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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111일 주일아침 예배 고전 14:40 라온 스타일

 

 

혹시 이런 노래 가사를 들어 보셨습니까

 

<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

 

지금부터 갈 때까지 가볼까

 

어떻습니까? 전혀 모르시겠죠

 

그러나 다음 가사를 들으면 아 그 노래, 들어 봤죠 할 것입니다.

 

그 다음 가사가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2012년에 발표되어 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던 싸이의 오빤 강남스타일노래입니다. 미국에서 발표된 전 세계 가장 유행한 노래들만 순위를 정해 발표한 빏드 차트에서 2위에 오르기 까지 하였습니다.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브라질 심지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거리마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불러 됐습니다. KBS에서 해방후 지금 까지 발표된 대중가요 가운데 최고의 노래가 무엇이냐 라는 설문을 1000명에게 물어 봤더니 1위가 강남스타일(11.7%), 2위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8%), 3위가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6.2%), 4위가 서태지의 난 알아요(4.3%)라고 조사되었습니다.

 

미국의 유명잡지인 타임(Time)지는 "'강남 스타일'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의미"라는 기사에서 '강남 스타일'은 한국의 지나친 소비 풍조를 비판하는 풍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강남이 서울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점과 2010년 한국 가정의 수익대비 카드부채비율이 155퍼센트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강남 스타일' 비디오 장면들 속에 깔린 풍자내용들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에 곁 달린 춤은 사람들로 즐겁게 따라 하기 쉽게 되었지만 매우 선정적이고 퇴폐적인모습으로 오늘날 사람들의 성적 타락과 부도덕한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빤 강남스타일은 타락한 오빠 스타일입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극심한 분쟁이 있었고 문란하며 우상 종교의 영향으로 비 신앙적인 행위들로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간곡하게 권고하기를 품위와 질서 있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알려지기를 고린도 사람들이라면 성적으로 타락하고 매우 문란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 졌습니다. 이를테면 고린도스타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씀하기를 기독교인들은 고린도 스타일이 아니라 예수 스타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품위와 질서를 갖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교장로교회 합동총회 신학교의 교훈이 독특합니다. 첫 번째는 신자가 되라. 두 번째는 학자가 되라. 세 번째는 성자가 되라. 네 번째는 전도자가 되라. 그리고 다섯 번째는 목자가 되라입니다. 첫 번째가 신자가 되라즉 참 신자는 예수 믿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삼람을 참 신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 참 신자 아닌 사람이 있고 기도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참 신자가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일 열심히 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먼저 참 신자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러 저러한 일을 열심히 하는(doing) 사람이기 이전에 참 신자가 되는(being)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예수 스타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에게서 예수님의 품위가 보여져야 합니다. 말하는 생각하는데서 말하는 데서 행동하는 그 모습에서 예수스타일이 나타나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이아무게, 교회 일에 열심히 하는 김아무게가 예수 스타일이냐 하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예수스타일이 아닙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 한다지만 참 신자가 못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란 구분된 사람들입니다. 신자가운데 잘 못된 신자가 있고 온전한 신자가 있습니다, 천한 신자가 있고 귀한 신자가 있습니다. 불의와 짝한 신자가 있고 의와 합한 신자가 있습니다. 참 신자는 예수님 마음에 합한 온전하고 귀한 의로운 신자입니다. 이런 신자는 품위와 질서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말씀에서 품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스케모노스단정하게, 아담하게, 예의 바르게, 적당하게, 적합하게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좀 더 분명하게 말씀드린다면, 유스케모노스의 좋은, 아름다운이란 말이고, ‘스케모모양, 형상을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하였는데, 그 하나님의 형상이 유스케모노스입니다. 그러므로 품위로 번역된 유스케모노스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아 마귀의 더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태초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말합니다. ‘질서에 해당하는 헬라말은 탁시스라는 말인데 합당하게, 올바른 순서대로, 정돈된 모습으로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좀 더 성경대로 말씀드린다면, 히브리서 5:6절에 예수님의 제사장의 위치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반차라고 번역한 헬라어가 바로 탁시스입니다. 예수님은 사독의 후손인 제사장이 아니라 아브라함시대에 아브라함을 축복한 예루살렘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뒤를 따른 대 제사장의 신분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닌까 대 제사장 예수님의 반차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참 신자라고는 말씀입니다. 그중에 우리 앞에 모법이 있으니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를 길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길을 달려가겠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참 신자는 에수님의 길을 따르는 바울의 탁시스 그 뒤를 질서있게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씀들이면 참 신자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예수님의 품위를 갖추고, 또한 예수님의 뒤를 질서정연하게 바울의 질서를 따르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각종 뉴스에서 그래도 사회적으로 지체가 높고 잘 산다는 사람들 가운데 품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부사자이였던 조현아씨로 인한 땅콩회항사건, 그리고 몇 일 전 가수 바비킴의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의 만취사건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 김영한씨의 항명사건 이런 사건들, 이들은 모두 품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품위를 잃어버리므로 자신들 뿐 아니라 소위 국가의 품위도 떨어트렸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공장에서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양적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양도 중요하지만 질이 좋은 물건들을 만들어야 잘 팔리는 질적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온 중국 상품은 값싼 상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값이 싸더라도 질이 나쁜 중국 상품을 사지 않습니다. 조금은 비싸도 우리나라 상품을 삽니다. 이제 우리나라 상품은 세계에 내놓아도 뒤떨어지는 질 좋은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질적 사회에서 품격사회로 나가게 됩니다.(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비샤이 마갈릿저 시성림역 품위 있는 사회참고할 것)

최근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용어로 甲乙 논쟁에 대한 사회적 잇슈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지위 높은 상사가 아랫사람을 하대한다거나, 백화점에서 손님들이 점원에게 막말을 한다는 것은 인격을 손상시켜 굴욕감을 느끼게 함(이것을 질이라고 함)으로 사회적 갈등을 이르킨다는 것입니다. 최근 서울 시향의 박현정대표의 막말사건, 부산경찰청 권기선 청장의 상습욕설사건 등 이런 전에 없던 일들이 사회적 잇슈로 등장하여, 본인들의 품격도 스스로 떨어트리지만 상대방의 품위를 짓밟아 집단 내에 큰 갈등과 분쟁을 야기 시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헬라에 플라톤이란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국가>(Politeia)란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이런 말을 합니다. “좀처럼 (환락에) 유혹당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품위를 지키며, 모든 경우에 자신을 단정하고 조화롭게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나 국가를 위해서 가장 유용한 사람일 걸세.” 즉 나라에 필요한 지도자가 되려면 품위를 잃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품위야말로 그 사람의 정신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군산시 문동신 시장은 군산을 드림 허브도시로 만들어가자고 하면서 시민의 감성과 공감 능력을 높이는 품격 높은 문화도시로 조성 시켜 가겠다고 시정방침을 세웠습니다. 아직 우리 군산시가 품격도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질적사회에서 품격사회로 가겠다는 문 시장의 노력을 매우 적절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이나 율법사들은 매우 신앙심이 돈독하다고 존경받았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제사장이란 위치는 존경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자신들의 품위 걸맞지 않는 비열한 언행을 일삼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람다루는 방법 중의 하나가 상대방을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그의 인격을 깡그리 무시하여 굴욕감을 가지게 함으로 절망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아랫사람에게 또는 경찰서에서 취조할 때 이런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이런 방법들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자신의 품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상대방을 욱박질러 상대방으로 하여금 지레 겁먹게 하고 포기하게 하려는 의도를 행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소리치면 예수님이 겁을 먹어 도망치거나 아니면 잘못하였다고 빌 것이라고 생각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록 40대에 하나를 감한 매를 맞으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 가시면서도 당신의 품위를 지키셨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그의 양손과 발에 장 못이 박힐 때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품위를 지키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 해 달라고 오히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유스케노모스 품위를 지키신 모습 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품위를 지켜 따라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가운데 있더라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순교당할 때에 찬송을 부르며 순교를 당하심은 바로 예수님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30여 년 전 전주 영생여고 교목으로 있을 때입니다. 가을 학생들 수학여행으로 목포와 여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목포역에 도착하여 유달산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학생들이 묶을 숙소로 가는 중에 여학생들을 지쳐 대열은 흩어졌고 여학생들의 걸음걸이는 힘이 다 빠져 흐느적거렸고 둘러맨 가방을 벗어 질질 끌고 가는데 그 모습이 꼭 전쟁에 포로병 모습 이였습니다. 저는 그때 학생들을 세운 뒤 하나님께서 우리 학생들에게 새 힘을 주시라고 기도한 후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특히 여자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자세를 자로 세우고 여학생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한다. 지금 저 골목에는 목포 남학생들이 숨어서 너희들을 엿보고 있다. 목포 남학생들에게 너희들의 그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보여 줄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여학생들은 다시 힘을 내어 여학생으로서 품위 있게 걸어갔습니다. 여성의 매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으로서의 품위-이것이 여성의 매력입니다.-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바로 기독교인들은 참 신자라 하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예수의 품위를 지켜야 마귀가 엿보지 않으며, 마귀가 얕보지 않으며,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세상 사람들 보기에 매우 작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일찍이 복음교회 창설자이신 최 태용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 하라즉 비록 작지만 순수하라는 말씀으로 바로 우리의 품격을 말합니다. 우리의 작은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유스케노모스 예수님의 품위를 지켜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시는 우리의 순수한 신앙공동체 라온 코이노니아 스타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시는대로 라온이란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 즐거운 이란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전의 옷을 벗고 새로운 라온의 옷을 입었습니다. 이전의 그 어떤 습관이나 관례에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에수께서 가르쳐 주신 품위와 질서를 따라 우리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혹 어느 골목에서 엿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귀가 실눈을 떠 수상하게 처다 볼 것입니다. 마귀가 또 그 어떤 유혹과 훼방을 일으킬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니요, 우리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품위와 바울의 질서를 지키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우리 신앙공동체를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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