌다. 최사모가 두호야 하며 달려왔다. 또 다시 쌕쌕이의 총알이 날아들었다. 삼순이는 업고 있던 인옥이를 앞으로 안고 콩밭에 엎어졌다. 쌕쌕이는 세 번에 걸쳐 총을 쏘더니 멀리 날아갔다.

 

"형동무, 형동무"

 

두호가 엎어진 형동무를 밀치며 일어났다. 형동무가 옆으로 쓰러졌다. 형동무는 총에 맞아 그만 죽어 있었다.

 

"어머니, 형동무가, 형동무가 죽었어"

 

아이들도 달려 왔다. 형 동무는 두호를 살리고 자기는 죽은 것이다.

 

“만홍 오라버니!"

 

삼순이도 달려와 형동무 몸 위에 업으러져 울었다.

군관동무는 반듯하게 서서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다가 죽었다. 읍내에서 온 청년 한 사람도 죽었다. 사람들은 죽은 누렁이의 혼이 쌕쌕이를 불러와 원수를 갚았다고 수근 거렸다. 누구는 소나무 할매 저주로 인해서 군관이 죽었다고 하였다.

남아 있던 인민군들은 당가를 만들어 죽은 사람들을 각기 눕혀 들었고, 죽은 누렁이는 지개들에 나누어 짊어지고 가버렸다. 송정 사람들에게 누렁이 한쪽 다리를 남겨 주었다.

그 날 밤 소나무 골 사람들은 누렁이 다리로 오래 간 만에 고깃국을 끓여 먹었지만 두호와 경옥이는 입도 대지 않았다. 최 사모가 먹으라고 떠 줘도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도리질하였다. 정노인은 아예 싸리문 밖에서 하늘에 뜬 반달을 쳐다보면서 여전히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었다.

 

"곧 추석이 될 거구먼..."

 

그날 밤 하도 많은 눈물을 흘려 얼굴이 발갛게 부어오른 두호의 얼굴을 정목사는 물수건으로 닥아 주었다.

 

“아버지, 왜 어른들은 전쟁을 하나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두호야, 너도 동무들과 서로 다툴 때가 있지?”

“예 아버지”

“왜들 다투니?”

“서로 생각이 다르닌까요”

“그래, 어른들도 서로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가 보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과 저 북조선 사람들과 생각이 달라서 싸운단다.”

“우리 애들은 다투다가도 금방 다시 친해지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서로 죽이고 하잖아요. 다시 친해질 수는 없는가요?”

“아마 어려울 거다. 너무나 생각들이 다르거든”“형동무는 참 좋은 사람이예요. 그런데 죽었잖아요. 서로 생각이 달라도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좋은 사람들 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될 터인데, 형동무가 불쌍해요, 엉엉엉”

 

두호는 오늘 따라 말도 많고 너무 슬퍼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운다. 정목사는 그런 두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가슴이 아파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삼순이는 저녁 내내 장독 옆에 쭈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미군 폭격기가 하늘에 가득히 지나가곤 하였다. 그리고 쾅 쾅 어디선가 수 없이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조장 김씨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미군들이 인천을 점령하고 곧 서울을 탈환할거라고 말하였다. 지금 대전에 삐식구(B29) 미군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고도 말하였다. 정 목사는 걱정이 컸다. 대전에 있는 교회가 폭탄에 그만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아침 일찍이 정 목사와 진호 그리고 조장 김씨, 정씨는 우렁 산 너머에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 대전을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산으로 올라들 갔다.

얼마 전에 군 인민위원회에서는 산꼭대기에 방공호를 파라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자연스레 정 목사도 함께 어울렸다. 그 날도 마을 사람들과 방공호를 판다고 신고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미군 폭격기가 수없이 날아가더니 대전에 달기 똥 같이 폭탄을 쏟아 부는 것을 보았다. 완전히 대전이 초토화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오후, 인민군 셋이 정노인 집에 들어 왔다. 그리고 정 노인에게 갈아입을 옷을 내 놓으라고 말하였다. 정노인은 자신의 옷과 정씨네 집에서 한복 바지저고리를 가져다주었다. 인민군들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할머니에게 빨리 밥을 지어 오라고 재촉을 하였다 인민군들은 마침 바둑이가 마당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동무들 저기 가이 새끼가 있다."

 

그리고 바둑이를 잡으려고 하였다. 두호가 바둑이를 안았다.

 

"야, 가이 새끼 내 놓우라"

"싫어요"

"이 간나 새끼 죽어봐야 알간, 너 안내 놓으면 너부터 쏘아 불란다"

"그래도 싫어요"

 

두호는 바둑이를 꼭 안고 밖으로 도망을 첬다.

인민군들이 쫒아 와 두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두호는 바둑이를 훌쩍 내 던지며,

 

"바둑아, 도망가---"

 

바둑이도 뭘 알아들었는지 산 쪽으로 도망을 쳤다.

탕 탕

인민군 셋이 쫒아 가다가 총을 쏘았다. 바둑이가 푹 꼬꾸라졌다.

인민군들은 죽은 바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할머니 동무, 여기 나뭇가지 좀 가져오시오"

 

할머니가 나뭇가지를 가지고 오니 바둑이를 양 쪽 작대기에 걸고 털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두호는 울며불며 몸 태 질을 하니 최사모가 붙들어 방을 데리고 들어갔다. 두호의 입을 손으로 막고 울음을 그치라고 귀 속말로 말한다.

 

"두호야 너 자꾸 이러면 저들이 또 총을 쏠 거야. 지금 도망가고들 있어. 저들은 뵈는 게 없는 자들이야. "

 

두호는 영식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건너 마을에서 도망가는 인민군들한테 어느 집 온 식구가 총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두호야, 어떻든 우리는 살아서 대전엘 가야한다. 그러려면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단다 알았니?”

 

두호는 울음을 그치면서,

 

“어머니, 바둑이 불쌍해요. 바둑이는 내 동생 같은데 .... ”

“지금은 전쟁 중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야. 바둑이 생명도 소중한 것처럼 우리도 저 사람들도 사는 게 중요해. 오히려 저 사람들이 참 불상한 사람들이란다. 저 사람들도 언제 죽을지 모른단다. 저들도 살려고 도망가지 않니?”

"어머니, 빨리 대전에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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