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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8월 12일 광복절기념 주일 시; 121:1-8 스미닛에 밎춘 노래

 

 

최강대국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당시 애굽의 바로 군사력을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백성들이 모두 아우성쳤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가로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와서 모래밭에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 빨리 사신을 보내 항복하고 바로에게 돌아가서 노예 생활하면서 그냥 살자!” 그런데 하나님이 그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들이 홍해에 잠겼고, 하나님이 새벽에 불기둥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단 하게 하시니 애굽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가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시는 도다.” 애굽의 지도가 바로왕과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를 비교해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는 온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이 세계 제일의 소유자입니다. 지금도 바로 시대 건축한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 두 번째가 됩니다. 전쟁을 위해서 가장 잘 훈련된 병사들을 가지고 있고 바로에게 충성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정예부대 군사들이 있으며, 바로 정부의 넉넉한 병참 지원을 받으면서 공격을 할 수 있는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군사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당합니까? 모세는 80세의 노인으로서 누더기 옷을 걸치고 목동생활에 필요했던 지팡이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노인에게 바로는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원망과 피곤에 지친 피난민 행렬만이 그들에게 있었을 뿐입니다. 무엇으로 바로를 당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15장에 홍해바다를 건넌 후 모세가 노래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주께서 오른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고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이렇게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으니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의 광복절은 유월절입니다.

오늘은 광복절 기념 주일입니다. 이 세상에 약소국가들은 거의 다 독립 기념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강대국들에게 침략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전쟁 역사를 살았고 약소국가는 식민지 역사를 끊임없이 겪어왔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430년이나 애굽에서 식민지 민족으로 살다가 모세를 앞세운 하나님의 민족 해방 구원의 역사,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렸습니다. 이스라엘 인들이 사용하는 달력에서 니산월이라고 하는데, 1월입니다. 유월절은 1월 14일부터 8일 동안 지킵니다. 첫째 날을 유월절이라고 하고 나머지 7일은 무교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첫날은 양을 잡아 번제 예배를 드립니다. 지금은 유대 나라도 유월절 행사가 많이 간소화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이 유월절 때가 되면 적어도 전국에서 20만 마리 정도의 양을 잡아서 유월절 행사를 치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양을 잡는가? 출애굽 하던 날에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약속으로 믿는 기념입니다. 일주일 동안 조상들의 광야 고난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이들은 누룩 없는 무교병 떡을 먹는데 이 떡은 참으로 맛이 없습니다. 떡인지 과자인지 빵인지 분간이 안가는 그런 밀가루 빵 마초Matzo라는 것을 만들어서 일부러 맛이 없게 해서 먹는 것입니다. 인생의 쓰디쓴 고난을 상징하여 입맛에 쓴 나물을 먹으면서 민족 해방의 기쁨을 몸소 느끼는 기념일입니다. 유대인들의 민족 해방의 사건은 BC 3200여 년 전 사건입니다. 3200년이나 지난 유월절 행사를 지금도 변함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민족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있든지 유대인들이 다 똑같이 유월절 행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유월절 어느 유대인의 가정을 방문해서 그 가정에서 행하는 유월절의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교병 떡도 먹고 쓴나물도 먹었는데 목사님은 아무 감정 없이 그냥 참여할 뿐이었는데, 거기 참여한 나이 많은 유대인들은 3200년 전 민족의 고대 역사적 사건인데도 거의 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 떡과 쓴나물을 먹으면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대략 그 순서와 자리를 말씀드리면 가정 단위로, 또는 교회 단위로 지키고 있습니다. 가정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대표로 인도합니다. 식탁에는 두개의 떡과 무교병, 그리고 네 개의 잔이 미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인도자가 첫째 잔을 먼저 마시고 가족들에게 돌리는데 “이 잔은 헌신의 잔이라!” 이렇게 말하면서 다 같이 마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애굽과 광야 생활의 고난을 의미하는 쓴나물을 먹는데 이 때 성경말씀 출애굽기 12장 27절과 13장 8절을 낭독합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그 다음에 두 번째 잔을 마시게 되는데 이 잔을 의문의 잔이라고 부릅니다. 왜 의문의 잔이냐 하면 이때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묻는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며 특별한 의식을 진행하는 것입니까?”하고 아이들이 일제히 묻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그때 한사람이 나서서 출애굽 과정을 설명해주고 시편 113편과 114편을 노래로 함께 부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그러고 나서 무교병 떡을 떼어 나눠먹으면서 또한 양고기를 찢어서 나누어 만찬을 가집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잔을 마시는데 축복의 잔이라고 합니다. 가장이 높이 들고 축복 기도를 합니다. 이때는 시편 115편에서 118편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구원이 되셨도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그 잔을 마시게 됩니다.

노래 부른 후 마지막 네 번째 잔을 마시는데 그 잔을 기쁨의 잔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유월절 만찬의 순서가 모두 끝나는데 이런 순서를 유대인들은 세계 어디서나 이때가 되면 다 행합니다.

 

유대인들이 제일 소원하는 직업이 무엇인가?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랍비가 되는 것, 우리식으로 말하면 목사가 되는 일을 제일 좋아합니다. 유대인들 중에 랍비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사실 이것을 직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일의 대행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만이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렀다는 랍비가 존경의 제1순위입니다. 랍비에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이 아이 머리만 한번 쓰다듬어 주세요.” 그것이 유대인들이 랍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랍비의 말을 불순종하는 교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가 되는 일을 제일 좋아합니다. ‘랍비는 하나님께 제일 큰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유대인들이 제일 많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선생님 되는 일입니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 인구의 20퍼센트가 교사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600만 중에 20퍼센트가 선생님입니다. 제일 많이 모여 사는 뉴욕에는 중고등학교 선생님의 50퍼센트가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대학 교수가 되어 가르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10개 대학,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10개 대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10대 대학 교수의 30퍼센트가 유대인입니다. 하버드 대학은 50퍼센트가 유대인 교수입니다. 그 다음에 의사와 변호사가 되는 것을 선호합니다. 미국에 의사와 변호사가 그렇게 많은데 유대인이 가장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변호사들 중에 20퍼센트가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거의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정신적 분야에 강하다고 평가할 수가 있는데 그 강인한 정신력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기초한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에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3500년이 지났는데도 첫 번 유월절과 똑같이 지키고 있다는 현실을 보고 사실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주만 공격이 1941년 12월 7일인데 그 시절에 6척의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싣고 하와이까지 가서 새벽 6시 조금도 착오 없이 결정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한 것은 이유가 한가지였습니다. 일본이 세계를 점령하는데 미국이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태평양 함대 기동력을 완전히 분쇄해 버리면 미국이 꼼짝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와이 진주만에 정착해 있는 미국의 기동함대를 삽시간에 다 묵사발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를 사령관으로 해서 두 시간 공격했는데 미국은 그때 2,395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1,178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12척의 전투 함대가 그 자리에서 침몰했고, 9척이 결정적 파손을 입어서 쓰지 못하게 되었고, 323대의 공군 전투기가 파괴되었습니다. 가장 큰 전투 함대였던 애리조나 함대에서 잠을 자던 병사 1,177명은 바다에 가라앉았는데 아직까지도 그들의 시체를 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그들은 영원히 그 속에서 잠들라” 하는 뜻에서 일부러 건지지 않았습니다.

 

1940년대는 일본군이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고, 가장 우수한 전술과 무기를 소유했습니다. 그 증거로써는 가미가재 전투를 들 수가 있습니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그가 내려주는 한 잔의 술을 마치 성찬 예식이나 하듯 마시고 전투기에 몸을 싣고 적함에 투신 공격하는 전술은 지금까지 세계 어느 민족 전쟁에서도 없는 극단의 전쟁 전술이었습니다. 가미가재 전투기 조종사들은 비행기 연료 공급 때, 돌아올 수 있는 비행기 연료를 공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전투대를 누가 당해낼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광복은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복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사실 그 시절에 우리나라에 친일파가 그렇게 많이 생긴 이유는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우리는 독립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그러면 여기에 충성하고 우리가 살길을 찾아야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정치적 계산으로 친일파가 된 것이지, 1945년에 해방될 줄 알았으면 누가 친일파 했겠습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의 손으로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것입니다.

 

모세가 부른 이 광복절 노래의 뜻이 무엇인가 살펴보는 것이 이 광복절 기념주일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출 15:2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이 모세의 신앙고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장 즐겨 고백하는 찬송시가 되었습니다. 그 일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 모든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천지가 어떻게 생겼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의 기초는 하나님이시라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 시절에 그러한 일본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때려 부수고 광복을 맞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광복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했던 35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세계 역사에 비춰보면 참 짧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식민지 역사가 400년, 500년도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급에서 430년간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스 날도 400년 이상 로마의 식민지 백성이었습니다. 인도나라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35년이란 기간이 우리에게는 길게 느껴지지만 세계 역사에 비춰보면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 짧은 시간에 독립을 해서 광복절을 우리가 맞이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요, 우리 기독교인 입장에서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광복절 기념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광복절을 기념하되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기념할 수 있는 것이 큰 복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리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3200년이 지난 옛날 유월절 사건을 지금도 각 가정에서 의미있게 기억하고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광복절이 무슨 날인가를 아는 자녀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40년전 부산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중등부 아이들에게 광복절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떤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하는 발이 광복동 백화점 세일하는 날 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천중앙교회에서 청소년부에서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손들어 보라닌까 몇 아이 안 되었습니다.

몇 년 전 mbc에 국사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프로가 있었습니다. 국사문제 중에 가장 상식적인 문제 10개를 내는데, 서울의 중상위권 고등학교 3학년 2개 학급을 상대로 시험을 치렀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순서대로 나열하시오”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는 보기가 주어졌습니다.

“김종필 전두환 노태우 장면 이기붕 김영삼 김대중 윤보선”

이승만→( )→박정희→최규하→( )→( )→ ( )→( )→ 노무현→ 이명박

이 문제에 오답률은 무려 68%였습니다. 100명에 68명이 맞히지 못하였습니다.

국시대의 나라를 물었습니다. 백제 신라 ( ) 이 문제에 ‘고려’라고 쓴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국사교육을 버린 대가라고 할 것입니다.

“신라가 우산국을 정복한 이후 울릉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땅이 되었음에도 일본이 자신의 섬이라고 주장하는 울릉도의 부속 섬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내신 선생님은 “사실은 평균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맞히라고 낸 문제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몇 명이나 정답을 썼느냐고 물으니, “정답률은 절반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답을 쓰는 것을 포기한 학생들도 많았고, 마라도, 대마도, 제주도라고 쓴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독도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미국의 어느 회사에서 사원을 모집했습니다. 한국 청년 한 명이 입사를 지원하였고, 면접을 하는데 이 청년은 미국서 태어난 한인 2세였습니다. 면접할 때 미국인 사장이 “당신의 부모님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청년은 “한국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한국 사람인데, 1919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명예로운 사건입니다. 그 3.1운동에 대하여 말해보시오.”라 미국인 사장이 질문했습니다. 청년이 너무 놀라 머뭇거리고 대답을 못하자 “자기 조국에 대한 정체성도 적립되어 있지 못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함께 일할 수 있느냐?”며 입사를 거절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섭리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역사를 아는 것 만 아니라 그 역사를 이끌어가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어 참으로 큰 기쁨의 날이지만 또 다른편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역사가 슬그머니 미국과 쏘련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바로 3.8선이 우리나라 지도에 그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쏘련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 1945년 8월 16일 아침에 일어나니 서울과 평양은 서로 갈수 없는 남의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평양에 갔던 서울 사람이 다시 집으로 못 아 오고 서울에 왔던 평양 사람이 다시 못 돌아간 비참한 세월이 74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분단만 된 것이 아니라 6.25남북전쟁으로 수백만 남북의 우리 백성들이 죽었고 1000만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참 이상한 역사가 아닙니까? 우리나라에 남의 나라가 자기들 마음대로 줄을 쫙 그려놓고 이쪽은 미국이 저쪽은 쏘련이 다스리자하여 하루아침에 나라를 두 동강이를 만들고 지금 다시 통일이 되려고 하닌까? 미국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중국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문재인대통령은 이쪽저쪽 눈치 보느냐고 정신없을 지경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가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중국에 교하면 우리나라는 사자와 표범사이에 낀 어린 양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약소국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일류국가가 되었다고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한번 소리치면 어매 기죽어하고 납작 엎드려야 하는 힘없는 약소국가입니다.

그러면 고래들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는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우리나라도 세계에 큰 소리 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역시 작은 약소국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에 큰 소리 치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빽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이 자기들을 보호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3200년 동안 우월절이 되면 세계 어디에 살고 있던지 그들은 하나님께 유월절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올리고 변함없이 자신들을 보호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3200년 동안 모든 유대인들이 모든 가정에서 한해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광복절이 무슨 날이지도 모르고 집에 태극기를 계양하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점점 광복절 기념식이 약소화되고 그날은 공후일로 막바지 피서를 떠나느냐고 바쁩니다. 문제는 문제인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가 약소국가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식도 없고 문제의식도 없고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섬기고자 하는 신앙의식도 사라지고 온전히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나라가 망하기 직전 나타나는 망조 증상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 성적타락 향락과 사치와 방종이 난무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이기주의 자기욕망만을 따르는 수많은 이 나라의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입니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살아갈만한 좋은 나라입니까?

 

오늘 우리가 광복절 기념 주일을 지키지만 미완성 광복절입니다. 광복이 되자 마지 분단국가가 되고 74년이 지나고 남북한 간에 아직도 전쟁의 소리가 끝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지 못하였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어 통일한국을 세울 그때가 진정한 광복, 빛날 고앙자 회복할 복자 대한민국이 세계에 빛나게 될 통일국가가 될 그날에 우리는 참 광복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그런 날이 과연 올것인가 단만 꿈꾸는 일인가? 아니요 1945년 8월 15일 꿈꾸던 해방의 날을 하나님이 주셨듯이 평화통일의 날도 하나님이 지체치 아니하고 주실 것을 믿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편을 보면 1절 앞에 ( )에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덟째 줄에 밎춘 노래라는 글이 있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에는 스미닛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스미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악기중 맨 아래 여덟 번째 줄을 의미합니다.

시편 12편은 제목을 보면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로 가장 낮은 음으로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왜 낮은 음으로 부릅니까? 하나님을 믿고 진실로 말씀에 순종하는 경건한 사람들을 찾을 수 없는 어두운 시대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2편 1절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 그래서 이 말씀은 작은 목소리로 읍조리 듯 슬픈 내색으로 가슴을 쥐어짜내어 억지로 소리가 나오듯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경건한 자도 없어지고 충실한 자들도 찾을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다윗이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죄악만 가득한 사람들뿐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 아첨하는 입술을 가진 사람, 두 마음을 가진 사람, 자랑하는 혀를 가진 사람, 다시 말해서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 말로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아무도 자기를 주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시인은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은 이렇게 악한 사람들뿐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8절을 보십시오.“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악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날뛴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편 12편 시인은 경건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온통 악인만 넘쳐나는 그야말로 캄캄한 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편 12편 시인이 주로 만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교만하고 거짓을 일삼는 사람, 행동보다는 말만 앞서는 간사한 사람, 양심이 무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그야말로 세상만 사랑하고 진실은 하나같이 무시하고 거짓만 일삼을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사람은 양심적인 일이나 세상의 윤리 도덕도 생각조차 하기 싫어합니다.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최고로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것뿐입니다.

 

시편 12편 시인 자신은 어떻습니까? 다른 어느 누구가 함께 하지 않아도 자기는 경건을 사모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삶에는 어느 누구도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 힘들고 외로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편 12편 시인은 첫마디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여 도우소서!” 무슨 뜻입니까?

경건과 진실을 위한 삶의 여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경건을 사모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건과 진실을 모두가 외면하고 오히려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 하시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키셔서 모든 시련을 이기게 하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평화통일이 날을 주시어 온전한 광복의 날을 맞이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입니까? 시인은 1절에서 경건한자를 보겠는가?하고 가슴을 쥐어짜듯 말했는데 과여 지금 이 땅에 경건한자를 보겠는가 하는 조건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먼저 하나님이 보시기에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는도다” 안전한 지대란 평화의 땅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우리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우리나라가 되는 가장 확실한 조건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이었다면 지금 이 시대엔 경건한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경건한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광복의 아침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시편 150편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시편 150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 할지어다 할렐루야 “

 

그 날에는 스미닛의 노래가 아니라 소고치고 꾕가리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그날이 곧 올 것입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경건한 사람들이 모인 신앙공동체입니다. 일제시대의 기독교인들이 나라의 자주독립과 해방을 위해 기도하였듯이 우리는 이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기를 멈추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안전지대에 두시어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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