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과외 이성백선생
전방에서는 언제 멈추게 될 런지 전쟁의 기세는 여전히 세차게 타올랐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앞에 유엔군은 힘들게 싸울 수밖에 없었고 많은 국군들이 전사하였다.
그러나 후방의 아이들은 비록 판자 집, 깡통 집에서 꿀꿀이죽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지만 언제나 즐겁게 놀고 있었다.
“두호야 놀자 두호야 놀자”
지웅이가 창 밖에서 두호를 불렀다. 언제나 지웅이가 놀자고 먼저 불러냈다. 그러면 두호는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두호야, 애들하고 자치기하며 놀자”
“좋-지”
자치기 놀이는 두 가지다. 맨땅에 홈을 파고 한 뼘 작대기(새끼)를 비스듬히 놓고 다른 팔 길이만한 막대기(어미)로 새끼 끝을 때려 솟아오르면 어미로 쳐 가장 멀리 간 거리를 어미자로 재어 승패를 가른다. 그런데 그때 상대편이 그 날아가는 새끼를 잡으면 지는 것이다.
또 두 단 치기 자치기는 한 손안에 새끼와 어미를 함께 쥐고 새끼를 던져 어미로 두 번 쳐 새끼가 가장 멀리 간 거리를 재어 승패를 가른다. 그런데 이때 한 아이가 그 새끼를 붙잡고 도망가면 친 아이는 그 아이를 잡으러 뛰어가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마당에서 도청까지 뛰어가 마침내 잡으면 이긴다. 만일 도중에 친 아이가 포기하면 새끼를 잡아 도망간 아이가 이긴다. 실상 이 놀이는 위험하다. 만일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 새끼에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상처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놀래서 야단을 쳤다.
그 날도 교회 마당 은행나무 아래 땅에다 홈을 파고 새끼를 비스듬이 걸었다. 두호는 어미 막대기를 한 바퀴 돌아 쥐고 힘 있게 새끼를 내 쳤다. 새끼는 날아가면서 교회 마당을 질러 지나가던 한 남자 어른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어 큰일 났네, 두호야 도망가자"
그러나 두호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간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아저씨 잘못했습니다. 그만 놀다가...”
두호가 남자 어른 앞에 가 두 손을 모으고 정중히 잘못을 빌었다.
아저씨가 얼굴 가린 손을 떼니 뺨에 피가 났다.
“아저씨. 얼굴에 피가...”
아저씨는 손으로 피를 닦더니
“괜찮다. 그런데 넌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
“예 그건 양심에 어긋난 일이거든요”
“양심에 어긋난다고? 무엇이 양심에 어긋난단 말이냐”
“제가 잘못했는데 도망가면 그건 비겁한 행동이잖아요. 요 앞에 삼성병원이 있어요. 거기 가서 약 바르세요.”
“그래 너 참 착한 아이구나.”
아저씨와 두호는 삼성병원으로 갔다.
문의원 할아버지가 아저씨의 뺨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X자로 붙였다.
교회당 앞 계단에 두 사람이 앉았다.
아저씨는 손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마른 오징어를 꺼내어 반을 찢어 두호에게 주었다.
두호는 오징어 다리를 뜯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오징어의 쾌쾌한 냄새와 달콤한 냄새가 어울리는 맛이 두호는 참 좋았다.
“너 이름이 무어냐”
“두호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 교회 목사님이세요”
“그래?... 난 이성백이라 한다. 전쟁 전에 중학교 수학선생이었어”
“그러서요? 그럼 지금 어디 사세요?”
“음, 아직 집이 없다. 지금 대구에서 올라오는 길이야. 어디 여인숙에 머물까 하는데, 이 근처에 깨끗한 여인숙 있니?”
“있어요. 저기 좋은 여인숙 있어요. 내 친구네 집에요. 이쁜 누나들도 있어요”
“얘는, 누나들은 필요 없다. 그래 그 여인숙으로 가자”
두호는 아저씨를 수만이네 여인숙으로 안내하였다.
“저 한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학교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방 값 좀 싸게 해 주시지요.”
수만이 어머니는 장기 투수 객은 대환영이다. 더욱이 학교선생님이라고 하니 더욱 반갑다. 수만이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선생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이렇게 하시죠. 제가 아이들을 모아 올케요, 아이들에게 산수를 가르쳐주시지요. 그러면 방 값은 안 받겠습니다. 전쟁 통이라 아이들이 공부를 통 안 해요. 더더욱 산수는 전혀 몰라요.”
이렇게 해서 동리 아이들 다섯 명이 이성백선생님에게 산수과외 공부를 시작하였다.
어느 날 수업이 지루하다고 생각한 두호가 이 선생에게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선생님은 전에 어디 사셨댓어요?”
“그게 궁금했니? 나 서울에, 피난 갔다 가보니 집이 홀라당 다 타버린 거야”
“그럼 가족들은 요?”
“본래 내 고향은 평안남도 개천이란다. 해방 후 나 혼자 월남 하였어. 그러나 가족들 소식은 전혀 모르지. 전쟁이 끝나야 고향엘 가 볼 텐데...전쟁이 언제 끝날는지”
이 선생은 말끝을 흐리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선생님, 왜 어른들은 전쟁을 하나요?”
“글쎄, 아마도 어른들은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봐, 그래서 서로 땅을 많이 차지하려고 전쟁하는 게 아닐까?”
“그래요. 우리도 땅뺏기 놀이하다가 지면 되게 기분이 나쁘거든요? 전에 피난 가서 인민군 아저씨와 땅뺏기 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아저씨는 우리 비행기가 마구 총을 쏘는데 저를 구하려다 그만 돌아가셨어요?”
두호는 형동무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다.
“넌 그 인민군을 좋아 하였구나”
“예, 이만홍동무라고, 우리들은 형동무라고 불렀어요. 참 좋은 형이었는데 그만....그런데 어른들은 총을 쏴 죽이고 대포도 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지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거지가 되고, 선생님, 난 전쟁이 싫어요. 저기 판자집에 사는 친구들은 전쟁 전에 잘 살았데요. 제반 아이들 중에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반이 넘어요. 어른들은 참 나빠요. ”
“그래, 전쟁은 어른들 싸움이지. 그래, 어른들은 나쁘단다. 전쟁이 끝나려면 어느 편이 이겨야 하는데, 너는 어느 편이 이겼으면 좋겠니?”
“그냥 둘 다 이겼으면 좋겠어요”
“둘 다 이기다니, 어떻게 둘 다 이길 수 있냐?”
“어느 한 편이 이기면 진편을 다 죽일 거 아녜요?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저 이북에 우리 친척들이 많이 산데요. 그러면 서로 가족들을 죽이는 거잖아요. 우리는 한 가족인데....우리 사촌 형님도 전사하였어요.”
해주에서 피난 온 수만이가 말한다.
“나도 전쟁이 싫어. 내 두 형님이 다 전쟁에 나가 전사하였데. 그것도 큰 형님은 인민군으로, 둘째 형님은 국방군으로 싸우다 죽었어. ”
그뿐만 아니라, 수만이 아버지는 해주에서 순경이었는데 공산당에 붙잡혀 학살당하였다.
“그렇구나. 전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그냥 싸우는 수밖에”
“선생님, 전쟁이 끝나는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 있다고? 어떻게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니?”
“아주 간단해요. 국방군과 인민군이 서로 손 잡고 강강수월래 하는 거야요”
“얘는, 강강수월래 한다고 전쟁이 끝날 거 같으냐?”
“그러믄요, 지난번에요 학교에서 청군 백군 운동회가 있었는데요, 우리 청군이 이겼거든요, 그런데요, 선생님이 청군 백군 서로 손잡고 강강수월래 하라고 했어요. 우리 모두 이겼데요.”
“그래, 그러믄 되겠구나. 그런데 두호야, 어른들은 그렇게 못 할 것 같아, 산수문제 같지 않아서 답이 없단다.”
“근데, 선생님은 군대 왜 안가셨어요?”
“응, 난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단다. 난 색맹이거든”
“색맹이면 색을 구별 못하는 거에요?”
“그래, 난 붉은 색을 구분 못한단다. 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고 내가 하모니카를 불어 줄게”
이성백선생님은 산수만 잘 가르쳐 줄 뿐 아니라 때때로 옛 날 이야기도 해 주고, 하모니카도 잘 불고, 또 가수같이 노래도 잘 불렀다. 선생님이 부른 노래를 듣다가 두호도 따라 배워 불렀다.
1학기 마지막 시험에서 음악시험이 노래 부르기 시험이었다. 아이들은 동요도 부르고 군가도 부르곤 하였는데, 두호는 이성백선생에게서 배운 "비 내리는 고모령" 불렀다. 이선생님이 이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래미 피고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 “
아이들이 와 박수를 치며 좋아들 한다,
“땡, 두호야, 그만 불러라, 아이들이 그런 유행가 부르면 안 된단다”
선생님이 두호의 노래를 제지하였다. 그 날 선생님은 두호에게 ‘가’라는 점수를 주었다. 방과 후 가정 방문하여 최사모에게 두호가 유행가를 부른 것에 대하여 염려하는 말씀을 하였다. 선생님이 돌아갈 때에 최사모는 선생님의 자전거에 미국에서 보내 온 구제물자 한보따리를 실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간 후 최사모는 두호를 보고 씩 미소를 한번 보냈을 뿐이다.
활동사진
교회당 앞마당은 상당히 널찍한 공터라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지만 최근에는 활동사진(영화)을 상영하는 가설 영화관이기도 하다. 업자들이 공터를 빌어 영화관을 차린 것이었다.
밤이 되면 교회 마당으로 들어오는 양 쪽 골목을 포장으로 막아 입장료를 받았다. 교회당 문 앞에 있는 양 기둥 사이에 흰 휘장을 치고 마당 한 복판에 영사기를 설치하였다.
대부분 영화는 무성영화로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변사들의 구수한 입담으로 말을 하였다. 변사들의 입담에 따라 관객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환호성도 치르고 욕도 해되었다. 어느 날 밤 장화홍련전 활동사진이 상영되었다. 변사는 끈적거리는 입담으로 대사를 읊어갔다. 그는 일제 억압시대 낙화유수를 작곡한 김영환 변사의 흉내를 내었다.
“태연히 졸고 있는 푸른 하날은 고요히 요동두 없이 철산 고울 저물어 가는 봄빛을 그 가지에 슬피 여기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배 좌수의 딸 장화 홍련은 계모의 구박이 자심하야 밤이나 낮이나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계모의 독한 계략은 쥐를 잡아 껍질을 벗기어 낙태의 증거물을 삼아 빙설 같은 장화 몸에 누명을 씌워 가지고 배 좌수에 참수하였던 것이였던 것이었다......”
“아버지 문 밖 출입을 못하거든 제가 이 깊은 밤중에 어떻게 외가로 가라 합니까?”
“가문을 더럽힌 너 같은 자식은 일시라도 보기를 싫으니 어서 장쇠를 따라 외가로 가거라”
“그러나 속이어서 데리고 가다가 물 가운데 집어넣어 죽이려는 그 계략을 어떻게 알았으리오? 무정한 아버지의 선고를 받고 할 수 없이 장화는 마상으로 올라가니 어린 동생 홍련이는 언니 앞에 쓰러진다.”
“언니, 이 어린 동생 홍련이는 누구에게 의지하리오”
활동사진을 보던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아이구, 가면 안 되는데”
“야! 가지마 가면 죽어!”
“저런 나쁜 놈이 있나. 저런 놈은 그냥 기관총으로 쏴버려 해 엉!”
“홍련이가 불쌍해”
벌써 훌쩍거리며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는 여인들도 있었다.
다음 날 삼순이가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집을 떠났다. 활동사진 선생님이 영화배우 시켜준다고 하여 따라 간다는 것이다. 정목사와 최사모는 크게 걱정을 하며 돌아 올 것이라고 말 하였지만 그 후 삼순이의 소식은 다시 듣지 못하였다.
활동사진을 상영하는 마당이 바로 예배당 앞마당이라 밤마다 상영하는 활동사진을 두호는 친구들과 공짜로 보곤 하였다.
어느 날 ‘조로’라는 활동사진을 상영하였다. 조로는 멕시코의 악한 관리를 물리치는 용감한 검객이다. 검은 말이 앞발을 고추 세우면 검은 모자 검은 망토 검은 구두를 신은 조로가 긴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질렀다. 변사가 멋지게 조로를 소개하였다.
바람같이 말이 달리다가 새같이 날아 악당들을 물리치는 조로는 두호와 그 친구들의 영웅이 되었다.
다음날 낮에 제각기 보자기를 목 뒤에 매고 굵은 나무가지를 흔들어대며 서로 칼싸움 놀이를 하였다. 마당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담 장 위에 올라갔다가 팔을 벌려 내리 뛰기도 하고 조로를 흉내 내었다.
놀이에 취한 두호가 교회 마당 옆에 있는 담장 위로 조금 높은 전봇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 영화 확성기가 걸려 있다.
“두호야, 위험해”
이성백선생이 지나가다가 소리쳤다.
두호는 계속 전봇대 위로 올라가 겨우 두발을 디딜 꼭대기 위에 올라섰다.
“나는 조로다. 악당들을 물리치러 내가 왔도다. 으핫핫핫"
나무칼을 높이 들고 조로의 흉내를 내며 소리를 쳐댔다. 그러다가 두호는 중심을 잃고 전봇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성백선생이 전봇대 아래에서 떨어지는 두호를 받으면서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 날 저녁 최사모는 이선생을 집으로 모시고 돼지 불고기를 대접하였다.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이 녀석이 크게 다쳤을 텐데, 두호야 너 선생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냐?”
“감사합니다. 저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벌떡 일어서서 두호가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하하하 그 녀석 은혜를 갚다니.....”
선생님과 여러 가족들이 웃었다.
그러나 이 은혜 갚는 일이 얼마 후 있을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하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