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일 주일아침 예배 요 6:15 욜로 신앙
어떤 분이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보니 벌써 수술 중이었고 자정이 조금 넘어서 의사가 수술을 마치고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은 수술실로 들어가 부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맥없이 나왔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지면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구내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첩을 폈습니다. 수첩을 펴 보니 전화할 수 있는 친구들의 이름이 5장에 걸쳐 반듯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9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다이얼을 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밤에 "내 아내가 교통사고로 운명했으니 와서 나를 좀 위로해 주게"라고 말할 친구가 93명의 명단 중에서 한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수첩만 뒤적이다가 전화 한 통 하지 못하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전화박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삶에 대해서 엄청난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전화할 친구 하나 없으니.... 이제까지 무엇하고 살았나? 내가 정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연제원목사)
오늘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바쁘게 각자 힘들게 각자만의 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옆 사람을 돌아볼 새가 없고 이웃에게 사랑을 줄 여유도 없이 슬퍼도 나 혼자만이 슬프고 기뻐도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가집니다.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회자(膾炙)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욜로라는 말입니다.
Yolo You Only Live Once 한번뽄인 인생 즐섭게 살자 2017년 새해 대표 키워드
2017년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트랜드)로 라이프 휘게(HYGGE 휘게는 편안함, 안락함, 아늑함을 뜻하는 노르웨이어 명사지만 그 뜻을 하나로 단정할 수 없어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과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 따뜻한 방 안 푹신한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읽는 저녁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소소하게 차려놓고 친구들과 밤새 떠드는 주말이 휘게 라이프인 것이다.) 컬러 그리너리(GREENERY미국의 색채 연구소 팬톤에서 ‘그리너리Greenery’를 2017년 S/S 컬러로 선정했다. ) 그리고 욜로(YOLO)라고 말합니다.
YOLO라는 표현은 미국의 인기 힙합가수이자 래퍼인 드레이크(Aubrey Drake Graham 1986년 10월 24일 캐나다 토론토출생)의 <The Motto>라는 랩 음악이 있는데 미국의 랩음악의 1위 곡으로 그 가사 중에.
“한 번 뿐인 인생 그게 좌우명이지,YOLO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nigga, YOLO)
우린 그렇게 살아 매일, 매일,
(And we bout it every day, every day, every day,)”
에서 "한번 뿐인 인생 You only live once“의 글자 첫 글자를 따서 ”YOLO"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욜로는 드레이크가 자주 가는 마이아미 식당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건강보험 개혁안 홍보 영상에서 'YOLO, man'이라고 외치면서 전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TvN방송에서 방영한 <꽃보다 청춘>(2016년2월19일-4월1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인공 4인방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혼자 여행하는 금발의 여성을 만나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자, 그 금발의 여성이 "Yolo"라고 외치면서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 4인방, 꽃보다 청춘들이 욜로족이라 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고 성장기는 막을 내리고 디플레이션 시대로 오면서, 바로 욜로(YOLO)라는 신조어가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욜로 라이프라는 말은 자기 지향적이고 현재지향적인 삶의 스타일, 미리미리 계획하는 대신 그때그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소비하는 스타일을 욜로 라이프 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욜로 라이프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사고 싶은 물건 지금 사라"는 충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살고 사랑하고 배우라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욜로"라는 말은 경제는 성장하지 않고 그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는 희미해져 가고 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지금 현대인에게 절망의 외침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는 긍정적인 희망이 담긴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삶의 스타일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해외 배낭여행객이 붐비는 게스트하우스에는 '헬로(Hello)'나 '굿럭(Good Luck)' 대신 '욜로'라는 인사가 유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욜로 중에는 잘못된 욜로가 많습니다. 취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애와 결혼, 출산은 꿈과 같은 이야기이고. 내집 마련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둥바둥하며 살고, 현재를 희생한다하더라도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는 기대조차 안 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돈을 모아도 금리가 워낙 낮아서 돈을 불릴 수도 없습니다. 욜로의 큰 이면에는 희망이 사라진 미래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내일 기대하기 보다는 현재를 잘 먹고 잘 살자라는 생각으로 한 달 일하고 하루 실컷 돈쓰면 즐기자라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SNS에 올리려고 막 여행을 떠나고, 비싼 디저트를 먹습니다. 욜로족 중에는 SNS 관심병 환자도 많습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7’을 통해 “욜로 트렌드는 저성장·저물가·저금리 시대의 필연적인 결과”라 이야기하며 “몇 해째 계속되는 고갈 논란에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화되면서 미래에 대한 우려는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다.”라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낭비하지 말고 순간에 충실하자는 의미의 욜로는 지금을 즐기자라는 카르페 디엠의 소비적 라이프 스타일의 구체적인 실천인 셈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어제 오늘 내일 모래라는 말 가운데 다른 말은 순수한 우리말인데 내일이란 말만 한문글자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외국학자는 한국인에게는 내일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순수한 우리말로 내일이란 말이 없을까? 혹자는 올제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내일보다는 현재 지금 방금 오늘을 중시 여깁니다, 내일은 또 오늘이 되기 때문에 내일도 오늘이라고 하겠습니다.(구지 내일을 말하려면 다음날이라고 하면 됩니다. 이날 다음날 이다음날 이다음지난날) 한번뿐인 오늘 나는 오늘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고, 가장 소중한 장소는 바로 여기며,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다." 인생을 너무 미래 지향적으로 살면 오늘의 기쁨, 오늘의 행복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욜로 라이프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살려는 현재지향적인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펜스 존슨의 <선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 소년과 한 노인인데, 노인은 어린 소년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해놓고 선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찾지 못한 채 세월을 가는데...
그리고 그 소년은 성인이 되어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인생에 대한 불만은 더 쌓여 갔습니다. 그 때 노인이 생각나, 노인을 찾아가 대화를 시작하고, 선물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인은 찾아온 성인이 된 소년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날들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가를 기억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때 그 성인이 된 소년은 바로 이 순간,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고 느끼고, 그 선물이란 것이 "지금 이 순간"임을 알게 됩니다. 영어로는 선물 곧 present 입니다. 무엇을 하든 우리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하고 지금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새로운 트렌드 욜로 라이프는 "도전"이라는데 새로운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족과 함께 여행을 즐기며, 모험하며 도전하는데 시간을 씁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무한한 체험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욜로의 기본 주장은 한번 뿐인 인생이니 하루 주어진 오늘하루 충실하게 살자라는 것입니다. 삶을 보다 진실하게 선하게 아름답게 살면서 경험하는 기쁨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으로 하나뿐인 인생 오늘 하루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에 충실한 것이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쁘게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기독교 욜로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뿐인 욜로 인생을 사셨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많은 제자들과 따르는 군중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은 늘 홀로 이셨습니다. 홀로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홀로 길을 걷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독한 인생은 아니셨습니다. 애시당초 고독이란 예수님에게 없었습니다. 그것은 늘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 8:16에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의 사전엔 고독이란 명사는 없습니다. 외롭다란 동사는 없습니다. 요 8:29에서도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혼자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왜 기독교인은 외로움을 모르는가?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니 혼자 있어도 싱글벙글 기쁨이 마음에 가득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예수님의 생활은 어렵고 고달픈 하루하루 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홀로만 하나뿐인 인생 욜로의 삶을 살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인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시는 욜로의 삶이 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십자가로 가는 삶이 이였습니다. 매일매일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방해 하였지만 그 방해를 게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순절의 마지막 날 새벽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대로 따르리라 다짐하고 어찌 내 뜻대로 할 것인가 기꺼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시어 고난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희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십자가 그것은 내가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요 너무 무거워 힘에 겨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라면 오늘 내가 지고가야 하는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 질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병고라도 가난이라도 마음의 고통이라도 직장문제나 가정문제라도 그 어떤 나를 괴롭히는 세상의 찔레와 가시덤불이라도 그것이 오늘 내가 짊어 져야 하는 십자가라면 기꺼이 져야하는 것이 오늘 나의 사명이요 그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오늘을 사는 욜로의 신앙인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욜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가는 인생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길이 다릅니다. 그들의 인생길은 내가 먹고 내가 즐기자 케세라세라 이지만 우리의 인생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오늘애도 충실히 따르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이 기독교인로서 하나뿐인 인생 욜로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 양화진에 가면 해외 선교사들의 묘역이 있습니다. 1890년 7월 28일 고종황제의 의사였던 J W 헤론이 처음 묻힌 이래 현재 16개 국적 414기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143기가 선교사들의 무덤입니다. 그 중에 미국감리교회에서 파송되어서 사역을 하다가 숨진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5)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제임스 홀 선교사 가족은 3대에 걸쳐서 여섯 분이 거기에 함께 묻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는 대동강변에서 순교당한 토마스 선교사나 아펜젤러, 언더우스, 모펫, 스크랜턴 선교사 같은 분들처럼 세상에게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한 제임스 홀 선교사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선교사로서 십자가를 지고 한국땅을 살아갔던 오직 하나뿐인 욜로의 인생을 어떻게 보람과 기쁨으로 살아 가셨는가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는 1860년에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1891년 미감리교회의 파송을 받고, 파송된 의사이자 목사인 의료선교사였습니다. 제임스 홀은 청소년 시기인 15살 때 출석하던 교회의 부흥회에서 성령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의사가 되어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가 의대에 다닐 때 다른 친구들은 선교를 위해 의학을 공부한다는 제임스 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홀은 당대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Moody)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가 열방으로 가오니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를 외치며 재림의 복음을 전할 때, 큰 깊은 감명을 받고, 기도하던 중에 아시아 복음을 위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병원실습과정을 마친 1891년 12월에 조선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31살의 청년이었습니다.
의학을 공부할 때 제임스 홀은 원래는 조선선교보다는 중국선교에 더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조선으로 최종 선교지를 정한 것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가 조선으로 선교지를 정한 것은 로제타(Rosetta)라는 여학생 때문이었습니다. 로제타는 후에 제임스 홀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 로제타라는 펜실베니아 의대를 졸업 후에 뉴욕의 빈민가에서 진료를 하면서 조선선교의 비전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뉴욕 빈민가 병원에서 실습을 하던 제임스 홀은 로제타를 사모해서 프러포즈를 했는데, 로제타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조선으로 선교를 떠날 것이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려는 제임스 홀과 결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제타는 배를 타고 먼저 조선으로 출국해 버렸습니다. 그 후에 제임스 홀은 갈등하다가 결국 결단을 내리고 선교부로 찾아가서 자신을 조선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892년 6월에 평양에서 로제타와 마침내 결혼하였습니다.
제임스 홀과 그 부인인 로제타 홀이 평양에서 사역을 시작할 당시에 조선 땅은 청일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병들고, 땅은 피폐하고 민심은 흉융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의 생명도 보장받을 수 없는 치안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미감리교선교부는 홀에게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평양을 떠나지 않고 진료소를 설치하고, 부상자들을 지키며 치료했으며, 한국인 인재양성을 위해 광성학당(광성고등학교)을 설립하였습니다(1894년). 제임스 홀 선교사의 이런 희생적인 활동이 그 당시 평양의 조선인들이나 관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는 이러한 헌신적인 활동은 그의 생명에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쇠약해진 제임스 홀 선교사는 자신도 발진티프스라는 질병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이송되던 중에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가 1895년 11월 24일, 그가 조선에 온지 2년 11개월, 그의 나이는 34세, 아내 로제타와 결혼한지는 2년 5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제임스 홀이 세상을 떠날 당시에 그에게는 한 살 된 아들이 있었고 로제타는 임신 7개월째 였습니다(후에 딸을 낳음).
남편이 죽은 후에 로제타 홀은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다시 남편이 순교한 조선에서 사역하라는 소명을 새롭게 받고, 선교를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97년 2월에 세 식구(2살 난 아들 셔우드와 딸 에디스)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남편 제임스 홀 선교사를 기념하는 “기홀(紀忽)병원”을 설립라였습니다. 그러나 로제타가 조선에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서 이번에는 사랑하는 딸 에디스가 풍토병에 걸려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로제타는 이런 아픔을 딛고 선교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평양에 남편 제임스 홀을 기념하는 병원(기홀 병원)을 건립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을 위해서는 광혜여원을 그리고 맹인을 위해서 맹인농아학교를 설립하고, 한글용 점자를 도입했습니다. 또 서울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 고려대학병원의 전신), 동대문병원(현 이화여자대학교 병원), 인천기독교병원, 인천간호보건전문대학을 차례로 설립했습니다. 여성 한 사람이 이러한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로제타는 당시에 박에스더라는 한국여인을 공부시켜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여성의학박사를 배출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43년 동안 기홀병원과 광성고등학교 등은 평양을 중심한 북부지역 선교의 중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로제타 홀 선교사가 한국에서 43년간 일하며 이룬 업적들은 놀라운 것이었고, 미국 정부는 그녀의 이런 삶을 기념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200인 중의 하나로 선정하였습니다. 로제타 홀은 1940년 미국으로 귀국해서 1951년 8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녀는 남편과 딸이 묻혀 있는 양화진에 묻히기를 유언했고, 그녀의 유언대로 양화진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들의 아들인 셔우드 홀은 부모님의 이러한 헌신을 본받았습니다. 셔우드 홀은 부모님처럼 의학을 공부하고, 같은 의학도인 메리안이라는 자매와 결혼한 후에 1926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셔우드 홀은 한국에 돌아와 16년 동안 의료선교를 하면서 황해도 해주에 결핵전문병원인 구세병원을 세웠고, ‘결핵 협희’를 만들어 결핵 퇴치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때 셔우드 홀은 환자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재원을 마련하였습니다. 1934년 9월 12일에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아들인 프랭크 홀은 태어난 그날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1940년에 일제는 셔우드 홀 선교사가 결핵활동을 통해서 한국의 독립자금을 대고, 미국의 첩자노릇을 한다는 죄명을 뒤집어 씌워서 그를 추방하였습니다.
1984년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결핵협회와 광성고등학교에서는 셔우드 홀 부부를 초청하여 기념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91세 였던 셔우드 홀은 광성고등학교 채플에서 설교하면서 이런 말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나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합니다(I still love Korea). 내가 죽거든 나를 미국이나 캐나다에 묻지 말고 내가 태어나 자라났던 사랑하는 이 나라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동생 그리고 나의 아들이 잠들어 있는 한국 땅에 묻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광성고등학교의 교훈은 제임스 홀 선교사가 설립당시에 정한 “빛”입니다. 이것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참으로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셔우드 홀은 1991년 9월 19일(98세), 그리고 부인 메리안 홀은 같은 해 12월 5일(95세) 소천해 대한결핵협회장으로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양화진에 제임스 홀과 그 아내 로제타 홀, 어릴 때 죽은 딸, 아들인 셔우드 홀과 그의 부인인 메리안 홀 그리고 태어난 날 죽은 그들의 아들 프랭크 홀까지 3대가 묻히게 된 것입니다. 제임스 홀과 그의 아내였던 로제타 홀 선교사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 이야기는 자신에게 예수님이 지워주신 십자가 사명을 한국땅에서 이루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며 한반뿐인 자신의 인생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신 참으로 귀한 욜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김상수목사에게서 내용 발췌)
기독교인으로 욜로인생은 오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기꺼이 질어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것은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온 인류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 십자가 우리도 지고 가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뿐 인생의 길인것입니다.
함께 복음성가 ‘사명’을 부르겠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 나도 따라가오 /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 나는 달려가겠소 /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 주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 나는 달려가겠소 /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 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 나는 사랑하겠소 /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 나를 사랑한 당신이 /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우리 각자는 나 홀로 욜로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인생은 하나뿐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제에 사는 것이 아니고 내일에 사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사는 것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험하고 힘들어도 그것에 충실하는 것이 오늘 내가 짊어질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유일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욜로 나 하나뿐인 인생을 오직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하여 주님께 드리기 위해 함께 욜로 신앙 생활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뿐인 욜로인생은 하나님 안에서의 기쁜 인생이요 축복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