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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2월 9일  주일아침 예배  마2:1-12  輝光如日 當聽焉


가수 윤형주가 부른 “저별은 나의 별”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별이 지고 동이 트면 찬란한 태양이
창가에 피는 아침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안사령관 시절부터 가끔 인기 연예인들을 초청해 호화쇼를 벌이곤 했습니다. 1980년 국보위가 설치될 무렵, 신군부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위해 장성들에 대한 인사작업을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한 군장성들은 전두환 쇼를 즐기면서도 언제 자기가 옷 벗게 될지 내심 초조한 마음이었습니다. ‘전두환 쇼’에 출연한 가수들 중엔 윤형주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히트곡인 ‘저별은 나의 별’을 불렀습니다. 장성들이 가뜩이나 불안해서 좌불안석인데 가수까지 하필이면 ‘아침 이슬 내릴 때 까지 별이지고…’ 운운하는 노래를 불러댔으니 화가 치밀었습니다. 윤형주의 노래를 듣던 많은 장군들은 자신의 어깨에 붙어있는 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습니다. 윤형주는 눈치 없이 <저 별은 나의 별>을 열창하고 무대 뒤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기다리고 있던 보안사 요원이 ‘야! XX 새끼야! 재수 없게 장군님들 앞에서 별 떨어지는 노래를 불러?’라고 소리치면서 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더라는 것입니다. 


(2018. 8.6 울산매일 U 김병길주필 칼럼 참고)

밤하늘의 별은 몇 개일까요? A.D. 150년경 프톨레미(Ptolemy)는 별이 1056개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택도 아닙니다. 우주에는 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많아도 너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우주(universe)에는 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우주를 별 덩어리들로 나눠서 구분합니다. 이 별 덩어리들을 갤럭시(galaxy)라고 부르는데, 이 갤럭시를 은하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삼성 스마트 폰 갤럭시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보면 길게 하얀 구름같이 떠있는 은하수를 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라고 노래 하였습니디.  태양과 우리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수에 무려 별이 1000억 개가 있다고 합니다. 전체 은하수의 길이가 10만광 년이고 태양은 은하수 중심으로부터 3만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닌까 우리가 바라보는 은하수는 대부분 10만 년 전에 반짝거린 별빛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은하수가 우주에 1000억 개의 은하수가 있다고 합니다.  또 각 은하수에는 1000억 개의 별이 또 있고요. 그래서 전체 별의 숫자는 10의 22승개라고 추정합니다. 10의 22승개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세요. 억의 일만 배는 조이고 조의 일만 배는 경이고 경의 일만 배가 해입니다. 1에 동그라미 8개를 붙인 수(100,000,000)를 1억이라고 부르는데 동그라미 22개를 붙였으니 얼마나 큰 수인가? 우리가 밥을 먹고 숫자만 평생 세면 1억을 세는데 60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하루에 8시간씩 노동하듯이 세었을 때 입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세면 20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물론 천문학자별로 그 숫자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 과학으로 셀 수 있는 별의 숫자는 7 곱하기 10의 22자승라고 합니다. 이는 700해 입니다. 숫자로 쓰면, 70,000,000,000,000,000,000,000 입니다.


렘 33: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재미있는 것은 지구 상에 있는 바닷가의 모래 수를 조사해 봤더니 놀랍게도 10에 22승개 정도였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알아냈습니다. 성경에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는 말씀과 얼마나 놀라운 일치인가!
우리가 물을 한 컵(콜라병 반병정도, 180 ml)을 먹으면, 그 속에 있는 물 분자를 6X10의 24승개를 먹는 셈입니다. 0.3 ml 속의 물 분자의 수와 하늘의 별의 수, 바닷가의 모래의 수가 같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참고로,
10의 12승은 조 10의 16승은 경 10의 20승은 해 10의 24승은 서 10의 28승은 양
10의 32승은 구 10의 36승은 간 10의 40승은 정 10의 44승은 재 10의 48승은 극
10의 52승은 항하사 10의 56승은 아승지 10의 60승은 나유타 10의 64승은 불가사의
10의 68승은 무량대수라고 합니다.
내친 김에, 반대로 작은 숫자들을 몇 개 나열해 보면,
10의 마이너스 6승은 순식 10의 마이너스 13승은 모호 10의 마이너스 18승은 찰나
10의 마이너스 20승은 공허 10의 마이너스 21승은 청정이라고 합니다.

시 147: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이처럼 우주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별이 아주 많아요. 하지만 지구에서 사람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별은 3천 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주 전체에 이름을 붙인 별은 45만 7천 입니다. 별들을 몇 개씩 이어서 이름을 붙인 것이 별자리인데, 88개의 별자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별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이보다 더 큰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의 갯수는 10의 98승 정도라 하니 이는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10의 64승인 무량대수 보다 더 큰 수입니다. 그런데 이 수보다 100만 배 많은 엄청난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머리 뇌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뉴런)가 대략 2000억 개이고 이 신경세포를 서로 연결해주는 접촉점을 시냅스라고 하는 데 이 스냅스가 우리 뇌 속에 약 10의 1,000,000(백만)승 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한 인간 안에 우주 전체의 별의 수보다 지구 안에 있는 모든 모래 수 보다 100만 배나 많은 시냅스를 만들어 놓으셨으니 인간들은 이 엄청난 뇌로 수많은 생각을 하고 그래서 오늘날 인간의 문명세계를 만들어왔다고 하겠습니다.

시139:14 시인은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神妙莫測)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 이야기 그중에도 2000년 전에 기록한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꾸며낸 인물이고 신화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기록들이 기록되기 전엔 대개 구전으로 입으로 전해 오다가 비로소 기록하였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들을 보면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단군신화는 단군이 BC 2333년에 나라를 세운 후에 그의 이야기가 구전돼 AD 1281년 승려 일연에 의해 삼국유사에 기록되기까지 최소한 360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닌까 2000-3000년동안 구전으로 전해 오다가 기록된 것입니다. 대종교는 나철선생이 1905년 서울역 근처에서 백전이란 노인으로부터 삼일신고와 신사기를 전해 받았고 1908년 동경 한 여관에서 두일백이란 분으로부터 단군교포명서라는 것을 전해 받고 대종교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대종교에 대해 신화라고 비판하는 일이 없습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기원전 6세기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경전은 기원후 1세기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대부분 600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 경전들에 대해 아무도 비역사적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는 기원후570년에서 632년 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기가 기원후767년에 기록되었으니 그가 죽은 후 135년이 지난 다음에야 문서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은 거의 200년 동안 구전을 전해 오다가 기록되었습니다. 그 기록에 대해 누가 가타부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독 기독교 성경의 기록에 대해 비역사적이라고 부정적으로 입을 비쭉거리고 침을 튀겨가면서 마치 무슨 원한에 맺힌 사람처럼 비난을 퍼 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8년에서 35년 사이에 기록되었고 길어야 6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닌까 그 어느 종교보다 구전전승이 가장 짧았고, 짧았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사실을 기록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 기록자들은 예수님 활동하셨던 당시 직접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과 목격하였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진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기 가운데 사람들이 믿지 못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동방박사들이 큰 별을 보고 베들레헴에까지 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린 이야기입니다. 천문학자들 중엔 예수님 탄생하시던 당시에 큰 혜성이 지구를 스쳐지나갔다고 하며 아마도 동방박사(마고이 톤 아나톨론)의 별은 혜성이 아닌가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외계인이 타고 온 비행체라고 말하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동방박사는 한국인이었다는 뜬금없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결코 거짓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태여 거짓으로 동방박사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거짓으로 꾸면 낸 말이라면 동방의 왕들이라고 말해도 믿을 것인데 구태여 박사들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잠간동안 경배하고 돌아갔었기 때문에 그들이 누구인지는 당시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왔을 까요? 하늘의 별을 보고 찾아 왔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박사라고 부르는 것은 요즈음 학문의 박사를 말함이 아니요 고대로부터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사(마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페르시아라는 나라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유행가도 있지 않습니까?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 / 눈감으면 찾아드는 검은 그림자 / 가슴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 / 아라비아 공주는 꿈속의 공주 / 오늘 밤도 외로운 밤 별빛이 흐른다.” 

 

왜 동방의 박사들은 이 큰 별을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는가?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 별을 따라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여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헤겔이란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깊이 생각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가지가 있으니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 법칙이다.(”Two things fill the mind with ever new and increasing wonder and awe;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Hegel)란 말을 하였고 칸트라는 철학자도 말하길 “저 창공에는 빛난 별이 비추이고 인간의 가슴 속에는 맑은 양심이 빛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두 철학자가 말한 도덕법칙 그리고 양심 이말을 하늘의 별에 빗대어 말을 하였습니다. 즉 양식 도덕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 찬란히 빛나는 별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우주와 같고 그 안에 하늘의 별처럼 양심이 가득히 채워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밤하늘을 올려다 볼때에 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캄캄한 하늘만 보입니다. 저의 집 마당에서 밤하늘을 보면 겨우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그리고 우리 딸별 아들별까지 겨우 세워보면 그것이 다입니다. 별보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너무 어두워 양심이 캄캄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과연 이 땅에 양심이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마치 우리마당에서 몇 개의 별을 세워볼 정도처럼 말니다.

 

서울 뚝섬에서 무인도서판매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월 수십만 원씩 적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책을 가져가고 책값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45%만 책값을 내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가져간 것입니다. 양심이 캄캄한 서울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2006.4.11. 경향신문)

매일유업에서 서울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이 5개 도시에 무인판매소를 설치하고 우유값을 자유로 내고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유 값을 낸 사람들 중에 대전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82%가 자발적으로 우유 값을 지불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전 사람들이 가장 양심적이었다고 말합니다. (2011년 11.1)

 

양심이 캄캄한 이 시대에  그리고 성탄절 달을 맞이하여 우리는 양심의 별을 찾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의 가슴 속에 맑은 양심을 찾아내어야 하겠습니다. 페루시아의 하늘에 뜬 한 별은 그때 그들만이 볼 수 있었지만 오늘 우리 가슴에 빛나고 있는 양심은 누구나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 없는 인간. 이것은 벌써 개나 돼지에 비할 인간인 것입니다. 양심이 없으면 예의염치를 모릅니다. 무엇이 예절이고 무엇이 의와 불의이며 무엇이 정결되고 무엇이 부끄러움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선 양심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인간의 인간된 가치는 양심의 소유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어느 한편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양심일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부끄러운 줄로 아는, 잘못하였으면 잘못했다고 말할 줄 아는, 누구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진실로 미안해하는, 그런 사람이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백십 년 전 우리나라를 일본에게 넘긴 매국노들 그들이 민족을 배신한 이유는 바로 양심을 일본에게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양심을 팔아버려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요즈음도 여전히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선생님이건 심지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양심 없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듣자니 캄캄한 이 세상 그 어디서 별 같은 양심을 찾을 것인가 가슴이 암담해 집니다. 양심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을 뵐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별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양심의 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캄캄한 세상가운데 별처럼 빛나는 양심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의 믿음의 순례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양심의 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가장 양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양심대로 살아야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난 이유가 양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도 양심이 캄캄하여 망한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배신한 것도 양심을 사탄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판결내린 것도 양심대로 재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게 된 것도 양심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잃으면 영혼이 갈 길을 잃어버리고 지옥기로 가게 됩니다. 

 

별을 따라가는 것이 박사들의 임무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양심의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양심은 세상에서 말하는 상대적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양심은 올바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별보다 가장 큰 별로서 예수님의 양심의 별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거기에 오색영롱한 사랑의 빛이 온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가장 큰 양심은 사랑양심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양심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그 양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온 인류를 사랑하신 그 십자가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양심입니다. 이번 성탄절기 동안 별빛조차 없는 세상에 높이 떠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가장 큰 별 사랑의 별을 우리는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로 성탄목 꼭대기에 별을 달았습니다. 이 성탄목 꼭대기에 달은 별을 보면서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와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바쳤으나  우리는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양심을 받아 세상을 밝히는 우리도 양심의 별이 되리라고 다짐 하여야 하겠습니다. 저의 집 뜰에서 밤하늘의 별 겨우 몇 개를 보지만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이곳에 우리들 모두 양심의 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알기 쉽게 말씀드리면 양심있는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양심을 가지게 하는 사람도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양심이 가득해 하늘의 별처럼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중국 연변 청년이 있습니다. 이 연변청년이 천국에 가서 본 이야기입니다. 연변 청년 말투로 소개하겠습니다.
“고저 저희 천국에서는 성경10번 종도 읽어가지고는 성경 보았단 소리도 못함다.
고저 100번 읽으면 고 놈 이제 성경 읽기는 좀 하겠구나 함다.
한 200번 읽었다 싶으면 고 놈 성경공부 시키면 좀 이해하겠구나 하고 의심은 해봄다.
우리 뒷집에 새로 천국에 온 사람이 성경을 300번 읽었다고
자랑하다가 천사한테 끌려가서리 성경인물 빙고게임하다 욱실라게 혼나고
다시는 성경 많이 읽었다고 자랑안함다.
요전엔 성경 600번 읽은 권사님이 예수님 앞에서 성경외우다
글씨하나 틀려 고저 무쟈게 혼났음다.
...그런데 어느날이었음다.
예수님이 허허허 웃으시면서 이렇게 성경을 잘 아는 자가
누구냐며 하늘이 떠나가라 칭찬하시는 것이였음다.
나는 그래서 그사람이 성경을 한 1000번은 읽었나보다 생각했음다.
아니였음다.
그는 성경을 이제 겨우 한번 읽고
집에 가던 길에 사고가 나서 천국에 온 신입이었음다.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 물었음다.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해보거라."
그러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였음다.
"성경은... 고조..... 사랑입내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를 쓰다듬으며
성경 제대로 안다며 칭찬하시는 것이였음다.
내래 1000번 읽은 사람도 이런 이야기 한적...들은 적이 없었음다.
천국에서는 성경을 얼만큼 많이 읽었냐 보다 한번 사랑한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음다.“

마 13:43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輝光如日 當聽焉)"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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