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9년 2월 24일 주일아침 예배  시 135:1-21  토부 야훼

 

 

오늘 본문의 1절에서 3절에 “찬송하라(할렐루)”라는 말이 네번 반복됩니다. 그리고 19절에서 20절에 “송축하라(빠라쿠)”라는 말이 역시 네 번 반복됩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송축하라는 말입니다. 송축이라는 말은 너무나 기쁜 일이 있어 이를 축하한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을 찬송여야 합니까? 그 이유를 3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기 때문(키 토브 야훼)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찬송이 아니라 그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그의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인데 여기서 사용한 찬양은 ‘자마르’라는 말로 이는 각종악기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그의 이름이 아름답다는 말은 그럼 무슨 의미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이 곧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한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한 만물을 보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좋았다‘란 말이 원어로 ’토브‘라는 말로 이 말은 ’선하다‘ ’아름답다‘란 말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곧 선하심이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본문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토브 야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다 선하십니다. 이런 선하신 하나님이 선하지 못한 인간을 택하시어 선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이일을 기리고 하나님을 송축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하신 선하신 일을 본문에서 열거하고 그러므로 결론에 가서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야곱은 속임수 잘 쓰는 그리 칭찬받을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선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그런 야곱을 택하셔서 변화시키시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자손들을 당신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하나님이 선하심을 소개하는 한 예화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후손들에게만 선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오늘 우리들 까지 택하시어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으니 이것이 곧 하나님이 찬송받드실 선하심이요 하나님께 송축드려야 마땅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은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우주만물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하나님의 창조와 그 섭리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햇빛과 공기와 물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과 짐승 산천초목에까지 살아갈 수많은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무슨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릴 것 없이 창조주 하나님은 만가지 은혜를 골고루 필요한데로 허락하고 게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인 것입니다.

 

본문 8-12절에는 하나님의 출애급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구원의 역사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사느냐 죽느냐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였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 살 땅 한평도 가진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애급의 군대와 아모리 왕등 모든 나라로 부터 구원해 주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대대로 기억하고 기념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긴 영화 속에 우리는 그 주인공으로 살아왔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일제 강점기 말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이 가장 악랄하게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때에 저는 태어났습니다. 3살되던해에 나라가 해방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6.25전쟁으로 부모님따라 이리저리 피란당하고 학교 마당에서 막대기로 마당에 글을 쓰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대구 피난시절에 GMC트럭에 치어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온갖 개구쟁이로 초등학생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생 때 혼자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4.19 학생혁명이 있었고 박정희 군사정권하에서 대학을 다니고 군대생활을 하였습니다. 군대생활 초에 김신조 일당 북한군이 넘어와 휘젖고 다닐 때에 토벌하러 나갔다가 자동차 살고로 육군병원에 입원하였소 그후 카투사로 미군부대에서 군대생활을 마치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결혼을 하여 부산에서 첫 목회생활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대학교 교수로 대학강단에 섯고, 때로는 민주투사로 노무현 문재인씨와 부산거리를 누비고 다녔고 때로는 환경지킴이로 황동도 하였고 연합회 회장으로 봉사도 하고 세계 각국에서 그리고 평양에서 북한 대표들과 평화와 통일에대해 논의도 하고 무엇보다 부산으로 전주로 서울로 재주로 다시 부산으로 그리고 군산에 온지 28년째로. 목회생활 47년간을 하고 있는데 수많은 교인들과 사랑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면서 이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니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아름다운 은혜의 역사이니 어찌 하나님께 찬송과 송축을 아니 돌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시편 135편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노래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부를 노래이기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택하시고, 우리도 구원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놀라운 일들을 너무나 많이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볼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250년간의 애급의 노예생활을 끝내게 하신것처럼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일본제국에 의한 압제와 치욕의 역사를 종료시키시고 또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도발한 전쟁을 끝이게 하시고 전쟁후 세계에서 가장 황폐한 가난한 우리나라를 오늘 세계 10대 경제발전 국가로 이루었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최고품질의 온갖 상품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휴대전화, TV, 냉장고등 온갖 전자 제품들, 자동차, 초대형선박, 원자로, 훈련용 비행기와 전투기, 과자, 라면, 김치 심지어 호미 이태리타월 아기를 업는 포대기까지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세계 6우의 수출대국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부흥하게 된 그 역사 뒤에는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0년 전에 단 하나의 교회 단 한 사람의 기독교인도 없었던 이 나라에 복음을 전해주시고 구원 해 주시므로 지금은 100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매 주일 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외국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였던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세계에 3만명의 선교사들을 보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가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러니 한국교회와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목소리 높혀 선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송축드림이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때로는 창조주와 구원자로서 하나님께서 자연과 역사를 통해서 행하시는 일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송축과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찬송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하시고 옳으시고 정확하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우리 군산의 경제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군산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도 않으시고 떠나시지도 아니하십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살아온 경험에서 그리고 우리 각자가 살아 온 체험에서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군산을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로 세워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군산을 떠난 사람들이 후회하고 다시 군산으로 짐 싸 들고 돌아 올 그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군산에서 평안하게 건강하게 살아 갈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만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니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 믿고 손 놓고 있으면 안됩니다. 하늘은 쓰로 애쓰는 자를 버리지 않는다(蒼天不負苦心人)란 말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그를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롬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은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니 우리도 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선한 백성이 되어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는 너무나 약한 존재인데 어찌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우리를 통해 우리 군산에 나타내실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롬 8: 26에 “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은 연약함을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연약하다는 것은 피조물의 본성이고, 연약한 존재인 피조물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 땅에서 연약한 자로 살지만,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연약함을 극복해 나갑니다. 성령을 다른 말로 보혜사라고 하는데요, 보혜사는 '우리 곁에서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돕는다는 뜻은 함께 담당하신다는 의미이고 성령은 성도들의 연약함을 함께 담당하시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매사에 점점 쓸쓸해지고 초라해지고 비관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그럴 때도 선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글을 봤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한 믿음이 곧 힘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니 선한 믿음보다 강한 힘은 없습니다. 이 선한 강한 믿음에 선하신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오늘의 시편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이스라엘은 약한 민족입니다. 노예민족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제주도 없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아 주시니 오늘날 세계에 가장 이름을 날린 유명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어째서요 지난 4,000년 동안 그들은 선하신 하나님이 자기들의 연약함을 돕고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84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해 겨울 어느 주일날 날씨가 추워 영하 34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까 성도들이 교회에는 평소의 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8세 된 골디 슈리버 라는 할머니는 100 리나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교회에 올 때 그냥 혼자 나온 것이 아니고 100세 된 애나 해밀턴 이라는 할아버지를 50 리나 되는 거리를 가서 데리고 나왔고, 또 30 리나 되는 거리를 가서 94세 된 프랜 스파코스 라는 할아버지도 함께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때 담임목사가 너무나 감동이 되어 “이렇게 추운 날 혼자도 아니고 어떻게 여러분을 모시고 오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작은 십자가를 진 것 밖에는 없습니다, 아직 목숨을 바칠 충성은 못 됩니다“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기이고 힘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용기이고 힘입니까. 이 힘이 돈으로 주어지고 명령으로 주어지고 지위로 주어질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이 힘이 우리를 살리시고 도우시고 영생하게 하고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이 88세 할머니의 선하신 믿음은 성령께서 연약한자를 도우시는 힘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할머니의 선하심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선하게 산다는 것은 다르게 산다는 것입니다. 비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살아야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선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이 ‘제자도’(The Radical Disciple)라는 책에서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의 8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불순응'(non-conformity)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말의 '순응(順應)'은 '아무 저항 없이 순순히 응한다'는 뜻입니다. 하라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끌리는대로 따라가고, 밀리는 대로 밀리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영어의 conform은 좀 더 적극적입니다. 변화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환경에 맞추어 변신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Form' 즉 환경의 틀에 'Con' 즉 자신을 맞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맞추어 살지 아니하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기독교인들을 행해 사람들이 조롱하고 압력을 가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라고 위협합니다. 세상의 틀에 맞추어 살라고, conform하라고 협박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제거하기 위해서 세상은 제도를 만들고 법을 만들고 때로는 폭력을 사용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다 보면 손해 보아야 하고 외면당하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응형 인간'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정치인들이 각 정당에서 부정한 정치에 순응하고, 기독교학교교사들이 재단의 부정한 방침에 순응하므로 불의한 교사들이 되고, 기독교복지사들 역시 물질적 중독에 순응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기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웁니다. 어느 길거리를 청소하시는 분이 말하길 월요일 아침 교회에서 버린 쓰레기들이 불리수거하지 않은 채 온갖 쓰레기를 한꺼번에 비닐봉지에 넣어 교회 문 앞에 버려서 그 교회 관리 집사에게 항의 하였더니 그런 분리수거는 당신의 책임이 아닌가 그런거 하라고 당신에게 월급 주라고 우리가 세금 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교회가 가장 환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쩔 수 없다하여 세상의 불의 부정한 더러운 세속에 밀려 다녀서도 안 되고, 살아남기 위해 세속의 변화에 순응하여 가서도 안 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말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는 것이며, 물러설 수 없는 믿음의 선을 지키는 것이고, 세속의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며,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스토트 목사의 책인 ‘제자도’의 원 제목인 The Radical Disciple은 ‘급진적 제자들’이란 말입니다. 흔히 과격한 좌경사상을 말하는데 여기서 급진적이란 세상의 풍조에 저항하고 믿음의 정조를 지키고 진리의 순수성을 위해 영적으로 싸운다는 의미입니다. 롬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메 수스케마티제스데)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본받다’란 원어로 ‘수스케마티조 = 순 스케마티조로 이 말은 “같은 모양이되다” “모방하다”란 의미입니다. NIV에서는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풍조에 따라 같이 ’뇌화부동(附和雷同)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대중심리에 몰려다니지 말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선하심 같이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기준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되거나 때로 조롱도 받고 억울한 말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지고 조금은 불편하고 지금은 어려움이 있어도 아니요 마침내 승리하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대로 삶의 보람과 행복을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선한 삶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지 못할 떼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되고 아무래도 좋다는 체념이나 자기만족을 찾아 세상을 방황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선한 가치관으로 산 아름다운 한 사람을 속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어린 시절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 ~ 1993) )이란 영화배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예쁘게 보여 오드리 햅번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보았습니다. 특히 사브리나, 로마의 휴일, 문리버, 마이페어 레디, 전쟁과 평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런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영화내용 보다도 오드리 헵번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화들 내용은 전혀 기억이 없지만 지금도 오드리 헵번의 얼굴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 오드리 헵번은 배우가 아닌 제2막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60세를 앞둔 나이에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먼저 유니세프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헵번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 자신이 이차 대전 직후 유니세프로부터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 받았기 때문에 유니세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 를증언할 수 있습니다.”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유니세프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보수는 1년에 1달러 뿐이었고 교통비와 숙박비 외에는 아무 것도 제공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열정을 다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조롱을 하였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인기가 떨어지니까 별 쇼를 다하는구만." "몇 달 저러다가 말겠지" "자기가 아직도 앤 공주인 줄 아나봐" 언론과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행보를 곱지 않게 보았습니다. 허지만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 이들의 슬픈 현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곤경과 죽음에 처한 아이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발길은 아프리카 전 지역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엘살바도르 등 50여 곳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로 이동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60이 넘으면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녀의 끝없는 행보에 언론과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에 걸린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만지고 고통으로 흘린 눈물자국이 얼굴에 진하게 묻어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장면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던 것입니다. 각국에서 구호물자와 기부금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게 뭐지요?" 1992년 소말리아를 방문했을 때 마을 공터 구석에 놓여 있는 수많은 자루꾸러미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곡식자루이겠거니 라고 생각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원주민에게 웃으며 물었을 때 그녀는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아이들의 시체 자루였습니다. "오마이갓" 오드리 헵번은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두 손을 모았습니다.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부터 오드리 헵번은 소말리아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론을 향해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구호의 손길을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헵번은 소말리아를 방문하기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 때문에 소말리아 방문이 취소되는 것이 두려워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랫배에 강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모든 일정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오드리 햄번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명망 있는 의사들이 앞 다투어 그녀를 살려보겠다고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암이 워낙 온몸에 널리 퍼져 있어서" 오드리 헵번은 고개를 떨군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한테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그 것이 제 운명인걸요. 그래, 하나님이 제게 주신 시간이 얼마쯤 남았지요?" "한 3개월쯤 남았습니다." "3개월이라,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은 충분하군요." 오드리 헵번의 암소식이 알려졌을 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돕는 거죠?" 오드리 헵번이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희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

 

오드리 헵번은 마지막 시간을 가족과 지내고자 스위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성탄절 때입니다. 그녀는 기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어. 한번 들어 보렴 ." 오드리 햅번은 유언처럼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세요.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세요.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세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세요. 이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세요.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합니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됩니다. 기억하세요.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됩니다. 당신이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개라는 걸 발견하게 될 거예요.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손입니다."

 

그렇게 성탄절을 보낸 이듬해 1993년 1월 20일, 오드리 헵번은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63세였습니다. 그날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던 날이었지만 그녀의 사망 기사가 클린턴 대통령 취임 기사보다 먼저 다루어졌습니다. 그를 조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하나님이 가장 아름다운 새로운 천사를 가지시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유엔은 2004년 2월에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오드리 햅번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를 그냥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

 

오드리 햅번은 젊은 시절 아름다운 여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주름진 노년의 얼굴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선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선하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시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시고 세상을 죄악에서 어둠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기 위해 오늘도 성령께서 일하시니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아름다운 이름이 온 세상에 가득 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드리 헵번도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자신의 삶을 통해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선한사마리아 사람처럼 되라고 말씀 하신 그 말씀대로 너희도 이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아름의 아름다음을 찬송하며 송축하기 위하여 모인 하나님의 선한 성도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온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증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고 그 행사를 송축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