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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3) 2024, 4, 8

jbhimr by  조회 수:0 2024.04.08 20:10

"우선 마루 밑에 숨어야 겠어"

 

정 목사와 진호가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바둑이 개집으로 몸 앞을 가렸다.

 

잠시 후 인민군들과 죽창을 든 사람들이 우루루 집 앞으로 지나갔다.

마당에서 두호는 북성이, 동우, 서달이 그리고 경옥이랑 흙장난을 하고 있는 척하며 사람들을 곁눈질하였다. 가슴에 '김일성 장군 만세'란 붉은 띠를 띤 한 청년이 마당으로 성큼 들어오더니 집안을 휘 둘러 보았다.

 

"야, 너그들, 수상한 사람 못 봤냐 엉"

 

눈을 치켜들고 손에든 죽창으로 마당을 탁 치며 소리를 쳤다. 아이들은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한다.

 

"수상한 사람, 산에 있는 것 못 봤냐 말이다. 엉?"

 

눈알을 크게 굴리며 째지듯한 목소리로 다시 아이들에게 겁을 주었다. 경옥이가 무서워 울기 시작하였다,

북성이는 고개를 들고 두호는 고개를 숙이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모모못... 봤시유"

 

경옥이는 더 크게 운다. 동우와 서달이도 울기 시작하였다.

 

"엥, 시끄러워"

 

그 청년은 죽창을 휘두르며 밖으로 뛰어 나갔다.

 

인민군 일행들이 산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조용해지자 정목사와 진호가 마루 밑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저 사람들이 다시 내려와 물을 것 같아. 여기... 마루 밑이 안전한 것 같은데... 마루 밑을 파고 여기에 숨어 있어야 겠어."

 

바로 정목사와 진호는 마룻장을 뜯고 그 밑을 파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구덩이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앞을 바둑이 집으로 가려놓았다. 다시 마룻장을 놓으니 감쪽같았다.

이 날 이후로 정목사와 진호는 아침에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가 밤이 되면 나오곤 하였다. 여름 날 무더위 속에 마루 밑에 숨어 있자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동리 사람들과 어울려 냇물로 내려가 함께 목욕을 하였다. 어떤 때는 인민군들하고 같이 목욕할 때도 있었지만 밤이라 인민군들은 동리사람이려니 하고 정목사와 진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만홍 인민군동무

 

어느 날, 점심을 먹은 다음 두호와 동네 아이들이 냇가로 가 물놀이를 하였다. 덤벙거리며 아이들은 개헤엄을 치기도 하고 소쿠리로 냇가 풀 속을 뒤지며 고기를 잡았다. 그때 한 인민군이 아이들에게로 다가왔다. 작은 키에 얼굴은 둥글 넓적하고 몸은 홀쭉하니 말랐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글거리며 아이들을 부른다.

 

"예들아, 너희들 볶은 콩 먹고 싶지 않니?"

"볶은 콩이요?"

"그래, 이리 나와 너희들에게 줄게"

 

아이들은 우루루 물 밖으로 나가 인민군에게 갔다.

 

"어린 동무들, 자 여기 볶은 콩 먹어라"

 

한 움큼씩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인민군 아저씨, 왜 우릴 동무라고 불러요?"

 

영식이가 물었다.

 

"응,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 동무라고 부른단다. 그리고 너희들도 날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고 인민군 동무라고 불러라"

 

아이들은 인민군 아저씨를 동무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 어색할 뿐이다.

 

"인민군 동무? 어째 이상하다.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면 안되요?"

"응, 난 아저씨가 아니야. 그럼...그냥 형 동무라고 부르면 어떨까"

 

형이면 형이고 동무면 동무지 형동무가 무언가.

 

"알았서요. 형동무"

 

이제부터 인민군 아저씨를 형동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형동무의 이름은 이만홍이고 나이는 스물 둘이라 하였다. 전쟁 전에 서울 남대문 시장에 있는 신발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였었다. 본래 집이 황해도 재령(載寧)이라 잠시 고향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인민군에 입대 하

였다.

 

"야, 나도 고향에 너희만한 동생들이 있단다. 너희들 보니 꼭 동생 보는 것 같다"

 

그 후로 아이들은 탄약고 앞으로 가서 형동무를 만나 볶은 콩도 먹고 또 옛날이야기도 들었다.

 

"너희들 김일성장군님 노래 들어 봤냐?“

“아니요”

“내가 불러 볼게,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 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그야말로 음치 노래지만 형동무는 끝까지 소리소리 지르고 손을 흔들면서 불러댔다.

 

“그런데 그 김일성장군이 누구요?”

"아니,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모른다니, 김일성장군님은 위대한 독립군 장군님이시다. 장군님은 일본놈들을 쫒아내고 우리나라를 독립시켜 주신 영웅이시다. 장군님은 나무 잎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가시기도 하고, 축지법을 써서 백 리 길도 한 시간 빵지게 가셨단다."

"와. 굉장하네요"

"정말 그래요? 그러면 도깨비들도 무서워하겠네요?"

"그럼, 도깨비들도 김일성 장군님만 보면 혼비백산하여 도깨비 살려 하고 도망들 갔단다."

"와. 도깨비 살려, 도깨비 살려"

 

아이들은 도깨비 흉내를 내며 이리 저리 뛰어 다녔다.

 

"그런데 전 못 믿겠어요,"

 

두호가 말하였다.

 

"뭐, 믿을 수 없다고?"

"그래요. 그러면 김일성 장군님이 하나님이래요?"

"세상에 하나님이 어딨다냐! 하나님은 없어. 말짱 거즛부리야. 미 제국주의자들이 가난한 우리 조선백성들 홀리려고 수작 부린거야 알 간 "

"아니예요. 하나님 있어요. 미국사람들이 수작부린 것 아니예요"

 

형동무는 두호를 의심스런 눈으로 째지게 바라보며,

 

"그런데 넌 누구냐, 이 동리 아이냐?"

두호는 가슴이 뜨끔했다. 괜히 말한 것 같다.

북성이가 말한다.

 

"옌 사촌이요. 대전에서 피난 왔어요."

"그래? 피난 왔어?"

 

형동무는 두호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았다.

두호는 그동안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시커멓게 탔고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이제 시골 아이 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야, 너 대전에서 예수쟁이들이 한 말을 들었는가본데, 이제 그런 말 믿지 말라. 이 세상에 김일성장군님이 바로 하나님 같은 분이야. 김일성장군님이 이제 조국통일을 이루실 거야 알았냐? 김일성장군님 만세!"

 

형동무는 두손을 번쩍 들고 세 번 만세를 불렀다. 형동무는 더 이상 두호를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의 사촌이라면 아마도 대전 시장 바닥에서 등짐 지고 사는 사람의 자식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볶은 콩을 입안 가득히 털어 넣으면서 영식이가 형동무에게 묻는다.

 

“형동무, 왜 인민군 동무들은 볶은 콩을 잘 먹나요?”

“야, 이거 얼마나 영양이 있는 줄 아니?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 줄게. 옛날 어느 시골에 바우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는 일찍 죽고 아버지가 새 장가를 갔단다. 그런데 새 엄마는 점복이란 아들을 데리고 왔어. 바우와 점복이는 자주 마당에서 씨름을 하는데 바우가 늘 이겼지. 이것을 본 새엄마는 점복이에게 쌀밥만 먹게 하고 바우에게는 콩밥만 주고 온갖 밭일을 다 시켰어”

“참 나쁜 엄마네요.”

“아버지가 새엄마의 행실을 눈치를 채고 무슨 계획을 세운지 알겠니?”

“맞아요. 아버지가 몰래 맛있는 것을 바우에게 사주었을 거에요”

“바우 아버지가 바우와 점복이를 불러다 팔씨름을 시켰어. 이기는 아이를 장날에 장에 데리고 가서 원하는 걸 사주기로 했어. 누가 이겼겠니?”

“바우가 이겼을 거에요”

“너 똑똑하구나. 그래 바우가 삼세판 다 팔 씨름에 이겼지. 점복 엄마가 ‘아니 우리 점복이가 왜 힘이 없는 거지요?’라고 말하니, 아버지가 말하기를, ‘당신이 바우에게 힘 쎄라고 매일 콩밥만 주었기 때문이야. 바우는 콩밥을 먹어 힘이 쎄진 거지’. 점복이 엄마는 ‘아이구 원통하라. 이제부터 콩밥은 점복이만 줄거야’ 라고 말하더란다. 그렇단다. 콩을 많이 먹으면 힘이 쎄 진단다. 우리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도 항일 빨지산 할 때 이 볶은 콩을 많이 먹어 왜놈들을 물리치셨단다.”

“그래요? 그럼 우리도 볶은 콩 먹었으니 팔씨름한번 해 볼래?”

 

아이들이 풀밭에 엎드려 서로 팔씨름을 하였다.

 

형동무는 그 후에도 김일성 장군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들은 흥미 없어 듣는 둥 만 둥 이였다. 다만 형동무와 때때로 물놀이도 하고 붕어와 가제를 잡거나 때로는 메뚜기나 개구리를 잡아 구어 먹기도 하며, 다른 인민군들도 가끔씩 나와 아이들을 귀엽게 보며 함께 놀아 주었다. 아이들 역시 집에서 된장이랑 감자랑 여러 채소들을 인민군들에게 가져다주곤 하였다.

 

 

어느 날 삼순이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형동무가 사리문 앞에 나타났다.

 

“여 동무, 나 좀 보시라요”

“에구머니, 깜짝이야!”

 

평소에 삼순이는 밖 같 멀리 까지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마당에 나오곤 하였다. 인민군이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에 늘 조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경옥이와 인옥이를 재우고 역시 조심스레 밖의 동정을 살피고 빨래를 널고 있는데 느닷없이 형동무가 나타난 것이다. 실상 형동무는 벌써부터 와서 사리문 밖에서 두호네 집안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 누구세요, 왜 오셨어요?”

 

삼순이는 놀라는 가슴을 붙들고 간신히 더듬어 말을 하였다.

 

“저 두호 있습니까?”

“두 두호는 애들하고 산에 갔는데요”

 

최사모와 아이들 그리고 이웃 사람들은 뒷산에 밭을 개간하기 위해 올라가고 동리는 마치 텅 빈 것처럼 조용하였다.

 

“그런데 여 동무는 누구십니까?”

“저 전 두호 누이입니다.”

“오, 두호 누님동무시군요. 전 이만홍이라 하는데요 아이들이 형동무라 합니다. 핫핫핫”

 

실없이 고개를 저치며 웃는다.

 

“훗훗...네..”

 

삼순이도 입을 가리고 웃는다.

 

“왜 웃으십니까? 뭐 제 얼굴에 무슨 것 묻었습니까?”

“아니예요. 두호가 형동무에 대해서 말해주어서...”

“두호가 무슨 말 했습니까? 내 욕을 했습니까?”

“아니예요, 인민군 동무가 있는데 자기들하고 잘 놀아준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두호는 삼순누이에게 형동무와 놀던 예기를 그 동안 자세히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 생김새가 꼭 둥굴 넙쩍한 호박 같이 생겼는데 노는 것은 꼭 어린애 같다는 말까지 하였다. 평소에 인민군을 무서워한 삼순이는 형동무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두호로부터 들어 왔던 터라 마음이 안심되었다.

 

“그래요? 그 녀석, 대전서 피난 왔다구요”

“예”

“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나 곧 전쟁이 끝날 겁니다. 전 고향이 재령입니다. 재령서 인민군에 입대했지요”

“그러세요? 전 집이 개성이예요”

“그러면 내 고향과 가까운 곳이네요. 개성 지나 재령 아닙니까”

“제 이모님이 재령에 사세요. 무료진료소의 간호원이예요. 저도 몇 번 이모님 뵈러 재령엘 가봤어요”

 

재령 무료진료소는 천주교회에서 운영하던 성심의원 이였는데 해방 후 공산당이 접수하였던 것이다.

 

“그래요? 그 무료진료소에 나도 치료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삼순이와 형동무는 옛 고향동무 만난 듯 반갑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편 삼순이는 지금 마루 아래 정목사와 진호가 숨어 있어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래서 말을 하면서 삼순이는 천천히 뒷걸음 질 하며 형 동무를 사리문 밖으로 인도하였다.

 

“오늘은 구름이 껴서 그런지 시원하네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두호를 찾으세요”

“저 된장을 좀 얻을까 해서요, 매일 소금국 끓여 먹자니 먹을 수 없어요.”

“어떻게 소금국을 먹어요? 제가 한 바가지 가져 올 께요.”

 

삼순이는 장독대에 가서 된장 한 사발과 고추장 한 사발을 떠서 가져 왔다.

 

“어이구 이렇게 많이, 여 동무는 마음씨도 참 곱습니다. 고추장 까지도 주시고. 그럼 저 안녕히 계십시오. 여 동무, 참, 여 동무 이름은 뭐라 합니까?”

“삼순입니다”

“삼순동무, 또 보겠습니다.”

 

형동무는 거수경례를 하며 뒷걸음치다 내려갔다. 그러나 그 후 삼일이 멀다 하고 두호네 집을 찾아 왔다. 처음엔 두호를 부르다가 이제는 삼순동무를 부르며 찾아 왔다. 같이 깻잎도 따고 고추도 따고 서로 만남이 자주 있게 되니 삼순이도 싫지는 않았지만 마루 밑에 숨어있는 정목사와 진호가 걱정이다. 그러나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안았지만 새벽을 깨우듯 날이 밝아지는 이른 아침에 형동무가 불쑥 찾아왔다. 그는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와 “삼순 동무 있습니까?”하고 불렀다. 방안에는 정목사 가족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일찌감치 마루 밑에 들어가 숨어야 하겠기에 정목사 가족들은 언제나 아침 여섯시 되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하였다.

 

“형동무 왔나봐”

 

두호가 방문을 열어 재치고 뛰어 나갔다. 이어 삼순이도 나갔다.

 

“왠 일이세요. 이렇게 일찍이...”

 

정노인과 할머니도 왠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왔다.

 

“저... 삼순동무와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일찍 무슨 말을 하려고요? 저 밖에 나가서 말씀 하시죠”

“그것이 좋겠소. 나갑시다. 두호는 따라오지 말아라”

 

형동무와 삼순이는 밖으로 나와 송정 앞까지 왔다.

형동무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어둡게 찌푸려 있었다.

 

“삼순동무, 난 어제 밤 한 잠도 못 잤습니다. 난 다 알고 있습니다.”

 

삼순이는 가슴이 콩콩 뛰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실은 그동안 내가 두호네 가족들을 정찰하고 있었습니다.”

“정찰이라뇨 뭘...”

“두호의 아버지와 형이 마루 밑에 숨어 있다는 걸”

“아!...”

 

삼순이는 기절할 뻔 몸이 휘청 넘어지려 하니 형동무가 붙잡았다.

 

“여기 계단에 앉으시죠. 그리고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난 그동안 두호가 보통 시골아이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대전에서 피난 왔다고 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정찰을 하였던 것입니다. 실은 나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는 정찰병입니다. 두호 아버지와 형이 마루 밑으로 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삼순동무를 만나면, 삼순동무는 나를 만날 때 마다 의도적으로 마당에 있지 아니하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그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난 삼순동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고향 누이동생 같이 생각하다가, 어느새 삼순동무가 내 마음 한가운데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아..훅흑..”

 

삼순이는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날 찾아 온 것이 우리 집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던가?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하는 가? 인민군 동무가 날 좋아한다고 하니 이 어쩌면 좋은가? 또 정목사님은 어찌 될 것인가 머릿속이 하얘지며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어제 밤잠을 못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호 아버지를 잡아 갈 것인가”

“안돼요, 그러면 목사님은 죽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아, 목사였군요. 목사는 인민의 적입니다. 더군다나 살려둘 수 없습니다.”

“안돼요, 살려 주세요 제발...”

 

삼순이는 계단 아래로 무릎을 꿇고 형동무의 발을 붙들며 머리를 조아렸다.

형동무는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안되오, 나는 반동분자들을 색출하고 이 나라를 인민의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삼순동무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소? 가족도 아니면서.”

“아닙니다. 지금은 한 가족이에요. 전쟁 통에 부모님 잃고 대전에서 거지처럼 떠돌아다녔어요. 그런 저를 거두어 주시고 친 딸 같이 돌보아 주신 은인이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한참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형동무가 결정을 내렸다.

“좋소,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두고 보겠습니다. 곧 전쟁이 끝날 것 이닌까요. 삼순동무, 이렇게 합시다. 난 모르는 걸로 하겠습니다. 지금처럼 계속 마루 밑에 숨어 있도록, 삼순동무도 내가 모르는 걸로 가족들에겐 말하지 마십시오. 만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 도망을 간다면 난 곧 잡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삼순동무 알겠습니까?”

“예 예 고맙습니다. 만홍동무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삼순이는 형동무에게 꾸벅꾸벅 절을 하였다.

 

“실은 어제 밤 나는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두호 아버지를 잡아가면 삼순동무가 얼마나 슬퍼할까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제 마음에 그 무엇보다 삼순동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삼순동무”

 

형동무 역시 삼순이 앞에 무릎을 꿇고 삼순이의 두 손을 꼭 잡아 자기 가슴에 품었다.

삼순이는 심히 당황스런 마음으로 더욱 고개를 숙였다.

 

“형동무 여기서 뭘 해, 누이는 왜 울고 있어?”

삼순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두호는 슬금슬금 정자 가까이 다가와 소리를 쳤다.

 

“어, 두호야 별거 아냐, 그럼 난 이제 가보겠습니다.”

 

형동무는 바삐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

삼순이는 한동안 정신을 잃은 듯 멍하니 서서 형동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누이야, 무슨 일이야. 왜 울었어, 형동무가 뭐라고 했어?”

“아니, 아니야, 두호야 들어가자.”

 

삼순이의 눈은 울어 붉게 물 들은 것이 방금 떠 오른 햇빛에 더욱 붉었다.

 

“누이 눈이 꼭 토끼 눈 같아. 그런데 슬픈 토끼 눈이야.”

 

두호는 고개를 저으며 삼순이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갔다.

삼순이는 정목사와 최사모에게 형동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해서 울었다고 말하였다. 정목사는 아마도 고향을 떠나와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삼순이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더 이상 깊이 마음을 주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요즈음 부쩍 하늘에 쎅쎅이가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멀리 하늘에서 북한 미그기와 쎅쎅이가 공중전하는 것이 보였다. 쎅쎅이는 하얗고 해 빛에 반짝거리며 얼마나 빠른지 쎅 하고 지나갔다. 미그기는 검정 색으로 무섭게 보였다. 서로 꼬리를 물 듯 곡예 하듯 하늘을 빙빙 돌며 총을 쏘아댔다. 아이들이 흰 비행기 이겨라. 검은 비행기 져라 하면서 응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인민군이 보이면 우리 편 이겨라하고 소리쳤다.

 

"야, 우리 편이 어느 편이냐"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검은 비행기요"

 

그러나 아이들은 쌕쌕이를 응원하였다.

쎅쎅이에게 기관포를 맞아 미그기 한대가 꽁지에 연기를 내 뿜으며 낙엽처럼 떨어지니 아이들은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한동안 인민군이 이기고 있다고 선전하던 확성기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수군거리며 인민군들이 후퇴하고 국방군이 이기고 있다고 하였다.

밤마다 두호네 가족들은 무신론자 공산군이 물러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조용히 기도하며 예배하였다. 두호도 인민군이 물러가고 하루속히 대전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지웅이와 영희 그리고 여러 동무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밤이 되면 마당에 겻불을 피워놓고 모기를 쫓으며 두호는 아이들하고 밤하늘의 별들을 새어 보았다.

 

별 하나 나하나 별 둘 나둘 별 셋 나 셋,

"얘들아 우리 노래 부르자"

"무슨 노래, 우린 노래 부를 줄 모른다"

"그럼 내가 부를게,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그 노래 참 재밋다. 우리에게 가르쳐 줘"

 

북성이가 말하였다.

 

"좋아 그럼 따라해 봐, 도도솔솔라라솔 파파미미레레도, 따라해 봐"

"도도솔솔이 뭔 말이냐,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고 했잖아"

"너 도레미파솔 이거 모르냐? 아이구 그럼 이것부터 가르쳐 주어야 겠구나. 다시 따라해 봐. 도레미파"

 

아이들도 따라한다 "도레미파..."

한 여름밤 음악학교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너희들은 저 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니?”

“무슨 생각을 하다니. 그냥 별이다 하고 생각하지 넌 무슨 생각을 하는데”

“난 말이야. 저 별들 너머에 하늘나라가 있는 것 가태”

“하늘나라라고? 저기에 무슨 하늘나라가 있어?”

“그래. 하늘나라가 있어. 봐라, 저 별들은 하늘나라에 전등불 켜진 거라고 생각해”

“그러고 보니 꼭 전등불 켜진 것 같구나. 언젠가 밤에 산에서 멀리 대전 시내를 내려다보니 전등불이 별 같이 반짝이더라.”

 

두호는 하늘나라에 저렇게 전등불이 많이 켜져 있다면 상당히 큰 도시일 것이고 그리고 하늘나라 도시는 상당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한다.

 

“난 말이야, 언제가 꼭 저 하늘나라 도시에 가 볼 거야. 거기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거야.....

자! 우리 다시 노래 부르자.”

 

아이들은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우고 마당에 둘러앉아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며 밤하늘의 별을 세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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