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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1) 전병호

jbhimr by  조회 수:0 2024.03.29 22:37

6.25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이어 온 지 어언 70년이 흫렀습니다. 그 전쟁 통에 나같은 어린 아이들이 

어찌 전쟁의 회오리바람 속에 살아었는가  잊어버리기 전 옛 기억을 찾아 그 시절을  돌아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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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정마을에서의 피난 생활

 

피난민들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하늘에서도 ...”

 

원동국민(초등)학교 본관 옆 쇠기둥 끝에 스피커가 매달려 있다.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작은 별 노래가 지지 거리는 잡음과 함께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흰 운동복 차림의 여선생님이 교단 위에서 노래에 맞춰 율동을 가르치고 있다. 1학년 신입생 아이들은 팔을 흔들고 펄쩍펄쩍 뛰며 제 각각이다. 여 선생님은 잠시 율동을 멈추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초여름 날씨 이지만 무척 덥다. 따가운 햇살이 아침부터 운동장에 가득히 퍼져 있었다.

 

“와--”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담장 옆 푸라다나스 나무 근처에서 회리바람이 빙글빙글 돌며 튀어나온다. 운동장 모래 먼지들을 끌어 모아 아이들 쪽으로 불어왔다. 아이들은 회리바람을 잡으려 이리저리 춤추듯 뛰어 다녔다.

 

“얘들아, 그러지 말아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말리면서도 오히려 재미난 듯 웃고 있다.

 

갑자기 스피커 노래 소리가 멈추더니 다급한 교장선생님의 잔뜩 목 쉰 소리가 들려 나왔다.

 

“아-아-,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흠, 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선생님들은 즉시 아이들을 보내시고 교무실로 빨리 모여 주십시오”

 

1학년 3반 담임 강필구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세운 후,

 

“얘들아, 지금 집으로 돌아가라. 중간에 놀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야한다. 내일 보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소리 지르며 흩어져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간다.

 

두호네 집은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원동교회이다. 두호 아버지가 그 교회 정순섭목사님이다.

 

“어머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두호 소리를 듣고 바둑이가 달려와 짖으며 반긴다.

그런데 두호 어머니, 최사모는 두호를 보고 ‘응’하고 그냥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예배당 문이 훤히 열려져 있다.

 

“오늘은 뭘 배웠니? 동무들하고 잘 놀았니?”

 

최사모는 신입생이 된 어린 아들 두호가 대견하여 학교에서 돌아오면 으래 이것저것 물어 보곤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돌아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만 한다. 최사모의 손에 들린 소쿠리에 쌀밥이 가득 담겨 있다.

 

“피난민들에게 나누어 줄 밥인가 보구나....”

 

며칠 전 부터 피난민이 교회로 찾아와 머물고 있었다. 최사모는 피난민을 위하여 밥을 지어 나르는 중이다.

일부 피난민은 교회 앞 마당에 또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누구는 울분에 고함을 지르고, 누구는 흐느껴 울고 있다. 두호는 최사모의 뒤를 따라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다.

예배당 풍금 위에 올려 논 제니스 라디오에서 남자 아나운서가 숨 가쁘게 뉴스를 전하고 있다. 라디오 주변에 몰려 앉은 사람들은 제각기 떠들고 있다.

 

“벌써 인민군들이 수원을 점령하였다 하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지?”

“여기 대전도 안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박사는 아직 대전에 계신가? 또 먼저 어디로 내빼실 건가?”

“도대체 맥아더장군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아이고, 피난 오다가 우리 아들 손을 놓쳐 버렸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한 아주머니가 다리를 뻗고 앉아 두 손으로 마루를 치며 울부짖고 있다. 그러나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 제 각기 다 자기 사연에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다.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나만 살려고 피난가야하나”

“어떻든 살고 봐야지요. 살아야 처자식도 다시 만날 것 아닌가요”

 

사람들은 최사모가 날라 온 밥을 마루에 둘러앉아 허겁지겁 먹고 있다. 최사모는 연신 사발에 밥을 담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반찬이라고 해야 다꽝(단무지) 뿐이지만 별 말 없이 먹고 있다.

두호는 북한군이 처 들어 와서 사람들이 피난 내려왔다는데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직감적으로 사람들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 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무엇인데 어른들이 저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

 

예배당 밖으로 나왔다.

형 진호가 큰 주전자를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있다.

 

“형 형 오늘도 피난민들이 많이 왔어?”

 

두호보다 8살 위인 진호는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진호는 한강철교 폭파 직전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기차를 타고 내려 왔었다.

 

“너 벌써 왔니, 학교 끝났니?”

“응, 교장 선생님이 빨리 집으로 가랬어”

 

대답을 듣는 둥 만 둥 진호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다. 두호도 형 따라 들어가니 진호는 사람들의 밥그릇에 물을 따라 주었다. 사람들은 물 마른 밥을 물마시듯 먹는다. 손으로 다꽝을 집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두호야, 넌 이 빈 그릇들을 모아 바구니에 담아라.”

 

최사모가 두호를 보고 말하였다. 두호는 사람들이 다 먹은 빈 그릇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무슨 무서운 일이 일어 난 것이 분 명 해....”

 

많은 군인이 죽었다고 하였다.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을 함락 시켜 사람들이 이렇게 피난 내려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일어난 그 무서운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면 어쩌나, 두려움에 몸을 움추린다. 진짜 무서운 일이 일어났구나. 그럼 우리도 피난가야 하나?

 

“형, 우리도 피난 가는 거야? 우리도 피난 가는 거지?”

 

두호는 진호 뒤를 졸졸 따르며 물어본다.

 

“몰라. 나도 모른다닌까? 야, 귀찮다. 나가서 놀아”

 

진호는 짜증을 낸다.

 

두호는 괜스레 답답한 마음으로 교회 밖으로 나온다. 영희가 깨금발 뛰기 하면서 오다가 두호를 보고 달려온다.

 

“두호야, 우리 소꿉장난하자”

 

두호는 영희를 좋아했다. 중앙시장 쌀가게 집 딸인 영희는 한 동리에 살면서 같은 반 짝꿍 이였다. 평소에 영희와 자주 소꿉장난을 하면서 놀았다. 두호는 무언가 모를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가 영희를 보니 반가 왔다.

 

“그래, 우리 소꿉장난하자”

 

두호는 소꿉장난 할 기분은 아니지만 영희를 따라 예배당 담장 옆 은행나무 아래로 가서 살림을 차린다. 바둑이가 졸졸 따라와 은행나무에다 뒷발을 들고 오줌을 싼다. 거기에는 이미 깨진 사금파리, 납작한 돌, 나뭇가지 등 여러 살림살이가 널려져 있다. 두호와 영희는 그렇게 이곳에서 소꿉장난을 하곤 하였다.

 

“예, 너는 아빠고 난 엄마다."

“그래”

“여보, 독 좀 더 주어 오세유”

 

영희는 두호에게 독을 주어오란다.

본래 두호네 가족은 서울에서 살다가 아버지 정목사가 작년 11월에 대전에 있는 교회로 청빙 받아 내려 왔다. 그리고 처음 대전에서 만난 동무가 지웅이와 영희였다. 처음 독을 주어 오라 하였을 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독을 주어오라니! 알고 보니 돌멩이를 주어 오라는 것이다. 두호가 여기저기에서 납작한 돌멩이들을 주어 오니 영희는 여기 저기 돌을 늘어놓았다.

 

“여보, 여기는 안 방 이구유, 여기는 사랑방 이구유, 여기는 부엌 이구유”

 

두호는 고개를 끄덕 끄덕 거리며,

 

“응, 안방이 참 좋은데. 자 그럼, 나 배 고파 밥 먹읍시다.”

 

실상 이미 점심때가 지나고 있어 두호는 배고픈 상태이다.

 

“여기 점심상 차렸시유. 바둑아, 저리가!”

 

바둑이가 밥상을 엎지른다.

영희는 다시 신문지를 펼쳐 놓고 상을 차렸다. 오묵한 깨진 사금파리에 흙을 가득 담았다. 또 납작한 돌 위에 풀을 잘게 뜯어 놓았다. 그 옆에 잔 나뭇가지를 얹었다.

 

“그런데 이것은 뭡니까?”

“이것은 꽁치 구운 거예유”

 

두호는 냠냠 먹는 시늉을 한다.

 

“두호야, 어서 와서 점심밥 먹어라”

 

최사모가 부른다.

 

“영희는 요 ”

“같이 와서 먹어라”

 

두호는 영희 손을 붙잡고 집으로 달려갔다.

 

 

7월 15일이 지나자 마치 썰물 빠져나가듯 피난민이 교회를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디오 소리도 꺼졌다. 교회당 안은 지는 햇살이 가득히 어둠을 실어다 주고 있다. 정목사는 여기저기 온갖 쓰레기로 뒤덮인 예배당 청소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고 구석구석에 디디티를 뿌린다.

 

“여보, 더 늦기 전에 우리도 피난가야 하는데 무슨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이렇게 하나님의 집이 더러운데 쓰레기장으로 나둘 수 없지 않소? 그리고 난 피난 안 갑니다.”

“피난을 안 가다니요. 이박사님도 벌써 떠났고, 이렇게 피난민들도 다 떠났잖아요. 교인들도 다 떠났는데, 이 동리 사람들, 지금 다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고요. 피난 안 가다니요, 저 포성소리 안 들리세요? 인민군이 곧 들이 닥친다고 하는데, 피난 안 가다니요, 말이나 되요?”

 

오늘따라 최사모는 목청을 높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어떻게 목사가 나 살자고 하나님의 집을 버리고 떠난단 말이요?”

“김 호영 목사님도 벌써 대구로 떠나셨잖아요. 인민군이 곧 들이 닥칠 텐데. 인민군이 목사님들은 다 죽인다고 합디다.”

“목사는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나, 순교할 각오가 돼 있소.”

“아니, 당신만 순교자가 되면 답니까? 아이들은 어떡하고요. 어떻든 살고 봐야지요. 그래야 다시 돌아 와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할 것 아냐요?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예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난 믿어요. 지금은 피난가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 올 거예요”

 

최사모는 정목사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피난 가자고 한다. 정목사는 죽기를 각오했으니 당신과 이이들만 피난 가라고 하고,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 밤새 기도하기도 하였다.

정목사와 최사모는 곧 예배당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였다. 밤이 깊어 가는데 기도는 계속되었다.

삼순이가 동생들 저녁상 차려 주고 잠자리를 봐준다. 삼순이는 17세로 개성에서 가족들과 피난 오던 중 가족을 잃어버리고 혼자 대전까지 오게 되었다. 최사모는 피난민을 돌보는데 삼순이로 돕도록 하여 그대로 함께 있게 되었다. 정목사와 최사모의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와 뜨거운 찬송소리가 밤새도록 텅 빈 예배당 가득 채워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 하였다.

 

“여보, 나 응답 받은 것 같아요”

“나도 받은 것 갔소. 그래 무슨 응답을 받았는데”

“글쎄, 좀 전 찬송 부르고 다시 기도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눈앞에 큰 산이 보였어요. 어두워 그 모양은 희미하지만 대강 짐작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산에서 웅 웅 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어요. 아마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피난 가라고 계시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요? 나도 기도 중에 말씀을 받은 것 같소. 마태복음 24장을 찾아 읽으라 하시지 않겠오? 그 말씀을 잘 알지 않소?,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말씀과 ‘산으로 도망 할지어다’라는 말씀에 주님 주신 말씀이라 확신하였소.

그래서, ‘그 산이 어디 있는 산입니까?’ 하고 계속 기도하였는데, 거기까지는 응답이 없었소. 그런데 당신 말을 들으니 더욱 분명히 응답 주신 것 같소”

“맞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피난 가라는 계시가 분명해요”

 

정목사와 최사모는 곧 일어나 피난 준비를 시작한다. 정목사는 교회 뒤 철길 옆에 사는 마씨를 불렀다. 그는 대전 역에서 지게 짐을 날랐다.

 

“마씨는 피난 가지 않아요? 우리랑 같이 갑시다.”

“전 안 갑니다. 부모형제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요. 인민군이 온데도 나 같은 질뚝배기를 죽이겠어요? 목사님네나 피난가세요”

 

마씨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발을 절뿐만 아니라 손가락이 6개로 사람들이 육손이라고 불렀다. 그런 마씨는 지게벌이 한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곧 잘 교회 일을 도왔다. 정목사도 가족이 없는 그를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마씨는 대전 역 앞에서 한 노인을 찾아 데라고 왔다. 그 노인은 가끔 소달구지에 나무장작을 가득 싣고 와서 팔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장작 사러 온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장작은 교회 마당에 부리고 빈 달구지에 약간의 피난 짐을 실었다. 정 목사와 마씨는 사택 마루를 뜯고 구덩이를 팠다. 정 목사가 전부터 애지중지하던 고려 청자기와 교회 서류, 책들을 가마니와 나무상자에 넣어 구덩이에 묻었다. 뒤에 이야기지만 마씨는 그것들을 다시 캐내어 도망을 갔었다.

 

“여보, 오늘이 주일이니 우리 가족만이라도 잠깐 예배를 드리고 떠납시다,”

 

정목사와 가족들은 교회당에 둘러 앉아 가족 예배를 드린 후, 마침내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세 살 된 경옥이와 이제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한 인옥이를 안은 두호가 이삿짐과 함께 소달구지 위에 탔다. 두호가 서울에서부터 키워오던 바둑이도 구루마 위에 태웠다. 정목사 가족은 갈 바를 모르는 채 남쪽 전라도 방향으로 떠나간다. 두호는 소달구지 위에서 괜히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두호가 부르니 경옥이도 따라 부른다. 경옥이는 어린 나이에 곧잘 노래를 잘 불러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진호는 두호를 올려다보며 지금이 노래 부를 때냐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친다.

 

“진호야 내버려 두라. 두호가 뭘 알겠니.”

"어머니, 두호는 우리가 피서 여행가는 줄 아나 봐요."

"어, 선생님...."

 

노래를 부르다가 두호는 보따리를 등에 지고 가방을 들고 가는 1학년 담임 강필구 선생님을 보았다.

 

"강 선생님, 피난가세요? "

 

강선생은 매우 심각한 얼굴로 최사모를 바라보며,

 

"예..."

"아니 왜 혼자세요? 가족은 요?"

"가족은 벌써 떠났고요. 저요, 떠났다가 다시 집에 왔다 가는 중입니다."

"그러세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저희와 같이 가시죠?"

"아니, 먼저 가시죠. 저는 고향에 갔다가 곧 군에 입대 할 것입니다. 두호야, 전쟁 끝난 다음 다시 보자."

 

강선생님과 그렇게 헤어졌다. 일 년 후, 그는 전쟁터에서 한 눈을 잃어 검은 안경 쓰고 학교에 왔다.

 

 

 

송정마을 피난살이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 때 서대전을 지나 가수원 역 인근에 도착하였다. 그 동네 사람들은 이미 피난 떠났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목사님, 날이 어두워지니 이곳에 머물다가 갑시다.”

 

마부 노인은 대답도 듣지 않고 어느 집 앞에 소달구지를 세운다.

 

“그럽시다. 오늘밤 이곳에 머물지요.”

“어디로 갈까요?”

 

최사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둑어둑한 집들을 둘러보았다.

 

“아무 집이나 들어갑시다. 모두 피난 가서 집들이 텅텅 비어있을 테니까?”

“그러면 이 앞집으로 들어가 볼까요?”

“어머니, 배고파요"

“나도 배고파”

 

두호 와 경옥이가 배고프다고 보챈다.

앞에 있는 초가집이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빈 집이다. 그 집 부엌에 들어가 최사모와 삼순이는 쌀 주머니를 풀어 저녁밥을 지었다.

 

최 사모는 아직 캄캄한 새벽 3시경, 잠자는 아이들에게 겨울 외투를 입힌다.

 

“어머니 더워, 이 옷들은 겨울옷이잖아”

 

잠에서 깬 두호는 솜을 넣은 누비 겉옷을 입히는 어머니에게 못 입겠다고 몸태질을 친다.

 

“두호야, 이 옷을 입어야 해. 혹시 어디서 파편이 날아올지 모르닌까?”

 

경옥이와 인옥이는 최 사모가 이리저리 옷을 입히는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목사님, 빨리 가시죠. 곧 해가 뜨네요. 허참, 피난 가는 사람이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으면 어떡하나”

 

마부 노인이 문밖에서 소리치며 혀를 찬다.

 

“예, 잠간요. 영감님 이리 들어오세요. 아침 요기는 하고 가야죠.”

 

어제 먹다 남은 밥을 물에 훌훌 말아먹은 온 가족이 둘러앉으니 정목사가 기도를 한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피할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족이 이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피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인도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피난처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저희 가족이 건강한 몸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온전히 지켜 주옵소서.”

 

그 다음 날, 인민군이 가수원을 점령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고 후에 정목사는 말하였다.

 

피난민들이 여기 저기 힘겹게 길을 가고 있다. 그 중에는 정 목사를 알아본 사람도 있었지만 피차 반갑게 인사를 나눌 처지가 아니다. 멀리서 포성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피난민의 말이 이미 인민군이 대전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사람들에게 따발총을 쏘아 죽이고 있다고 한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온다. 따따따따........

 

두호를 태운 소달구지는 마치 피서지 유람을 떠나듯 느릿느릿 가고 있다. 오히려 사람들 발걸음이 더 빠르다.

 

“아버지 이렇게 천천히 가다가 인민군에게 잡힐 것 같아요.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갑갑증에 못 견뎌 진호가 투덜거린다.

 

“진호야, 어쩌겠니, 소가 이렇게 느린 것을. 하나님께서 우릴 선히 인도하실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최사모는 진호에게 걱정 말란 말을 하지만 내심 마음이 심히 불안하여 길을 가며 속으로 계속 기도를 한다. 어머니의 믿음 좋은 말을 들었지만 진호는 불안한 마음이라 계속 투덜거린다.

 

“내버려두오. 재도 지금 두려워서 그러닌까?”

 

바쁘게 앞에 갔던 피난민들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아니, 왜 되돌아오십니까? 앞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요 앞 다리를 후퇴하던 국방군이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갈 수가 없어요.”

 

갑자기 하늘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려온다.

 

"적기다!"

 

사람들이 소리 쳤다. 길 양옆 숲으로 달려 들어가 몸을 숨긴다.

정목사와 최사모는 얼른 두호와 동생들을 내려 구루마 밑으로 몸을 숨긴다.

시커먼 북한정찰기가 하늘에서 두 바퀴 선회하더니 땅 가까이 비행하다가 그대로 돌아 날아간다. 비행사가 내려다보며 웃는 모습이 잠간 비친다. 간간이 폭탄 터지는 소리, 따발총 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마부 노인은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로.

 

“안되겠습니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요. 다리도 끊어졌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내 집은 신도안이요. 그런데 더 달구지로는 갈 수 없으니 소만 끌고 가겠소.”

“그러면 우리는 어떡 허구요?” 최사모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당신네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 아니요?”

 

할아버지는 달구지에서 소를 풀어 뒤도 안 보고 갔다.

피난민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호네 가족만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았다.

 

“어떡하지요? 여보”

“글쎄요, 그냥 이대로 여기 있을 수도 없고... 진호야 나와 같이 이 근처 마을이 있는지 알아보자.”

 

정 목사와 진호는 마을을 찾아 길 옆 산 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올라간다.

 

점점 날이 어두워 졌다. 최사모는 인옥이에게 젖을 물리고 해가 지는 산을 바라보며 입소리로 들리 듯 말듯 찬송을 불렀다.

 

“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 “

 

찬송을 부르던 최사모의 눈에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어머니, 울어? 무서워서 그래?”

“아니야. 그냥 눈물이 났어.”

 

밤이 되었다. 그러나 별빛이 밝아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점점 대포소리, 총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인민군이 쏘아대는 따발총소리가 여기저기 메아리쳐 더욱 시끄럽게 들려 왔다.

 

“어머니. 딱콩총 소리가 꼭 새가 우는 소리 같아요.”

 

총소리에 놀랐는지 시끄럽게 들려오던 개구리 소리도 잠잠하였다. 그런데 딱콩 소리만 나면 바둑이가 짖어 대었다.

 

“바둑아, 조용히 해, 너 계속 짖으면 여기 내버리고 갈 거야”

 

두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바둑이가 꼬리를 감고 두호 옆에 붙어 앉았다.

최사모는 인옥이, 경옥이를, 삼순이는 두호를, 두호는 바둑이를 꼭 끓어 안고 그렇게 길 옆 숲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한 밤중 발자국 소리가 바쁘게 들려 왔다. 두호가 고개를 들어 발자국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다!”

 

두호가 소리쳤다.

 

“여보, 어딨어?”

 

정목사의 소리가 조용히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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