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7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마 12:46-50 라온 코이노니아 가족
'가족친화지수(Family Friendliness Index)'란 것이 있습니다. 얼마나 가족들이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및 촉진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의거하여 2006년부터 매년 설문조사를 통한 가족친화지수를 측정하고, 사회 전반적인 가족친화 수준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가족친화제도 측정대상은 국가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상장기업, 대학 등이며, 조사 항목은 탄력적 근무제도, 자녀 출산․양육 및 교육지원제도, 부양가족 지원제도, 근로자 지원제도, 가족친화 프로그램 운영 실태 등 등 5개 범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족친화지수는 2006년 37점 → 2007년 41.7점 → 2008년 43.9점 → 2009년 49.2점 → 2010년 51.6점 → 2011년 57.8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지표는 우리나라 가정의 가족들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원만한 가정생활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가족들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이 30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10분 미만이 40%가 넘고 있습니다. 아예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람도 3.7%라고 합니다. 전에는 식사시간에 주로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이나 TV시청으로 거의 가족 간에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 간에 소통 부재는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 갈등, 책임회피, 무관심으로 가정의 위기를 초래하고 가정이 행복의 보금자리가 아닌 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혼란과 파괴 분열이 심각하다고 하겠는데 그 근본 원인은 가족친화지수가 낮기 때문입니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옛날, 우리 아이들이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 가정은 참으로 행복하였습니다.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아가를 붙잡고 짝짝궁짝짝궁(作作弓作作弓) 도리도리(道理道理) 지암지암(持闇持闇) 곤지곤지(坤地坤地) 하던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연년생 아이들 4명이 주루루 앉아서 엄마 따라 동요를 불렀습니다.
엄마 앞에서 짝자꿍, 아빠 앞에서 짝자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햇님 보면서 짝자꿍. 도리도리 짝자꿍.
우리 엄마가 웃는다, 우리 아빠가 웃는다.
엄마 앞에서 재미있게 율동을 하며 따라하는 아이들 모습에 아빠는 함께 즐거워 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웃음이 없습니다. 그런 행복이 사라졌습니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일 년 한두 번 보는 것에 가족의 기쁨은 없어졌습니다. 아내가 새벽 기도 끝나고 들어와 바쁘게 아침밥을 짓고 아이들 도시락을 일곱 개씩 싸고 여섯 식구가 밥상에 둘러 앉아 시끌벅쩍 아침식사를 할 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행복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밥상에는 그런 행복이 사라졌습니다. 가족을 식구라고도 말합니다. 식구란 밥식食자에 입구口자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 식구란 말을 들어보지 못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오손도손 둘러 앉아 밥 먹는 일이 드믄 일이 되어 버리니 식구란 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어로 가족을 패밀리family라고 말합니다. 이 패밀리를 한자 한자 풀어 보면, FAMILY 곧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의 약자라고 말할 수 잆습니다. 가정은 한마디로 사랑의 샘터, 사랑의 원천 뜬봉샘(장수군에 있는 금강의 발원지)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그 뜬봉샘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일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가족의 행복을 회복回復해야 합니다. 뉘우칠 회悔 복복福 뉘우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태초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신 첫 번째 사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왜 첫 번째 사명입니까?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가장 마지막 창조하신일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최초의 가정이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가정에서 형이 동생을 살해하는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시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단지 아브라함 한 사람이 아니라 사라와 함께 아브라함의 가정을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지만 실은 요셉과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믿음의 가문이 대를 이어가듯 예수님의 승천이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이 모두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자녀로 불러주심은 나만이 아니라 나의 가정을 택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가정으로 소망의 가정으로 그리고 사랑의 가정으로 천국가정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천국가정임을 아셔야 합니다. 천국가정은 사랑이 마르지 않는 뜬봉샘으로 사랑이 흐르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되게 하는 일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지난 수요일 아내와 100년 이상된 교회를 방문하려고 완주군 상관면에 있는 몇 교회를 찾아 다녀왔습니다. 그중에 의암 저수지 인근에 있는 계월교회를 다녀왔는데 이 교회에 초대 장로인 김병언(1884.6.18.-1974.7.11.음) 장로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1906년 여름 22세 청년 김봉언이 친구 정창열과 조성국과 함께 인근에 있는 묵방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곤도 하고 잠시 간식을 나누고자 할 때 한 외국인을 만나게 됩니다. 매커첸 선교사였습니다. 그도 사냥하러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떠듬거리는 한국말이지만 김봉언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맥커첸 선교사는 빵을, 김봉언은 인절미 찹쌀떡을 서로 나누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헤어질 때 김병언은 맥커첸 선교사에게 자기가 잡은 꿩 한 마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느 날 김병언은 아버지가 더위로 고생하여 40리 떨어진 전주 장날에 약전거리에서 한약 한재를 사가지고 장날 기분도 좋아 주변에서 막거리를 마시니 잔뜩 취한 채 비틀거리며 논두랑 길을 걸어오다가 그만 논두락 밑으로 떨어져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날 밤 메커첸 선교사가 밤 예배를 마치고 등불을 켜 들고 그 논두랑 길을 오다가 논바닥에서 무엇이 반짝거리며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인가 가까이 가서 보니 한 남자가 쓰러져 있는데 그의 두루마기 사이로 담뱃대 곰방대 놋쇠가 불빛에 반작거렸던 것입니다. 급히 그를 예수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김병원이 자기를 데려온 사람이 얼마 전 묵방산에서 만난 그 서양 선교사인줄 알아보고 또 메커첸 선교사도 그를 보고 한편으로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김병원은 자기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메커첸 선교사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여 큰 대접을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멕커첸 선교사는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요청을 하여 사랑방으로 건너가 다른 사람들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림으로 계월교회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몇 번 김병언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사랑방에 술과 담배의 찌든 냄새가 너무 나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정창열 집으로 옮겨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산에서 소나무 잦 나무를 베워 와서 초가 4칸을 지어 예배당으로 삼았습니다. 김병언은 술은 끊었으나 담배를 못 끊고 있다가 담뱃대 3개를 부러뜨리고야 완전히 담배를 끊었습니다. 김병언은 세례를 받고 교회영수가 되고 계월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김봉언장로는 지역 삼일운동에 앞장을 서고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교회 내에 영신학원을 운영하여 문맹퇴치에 힘썼습니다. 슬하의 1남 8년 모두 전주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그리고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인 한예정성경학교(1923년9월 4일 설립)를 졸업시켰습니다. 자손들 모두 목사와 목사사모 장로 권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김병언 장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영혼과 그 가정을 천국가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꼭 들어맞게 진행되고 있음을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김현승(1913~75)이란 분이 지은 ‘가을의 기도’란 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즐겨 암송하는 시입니다.
+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896년에 1월 첫주일 처음으로 전주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전주 서문교회입니다. 그리고 7월 17일에 남자2명 여자 3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김창국이란 청년 이였습니다. 김창국이란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주에 최초로 선교활동을 한 선교사로 테이트 선교사와 헤리슨 의료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테이트 선교사의 집 인근에 김창국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김창국은 키는 컷으나 소심한 떡거머리 총각이었습니다. 김창국과 그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테이트 선교사의 성경가르침을 들었고 찬송가를 배워 불렀습니다. 김창국의 아버지는 한의사였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해리슨 선교사를 찾아와 치료해 주기를 원해서 잠시 진정제를 놓아주고 약을 조제하는 도안 김창국 아버지가 큰 침을 놓는 것을 보고 깜짝 노라 말렸다는 것입니다. 해리슨 선교사는 침 놓은 것을 귀신 쫒아내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김창국은 세례 받은 이후 소년들을 교회로 불러모아 스스로 주일학교 교장 노릇을 하였고 해리슨 선교사는 데이비스(Linnie Davis) 선교사와 결혼하고 새 가정에 김창국을 사환으로 채용하였습니다. 그 후 해리슨 선교사는 그를 평양숭실중학교로 보내 공부를 시키고 이어 1915년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군산 영명학교와 금산심광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임영신의 선생), 1917년 제주도 선교사로 6년간 근무하며 제주도의 독립운동가인 조봉호와 함께 상해 임시정부 독립모금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1922년 광주남문밖교회(광주제일교회)에서, 1924년 광주 양림교회를 개척하여 25년간 봉직을 하였습니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은 김현정 목사, 둘째아들이 바로 김현승 시인이고, 셋째아들 김현택은 전북대 교수(미국에 거주), 넷째 아들 김현구는 전남여고교장을 역임하고 광주중앙교회 원로장로입니다. 은송리 한 떡거머리 소년이 예수를 믿음으로 한국교회의 유능한 지도자로 그리고 후손들이 한국에 그 이름을 떨치는 인물들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택한 천국가정에 아브라함 가정에 주신 유업의 축복을 주셨다는 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넓은 의미로 가족이라고 말할 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피와 살로 이어진 혈육관계로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피붙이 살붙이라고도 부릅니다. 어린 시절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이 서로 모르고 살다가 유전자가 일치하여 유전자 감식으로 서로 가족임을 확인하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그런데 두 번 째 가족은 이웃도 한 가족입니다. 온 인류가 한 가족입니다. 피부색갈이 다르고 얼굴 생김새가 다를 뿐 그 속은 똑같습니다. 똑 같이 O형 A형 B형 AB형의 피가 흐릅니다. A형의 피가 모자란 사람이 미국사람 A형이나 아프리카 흑인 A형이나 수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기 이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성씨가 다를 뿐 우리 이웃은 먼 나라 외국인 까지도 가족입니다. 그래서 사해동포란 말이 생겼습니다. 동포同胞란 같은 배에서 나왔다란 말입니다.
공자선생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性相近也 사람의 본성(性)은 서로(相) 가까우나(近) 習相遠也 익히는(習) 것에 의해 서로(相) 멀어지게(遠) 된다. ”(논어 양화편 제2장) 이 말을 다시 풀이 하면 덕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니 본성에 따르면 모두 한 가족이나 악을 좋아하고 생각이 달라 다툼을 일으킨다면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이웃만 못하니 서로 뜻을 합하고 서로 사랑하면 아무리 먼 이웃도 한 가족과 같다는 것입니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외국의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피를 흘리며 싸워 우리나라를 지켜 주었습니다. 지난 5월 15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6.25전쟁 때 프랑스 참전한 군인들이 3500여명인데 그 중에 한 병사였던 레몽 조셉 베나르(Raymond Joseph Bernard)의 안장식이 있었습니다. 그가 6.25전쟁 후에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한국을 잊지 못하고 늘 자기 집에 태극기를 붙여 두고 ‘우리나라 국기’라고 하면서 한국은 나의 제 2의 조국이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3월 1일 세상을 떠났는데 유언으로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날 가수 이승철이 고인의 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유골함을 안장하였습니다. 이승철은 2010년 9월 해외 참전용사 초청행사장에서 베나르씨에게 자신의 공연 DVD를 선사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동안 서로 교제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베나르씨가 우리나라를 제2의 조국이라고 말한바 대로 그는 우리 한국인의 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네팔에서는 두 번의 지진으로 수많은 가옥이 파손되고 수천 명이 죽었고 수만 명이 다치고 수십만 명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본 네팔의 현장 모습이 참혹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상관없는 나라 사람들이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 베나르씨 처럼 그들도 우리의 한 가족이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고 위해 기도하고 마음으로 위로를 전하고 물질로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나라에 그 같은 피해가 온다면 다른 나라 이웃들도 가족처럼 우리를 도와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웃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정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가족이라고 말할 때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우리 성도들은 한 가족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이 강론하시는 가버나움 베드로의 집으로 찾아 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집안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하니 이를 안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 왔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가복음 3:20-22절에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왜 예수님을 찾아왔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자 예루살렘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조사단을 파견하였습니다. 조사단으로 온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찾아보고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귀신의 졸개일 뿐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동리 회당장이 찾아와서 당신의 아들 예수가 "미쳤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율법께나 안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일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아 강제라도 집으로 데려 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와서 보니까 예수님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보고 싶어서 단숨에 달려왔는데 문 앞에까지 꽉 들어차 있는 사람들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언제쯤 말씀이 끝나나, 언제쯤 이 많은 무리들이 돌아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밖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아들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가족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들을 보고 싶어서 오셨군요.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지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렇게 여럿이서 예수님 앞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가서 예수님께 당신들이 왔다고 말씀을 전하지요." 그러고는 군중들을 비집고 예수님 앞에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틈을 이용하여 조용히 말을 전합니다. "랍비여,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당신의 동생들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집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지금 문 밖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심은 마리아와 동생들을 무시한 말씀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말씀하시고 곧 일어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을 안으로 모셔왔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언제나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실 때에 순간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 하실 때에 저 멀리 밭에서 농부가 씨뿌리는 장면을 보시면서 하시 말씀입니다. 부자의 잔치 초청 비유 말씀은 당시 실제로 있어던 그래서 사람들이 잘알고 있는 뉴스를 예로 들어 말씀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와 동생들이 문밖에 와 계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예수님은 곧 새로운 영적인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부모 형제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영적인 가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가족을 피붙이요 살붙이란 말씀을 드렸는데. 영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으로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성만찬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의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와 살로 하나 된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 한 가족을 이룬 교회공동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 라온 코이노니아 공동체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인간의 혈통으로 맺어진 혈연 가족을 중요시 여기셨다면 예수님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혈연 가족을 무시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가족보다 더 중요한 영적 가족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천국가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엡 2:13과 18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권속이란 원어로 ‘오이케이오스’란 말로 혈연 가족이란 말입니다. 딤전 5:8에서는 ‘자기가족’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즉 이제부터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란 말씀입니다. 바울은 때때로 디모데나 마가 같은 제자들을 아들이라고 불렀고 로마에 있는 여 교인들을 자매라고도 불렀고 루퍼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은 이처럼 주안에서 한 가족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자매님 형제님 이렇게 호칭하며 성도 간에 부르기도 합니다만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는 않지만 우리는 가족 공동체 라온 페밀리라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세대 교류형 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 문화가 시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나고야시 나고야역에서 지하철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느리게 사는 주택'(ぼちぼち長屋)‘이 있습니다. 2층 규모 목조 주택에는 고령자 13명, 아이들을 둔 부부, 직장여성 3명 등이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주거형태를 실험하기 위해 2003년 만들어진 임대주택입니다. 1층에는 공동생활을 하는 고령자들이 거주하고, 주방·화장실 등을 갖춘 독립적 공간으로 구성된 2층에는 가족과 직장여성이 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고령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조건으로, 집세가 절반 정도 만 받았습니다. 젊은이 모두가 고령자와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자들은 출퇴근 시간에 마주칠 때 나누는 인사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에 활기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과 어른들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습니다.
이 주택보다 한발 더 발전한 세대교류형 주택모델이 도쿄 아라카와구 닛포리에 있는 간칸모리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불안을 느낀 젊은 부부, 자식이 없는 고령자, 싱글족 등 28가구 40여명이 살고 있는데, 각 가구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살지만 식당과 세탁실, 테라스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번갈아 가며 공동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고령자와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류를 합니다.
고령자 세대가 20%에 육박하면서 홀로 사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실험이 한창입니다. 주택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사는 '세대 조화형 마을'이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치현 나가쿠테초에 있는 고지카라마을(ゴジカラ村)은 유치원, 탁아시설, 노인복지시설, 임대주택 등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는 시설을 설치, 자연스럽게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는 마을입니다.(차학봉 산업부차장대우 2009.5.26.)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데까지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은 앞으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친밀한 성도의 교제라는 축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앞으로 교회가 어떤 면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남녀노소가 함께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고 성도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교회당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세대 교류형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유치원 어린이로부터 초등학생 중등학생 고등학생에서 청년층과 70-80 노인에 이르기 까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젊은 세대는 조금은 괴로운 시간이지만 하나님이 축복을 그 누구보다 우리 어린 생명들이 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미래 시대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신앙공동체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시고 공감이 하시기를 바라니다, 교회에 나오시면, 그래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되며, 또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통하는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을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신앙공동체 한 가족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부부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부부간에 더욱 사랑으로 친화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어 여러분의 혈과 육의 온 가족들이 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가족처럼 천대에 이르기 까지 축복의 가문을 이루며, 우리의 이웃들 저 네팔의 백성들과 지구촌 온 인류를 가족으로 삼고 그들을 사랑하는 축복의 뜬봉샘이 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피붙이요 살붙이인 라온코이노니아 우리 신앙의 하나님의 가족들에게 날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