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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2) 전병호 2024년 4월 1일

jbhimr by  조회 수:0 2024.04.01 19:22

 

 

정목사와 진호 그리고 두 사람이 지게를 지고 뒤에 따라 왔다.

 

“여보, 이 영감님이 사는 마을로 갑시다. 영감님이 함께 가자고 그럽니다.”

 

한분은 노인이고 또 다른 이는 그 노인의 아들이었다. 두 사람의 지게에다 피난 보따리들을 나누어 짊어졌다.

 

“한 번 더 와야 할 것 같은데”

 

노인이 말하였다.

피난 짐이라야 이불, 몇 개 옷 보따리, 쌀자루, 그릇 몇 개. 책 보따리, 그리고 손재봉틀이다.

 

“그럴 것 없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가면 됩니다. 일부는 여기다 두고 가지요.”

 

두호는 책가방을 메고 가벼운 옷 보따리 하나를 들고 따라나섰다. 두호네 가족들은 노인을 따라 산길로 올라갔다. 어둡지만 별빛이 밝아 길을 가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일이라 힘이 들어 두호는 씩씩거렸다. 경옥이가 다리 아프다고 짜증을 내었다. 삼순이가 경옥이를 업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걸어가니 산 중턱에 초가집이 보였다. 다음날 보니 초가집 여럿이 서로 이웃하여 있었다. 본래는 십여 가구가 살았는데 해방 후 읍내로 이사들 가서 지금은 네 가구만 남아 살고 있다.

 

동이 터 오는 새벽에 최 사모가 정 목사를 깨웠다.

 

“여보, 여보, 여기에요”

“뭐가 여기요?”

“바로 하나님이 알려주신 피난처가 여기란 말입니다”

“뭐요?”

 

정 목사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가 보세요”

정목사와 최사모는 밖으로 나와 아직 어둠이 깔려 있는 뒷산을 바라보았다.

 

“저기 보세요. 저 산이 하나님이 알려준 그 산 이예요”

“그 산이라니요?"

“지난 번 교회에서 기도 중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산 있잖아요? 글쎄, 새벽녘에 희미하지만 무슨 웅 웅 하는 소리가 나서 대포소리인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포소리가 아니었어요. 이상해서 밖에 나와 산을 보니 웅웅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뭡니까? 어둡지만 꼭 그때 보여 주신 바로 그 산이란 말입니다”

“아! 그렇구먼.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로 마련해주신 곳이 이곳이란 말이군요.”

 

최사모와 정목사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아침에 주인 할머니가 마루에 밥상을 차렸다.

 

“시골이라 먹을 것이 이것밖에 없시유. 햇보리로 지은 밥인데유, 잡수실 수 있는지. 난리 중에 제대로 밥도 못 먹었지유?”

 

인심 좋게 생기신 할머니께서 부끄러운 듯이 말하였다. 감자를 섞은 보리밥과 된장국 그리고 생 고추와 고추장이 전부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최사모는 할머니께 머리를 숙여 크게 인사를 하였다.

 

“은혜는 뭘 유. 보아하니 도시에서 귀하게 사신 분 가튼데, 난리 통에 고생이 많아유. 염려 마셔유. 여기는 산중이라 안심해도 될 거유”

“야, 감자다!”

 

두호가 보리밥에서 감자를 골라먹으니,

 

“나도 감자 줘”

 

경옥이가 감자 더 달라고 보채였다.

 

아침상을 물리고 조금 후 이웃 집 어른들이 왔다. 지난 밤 짐을 날라다 준 정노인과 뒷집에 큰아들 되는 정씨, 그리고 박씨와 다리를 저는 조장 김씨이다. 조장 김씨는 일제강점기 말기 징용에 끌려가 일본 어느 탄광에서 일했는데 당시 조장을 하였다. 그는 편지에 자기가 조장을 하고 있다고 써서 사람들이 조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탄광에서 화차를 밀다가 발목뼈가 부러졌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노인은 정목사와 통성명을 나누며 우리 같은 정 씨이군요 하고 반가와 하였다. 그런데 실은 한문으로는 서로 다른 성 이였다. 정노인은 곰배 丁(정)씨이고 정목사는 정나라 정(鄭)씨 이였다. 그러나 그 후 정노인은 사람들에게 대전 살던 친척이 난리 통에 피난 왔다고 소개하곤 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아직 마음을 못 정했습니다.”

“괜찮으시면 난리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사시지요.”

“그래도 될까요?”

“암뇨, 우리 같은 정씨 아닌가요. 염려 마십시오. 이곳은 외진 곳이라 인민군들도 잘 오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 생각한 말이라는 것이 곧 드러났다.

며칠 후 인민군들이 마을 앞 철길 건너 편 산자락에 사람들을 동원해 토굴을 파고 인민군 탄약부대가 주둔하였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으니 정 선생님은 숨어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산 위로 올라가면 우렁 굴이 있습니다. 낮에는 그곳에 숨어 있어야 할 겁니다”

 

조장 김씨의 말이다.

 

“우렁 굴이라뇨?”

“저 뒷산에 올라가면 작은 굴이 있지요. 바람이 불면 그 굴속으로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웅 웅 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새벽에 그 소리 들으셨죠? 그래서 우렁 산이라고 부르지요”

 

정 목사는 속으로 아내가 새벽에 한 말 그대로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피난처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저희 가족은 그저 여러 동리 분들의 선처만 바랄 뿐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 저 건넌방을 좁지만 잠시 쓰시고.... 그렇지, 건넌방 뒤에 붙어 있는 헛간을 방으로 고처 쓰면 될 것이구먼,"

 

정노인의 말이다. 전에는 방으로 사용하였었는데 지금은 헛간처럼 쓰고 있었다. 바로 그 날 오후부터 헛간을 대충 방으로 고처 꾸미고 건너 방과 이어지게 하였다. 밖에서 보면 언뜻 대나무 숲에 가려 그곳에 방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동리는 비스듬히 내려가는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다. 집 앞으로 콩 밭이 양쪽으로 있고 주변에 옥수수를 심었다. 콩 밭 왼쪽에 작은 공지가 있는데 이곳이 동리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공지 한복판에 300년 된 큰 소나무가 서 있고 주변에 여러 소나무들이 둘러 서 있어 넓은 그늘이 공지를 감싸 안고 있어 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송정마을이라고 부른다. 공지 한 모퉁이에 송정(松亭)이라고 부르는 정자가 있어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그리고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앞에 큰 내가 흐르는데, 비가 조금 오기만 해도 곧 물이 차올라 아이들 키를 넘었다. 그러나 비가 안 오면 깊어야 아이들 허리 아래로 흐른다. 사람들은 조금 아래쪽으로 얼기설기 밧줄로 묶은 소나무 다리를 건너 다녔다.

이곳은 한 여름철 낮이면 아이들의 물놀이 터가 되고 밤이면 동리 사람들이 나와 목욕을 하였다. 내 건너 산 아래 호남선 기찻길이 있다. 기차 길 옆 산자락에 굴을 파 인민군 탄약고로 사용하면서 부터 맘대로 목욕할 수 없게 되었다.

 

정목사와 진호는 낮에는 우렁 굴에 숨어 있다가 밤이 깊어야 집으로 내려왔다.

그동안 인민군이 이 작은 동네로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별반 의심하지는 않았다.

두호는 이 산 동네가 너무나 좋았다. 그동안 서울에서 그리고 대전에서 살다가 이렇게 송정 산동네에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동무들과 놀았다 이웃에 사는 박씨에게 사 형제 아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사형제 집이라 불렀다. 작년 말에 늦게 딸을 낳았지만 여전히 사형제 집이라 불렀다. 갓난아기 위로, 다섯 살 남생(南生)이, 여섯 살 동우(東宇) 와 서달(西達)이는 쌍둥이다. 일곱 살 북성(北星)이는 두호 와 동갑이라 제일 친하였다. 북성이 어머니가 태몽 꿈에 북극성이 치마에 떨어지는 꿈꾸었다고 해서 북극성의 극을 빼고 북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그 후 차례대로 아들들 이름에 동 서 남 북을 붙였다. 막내딸은 아직 이름이 없었는데 정목사가 ‘이레’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로 피난처를 예비해 주셨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조장 김씨 집에는 열한 살 영웅과 아홉 살 영식이가 있다. 영웅이는 나이가 제일 많지만 키가 크지 않고 좀 어둔하다. 동생 영식이가 더 키가 크고 튼튼해서 항상 대장 노릇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조장 아들이 대장이라고 칭찬해 주면 조장 김씨는 기분이 좋아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절룩거리며 추는 춤에 사람들은 배꼽 잡으며 웃었다.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온 몸을 흔들어 대며 꼽추 춤을 추었다. 조장 김씨는 참 마음씨가 좋아 아이들과도 곧잘 놀아주곤 하였다.

 

두호가 아이들과 함께 공터 소나무 아래에서 ‘말타기’ 놀이를 하자고 하니 아이들이 여기서는 말타기 놀이하면 안 된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두호야, 이 소나무아래에서 말타기 놀이하면 소나무 할미가 싫어한단다.”

 

“소나무가 싫어하다니요. 소나무가 알기나 하는가요? 뭐”

“알다마다. 이 소나무는 특히 말 탄 사람을 아주 싫어하는 나무란다.”

김씨 아저씨는 송정 돌계단에 앉아서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문다.

 

“두호야, 이 소나무가 여자이겠느냐 남자이겠느냐”

“나무가 여자 남자가 어디 있어요?”

 

 

두호가 말하였다.

 

“암 있고말고, 두호야. 이 소나무는 여자란다. 그것도 300살 할매란다”

“와, 그렇게 나이가 많은가요?”

 

두호는 신기해서 입도 다물지 못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싱글거리며 웃고 있다.

 

“얘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두호 네가 모르니 내가 말해 줄께. 옛날부터 아기 못 낳는 아낙네들이 이 나무 밑에 와서 치성을 드리면 아기가 태어나곤 하여 많이 찾아 왔단다. 그래서 이소나무를 삼신 할매 소나무라고 불렀다. 15년 전인가, 일본 군수가 말을 타고 마누라와 함께 이곳에 왔었단다. 마을 여인들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보고 군수 마누라가 깔깔 거리며 비웃었단다.

 

“이까짓 소나무가 무슨 신수라고 여기다 절을 해요. 우리 고향 다가마쓰(高松)에 가면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하잖아요? 정말 조생징은 미개하기 그지없어요. 호호호”

 

이렇게 비웃었단다. 그런데 잠시 후 군수 마누라가 갑자기 배를 움켜 지고 “이이고 배야”하면 말에서 굴러 떨어진 거야. 군수마누라는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그로인해 낙태를 했어. 군수는 너무 화가 나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 소나무를 자르려고 도끼질을 했지. 여기 이 도끼 패인 자국보이니? 그때 도끼질 한 자국이여. 그런데 갑자기 도끼자루에서 도끼가 빠져나와 군수가 타고 있는 말목을 때린거야. 깜짝 놀란 군수는 말에서 굴러 떨어져 허리가 부러지고 그만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어. 그때부터 이 나무 밑으로 말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단다. 그러니 여기서 말 타기 놀이 하면 어찌 되겠니?“

“아이고, 큰 일 날 뻔 했네요. 그 일본 군수는 천벌 받았어요”

 

두호는 나무에 절을 하며 손은 비비면서,

 

“소나무 할머니, 절대로 나무아래에서 말 타기 놀이를 하지 않겠어요”

“하하하, 무서워할 것 없어,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으닌까. 그러나 그 후로 아기 달라고 치성 드리러 온 여인들도 없었지. 오히려 임신한 여인들이 이 나무 밑을 지나가면 낙태한다는 말이 있어 우리 동네로 오지도 않는단다.”

 

 

어느 날, 해가 쨍쨍 쬐는 날, 인민군 셋이 두호네 집으로 들어 왔다. 김 노인과 할머니는 밭에 나가고, 최사모와 삼순이는 먼발치에서 이미 그들을 보고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인민군 셋이 마루에 걸터앉더니 두호 보고,

 

“야, 물 한바가지 떠 오라”

 

두호는 부리나케 우물로 달려 가 물 한바가지 떠가지고 왔다.

인민군들이 돌아가면서 물을 마시더니,

 

“야, 시원하다. 물맛 좋아”

얼굴이 곰보인 인민군이 마루 끝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경옥이를 보고,

 

"야, 이 꼬마 아기씨 동무 보라. 고거 참 이쁘게 생겼구먼"

"얘, 너 이름 뭐니"

"경옥이"

"이름도 이쁘구나"

"너 노래 한번 불러 봐라. 노래 잘 부르면 이 아저씨가 상 줄 테다"

"정말 노래 잘 부르면 상 줄 거야?"

"그래 어디 노래 불러봐라"

 

다른 인민군도 재촉을 하였다. 두호는 큰 일 났다 싶어 인민군 뒤에서 손을 저으며 부르지 말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경옥이는 상을 준다는 바람에 발딱 마루 위에 일어서 두 손을 앞에 쥐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노래를 불렀다.

 

"예쑤 싸랑하시믄 거룩카신 마릴세 우리들은 약카나 예쑤 꿘쎄 만토다."

 

두호는 깜짝 놀라 달려가서 경옥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인민군들은 잘 부른다고 손뼉을 치다가,

 

"야, 너 뭐하니 왜 못 부르게 하니?"

"아저씨들이 잘 부른다 잖아. 오빠 저리가"

 

경옥이는 두호의 손을 밀치고 계속 노래를 부른다.

 

"날 싸랑하심 날 싸랑하심 날 싸랑하심 썽경에 써 있네"

 

경옥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인민군들은 잘 부른다고 손뼉을 쳤다.

 

 

"그래, 잘 부르는 구나, 또 불러봐라"

경옥이는 신이 나서 또 부른다.

 

"카나님은 나의 목짜시니 내게 뿌족하미 업스리로다. 나로 카여금 푸른 풀빹에 눕게 하시면 짠잔한 물까로 인도하여 쭈신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경옥이가 노래를 부르니 인민군은 잘한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들 하였다. 두호는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땀이 비 오듯 머리에서 흘러내렸다.

 

"노래 잘 불렀으니 상을 줘야지".

 

주머니에서 볶은 콩 한 주먹을 꺼내 경옥이에게 주었다.

 

"이 콩 먹어라. 아주 맛있단다. 응 너도 물 떠왔으니 너도 한 줌 먹어라."

 

두호는 두 손을 벌려 콩을 받았다.

인민군들이 내려간 다음 최사모도 땀을 많이 흘렸는지 소매로 얼굴의 땀을 연신 닦으면서,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그 사람들이 찬송가를 몰라서 그런지 무사히 넘어 갔구나.... 경옥아, 다음부터 아저씨들 앞에서 찬송가 부르면 안되요."

"으응, 아저씨들이 잘 부른다고 했는데"

"야 이 바보야, 찬송가 부르면 우리 잡혀간단 말야. 너 잡혀가면 좋아?"

"왜 못 부르는데, 싫어 나 부를 거야"

 

경옥이는 손에 쥐었던 콩을 집어 던지며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그 날 밤에 최사모는 정목사에게 낮에 있던 이야기를 하였다.

정목사는 크게 놀라며,

 

"거 이상한데, 그들이 찬송가를 모를 턱이 없는데, 이건 필시 성령께서 그들의 들을 귀를 막아 주신 거야. 있잖아,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을 때에 천사가 사자의 입을 봉해 주신 것처럼, 천사들이 경옥이 노래만 듣고 그 가사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게 그들의 정신을 막아 주신 게 분명해"

 

 

 

박시무 목사 순교

 

어느 날, 최사모는 읍내 장에 나갔다가 얼굴이 파래져 가지고 팔려고 가지고 간 몸빼(일바지) 몇 개도 다 팽개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 왔다. 최사모는 피난 중에도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간 손미싱(재봉틀)으로 치마와 이블 겉 천을 뜯어 몸빼 몇 개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웅이 어머니랑 읍내 오일장에 나갔다. 그런데 그 장터에서 인민 재판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인민재판에 여러 사람들이 끌려 나왔는데 그 중에 대전에서 목회 하던 박시무목사가 있었다. 박목사는 대전에서 만났을 때에 시골에 있는 큰 형님 댁으로 피난 간다고 먼저 떠났었다. 그런데 지금 큰 형님 가족과 함께 붙잡혀 인민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민위원장이란 자가 나와서 소리를 높였다.

 

"여러 동무들, 반가운 소리가 있소. 띤이란 미국 놈 대장이 도망치다 위대한 인민군전사들에게 포로로 잡혔오. 만세 부르시오 동무들”

“만세 만세 인민군 전사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

“자 자 조용히 하시오. 미군과 국방군 괴뢰군들이 모조리 죽었소. 우리 인민군 전사들이 지금 낙동강에서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단 말이요. 이제 곧 조국 통일도 멀지 않소, 우리함께 외칩시다. 김일성 장군 만세, 위대한 인민군 전사 만세."

 

또 사람들이 덩달아 만세를 따라 부른다.

 

"자 동무들, 여기 이 박시무란 반동분자를 보시오, 이자는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인민들을 속이고 하나님이 있다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여 인민들의 정신을 홀린 악질 반동분자입니다. 이런 자를 어찌할 것입니까?"

"악질반동분자를 처단하라"

"죽여라"

사람들이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몇몇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가 죽 창으로 박 목사를 찔러댔다. 누구는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박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하나님께 기도하는 듯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여기 저기 피가 터져 흘러내렸다. 박목사는 그렇게 죽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영웅이 어머니가 최사모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하였다.

 

"아무래도 두호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가 숨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저 앞에 있는 완장 찬 사람에게 누가 말하기를 우렁 굴에 이상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최사모는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었다. 슬그머니 빠져 나와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 왔다.

 

“두호야, 두호야”

 

동네 공 터 송정 앞까지 왔을 때 최사모는 숨이 턱에 차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호를 불러댔다.

마침 두호가 집 마루에 앉아 인옥이를 안고 있었다. 어머니가 장에 가면서 동생을 잘 보고 있으라고 신신당부 해 그렇게 계속 돌보고 있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보면서 최 사모는 두호에게 재빨리 말을 하였다.

"너 우렁 굴에 올라 가 아버지와 형에게 빨리 집으로 내려오시라고 전해.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빨리 가야 해?"

두호는 무슨 급박한 일이 있구나 생각하고 산으로 달려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바둑이도 따라 올라갔다.

영식이를 만났다.

 

"두호야 어딜 가니?"

"응 산에"

 

대답하는 둥 마는 둥 달려 올라갔다.

우렁 굴에 도착한 두호는 헉헉거리며,

 

"아버지 아버지"

 

정 목사와 진호가 조심스럽게 굴 밖으로 나와 사면을 살펴본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냐?"

"엄마가 빨리 내려오래요?"

 

정목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직감하고 두 아들과 함께 집으로 뛰어 내려왔다.

 

정목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니 최사모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여보, 박시무목사님이 인민재판에서 매 맡는 것을 보았어요"

"뭐? 박목사님이 인민재판을? 그래서 어찌 되었소?"

"몰라요. 아마도...나는...그보다, 여보, 당신 들킨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우렁 굴에 숨어 있다고 고발했다는 거예요. 어쩌면 좋아요?"

"음,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서 숨어야 할 텐데. 이미 우렁 굴이 들켰다면 아마 온 산을 이 잡듯 찾아다닐 거야...."

"이렇게 하면 어때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잖아요. 그냥 집에 숨어 있어요"

"그건 더 위험하지 않을까? 인민군들이 자주 여기 오잖아요?"

"그럼 어떡해요"

 

밖의 동정을 살피던 두호가 달려 들어와

 

"아버지 사람들이 와요. 빨리 숨으세요."

"뭐-"

 

정 목사가 문을 열고 밖을 본다. 저 멀리 인민군 몇 명과 사람들이 내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우선 마루 밑에 숨어야 겠어"

 

정 목사와 진호가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바둑이 개집으로 몸 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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