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새가정사 원고)
아름다운 내일을 위하여 은퇴목사 전 병호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온 인구 조사 통계를 보니 2023년 3월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가 51,891,449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80세 인구가 102,370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 102,370중의 한사람이라고 하니 내가 여기까지 살아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심심치 않게 친구들의 부고 통지를 받으며 언제가 내 부고통지 역시 이렇게 핸드폰을 통해서 전해지겠지 하는 생각에 씁씁한 미소를 짓습니다. 솔직히 내 주변에서 들려지는 말들이 노년을 잘 준비하자, 웰 다잉 하기 위해 건강관리를 잘하고 생활 정리를 미리미리 잘 해 두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러니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잘 마무리 지을 것인가? 그것이 나 같은 늙은이들의 주 관심사입니다.
저는 고등학생시절부터 내일이 궁금했습니다. 내일에는 오늘 생각지도 못할 새로운 어떤 일들이 있을 것인가? 그것이 궁급했습니다. 저는 배재고등학교 2학년 때 4.19학생혁명으로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았습니다. 그 철벽을 무너뜨리는 학생들의 함성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광화문 앞에 쓰러진 어린 학생들의 주검을 보며 아!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움의 그 모습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내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 내일 이 나라는 아름다운 나라가 될 거야! 그래서 내일 아름다울 나라를 기대하며, 또 내일을, 또 내일을, 그래서 여기 80년을 살아왔고 또 나는 내일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내일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오늘을 삽니다. 그 아름다운 내일을 보기 전에 난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아름다운 내일을 보여주옵소서.”
나는 은퇴 후 귀촌비스름한 시골에 들어 와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들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한 여름 자영농 채소를 먹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그런데 채소를 씨 뿌리고 가꾸어키우는 일은 도시에만 살았던 나로서는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옆집 홀로 살고 계신 70이 넘은 할머니에게 물어보곤 하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 쉬지 않고 밭에서 일을 합니다. 키는 자그마하시고 얼굴은 늙어 주름이 깊지만 그 일하시는 모습에 나는 감탄해 마지않으며, 허리를 구부정 구부리고 호미질 하는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아들들이 이제 밭일 그만두고 편히 쉬시라고 말하는데도 시장에서 채소 가게 하는 막내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겠다고 그렇게 밭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그 늙은 어미의 정성이 허리를 두 번이나 수술하였음에도 복대를 두르고 하루 종일 밭일하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과연 사람들로부터 80넘은 이 늙은이를 보고 결코 아름답다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새벽부터 밭에 쭈구리고 앉아 아내와 더불어 풀을 뽑고 있습니다.
연세대 신학과와 연신원을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겠다고 서울 감신 4학년을 다닐 때였습니다. 채풀 예배 시 올겐을 치는 여학생의 그윽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녹아 채풀 시간 내내 그 여학생만 바라보았습니다. 그야말로 들에 핀 백합화보다 아름다워 하나님께 감사하며 목사님의 설교보다 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여학생이 같은 크라스인 것을 알고 항상 수업시간이면 그 여학생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나는 목회 45년을 하는 내내 자랑스런 목회였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피아노와 올갠연주를 때로는 성가대 지휘하는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매우 즐거운 목회였습니다. 이제 70이 훌쩍 넘고 함께 시골에 들어와 지금 제 옆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그야말로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내 아내를 보고 “어쩌면 옛날 모습 그대로 아름다우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네는데, 나를 보고는 “목사님 많이 늙으셨네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내일도 아름다운 아내의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내일을 보기 위해 오늘 나름대로 땀 흘려 보렵니다. 나에게 이제는 80도 넘고 하니 편하게 살라는 말은 언제 있을는지 모르지만 먼 미래나 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최근에 120여 년 전 호남지방에 선교활동을 한 미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관하여 공부를 하면서 깊은 감동과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20여 년 전이라 하면 당시 호남은 아직 근대화의 눈도 못 뜨던 때입니다. 당시 남장로교 젊은 선교사 부부들이 전라도 벽촌에 들어와 복음의 밀알들을 뿌렸습니다. 그야말로 자갈밭이요 가시덤불이 널려있는 땅에 마치 맨땅에 헤딩하듯 땀 흘려 씨앗을 심어갔습니다. 1894년 레이놀즈선교사와 드류의료선교사가 호남지역 선교답사를 하느라 발에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 또 물집이 생기도록 다니였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롬10:15, 사52:7)”. 그러다 선교사들은 어린 아들을 그 자갈밭에 묻고, 어린 딸을 그 가시덤불로 덮고, 마침내 그들은 지쳐 쓰러지며 “선교사의 일이 고난이 아니라 행복이었다.”고 말하며 선교지에 자신을 묻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의 삶은 아름다웠고 그들의 죽음은 고귀하였습니다. 죽기까지 충성한 옛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사역에 오늘 나는 부끄러워집니다.
아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래서 난 인생의 마무리를 쉬염쉬염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합니다. 나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아름다운 수고를 할 수 있다면..., “하나님, 지난 세월 잘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겁게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도 아니라, 내일이 궁금해서 오늘을 사는 나는 “하나님, 아름다운 내일을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