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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823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마 11:25-30, 55:1-23 라온 코이노니아의 짐

 

지금부터 500년 전 선조대왕 시대에 정철(송강 1536-1593)이란 유명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이고진 저늙은이

짐벗어 나를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조차 지실까


정철선생이 길을 가는데 앞에 한 노인이 잔뜩 짐을 짊어지고 너머 질 듯 힘들어 가는 것을 보고 지은 듯합니다. 그 노인이 한평생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살았을까? 결국 모든 인생들은 나름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나 대신 짐을 져 줄 수 있을 것입니까? 나의 인생의 짐은 나 홀로 지고 가야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지 때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갈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동대문 원단 시장 짐꾼 아저씨들이라고 합니다. 동대문종합시장의 규모는 대지 5,000, 건평 18,00여 평 입니다. 5,000여 개의 원단 자재 상가가 밀집한 7층으로 좁디좁은 미로가 거미줄처럼 펄쳐져 있습니다. 아무리 유통업이 기계화 되었다고 해도 이 곳 원단 시장에는 짐꾼 없이는 전혀 원단장사를 할 수 없습니다. 원단을 나르는데 지게로 나르기도 하고, 긴 막대기로 물통 나르듯이 짐을 나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어깨에 짊어지고 나릅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나게 많은 짐을 가뿐이 메고 여유 있게 걸어가고, 어떤 짐꾼은 왜소한 체견인데도 만만치 않은 짐을 메고 아슬아슬 곡예 하듯이 기우뚱 거리며 걸어가기도 한답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김달수(가명) 씨에게 물어봤습니다. "힘들지. 종종 계단 오를 땐 억장이 무너질 것 같고, 숨이 탁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힘들고 고된 일임에도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대 후반입니다. 현재 79세의 최고령자의 지게꾼도 있습니다. 대다수 지게꾼들은 수십 년씩 일하고 있으며, 대부분 이들에게는 생활을 책임지어야 할 가정이 있습니다.

김달수씨는 "이 나이에 내가 무얼로 먹고 살겠소. 아직 자식 대학 공부시키고 가족들 굶기지 않으려면 힘들어도 어쩌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김달수씨는 올해 67세로 동대문종합시장에서 30년간 지게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달수씨의 짐은 무엇입니까? 그의 어깨에 올려 진 원단이 아니라 30년 동안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이 그의 인생의 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의 짐을 무겁다고 결코 벗어 버릴 수 없어 오늘도 동대문 원단시장 계단을 오르는 김달수 씨 그 인생 자체가 짐이라 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에 짐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가난도 짐이고, 부요도 짐입니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입니다.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이입니다. 헤어짐도 짐이고, 만남도 짐입니다.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입니다.

살면서 부닥치는 일 중에서 짐 아닌 게 없습니다. 어차피 짐 지고 사는 인생이라면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란 짐을 오늘도 열심히 지고 인생의 계단을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솝이야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나귀에게 너를 오래 살게 해 주겠다그러셨답니다. 그러니까 당나귀가 나 싫어요. 나는 오래 살기 싫어요. 전 짧게 살래요” “왜 오래 사는 게 싫으냐?” 하나님이 물으시니 하나님이 나를 평생 짐 지고 다니는 짐승으로 만드셨는데 그렇게 늙기까지 짐을 지고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그러니 조금만 살고 나는 죽겠어요.” 그 옆에서 당나귀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이 그럼 저에게 주세요 하고 말하니 하나님이 인간의 수명을 오래 살게 해주심으로 사람은 오래 동안 살면서 당나귀가 짊어질 짐을 지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오래 동안 인생길을 가려면 지구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구력은 다만 육체의 힘으로가 아닙니다. 속힘을 길러야 합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쉽게 주저앉지 않고 쉽게 쉽게 넘어지지 않는 힘이 바로 지구력입니다.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음식도 잘 먹어야 합니다. 탄력 근력 지구력에 좋은 음식으로 미역 김 다시마등 해조류와 우유 요구르트 참치 쇠고기 고구마 녹차 메밀 등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음식은 바로 번데기입니다. 흔히 시장 길 목에서 아주머니들이 한 다라 번데기 놓고 팔고 있습니다. 번데기로 여러 음식을 요리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번데기달걀말이 치즈번데기탕 번데기사라다 번데기라면 등을 만들어 먹습니다. 번데기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아이들의 성장발육과 혈관 청소에 특효인 레시틴, 항암효과에 좋은 엔테로락톤등이 들어 있습니다. 노인들 오래 사는 데에도 좋은 효과를 발휘합니다. 오늘의 주제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10리를 달려가도 피곤치 않는 지구력을 키우는데 번데기만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번데기를 밥으로 삼아 먹는다해도 매일 같이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계를 어찌 가볍게 할 수 있게습니까?

 

시편 55편은 인생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 때문에 탄식하는 다윗의 처량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16,17절에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다른 표현으로 나는 하루 종일 근심하며 탄식합니다. 이 탄식을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부르짖는다(카라)는 말은 조용조용 이야기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아우성치리니이 말입니다. 4절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다윗왕이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과 아픔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아닙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까? 그에게는 참으로 무거운 짐이 하나 있었습니다. 세상에 부모들에게 무거운 짐이라면 자식문제가 가장 무거울 것입니다. 다윗의 문제는 셋째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은 다윗이 지고 가던 인생의 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에게 보람과 기쁨을 주는 인생의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외모가 출중하고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머리를 길게 길러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마치 로마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 같았습니다. 그런데 압살롬 역시 엄청난 무거운 쇳덩이가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친누이 다말을 겁탈한 이복형 암논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암논을 죽여 버리고 3년 동안 그술 땅으로 도망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비록 형을 살인 하고 도망친 아들이지만 압살롬을 무척 그리워하였습니다. 잘나도 내 아들이요 못나도 내 아들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하여 마침내 반역을 결심하였습니다. 아버지 몰래 아버지의 측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백성들에게 인기전술을 폈습니다. 이렇게 4년 동안 치밀하게 반역을 준비해서 헤브론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이 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온갖 유언비어를 퍼트려 아버지 다윗왕을 모함하고 백성들이 다윗에게 등을 돌리도록 하였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을 따르니 대세가 압살롬에게 기울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윗왕은 아들에게 대항하지도 못하고 야반도주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왕은 맞짱 떠 싸울 수 없는 짐이 되어버린 아들의 반란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외쳤습니다. 바로 이때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55편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아들에게 배신당한 아버지의 애절한 기도입니다. 그는 아들에게 배신당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좀 이해하기가 아리송하죠. 공동번역에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나를 모욕하는 자가 원수였다면 차라리 견디기 쉬웠을 것을,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적이었다면 그를 비키기라도 했을 것을

결국 다윗 왕은 한숨을 푹 쉬고 한마디 하기를, 67절에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므리로다.”

아들에게 배신 당한 다윗왕은 자신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날아가 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절박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새처럼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여름 휴가 때 그동안 직장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훌훌 떠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훌훌 일상생활의 짐을 털어 버리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히려 더 묵운 짐 보따리에 묻혀 쉼도 없이 스트레스만 잔뜩 안고 돌아온 이들도 잇습니다. 사람들은 , 어디론가 멀리 멀리 가고 싶구나.”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정말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싹 잊어버리고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인생의 짐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짐이 비교적 가벼울 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 인생의 짐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무거워서 도무지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버릴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란 짐입니다. 버릴 수도 없고 들 수도 없는 짐이 우리의 삶을 압박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은 지금까지 전쟁에서 패배해 본 적 없는 용사입니다. 그에게는 역전의 용사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자식과의 전쟁은 그를 심히 두렵고 떨리게 하였습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이 가슴 깊이로부터 쳐 올라 왔습니다. 아버지에게 칼을 들여댄 자식과 어찌 싸울 것입니까? 다윗은 애증이 교차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이같은 인생의 가슴아픈 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시편 5522절 말씀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하스래크 알 야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 하시리로다.” 지난 개역성경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맡기라맡겨버리라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맡기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원어는 솨라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내던지다란 뜻입니다. 그러닌까? 얌전하게 제 짐을 맡기오니 받아주옵소서란 의미보다는, ”하나님 난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다 알아서 해결해 주세요라는 의미로, 마치 내 짐을 하나님께 내 던지듯 맡겨 버렸다란 말씀입니다.

 

복음성가 259장을 다같이 부르겠습니다.

짐이 무거우냐 홀로 지고가기에 / 험한 데로 갈까 두렵지 않느냐

온갖 일에 매여 고달프지 않느냐 / 주가 도우시리 요청만하면

우리 기도를 언제 어디나 들으시며 / 큰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동행하니

네가 실망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 예수께 가면 주 네게 오시리

 

그렇습니다. 인생의 짐이 무겁다 느끼신다면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5: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 말씀도 문자대로 번역하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너희가 주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리라.”입니다. 시편 81:6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무겁다고 쩔쩔 맵니까? 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방황합니까? 왜 어찌할꼬 탄식만 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라오라 내게 오라 내게 오라 내게 오라

오라오라 내게 오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오라오라 내게 오라 쉬게 하리라.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짐을 맡겨 버리고 나는 이제 짐없다 하고 짐을 손 털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 짐을 지셨으니 이제 내 등에는 짐없다고 이제 나는 홀가분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 짐을 맡겨도 여전히 내 등에는 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짐을 맡아 주셔도 여전히 내 어께에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전에는 그처럼 무겁고 힘들었던 나의 짐이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 죽고 싶었는데 이제는 즐겁고 평안한 마음으로 활기 있게 나의 짐을 짊어지고 신나게 살아갑니다. 무거운 짐이 나를 옥죄는 멍에가 아니라 이제는 나에게 삶의 용기를 가져다주고 영혼의 가벼움이 되어 랄랄룰룰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 됩니다.

 

인터넷에 어떤 무명 시인이 쓴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를 못했을 겁니다

내 등에 짐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미술가인 라파엘, 미켈란젤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한 그림들은 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감 받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은 소설 한 줄도 적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섹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에프스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훌륭한 소설을 썼습니다. 예수님은 작곡 한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이든, 바흐, 헨델, 베토벤 등 위대한 작곡가들은 예수님으로 부터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예수님 앞으로 오는 사람들은 그들의 짐이 그들의 영광으로 바꿔지게 됩니다. 그들의 무거움이 주안에서 존재의 가벼움으로 바꿔집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꽃의 향기를 맡으며 휘파람을 불며 운전을 하게 됩니다. 인생이 참 즐겁다라고 말합니다. 부귀 영화 공명이 없다 해도 예수님 앞에 오면 내게 있는 그 모든 것이 축복으로 바꿔집니다.

 

컴퓨터 인터넷에서 한 귀한 인생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설악산에 지게꾼으로 일하고 있는 임기종 씨가 있습니다. 그는 40년이 넘도록 설악산에서 지게질만 한 지게꾼이고, 키가 160cm도 되지 않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가지 않고, 머리숱은 듬성듬성하고, 이빨은 거의 빠지거나 삭아서 발음까지 어눌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지게질을 시작한 이후 40년간 오직 설악산에서 짐을 져 나르면서 사라오고 있습니다.

그는 6남매의 셋째였습니다.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체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남겨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6남매는 제각기 자기 입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도 못 마친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돌고 돌아 설악산 지게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지게꾼 선배로부터 정신지체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선배는 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의 아내는 일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여자를 소개해준 것은 내가 별 볼일 없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에 어찌나 애처롭던지요. 저런 몸이니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서 따지지 않고 내가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많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의 팔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그의 아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끝까지 그녀를 돌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못했고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습니다. 아내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니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려면 자신이 일을 그만둬야 했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강릉에 있는 어느 시설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다 주고 떠나오는데 그는 나만 편하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달차에 과자 20만원어치를 싣고서 다시 발길을 돌려 시설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자신이 훨씬 더 기뻤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도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맨 몸으로 걸어도 힘든 산길을 40kg이 넘는 짐을 지고 날마다 산을 오르는 임기종씨!!. 하루에 적게는 4, 많게는 12번이나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입니다. 설악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상인들과 사찰에 필요한 생필품을 져다주고 그가 받는 삯이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에 150만원. 누구에게는 이 돈이 별 것 아닌 돈일지 몰라도 그는 충분한 돈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장애인이라 정부로부터 생활 보조비를 받기 때문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생활이 가능하고, 술 담배를 안 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낱 지게꾼에 불과한 그를 많은 사람들이 작은 거인이라고 칭송하는 까닭은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십년이 넘도록 장애인 학교와 장애인 요양시설에 생필품을 지원하고, 독거노인들을 보살피고,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이 번 돈 모두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임기종씨가 그렇게 사용한 돈만 수천 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적어도 땀 흘려서 번 이 돈 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임기종씨의 이 말은 정말 큰 감동이었지요 연봉이 수억이네 수십억이네 하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것이 남을 돕는 일인데 날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오롯이 남을 위해 사용하는 그의 선한 마음이 한없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산을 오릅니다. 자신이 지게를 짊어지지 않으면 휴게소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가스통을 4개나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100kg이 넘는 대형 냉장고를 통째로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는 요령을 몰라 작대기를 짚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둘 생각도 했죠. 하지만 배운 게 없고 다른 재주가 없으니 육체일밖에 할 것이 없었어요. 그때는 내 몸뚱이 하나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악산을 오르니 이 세상에 나보다 설악산을 더 많이 오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일 오르지만 지겹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철마다 설악산의 풍경은 바뀌니까요. 그러니 고맙지요.”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감사하고 있었읍니다.

40년 동안 설악산을 오르락내리락하였지만, 설악산 말고 다른 산에는 여태껏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임기종씨!!. 옛날 어느 전설에 하늘에서 천사가 설악산에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미처 올라가지 못한 천사 한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임기종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있는 것이 부족하다며 늘 더 가지려고 바둥거리며 사는 우리. 남의 입에 있는 것도 뺏어 먹으려고 하는 우리.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우리. 이고지고 갈 것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놀고,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여 인생의 짐들을 잔뜩 짊어지고 인생의 산을 오르는 우리가 아닙니까?

일이 힘들다 불평하고 부모 잘못 만나 고생 한다 원망하고 잘 사는 사람 보면 괜히 눈 흘기고 저주하고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무너뜨리고 빼앗으려는 욕망의 짐을 잔뜩 짊어지고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 인생들인데 진정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씨는 위대한 거인입니다.”

 

라온 코이노니아 우리의 인생의 짐들은 무겁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와 주님께 나의 짐을 맡겨버립니다.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 주시네,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인생의 짐이 무겁다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드느냐고 우리는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영혼의 지구력입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인생의 산을 성공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실족하지도 않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겨버리고 주님과 함께 쉼을 얻으니 영혼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여러분들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무거운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겨 버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참으로 보람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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