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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3월 11일  주일아침 예배  잠 25: 1-11  금사과 같은 말

250년 전 미국에 존 채프먼(John Chapman, 1774-1845)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쾌활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황야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동물을 잘 다루었으며, 성경 말씀에 늘 충실하였고 약초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인디언과 잘 어울렸는데, 본래의 품성과는 다르게 괴짜 같은 외모를 지녔습니다. 그의 외모는 엎어놓은 납작한 죽냄비 같은 얼굴에 머리칼이 얼굴 아래까지 흘러 내렸고 맨발에 너덜너덜한 바지를 입었으며, 낡은 커피 자루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리려고 웃옷의 한쪽 팔에 구멍을 뚫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땅에 심으면 다음 세대의 미국인들이 배고픔 때문에 고통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사과나무 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과 심기시작 하였고, 아무 대가 없이 평생을 사과를 보급하는데 헌신하고 희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조니 애플시드’라 불렀고 그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486㏊(약 150만평-여의도 면적의 1.5배)의 땅을 소유해서 사과나무를 심었을 뿐 아니라 전 미국을 돌아다니며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전 미국을 다니며 사과나무를 심어주다가 1845년 길거리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여 매년 3월 11일을 조니 애플시드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오늘이 그의 기념일입니다. 그로인하여 오늘날 미국은 14만ha에서 451만톤의 각종 사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알려졌으나(계림유사:중국 송나라 손목이 1103년 서장관으로 고려 사신으로 와 작성) 본격적으로 사과를 심기 시작한 것은 백여 년 전 선교사들이 사과나무 묘목을 들여와 대구지방에 심으면서부터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도 기준으로 31천ha에서 468천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세계제일의 사과 생산국은 중국으로 205만ha에서 3,168만톤을 생산)

 

아마도 사과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과를 흔히 과일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사과가 가지고 있는 영양성분이 우리 몸에 아주 좋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속담에 "하루에 한 알의 사과는 의사를 멀리한다." 고 할 정도로 사과는 만병통치의 묘약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도 영국 사람들은 사과를 식후에 후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식사 중에 먹는 식품의 일종으로 애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사과에 함유된 칼리, 사과산, 식물섬유질인 펙틴, 세루로스, 헤미세루로스 등이 인체에 좋은 효능을 주는 성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요가 있지요. “사과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구나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My face is like an apple. How I look so beautiful. Eyes are shiny nose is shiny
And my lips are shiny.) 그래서 사과를 '하루 한 개 먹기' 습관을 들이면 얼굴도 예뻐지고 건강도 지킬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먹는 사과를 ‘금사과’, 점심에 먹는 사과를 ‘은사과’, 저녁에 먹는 사과를 ‘독사과’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사과는 사과의 유기산성분이 위의 활동을 촉진시켜 위액분비를 촉진시키고 소화 흡수를 잘 되게 하여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이유로 ‘금’사과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 사과를‘독’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밤늦게 사과를 먹게 되면 과다한 섬유질로 인해 장을 자극하여 배변과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예민한 사람들은 속이 쓰리거나 뱃속이 불편해서 잠을 설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밤에 사과를 먹는 것은 건강한사람은 큰 탈 없으나 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사과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사과  •파리스의 황금 사과(황금사과) •뉴턴의 사과 •빌헬름 텔 아들 머리 위에 올려졌던 사과  •폴 세잔의 사과 – 한 알의 사가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말한 세잔느를 흔히 사과의 화가라고 부릅니다. 그는 사과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후대 화가들 특히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에플사의 로고

사람들이 사과를 좋아하니 사과에 독약을 넣어 사람을 헤치는데 이용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일례로 •백설공주의 사과가 있지요. 그러나 더 유명한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가 2007년에 출시한 스마트폰인 아이폰(IPhone)을 만들 때 회사 이름을 애플사라고 하고 독 묻은 사과를 깨  물은 모양을 회사로고로 삼은 유래가 매우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흔히 튜링의 사과(Turing's apple)라고 합니다. 앨런 튜링이란 수학자이자가 있었는데 또한 그는  컴퓨터 과학 분야의 선구주자로 불러졌습니다.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후대에서 비운의 수학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독일군의 애그니마라는 암호를 풀어내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격고 있을 때에 콜로소스라는 암호 해독기를 발명하여 승리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콜로소스가 컴퓨터의 원조라고 말합니다. 만약 앨런 튜링이 콜로서스를 만들지 않았다면,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앨런 튜링을 비운의 수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동성애자였던 것입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여겼기 때문에 그를 체포하여 1년 동안 여성호르몬 투여라는 화학적인 거세를 받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처사를 모욕으로 느낀 그는 견딜 수 없어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먹고 자살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과학적 업적이 후대에 컴퓨터를 발명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그를 기념하는 마음으로 그가 한입 베어 먹은 사과를 자신의 회사 로고로 삼은 것입니다. 
독 묻은 사과, 사과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과일이지만 독 묻은 사과는 많은 사람들을 해치는 과일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히브리대학 성서식물학자 미하엘 조하리(Michael Zohary) 박사는 터키와 레바논에서 자생하는 답부아를 확인하였습니다. 사과나무는 BC 4000년경 이란이나 아르메니아, 터키, 시리아로부터 이스라엘과 이집트로 수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에 재배되었고, 이집트에서는 람세스 2세 당시의 파피루스 문서를 통해 나일강 삼각주에서 사과와 석류, 올리브, 무화과가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새해가 되면 사과에 꿀을 발라 먹거나 반으로 쪼개어 심을 빼내고 꿀을 넣어 쪄 먹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각 가정에서 빠뜨리지 않고 먹는 이 꿀사과는 새해를 사과처럼 향기롭고 꿀처럼 달콤하게 보내기를 바란다는 기원과 축복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유대력 신년은 티슈리월 첫째 날로서 양력 9월말 또는 10월초에 해당하므로 성지에서 사과가 수확되는 계절과 같습니다. 최근에는 쵸코렛을 예쁘게 포장하여 달콤한 신년을 기원하기도 하고, 생선의 머리를 먹으면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신 28:13, 사 9:15). 이스라엘 골란고원과 헬몬산 언저리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특별히 물이 많고 달기 때문에 이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도로변에서 사과를 사 먹기도 합니다.’

 

성경에 사과를 ‘타푸아흐’라고 하는데 여호수아 17장 8절에서 답부아(תפוח 타프아흐) 땅은 므낫세에게 ... 답부아 읍은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아가 2장 3, 5절에서는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תפוח 타프아흐)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תפוחים 타푸힘, ‘타프아흐’의 복수형)로 나를 시원케 하라고 하였으며, 아가 7장 8절에서는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תפוחים 타푸힘) 냄새 같다고 하였고, 욜 1:12 사과나무와 ...시들었으니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봉독한 말씀 중 잠 25:11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의 말씀으로 금 사과 같은 말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서 ‘경우에 합당한 말’ 이란 히브리어 원어로  ‘다바르 다부르 알 아프나이우‘라는 말로 ’마차 바퀴가 잘 굴러가듯 말을 말한다‘란 의미입니다. 원어에 ’다바르 다부르‘ 라고, 말한다는 말을 겹쳐서 말하였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문법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최상의 말이다‘라고 말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만일 말을 잘못한다면 이는 마차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게 하는 것처럼 매우 낭패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합당한 말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금 사과란 위에서 말씀 하였듯이 꿀을 바른 사과같이 달콤한 사과를 말합니다. 아마도 꿀 색깔이 금빛처럼 반짝였을 것이에요. 은쟁반은 아주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나오는 그릇입니다. 그럼으로 시의 적절한 말은 아주 귀한 손님에게 달콤한 사과를 대접하듯 품격 있는 귀한 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그러므로 독 묻은 사과 같은 말을 하므로 많은 사람들을 헤치는 그런 저급하고 나쁜 말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뜬금없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미투 운동에서 무사한 걸 보니 다행이다. 안희정 사건을 임종석이 기획했다는 소문이 다 퍼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력사건이 임종석 비서실장이 기획하였다는 가짜뉴스를 말한 것입니다. 이 말에 각 당에서 비난 논평이 쏟아졌습니다. 한마디로 미투 운동을 진보진영의 권력투쟁과 연결시키므로 어렵게 고발한 여성피해자를 정치공작원처럼 이른바 가짜뉴스를 청와대까지 와서 말하였다는 것은 공당의 대표가 하지 말아야 할 망언으로 공개사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평에 홍대표는 농담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더군다나 미투운동을 농담거리로 삼았다고 하며 공당의 대표로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할 것이라고 이구동성 비판을 하였습니다. 원래 홍준표 한국당대표는 막말하기로 유명한 분이지만 은 대접에 금사과 같은 말을 해도 모자랄 그런 청와대 자리에서 까지 꼭 그런 독 묻은 사과 같은 농담을 해야 했는지 매우 사려 깊지 못한 말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느 회사의 회식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회식 자리에는 사장님과 전무님과 과장님 그리고 여러 일반 사원들이 함께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전무가 “난 달콤한 커피가 좋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단 것 좋아하는 사람은 장수한다고요” 그러 말을 들은 한 사원이 하는 말이 “그러면 사장님은 빨리 돌아가시겠네요“ 과장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왜 그런 말을 하지?“ 그랬더니 ”전무님이 방금 단 것 좋아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말씀 하셨으닌까? 사장님은 브랙커피를 좋아하시니 오래 사시지 못하실 것 아녜요?“  “그래도 이 사람아!  말은 가려서 상대방 기분을 고려해서 해야지,  단것이 몸에 받지 않아 안 드시는 사장님한테 그런 말을 해서야 쓰겠어? 사장님이 그러잖아도 성한 몸도 아니신데 그런 말을 함부도 막 하면 안 되지.”사장님은 조용히 웃고만 있었지만 아마도 이 사원은 오랫동안 평사원으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사항: 18살에서 40살까지의 여성 19명을 상대로 단 음식이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결과. 단것을 먹었을 때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더 많이 분비되는 <코티솔>이란 호르몬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위축되는데 단 음식을 먹으면 뇌가 활발히 움직여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말은 양약과 같아서 분노를 씻어내고 불안을 밀어내며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혀를 통제하여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합니다. 절제된 언어는 인격과 품위를 고양시키고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합니다. 인생은 말이라는 실로 짜여지는 옷감과 같습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뱉어서는 옳은 옷감을 짤 수 없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다툼의 말을 삼가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였는데 나쁜 말은 혀끝에라도 올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어느 과학자가 말하기를 "뇌 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이 뇌세포에 전달되면 뇌는 척수신경을 지배해서 행동으로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인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괴휼(怪譎 deceit, 속임수, 거짓NIV)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의 언어생활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불평의 말 대신에 감사의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가 더욱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주의 말 대신에 축복의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복이 올 것입니다. 비판의 말 대신에 칭찬의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칭찬이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의심의 말 대신에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부정의 말 대신에 긍정적인 말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경우에 합당한 은 쟁반에 금사고 같은 말은 어떤 말입니까?
첫째로  때와 장소에 따라 말하는 적절한 말입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8장에 기드온 사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이라는 이방족속들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아주 자존심이 강하고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와서 이 기드온에게 시비를 붙었습니다. 당신이 왜 전쟁에 나갈 때 우리에게 아무 이야기도 아니 않고 당신들만 전쟁에 나가 공을 독차지 하고 돌아 왔냐고. 우리에게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 배경을 보면 에브라임 사람들이 댜른 지파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적과 더불어 싸울 때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모른 척 하다가 전쟁에 이기고 나니까 돌아와서 왜 우리를 전쟁에 나갈 때 부르지 않았냐 우리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시비를 걸어 온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싸울 때 너희들은 모른척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느냐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힐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이런 말에 대해서 아주 부드럽게 그 말을 받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이일이 너희의 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당신들은 나보다 훨씬 낫고 훨씬 똑똑하고 당신들은 나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왜곡된 마음을 누그러뜨림으로 결국은 이스라엘의 지파간의 분쟁을 모면하는 지혜를 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25장에 보면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은 나발이라는 미련한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에게 평소에 신세를 많이 졌던 나발이 다윗이 그 병사들을 위해서 포도주와 먹을 것을 구했을 때 이 나발은 다윗을 희롱하면서 내가 다윗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서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나는 그를 도와 줄 수 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과 그의 사백 용사들은 이 나발을 죽이려고 그의 집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즉시 종들을 시켜서 포도주와 떡을 준비하게 하고 다윗이 쳐들어오는 길목에 나가서 엎드려서 다윗에게 절을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이니라.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삼상25:25-28)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다윗에게 용서를 바라니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분노를 그치고 나발의 가정은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의적절하고 경우에 합당한 말은 분노한 사람의 분노를 식혀 줄 수도 있고 실망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경우에 합당한 말, 시간과 장소에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하나님 앞에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유익함을 주는 말이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고 했습니다. 잠10:19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다가 보면 그 말속에 실수의 말도 많아지고 허물이 묻어 나오는 무익한 말, 허탈한 말들을 우리가 늘어놓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우리가 잘 절제하지 못하면 그 좋은 것이 독이 됩니다. '약물 남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타민 A를 장기 복용하면 탈모 채중 감소 피부건조증이 올수가 있다고 합니다. 간장약 우루사를 임신 여성이 오래 복용하면 기형아 출산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로얄제리 드링크를 알레르기 환자가 먹으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약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이 사용할 때 독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도 절제하지 못하면 그 말로 말미암아 해가 되는 경우가 됩니다. 우리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타이르는 말이 지나치면 잔소리가 되어 오히려 자녀들을 빗나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과연 자녀들에게 유익한 말은  말을 많이 하여서가 아니라 꼭 경우에 합당한 유익한 말 한마디가 필요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인간 심리 연구소에서 특이한 조사를 했습니다. 인간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해 조사를 한 것입니다. 사용하는 언어들을 악한 말 즉 나쁜 의도가 실린 말,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말, 무의미한 말들.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여 통계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악한 말, 즉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체 말 가운데 48.7%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 반면 좋은 의미로, 덕을 세우고 좋은 말들은 25.5%밖에 안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이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26.8%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 가운데 좋은 의미로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25.5%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말들은 악한 의미나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지는 말들이 75.5%나 되는 것입니다. 열 마디 중에 8마디는 나뿐 말이거나 쓸데없는 말이고 겨우 두 마디 만 좋은 말을 한다면,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사용 할 수 있는 말들을 아주 좋은 말들을 골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청와대에서 여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서 국가 안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 중요한 자리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한 사람은 한국당의 홍준표대표였습니다. 아마 모든 대화의 절반은 홍대표가 말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회담 후 한국당 대변인이 홍대표가 주도하였다고 자랑하였습니다.) 홍대표는 계속 대통령이 안보를 잘못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마침내 문대통령이 ‘그러면 홍대표께서는 어떻게 해야 안보를 잘하는 것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물으니 홍대표는 그걸 왜 나에게 묻는냐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닌가라는 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국가 안위를 위한 국가 지도자들의 중대한 자리에서 한마디로 아무 대안도 유익함도 없는 대화들을 나누고 당대표들이 청와대 문을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유익한 정치를 해주기를 바라는데 오히려 국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만 해주니 이 또한 답답한 노릇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 어디에서나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은 유익함을 주는 영향력 있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은쟁반위에 금사과 같은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해야 될 말은 금 사과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독 묻은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경우에 합당한 말이 있고, 듣기 거북한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공중을 향해 함부로 말하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것이 더 피해가 적다"라는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것이 상처가 깊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은쟁반 위의 금사과 같은 말이 무엇 있을까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말로 ‘감사합니다’ 이 말 한마디면 족합니다.

 요즘을 텔레비젼을 통해서 상스럽고, 천박한 말들이 너무 남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언어생활의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하지 말아야하는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해야 하는 말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단한 쇳덩어리도 열을 받게 되면 물처럼 녹아집니다. 우리의 마음과 인격도 불필요하게 열을 받게 되면 녹아내립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므로 서로 서로 열 받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빈정대지 말아야 하며, 거짓말과, 듣기에 거북한 말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널려 있는 말이 원망의 말, 불평하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원망과 불평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출애굽기 16장 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우리가 원망을 할 때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해서 쏟아놓는 원망, 불평은 남편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라는 말씀 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향해서, 자녀는 부모를 향해서 아랫집 사람은 윗집 사람에게 길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서로 유익한 말, 위로의 말, 감사의 말, 은혜가 되는 말, 선한 말, 덕을 세우는 말, 정직한 말, 권면의 말들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4절에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감사합니다란 은쟁반 위에 금사과 같은 말을 함으로 더욱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또 감사합니다란 말 외에 은쟁반위의 금사과 같은 말이 있다면 아주 쉽고 간단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녕하십니까’입니다. 2013년 김연아선수가 ‘골드 스핀 오브 자그레브’경기에 출전하여 1위를 하였습니다. 많은 한국팬들이 와서 김연아선수를 응원했습니다. 그때 일본의 안도 미키선수가 2위를 하였는데 한국응원단이 안도 미키에게도 응원을 보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카메라를 향하여“안녕하십니까” 한국말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사람들이 안도미키가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고 일본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무시했다고 비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본 네티즌들은 "안도 미키 한국어 인사, 한국팬 공략하나", "안도 미키 한국어 인사, 안도 미키 미혼모 투혼 멋있다", "안도 미키 한국어 인사, 일본에서 너무 아사다 마오만 밀어줘서 삐쳤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2013.12.11.중앙일보) 참으로 잘망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누구에게 이 인사를 나누었습니까? 한국사람들은 인사가 좀 박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지나가다가도 눈이 마주 치면, 굳 모닝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 우리 동리 이장이 있길래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면 멀뚱히 쳐다보거나 아예 등을 돌립니다. 언제나 늙은 내가 먼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안녕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 어느 때 보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서로 인사하므로 이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 되기를 함께 기원해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Eric Berne(교류분석이론)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안녕하세요 이후의 한마디'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신은 안녕하세요 이후에 어떤 한마디를 할 것인가! 우리는 평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만날 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안녕하세요" 한마디로 인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그 말 한마디 다음에 내가 어떤 의미를 두고 말을 잇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간관계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이 81년부터 18판이 거듭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사람이 내세운 이론을 통해 많은 미국인들, 기업체들, 국가 기관들, 단체들이 변화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후의 한마디' 운동을 전개한 단체나 회사들이 3개월 안에 인간관계가 바뀌게 되었고,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김장환 큐티365. 나침판출판사로부터)

 

교회 안에서도 보면, 아주 가깝게 지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수준에서 인사하고 지나갑니다. 한 교회에서 1년, 2년 같이 생활했음에도 '안녕하세요' 수준밖에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온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그 이후에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의 말을 던지느냐하는 것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건강은 요즘 어떠세요. 얼마 전에 보닌까 철이가 인사성도 밝고 똑똑하더군요?“ ”예, 그 아이가 요즈음 학교에서 모범생이라고 상을 타가지고 왔더라구요“ ”집사님은 좋으시겠어요. 그런 훌륭한 아들이 있고...“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는 무슨 사이입니까? 은쟁반 위의 금사과를 함께 나누는 아주 좋은 사이입니다.

 

우리라온 코이노니아, 우리들은 다만 안녕하세요 하는 의례적인 인사말만 아니라  안녕하세요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하고 다녀야 합니다. 은쟁반위에 금사과 같은 말을 준비한다면 우리는 서로 서로 귀한 아름다운 하나님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스피노자)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 험하고 세상 종말이 가까웠다하더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오늘 금사과 나무를 심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마치 은 쟁반과 같습니다. 여기에 함께한 우리들은 함께 금사과 같은 말들을 나눔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은혜를 받고 또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더욱 품격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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