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5일 주일아침 예배 요 17:20-26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은 세계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성공적이 대회였다고 내 외신들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선수들도 열심히 경기해서 좋은 성적을 올려 우리 민족에게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옥의 티가 있었습니다. 팀추원여자 경기가 있었습니다. 팀추월 경기는 세선수가 나란히 달려 마지막에 있는 선수가 들어올 때 시간을 재어 순위를 정하는 경기입니다. 이 경기는 세 선수의 팀웤이 좋아서 앞 서거니 뒷 서거니 하며 서로 마음을 합쳐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경기입니다. 우리나라 여자 선수로 노선영(29·콜핑팀) 김보름(25·강원도청) 박지우(20·한국체대) 세선수가 함께 경기를 하였습니다. 서로 호흡과 속도를 맞추어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먼저 앞서 달리고 노선영이 훨씬 떨어져 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7위를 해서 예선에 탈락을 하였습니다. 속상한 노선영이 경기 후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김ㅂ름과 박지우는 흘기듯 보면서 지나쳐 가버렸습니다. 보프 용 코치가 달려와 노선영선수를 위로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중계방송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한국 여자팀의 팀웤이 완전히 붕괴된 장면이 많은 사함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어도 함께 달리는 모습이 아름다운 일인데 한사람을 뒤로 왕따 시키듯 떨쳐놓고 자기들만 앞서 달려 나간 모습은 선수로서의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실망해서 울고 있는 노선영선수를 위로는 못할망정 흘기듯 바라보고 지나쳐 버린 행동은 매우 잘못된 모습이라고 해서 심지어 청와대에 두 선수를 국가대표의 자격을 박타리키라는 청원을 40만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외신들은 하나같이 'bullies' 'bullying' 이라는 괴롭히다 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미국 USA투데이는 '따돌림 스캔들'이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을 강타했다"며 "김보름,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40만 건을 넘었다"고 보도했는데요
뉴욕포스트는 김보름, 박지우에 대해 "밥데용 코치가 울고 있는 노선영을 위로할 때, 한국 선수들의 어떤 케미스트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한국인들도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가장 자랑스러운 팀웤 선수들이 있는데 컬링(Curling)이란 경기에 출전한 우리나라 다섯 명의 여자선수들입니다. 김영미와 김은정은 고등학교 동기동찬 친구간이고 김경애는 김영미선수의 동생이며 김선영은 김경애의 반 친구입니다. 그리고 김초희는 경기도에서 선수로 활동한 선수입니다. 모두가 같은 김씨 성으로 김팀으로 불립니다. 이들은 세계 8위였는데 세계 1 2 3 4 5 6위 팀들을 모두 물리쳐 우리나라 국민들 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돕고 밀어주고 다둑거리며 함께 용기를 북돋아 승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또하나 소개하자면 3000m여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계주 경기에서 우리나라 여자 대표선수들이 금메달을 땃습니다. 그들은 김아랑(23·고양시청) 심석희(21·한체대) 최민정(20·성남시청) 이유빈(17·서현고) 김예진 으로 완벽한 팀웤을 이루어 승리한 것입니다.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결승전에서 5바퀴가 남았을 때 세 번째 주자인 김아랑(23·고양시청)이 ‘해결사’였습니다. 김아랑은 다른 팀 주자들이 교대할 때 바깥으로 빙 돌아 한 바퀴를 더 달리면서 다른 주자들을 제치며 3위에서 2위로 치고 나갔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바퀴에서 2위로 달리던 심석희(21·한체대)는 힘껏 최민정(20·성남시청) 의 엉덩이를 밀어 1위로 올려놨고, 그대로 최민정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였습니다. 이날 시상대에서 선수들은 활짝 웃으며 손으로 오른쪽 선수의 엉덩이를 민 뒤, 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10일 있었던 준결승전에서 레이스 초반 이유빈(17·서현고)이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처지며 20바퀴 이상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선두와의 격차는 반 바퀴 이상 벌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의 레이스 능력은 최강이었습니다. 최민정(20·성남시청), 심석희(21·한국체대)가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며 러시아를 가볍게 제쳤습니다. 이후 넘어졌던 이유빈이 치고 나가 2위로 올라섰습니다. 7바퀴를 남긴 시점에서 심석희가 인코스로 파고들면서 선두로 치고 나간 순간, 경기장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습니다. 반 바퀴 이상 뒤처졌던 팀의 질주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었고, 캐나다는 결국 한국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최종 기록은 4분06초387. 올림픽 신기록이었습니다. 레이스 초반 한 차례 넘어진 팀이 올림픽 신기록을 세워 전 세계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입니까? 인생은 세상을 혼자 뛰어가는 경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왜 요즈음 사람들이 마음 괴로워하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고생들 합니까? 이유는 하나, 나 홀로만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사람은 혼자서는 못 살기 때문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가야 합니다. 너 없이 나는 없습니다. 글자가 재미있습니다. 나라는 글자를 보면 ㅏ가 밖을 향해 너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나는 바로 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라는 글자를 보면 ㅓ가 안을 향해 나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너는 곧 나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다, 나와 너가 합해 우리가 됩니다. 우리말로 우리라는 말도 희한(稀罕 적을희 드물한)합니다. 흔히 내 남편을 우리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내 아내를 우리 아내라고 말합니다. 나의 엄마를 우리 엄마라고 말합니다. 나의 집을 우리 집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집에 개가 두 마리가 있다란 말을 우리 집에 개가 두 마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나와너가 함께 있습니다. 우리란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란 울타리를 말합니다. 한 울타리 안에 함께 사는 나와 너 곧 우리입니다. 그런데 한 울타리에 함께 살면서 아니야 난 함께 있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는 외톨이가 되거나 외톨이를 만들게 됩니다. 위에서 소개한 여자 팀 추원 선수들은 함께 우리 안에 있는 선수들인데 서로 떨어 저 나뉘어져 있으니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고 우리가 가부시끼(합작)로 망한 모양입니다.
왜 사람들은 나 너 우리란 말을 하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너가 있어야 내가 있는데 왜 서로 적대시하며 나누고 분리시키고 서로 괴롭히고 다투고 그래서 함께 망하는 것입니까? 안철수씨가 남경필 경기도 지사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을 자기의 적이라고 말해다고 합니다(2018.02.20. 박지원이 주장). 어째서 상대방을 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 어찌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는 적이 없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눈에는 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너 안에 나가 있고 내안에 너가 있는 우리는 하나인 세상입니다. 나와 너가 함께 기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우리세상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그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감리교회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1703-1791)와 동생 찰스 웨슬레(1707-1788)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념비에 요한 웨슬레의 세가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세계는 나의 교구다.(I look upon all the world as my parish.)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인은 계속해 나가신다.(God buries His workmen, but carries onHis Work.)
3.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Thr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웨슬레 형제 기념비. 웨스트민스터사원. 원안의 사진은 왼쪽은 촬스 웨슬레 오른쪽은 요한 웨슬레익 아래쪽 사진은 요한 웨슬레가 아버지 사무엘 웨슬레의 무덤위에서 설교하는 장면이다. (사진;기독교세계)
저는 이 웨슬레의 세 마디의 말씀을 주께서 나에게 주신 세 마디 말씀으로 고쳤습니다.
1. 한반도는 나의 교구다.
2.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의 일을 맡기신다.(제주도에서는 방언마가복음 등 민속연구, 부산에서는 민주화 인권운동, 군산에서는 전킨기념사업 등 그래서 나의 호가 擧一隅입니다)
3. 하나님은 어제나 나와 너 그리고 모두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나와 너 그리고 모두는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입니다. 여기 모두에는 미운사람도 있고 보기 싫은 사람도 있고 나와 아주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하나님은 그들과도 함께 계시는데. 그들을 위해서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었고 그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고난당하시어 그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는데 만일 계속 그들을 배척한다면 그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해드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모두는 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고 예수 안에 있는 모두는 다 우리입니다. 그러면 나와 다른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들입니까? 역시 그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혹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구원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예수님의 마음에 합한 우리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요 17:26에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미국에 늘 어려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사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도시에 한 고아 소년이 신문팔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이 눈보라가 치는 거리를 가고 있었는데 무척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지나가는 경찰관을 붙들고 무엇이든지 얻어먹고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관은 예수 믿는 그 할머니 집을 소개하면서,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고 "누구냐"고 묻거든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가서 시키는 대로 초인종을 누르고 "요한복음 3장 16절"하니까 문이 열립니다. 소년은 생각하기를 요한복음 3장 16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닫힌 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을 열어준 할머니는 소년의 얼어붙은 몸을 보고 따뜻한 벽 난롯가에 불을 쬐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몸을 다 녹인 다음에 고기 국물이 있는 좋은 식사를 제공받으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춥고 배고픈 것을 해결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할머니는 성경을 들고 나오시더니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으시면서 소년에게 이 구절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대답하기를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닫힌 문을 열어 주고, 추운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피곤한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맞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단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라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소년에게 따뜻한 식사와 함께 따뜻한 하나님 사랑이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 몸을 녹이는 온돌처럼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아무리 세상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모두를 보듬어 우리 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나뿐 개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나뿐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그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할 뿐입니다.
왜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 우리로 사랑해야 합니까?
고전 12:20에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은 상부상조하도록 하나님은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25에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27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된 예수님의 각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가 축구와 야구입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사장 좋아하는 경기가 미식축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길죽하게 생긴 공을 던져 가지고 달려가 상대방의 골 지역으로 들어가서 점수를 얻는 경기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이 경기에 거의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이 우리가 되지 못하고 미식축구의 신화적인 감독으로 알려진 빈센트 롬바르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세운 경이적인 승률도 승률이지만 한번 우승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수퍼볼 경기에서 수 차례 연속 우승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낳은 최고의 감독으로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언젠가 그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팀이 우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선수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팀도 똑같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그때는 좋은 감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 팀도 마찬가지로 좋은 감독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선수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위해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각자 스스로 앞서 나가서 막아주고 서로 격려해 줄 때 그 팀이 우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서로 협력해야 됩니다. 서로 섬겨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손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왼손은 오른 손을 위해 있고 오른 손은 왼손을 위해 있습니다. 오른 손이 물건을 들다가 힘들면 왼손이 대신 그 물건을 받아 줍니다. 그래도 힘이 들면 양손으로 같이 바쳐 듭니다. 그래도 감당하기 어려우면 어깨에다 짊어집니다. 그래도 안 되면 머리에다 이기도 합니다. 몸의 지체들은 서로 서로 협력하고 반드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어느 한 지체가 강건하면 다른 지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되어 있으며 어느 지체가 약하고 병들면 다른 지체들도 덩달아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평창 올림픽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평화는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우리가 한 지체라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평창의 각국에서 온 선수들은 물론이요 우리나라 모든 선수들이 올림픽이란 한 몸의 지체로 우리는 한 몸이란 생각으로 서로 사랑하여 평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해야 하고 위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힘을 북돋아주고 격려하면서 서로 힘을 합하여 올림픽의 평화의 정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가 하나의 지체임을 망각하고 너는 너, 나는 나, 자기만 생각한다면 그 시합은 보나마나 지는 것은 물론이요 평화를 깨트리게 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없어집니다. 경기 이름이 팀추월(team pursuit) 경기라 했는데 우리가 없는데 무슨 팀이라고 하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우리 어린 스케이트 선수들 간에 마치 오른 손과 왼손이 우리가 되지 못한 하나 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김보름선수는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사죄의 질주인양(스포츠조선) 은메달을 땄지만 전혀 기뻐하지 못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안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여자 컬링선수들처럼 하나 되어 경기 하는 그 모습에 온 국민은 무론 세계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경기 중에 김선영 선수가 김영미선수를 부르는 영미라는 이름은 이번 평창올림픽에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영미야 부르는 그 이름에 나와 너가 하나 되듯 우리선수들이 연일 승리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컬링선수들은 스웨덴 선수들과 지금시간 결승전을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세계 최고 선수들입니다. 은메달을 따도 우리 선수들은 대단한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 됨은 충분히 금메달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두 개의 손이 있습니다. 왼쪽 손은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오른쪽 손은 이웃을 붙들어 하나님과 하께 나와 이웃이 하나 되어 우리가 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요17:21에서“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
그러므로 기독교의 믿음의 성숙은 내가 너 곧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고 돌보고 사랑하고 함께 주님의 일을 할 때 월등하게 자라게 됩니다. 왜 기독교인들의 믿음이 자리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입니까? 주안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운사람들을 만들고 적을 만들고 하면 결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못하고 예수와 하나 되지 못하니 거기에는 파리 끓듯 마귀들이 날아옵니다. 믿음은 홀로만 믿음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올림픽 천국경기장에서 금메달을 따고 천국 백성의 명예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즐거운 신앙공동체입니다. 곧 나와 너가 함께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는 예수님 울안 입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여기에 있는 우리만 아니라 또 이웃의 많은 사람들과도 하나 되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우리 안에 함께할 그들을 찾아 여기 빈 의자에 앉도록 한다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