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예레미야 29:10-14 라온 코이노니아의 행복
그 어느 시대보다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하면 행복을 공부하여야 합니다. 어느 대학교엔 행복학과가 있다고 합니다. 실상 직장 취업을 위해 공부하던 학생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토론하다가 아예 행복학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1급 2급 3급 자격증을 준다는 것입니다. 행복지도사, 행복치료사, 행복상담사, 행복경영사, 행복코디네이터를 수여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자격증이 생겨났습니까? 사람들이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데 행복하지도 않고 아주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첫째로 무슨 일이든지 감사로 시작하십시오. 두 번째는 하루에 세 번 기도하십시오. 세 번째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네 번째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다섯 번째 선한 일을 하다가 힘들다고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섯 번째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모든 사람을 사랑 하십시오
참 좋은 말입니다. 이렇게만 매일매일 살아간다면 반드시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문제는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느냐? 아니 이렇게 사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될 것입니까?
이런 글도 있습니다. 일 이 삼 사 숫자에 맞춘 글입니다.
일 일어나면서부터 외쳐라 -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이러 저러한 일을 하면서 외쳐라- 나는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삼 삼천리강산이 울리라고 외쳐라 – 나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사 사람들에게 외쳐라 – 나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다!
오 오늘도 다시 외쳐라 –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육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외쳐라 – 나는 어디서나 행복하다!
칠 칠칠맞다고 말을 들어도 외쳐라 –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팔 팔팔하게 힘차게 외쳐라 – 나에게 소낙비처럼 행복이 쏟아지고 있다!
구 구원받은 기독교인답게 외쳐라! - 나는 축복받은 행복한 성도다!
십 십리를 달려가도 백리를 달려가도 외쳐라 – 행복해 나는 행복해!
무슨 말입니까? 행복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행복은 행복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가수이자 목사이신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1980)란 노래가 유행한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기다리던 그날 그날이 왔어요 즐거운 날이예요
움츠렸던 어깨 답답한 가슴을 활짝 펴봐요
가벼운 옷차림에 다정한 벗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들과 산을 뛰며 노래를 불러요 우리 모두 다 함께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진달래꽃 피는 봄이 지나~면 여름이 돌아와요 쏟아지는 태양 젊음이 있는 곳
우리들의 여름이 강에~도 산에도 넓은 바다에도
우리들의 꿈 있어요 그곳으로 가요 노래를 불러요 우리 모두 다 함께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이 노래에 나는 행복합니다가 스므번 반복됩니다. 그런데 혼자 있어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정한 벗들과 ..우리 모두 다 함께’라고 하였습니다.
확실한 것은 행복은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에 욕심을 내면 불행하게 됩니다. 행복은 행복을 나눌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 행복해 집니다.
일본에 Ledapple 이란 5인조 남자 가수그룹이 있습니다. 이 레다플이 부른 ‘키보노우타’(希望の唄 희망의 노래)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아나타가이 루 아나다도이루 あなたがいる あなたといる
당신이 있어 당신과 있어
아나다가이데 아나다도이데 あなたがいて あなたといて
당신이 있어서 당신과 있어서
콘나니 시아와 세니나루요 こんなに幸せになるよ
이렇게 행복해 져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만일 혼자서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말씀은 아담이 불행하게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너와 나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서로 어울려 있어야 행복할 수 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 세상은 행복해 져야 합니다. 처음 아담이 하와를 보았을 때에 행복의 눈이 번쩍 떴습니다. 그래서 외치기를 “당신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조드 핲파암 에쳄 메아차마이 우바사르 밉브사리)”고 외쳤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당신과 있어서 이렇게 행복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창1:22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 말씀은 행복하게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이란 말씀으로 시작하는 데 이 히브리 원어로 하면 “복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세상을 보시고 가지신 소원이 있으시다면 인간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부모에게 세 가지 기쁨(父母三喜)이 있는데 첫 번째 기쁨은 자식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쁨은 자식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가장 큰 기쁨은 자식이 잘 산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소식을 들으시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들려 드리는 기도라는 것이 항상 못살겠으니 잘 살게 해주세요, 너무 가슴이 아프니 시원하게 해주세요, 저는 아주아주 불행합니다. 행복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뿐이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얼마나 슬프실까?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을 왜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까? 다윗은 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행복하신다면 이는 곧 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디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소풍이나 야외예배를 가면 보물찾기라는 것을 합니다. 종이에 보물 이름을 적습니다. 그리고 나무 잎 사이에, 바위 틈에, 돌 밑에 숨겨 둡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찾아오면 종이에 적혀 있는 대로 보물을 나누어 주는 흥미 있는 놀이입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은 보물찾기라고 하여서 보물을 찾아 헤매고 다닙니다. 아무리 돌 밑을 뒤져도 보물이 없었습니다. 나무 잎 사이를 뒤져 종이쪽지가 보물인가 싶어 보니 꽝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보물을 숨기는 사람입니다. 보물을 찾는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적당히 쉽게 감춰야 할 것입니다. 무슨 귀한 보물이라고 꼭꼭 숨겨 놨다가 찾는 사람이 없다면 그처럼 원성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10 명이 바위를 들쳐야 보물을 찾게끔 숨기지 않습니다. 두 명이 5 m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못 찾도록 보물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사닥다리를 놓고 10 층 높이 나무위에 보물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모든 보물은 다 찾을 수 있게 숨겨 놓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는데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게 숨겨 놓으셨으니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행복이 감추어진 행복의 전당입니다. 누구든지 이 행복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행복이란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를 믿어 행복한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바로 코이노니아란 말은 이렇게 예수를 믿어 서로 어울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행복의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죄인의 상태에서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고 명예가 크다 하더라도 그것은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지금 이완구 총리 후보 되신 분이 행복할 까요? 아마도 죽을 맛일 것입니다. 아마도 총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 이제 행복하다 이렇게 말 할 것입니까? 그때부터 불행 시작일 것입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에 고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 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진정한 조건은 오직 하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알고 따르며 사는 일 이것 하나뿐인 줄 믿습니다. 죄로부터 벗어나고 우릴 불행하게 만드는 마귀의 손에서 벗어나고 지옥 갈 일 전혀 없으니 오직 밝고도 화려한 저 천국 바라보며 영생의 길을 사는 인생이야 말로 행복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불행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그의 삶이 이렇게 바꿔집니다.
첫째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둘째 인간의 최대 목적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이를 아는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셋째 전에는 소심하고 겁이 많았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없이 놀라운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네째 어떠한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다섯째 이웃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꼭꼭 숨어 계시지 않습니다.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습니다.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볼려고 하는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하늘의 보물이 행복을 찾게 되는 행복의 집입니다. 이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사람은 행복의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나타가이 아나다가이데 아나다도이데 콘나니 시아와 세니나루요, 당신이 있어 당신이 있어서 당신과 있어서 이렇게 행복합니다, ” 그래서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구주를 알 때 행복 있네 그 사랑 안에 거하므로 ...>
왜 우리가 예수님을 알 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까? 바로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때 이였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베벨론 군대가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왕과 백성들을 굴비 엮듯이 밧줄로 묶어 포로로 끌고 가던 때 이였습니다. 희망이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덴 라켐 아카리트 웨 티크바)”
누가 불행한 사람입니까?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마귀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불행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큰 선물은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중에 만날 큰 기쁨은 바로 희망을 찾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엄청난 절망중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는 끝이다 우리는 모두 죽었다, 언제 다시 옛 예루살렘을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저 베벨론의 세력으로부터 다시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모두 생각하고 슬피 울 때에 예레미야가 외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없지만 미래는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는 그러하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미래는 넘친다. 지금은 불가능한일이지만 미래는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된다(웨하야 레오쉬테카 미츠아르 웨아카리데카 이슥게 메오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희망입니다.
희망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겨자씨 보다 작지만 미래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Nimitz Chester William 1885.2.24.-1966.2.20.)는 탁월한 지도자였고 놀라운 전략가였습니다. 그가 아직 소위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니미츠가 근무하는 함대에 중요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행사에 참석하려고 해군 대장이 방문하였습니다. 그 해군 대장은 실수로 대장 계급장이 떠러져 못 쓰게 되었습니다. 당황한 해군 대장은 어쩔 줄 몰랐습니다. 대령 부관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가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있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군함 이였습니다. 모든 해군은 대장아래에 있으니 대장 계급장을 누가 가지고 있을 것입니까? 그 때 니미츠 소위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대장이 물었습니다. “아니, 소위인 자네가 어떻게 대장 계급장을 갖고 있었나?”그러자 니미츠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제가 소위로 임관할 때 애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애인은 제게 대장이 되라면서 대장 계급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니미츠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든 대장은 그를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애인을 두었군. 열심히 노력해서 꼭 대장이 되도록 하게.” 그 뒤 니미츠는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대장 계급장을 선물했던 그의 애인은 니미츠 대장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아무나 대장이 되지 않습니다. 미래라는 땅에서 대장을 찾겠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대장이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희망은 우리가 찾지 못하게 숨어 있지를 않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 거기에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말하는 그곳에 있습니다.
소원을 이루는 주문이 있습니다. 카스토르폴루스(Casrorpollux) 라는 것입니다. 카스토르 폴루스는 우주 멀리에 있는 쌍둥이별자리를 말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 카스토르폴루스를 외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또 다른 주문이 있습니다, 아브라카다브라 이말의 뜻은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성경적인 의미입니다. 서양 마술사들이 마술을 부리때 아브라카다브라라고 말합니다. 말대로 번역하자면 ‘하나님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란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천지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희망은 이런 주문에 의해서 이루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외운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천지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를 수만번 외운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 이야기 더 드리려고 합니다. 구두닦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손등과 콧등에는 항상 까만 구두약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항상 희망이 반짝거렸습니다. 아버지는 빚을 갚지 못 하여 감옥에 들어 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면서 희망을 반짝거렸습니다. 탄식하지 않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 이 때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구두 닦는 것이 그렇게 좋으냐?”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그럼은요. 저는 희망을 닦고 있는걸요.”희망을 닦던 소년은 후에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을 쓴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년 2월 7일 - 1870년 6월 9일) 이야기입니다.
렘29:10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돌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돌보다’란 말은 파카드란 말로서 주의 깊게 보살피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날개 밑에 품어 돌본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돌보셨습니까? 출애급한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돌보시는데 홍해바다를 갈라서 건너게 하시고 쫓아오는 애굽의 군대를 죽게 하시고 광야에서는 물도 먹고 하시고 또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먹도록 돌보셨습니다.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보살펴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만나가 자기들을 돌보았고 메추라기가 자기들을 돌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자기를 돌보았고 지위가 자기를 돌보았고 회사가 자기를 돌보았고 직업이 자기를 돌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회사가 망하고 자동차가 전복되고 흉년이 지고 가뭄이 일어나 굶게 되면 무엇이라 말할 것입니까? 한 부자가 걷어드린 곡식들을 창고에 가득 두고 먹고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그날밤 그의 영혼이 부름을 받는 다면 그 창고의 곡식은 누구 것이 될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고백하여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돌보심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면 깊은 웅덩이에서도 희망을 꿈 꿀수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절망이라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럼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한 고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아래입니다. 여기에 거하는 사람만이 희망을 보장 받습니다. 진지와 영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놀라우신가를 깨닫게 되고 희망의 찬송을 힘차게 부르게 됩니다.
라온 가족 여러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무슨 희망입니까? 몇일전 여기서 총회신학교 이사회가 있었습니다. 이사장 되시는 서울교회 윤영현 장로님께서 저에게 기운을 내시라고 해서, 제가 이제 70이 넘으니 어디 기운을 낼수 있나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이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고 모세는 80에 부름 받았으니 전목사님 힘내십시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의 일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여기 라온 즑운 교회를 통해 돌보아주고 게십니다. 그러니 오직 언제나 죽기까지 충성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해 주심은 오직 충성된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인 줄 믿습니다.
원더걸스라는 여성보컬팀이 있죠. 원더걸스가 세계적으로 히트한 노래가 “nobody nobody Nobody nobody but you ”라는 노래입니다. ‘nobody nobody Nobody nobody but you ’이 말은 “당신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뜻입니다. 근데 문제는 그 당신이 누구냐는 겁니다.
언젠인가(2013년 12월 28일) 뉴욕에서 원더걸스 리더인 선예(민예선)양이 청소년 전도집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 집회에서 “nobody nobody Nobody nobody but you에서 YOU는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간증을 했습니다.
인기가 높아지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환영하니 기분은 좋은데 돌아오고 나면 마음이 공허하더랍니다. 그 이유를 생각에 생각을 했답니다. 어릴 적에 교회에 다닌 기억이 나서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답니다. 다섯명 가운데 4명이 크리스찬이랍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셔서 그렇구나!”하는 감동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 주시니 이처럼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라온 코이노니아의 즐거운 교회 성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왜 행복해야 합니까? 라온 이기 때문입니다. 라온이 무엇입니까? 즐거운입니다. 즐거운 성도는 즐거우니 행복한 성도인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구주 예수님을 믿으니 우리는 행복합니다.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이 품어주시어 마치 닭 보금자리 같은 라온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보장해 주시니 우리는 행복합니다.
행복한 교회 라온 코이노니아 즐거운 교회 성도들은 이제부터 세상에 행복 전도사가 되어야 하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 지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믿고 구원받아 날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면서 내일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여러분 행복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